해마다 4월이 되면 전 세계의 인테리어, 가구 관련 전문가들은 밀라노로 향한다. 피에라 밀라노 전시장에서 열리는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와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 피에라 밖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칭한다)’를 보기 위해서다. 도시 전체가 디자인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는 일주일 동안 이곳에는 전 세계의 인테리어 트렌드를 주도하는 가장 트렌디한 가구 디자인이 전시된다. 여러 전시 중에서도 에디터가 가장 중점적으로 둘러본 것은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 올해로 43회를 맞는 이 전시는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사스의 영향으로 다소 침체되었던 지난해에 비해 관람객이 15퍼센트나 늘어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26개의 독립관에서 열린 전시는 3박 4일을 꼬박 돌아다녀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한데 가구 전시인 ‘살로네 인테르나치오날레 델 모빌(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과 ‘퍼니싱 액세서리(Furnishing Accessories)’전을 비롯해 14~16관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부엌 가구 전시 ‘에우로쿠치나(Eurocucina)’와 사무용 가구 전시 ‘에이무(Eimu)’, 14, 17관에서 열린 ‘욕실과 홈 패브릭(Bathroom & Home Fabrics)’전 등 볼 거리가 넘쳐났다.
위의 전시가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멋진 디자인과 넓은 부스에 세팅된 완벽한 디스플레이로 관람객을 압도했다면 9관에서 열린 ‘살로네사텔리테(SaloneSatellite)’전에서는 영 디자이너(40세 미만)의 기발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이 즐거움을 주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4백여 명의 디자이너와 21개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작품을 선보였는데 디자이너가 좁은 부스를 지키며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디자인에 대한 생생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초청된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학생들의 작품과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 또한 9관의 지하에서는 미소니와 폴 스미스가 디자인한 레스토랑과 마지스, 카르텔, 사와야 & 모로니, 폴리폼, 폴트로나 프라우 등 세계적인 이탈리아 가구 회사가 후원하고 10개국의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디자인한 ‘스트리트 오브 레스토랑(Street of Restaurant)’전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스트리트 오브 레스토랑전에서는 브라이튼의 비엔나 커피 하우스, 시드니의 스테이크 하우스, 로마의 차이니스 레스토랑 등 하나의 컨셉 아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선보였으며 학생들이 직접 웨이터가 되어 서빙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푸오리살로네 중에서는 토르토나(Tortona) 거리에서 열린 다채로운 전시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무이와 톰 딕슨, 파올라 렌티가 전시한 ‘슈퍼스튜디오 피우(Superstudio Piu)’, 디자인 런던과 W+B 디자인이 전시한 ‘슈퍼스튜디오 13’, 비사자와 자노타가 전시한 ‘토르토나 35’ 등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B&B 이탈리아, 아르마니 카사, 카시나, 포로, 드리아데, 모로소, 카펠리니, 사와야 & 모로니, 마테오그라시 등 밀라노 곳곳의 쇼룸에서 열리는 전시를 찾아 다니는 재미 역시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만끽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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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 wood & glossy surface 올해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게 새로운 경향은 찾을 수 없었다. 예년의 트렌드가 쭉 이어지면서 약간의 변주가 가미되었는데 분명한 것은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는 다양한 요소가 공존한다는 사실. 체리목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이고 라이트 오크와 블랙에 가까운 다크 오크, 웬지가 주를 이루었는데 특히 다크 오크나 웬지에 래커 도장한 글로시한 마감을 매치해 임팩트를 준 디자인이 두드러졌다. 