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풍산 오미리 풍산김씨 이야기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는 풍산김씨 집성촌으로 김대현(金大賢)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그 중 다섯 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자, 조선 후기 인조(仁祖) 임금이 ‘팔련 오계(八蓮五桂)’라고 하면서 ‘오미(五美)’라는 마을 이름을 내렸다.
이 마을은 경주 출신의 김연성이 관직에 있으면서 풍산 석릉촌(石陵村)에 와 있던 중 오미리에 별서(別墅)를 마련한 뒤로 현손인 김자순(金子純)이 서울 장의동에서 오미리로 낙향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김양진(金楊震)과 그의 증손자 김대현(金大賢)이 크게 이름을 떨쳐 가문의 위상을 높였고, 김대현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고, 그 중에 김봉조, 김영조, 김연조, 김응조, 김숭조가 문과에 급제하여 ‘오미김씨’ 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김양진, 김대현이 불천위)
① 父 김대현(金大賢, 1553 ~ 1602) 자 희지(希之), 호 유연당(悠然堂), 사마시에 입격 생원, 성현도 찰방(省峴道察訪),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 산음현감, 슬하에 9남 3녀를 둠, 증 이조판서 (불천위)
② 長男 봉조(奉祖, 1572 ~ 1630) 자는 효백(孝伯). 호는 학호(鶴湖), 사마시, 문과급제
감찰, 단성현감, 경상도도사, 익산군수, 지평, 제용감정을 지냄
③ 次男 영조(榮祖, 1577 ~ 1648)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 사마시와 문과급제
지평, 대사헌, 대사성, 대사간,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냄
④ 三男 창조(昌祖, 1581 ~1637) 자 효언孝彦), 호 장암(藏菴)선조(宣祖) 38년(1605)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진사], 본릉참봉, 금부도사, 청암도찰방
⑤ 四男 경조(慶祖, 1583 ~ 1645) 자 효길(孝吉) 사마시에 입격, 사포별제, 내시 부교관, 이산현감
⑥ 五男 연조(延祖, 1585 ~ 1613) 자 희석(希錫), 호 광록(廣麓), 사마시 및 문과급제
승문원부정자 * 29세에 사망. 『광록문집(廣麓文集)』
⑦ 六男 응조(應祖, 1587 ∼ 1667) 자 효징(孝徵), 호 학사(鶴沙), 생원시 문과급제 지평, 밀양부사, 한성부좌윤, 공조참의, 예조참의 문집 『학사집』
⑧ 七男 염조(金念祖 1589 ∼1652) 자 효수(孝修), 호 학음(鶴陰), 1635년 사마시 입격 과천현감, 정산군수, 안산군수, 종친부 전첨,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⑨ 八男 술조(述祖, 1595 ~ 1611) 1611년 낙동강 뱃놀이 중 사고로 17살에 요절
10) 九男 숭조(崇祖, 1598~1632) 자 효달(孝達), 호 설송(雪松) 사마시 및 문과급제, 승정원 주서 천연두에 걸려 조졸(早卒)
* 팔련오계(八蓮五桂)라는 말은 팔련오계지미의 약칭으로. 과거에서 사마방을 연방, 문과방을 계방이라고도 하는데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