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 불영사 후원 공양간 옆의 장독대에서 주지이며 저자인 일운스님이 묵은 김치로서 김치 레시피를 10월8일 설명하고 있다. |
문만 열면 사람과 가까운 식재료 터밭을 두고 사찰음식축제가 열릴 경북 울진 불영사에는 젊은 스님들이 시연했던 김치튀김`김치피자`김치버거가 책자로 앞서 선 보였다.
“울진의 초중고교생들이 젊은 스님들 보다 이제 더 좋아한다.” 불영사 주지이면서 <김치나무에 핀 행복>의 저자 일운스님은 10월8일 기자들의 방문에 가을 식재료로 최적이라는 호박잎 된장국에 ‘송이+호박볶음’을 직접 담아준다.
“순수한 자연음식은 의식있을 때 자신의 잘못을 고치라고 일깨운다. 사찰음식은 순수하고 단순하다. 천진불로 돌아가기 위해 음식을 먹기에 천연에 가까운 음식이 사찰음식이다. 템플스테이로 수요가 커진 사찰음식이 전통을 훼손하는 경향도 있다.”
스님의 사찰음식론은 거침이 없다. “전문적 요리가 아니고 그냥 이런 음식 먹고 이런 수행하고 있다.” 그런 스님의 사찰음식에서는 “고정된 인식 바꿔야 한다”는 개념이 출발점이다. 왜 일반인들에게도 사찰음식인가란 질문에는 “가족이 건강해야”란 명제가 붙는다.
비구니계의 거장 묘엄스님의 전강제자이며 맏상좌로서 선을 전파하던 스님이 ‘김치버거’ ‘김치그라탱’이란 신상품을 책에서 펼쳐 내놨다. “젊은스님들이 해서 먹을 수 있고 울진의 초중고생이 좋아한다.” 이 신종 김치 파생상품은 실제 지난해 사찰음식축제에서 선보인 200여가지 중 하나다.
일운스님이 가을 선철결제 중인 불영사 천축선원에서 선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
“원래 있던 것이 맛을 결정한다. 공기 물 환경 음식 사람들이 깨끗해야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사찰음식은 몸을 편안히 하고 마음과 행복해지는 것이다. 나아가 음식 쓰레기에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해결책도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사찰음식이 대안이다.”
스님은 음식을 먹는 이유에 대해 “건강과 수행을 위해, 나아가 도를 이루기 위해, 궁극적으로 도가 내 속에서 있다는 진리를 알아 깨닫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그 연장으로 천축선원에서 20여 수좌들이 안거 중인 불영사에서 올해 4회째 사찰음식 축제를 열고 있다. 스님은 “오는 13일에는 3000여명이 모여 사찰음식으로 과식하지 않으면서 성품이 부드러워지게 하는 음식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면서 “사찰음식은 양념을 많이 않쓴다"고 말한다. 적은 양념으로 다양학 식재료 그 자체를 살려낸 '김치나무' 책은 사찰음식 축제2회부터 사찰에 2-3000명이 모여 200여개의 김치 음식을 만든 결과물 중 중요 부분을 뽑아 낸 것이다.
사찰음식에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스님은 올해 4회 사찰음식축제에는 나물과 장아찌가 주종이라며 철지난 봄 나물도 등장하고 가을 능이장아찌 고들빼기김치 등 108가지 이상이 전시된다고 밝혔다.
스님은 80년대 중반 대만 유학시절 은사 묘엄스님을 초청해 대만의 사회에 헌신하는 불교와 승속 합일에 의한 불교의 사회활동을 보여줌으로써 대만불교와의 교류 물꼬를 텄다. 5년간 유학해 석사학위 후 귀국해 스님 제자 5인이 함께 불영사에 들어와 오늘의 대가람을 일궈냈다.
일운스님이 만든 고들빼기 김치. |
가람을 일구듯, 스님이 낸 책은 밥상에 오른 배추가 숨을 쉬게 하고 김치튀김까지 등장하며 절집의 김치 이야기를 통해 야채의 생명력을 84가지로 되살렸다. 울진 불영사에서 진행된 책 <김치나무에 핀 행복> 시연회에는 김치활용음식의 놀라운 진보를 발견케 한다. 동치미국수, 김치우거지찌개, 돌솥김치밥 등에 도량 마당 곳곳에 연속 피어났던 민들레김치도 곁들여졌다.
야채가 중심에 서서 입맛보다 눈길 부터 사로잡은 사찰음식의 진가는 그렇게 야채의 진보를 담보한다. 천축산의 오랜 수행처이며 비구니스님들이 채공간에서 특별히 간수해온 식문화 면면이 사찰 인근의 텃밭이 왜 필요한가를 일깨운다.
여기에 직접 담근 장(醬) 내음과 계곡을 따라 길게 퍼지는 진한 밥냄새가 민족의 발효음식 연원을 보여주기 충분하다. 그만큼 김치는 불영사 천축선원의 1달반 가을안거 수행에서 지혜의 도리를 보여준다. 곁들여 ‘고추김치’ 조리법은 똑같이 막 따 온 고추이지만 생명력의 경중을 가려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신선한 재료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을 떨쳐버리기에 제격인 ‘고추김치’는 재료의 겉보기 상태에 따라 양념간장에 들어가기도 하고, 김치에 쓰기도 하고, 국에 넣기도 하고 적절한 용도로 더욱 적극 활용된다.