다크 오크의 미니멀한 느낌과 글로시한 질감이 주는 맥시멀한 느낌의 대조는 동양과 서양의 적절한 조화를 연상시킨다. 글로시한 마감은 올해 단연 두드러져 나무뿐만 아니라 자노타의 ‘잭(Jack)’ 테이블과 MDF의 ‘컬러스(Colors)’ 테이블처럼 크롬이나 알루미늄 등의 메탈에도 바니시나 래커를 칠해 반짝반짝한 느낌을 주었는데 전체적인 라인은 매우 미니멀하지만 컬러와 질감은 풍부해서 다양한 느낌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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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ved & light 젠 스타일의 영향은 꽤 오래 지속되어서 미니멀 라인과 좌식 가구처럼 낮은 디자인이 테이블과 수납장, 침대에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반면 소파나 스툴은 인체의 유기적인 곡선을 닮은 디자인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1960년대의 스페이스 에이지 룩을 연상시킨다. 대표적인 제품으로 모로소의 ‘블루미(Bloomy)’ 의자, 사와야 & 모로니의 ‘버터플라이(Butterfly)’ 풋스툴, 론 아라드가 듀폰을 위해 디자인한 ‘오보이드(OhVoid)’ 의자 등이 있다. 또한 카르텔이나 마지스뿐만 아니라 여러 업체에서 유리나 아크릴, 플라스틱 같은 가벼운 소재에 다양한 컬러와 패턴 등의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했는데 그래픽적인 꽃이 크게 프린트된 패브릭에 유리를 덧댄 자노타의 ‘스피드(Speed)’ 유닛과 ‘루촐로(Lucciolo)’ 사이드 테이블이 대표적인 제품. 특히 루촐로는 메타크리에이트라는 소재에 인광(어떤 물체에 자외선 등의 빛을 쬐었다가 그 빛을 없애도 그 물질에서 한동안 나오는 빛)을 발하는 다양한 패턴을 가미해 매우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 밖에 조형미가 뛰어난 사와야 & 모로니의 ‘잇(It)’ 의자와 커다란 꽃과 사슬이 프린트된 ‘안나 모르프(Anna Morph)’ 책장, 네온 컬러가 돋보이는 ‘오발레오(O’Valeo)’ 트레이, 라이트 메탈에 컬러 유리를 매치한 리브잇의 스토리지 박스 등도 주목할 만하다. |
unit system 거실장과 소파, 테이블 등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것이 유닛 시스템이다. 라이프스타일이 점점 다변화되면서 다양한 니드를 만족시키는 데 유닛 시스템처럼 똑똑하고 간편한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이에 대부분의 업체에서 유닛 시스템을 선보였는데 이러한 제품은 단순히 디자인이 똑같은 유닛을 조합하는 것에서 나아가 좀더 다양한 디자인의 유닛을 구성해서 다이내믹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 SIDI의 ‘지오메트릭(Geometric)’, 톰 딕슨이 팔루코를 위해 디자인한 ‘톰 박스(Tom Box)’, 토넬리의 ‘아폴로(Apollo)’, 플렉스폼의 ‘인피니티(Infinity)’ 등이 있다. 특히 재스퍼 모리슨이 카펠리니를 위해 디자인한 ‘오블롱(Oblong)’은 사각 쿠션 모양의 유닛을 독립적으로 스툴이나 테이블로 사용하거나 조합해서 소파로 사용할 수 있다. 살로네사텔리테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좁은 공간에 효율적인 가구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테이블과 의자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로 끼워 맞추어 놓아 데드 스페이스를 없앤 제품, 소파의 시트가 다섯 개의 스툴로 분리되는 붐온(Boomon) 디자인의 ‘유턴(U-Turn)’, 식사 패턴에 따라 트롤리로 분리할 수 있는 델러먼섭턴(Thelermonthupton)의 ‘피크닉(Picnic)’ 테이블 등이 눈길을 끌었다. |
kitchen for living 짝수 해마다 열리는 에우로쿠치나에서는 최첨단 기술과 디자인이 결합된 부엌 시스템을 볼 수 있다. 올해는 흥미롭게도 에우로쿠치나와 더불어 피에라 9관에서 열린 ‘다이닝 디자인’전과 이탈리아 인테리어 잡지 인테르니가 트리에날레 디 밀라노(Triennale di Milano)에서 개최한 ‘스트리트 다이닝 디자인(Street Dining Design)’전 등 다이닝에 관한 전시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이는 웰빙 라이프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현대인에게 부엌이나 레스토랑은 끼니를 때우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올해 에우로쿠치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트렌드 역시 부엌은 더 이상 음식을 조리하고 먹는 곳만이 아니라는 것. 사람을 만나고 공부하고 놀이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부엌에 리빙의 개념을 도입했는데 많은 업체들이 조리 공간과 다이닝 룸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기존에 기본적으로 사용했던 모듈러 시스템 대신 거실장으로 사용해도 좋을 커다란 수납장과 식탁을 함께 배치하는 등 부엌(다이닝 룸)과 거실의 경계를 지워 나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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