그 속에서 주어진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더불어 재료들을 버리지 않고 상황에 맞게 유효적절히 써가는 기법, 마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이 갈라지는 불교의 지혜와도 잘 어울린다. 저자는 “재료의 좋고 나쁨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분별한다면 그건 정성스러운 공양의 자세가 아니다”고 말한다.
일운스님이 불영사 채공간에서 조리음식을 대중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희귀한 ‘천문동약초김치’를 보자. 하늘의 문을 열어 주는 겨울약초로 불영사 뒷산 천문산에서 따 온 것이 김치에 곁들여진다. 스님은 “천문동은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져서, 하늘로도 오를 수 있게 한다는 약초로 겨울김치에서 제격”이라며 “약용으로 성질이 차면서도 몸을 보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몸이 허하면서도 열이 있을 때 써 깊은 산중 수행에서 겨울용 김치 부가가치를 높인다”고 말한다.
점액질이 많은 재료인 천문동은 빛깔이 희고 도저히 김치식 저장용이 안될 것 같으나 스님의 레시피는 이를 뛰어 넘는다. “산사의 차고 습한 공기에 늘 노출되는 수행자의 폐와 신장으로 들어가서 신장의 음액(陰液)을 늘려 장기의 허열(虛熱)을 없애고, 신장의 기 순환을 원활히 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고 배설이 잘되게 한다. 여러 가지 풍(風)· 습(濕)으로 갑자기 몸 한쪽에 감각이 없는 것을 치료하며 골수를 보충해 주기도 한다.”
도심에서도 소박한 밥상을 상징하는 ‘열무김치와 국수’ 레시피를 보자. 이름 그 자체로 ‘스님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서 소면(笑面)’이다. “다른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가볍게 엷은 국수를 삶아 열무김치를 얹어보라.”
깊은 산속임에도 너무도 안정된 불영산사의 선방과 비구니스님들의 살림살이는 수행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책은 그 이야기들을 삽화와 사진을 곁들여 음식 에세이로 꾸몄다. “채공간 조리는 수행처의 하늘과 땅과 물, 바람 등이 함께하며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는 공간이다.”
저자 일운스님은 김치에 대한 일반적 효능가치를 넘어선다. 스님은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에서의 유산균의 효용성을 넘어 사계절 내내 다른 맛과 모습으로 우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김치의 내면을 탐구하자”면서 “단순히 늘 먹는 음식이라는 개념을 떠나 식재료 하나하나의 소중함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일운스님 지음/ 여친스님·아도스님 삽화/ 장명확 사진/ 담앤 북스 |
책은 4장으로 구성, 봄안거 여름안거 가을안거 겨울안거 등으로 편성돼 각각 계절에 어울리는 김치 및 김치활용요리를 실었다. 당장의 가을안거는 역시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은 절집김치로 늙은호박김치, 우엉김치, 연근김치, 송이나박물김치가 등장한다.
새해를 연 봄안거에는 산수유백김치, 민들레김치, 미나리김치 등 봄에 얻을 수 있는 채소로 담근 김치이다. 여기에 씻은김치들깨볶음, 김치두부꼬치, 김치묵사발 등 겨우내 먹었던 김치로 김치활용음식을 만든 레시피도 있다.
또 여름안거에는 산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물들이 주종이다. 가지김치, 쌈채묵김치, 매실김치 등이 차가운 계곡물과 연결되는 열무김치국수와 맞물린다.
다가 올 겨울안거에는 예의 김치튀김이 등장한다. 여기에 얼음이 떠다니는 동치미국수, 모락모락 뜨거운 김을 불며 먹는 김치우거지찌개, 하얀 밥기운이 솟아나는 돌솥김치밥 등으로 눈과 입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오는 10월13일 4년째 이어져온 불영사 사찰음식축제에는 오신채(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사용하지 않은 절집김치의 깊은 식감을 느끼려는 탐방객이 주지 일운스님의 늙은호박김치와 송이나박물김치에다 양배추김치 등에서 눈과 입으로 즐감할 열린 공간이며, 가수 장사익이 출연하는 산사음악회가 같이 열린다.
“사찰음식은 식감을 높이기 위해 몸에 해로운 재료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좋고 꾸준히 먹으면 질병이 치료되고 과격한 성격이 변화되며, 나아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치유돼 사랑과 자비심이 가득한 인격을 형성한다.”
음식에서 수행을 넘어 힐링까지 거침없이 설명하는 저자 일운스님은 경북 울진 불영사 주지이면서 지난 2011년 6월 염불만일수행결사를 통해 해외 어린이교육사업과 북한어린이돕기 동참 및 초중고교 청소년백일장 개최 등과, 사찰음식축제도 지속해 와 지난 7월 시작된 울진읍 심전문화복지회관 건립이 올 연말 준공을 앞뒀다. 스님은 전국비구니선문회 부회장과 울진불교사암연합회장이면서 15대 중앙종회의원이며, 저서 <불영이 감춘 스님의 비밀레시피>를 냈다.[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