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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이광오 초대전 - 靜과 動의 소통 |
전시일자 : 2009. 3. 25 - 4. 4 |
전시작가 : 이광오 |
靜과 動의 소통
글 : 이광오 작업노트
내 작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靜)과 동(動)의 소통이라 하겠다. 나는 이 명제를 물리학적으로 접근하여 질량과 에너지의 유기적 구조 속에서 우주의 원형을 그려 보고자 한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이 물리학적 구조 속에 일원적이고 시공을 초월한 동양의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사유의 여정이라 하겠다
우주는 질량과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과거 서양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이 두 요소를 철저히 분리하여 고정된 개체로 바라보았고 그 결과 2원적 구조라는 불변의 사고를 낳았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였고 나와 남을 분리하였으며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였다. 또 한 美의식도 절대적이어서 플라톤의 이데아관념은 칸트 이전까지도 변하지 않는 절대미를 추구하였다. 동양미술은 애초부터 다차원적 관통의 미학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상호침투를 유도해 온 반면 서구미술은 그들의 역사의식 속에서 차원불변 의식인 공간성과 시간성이라는 2원적 대립을 설정한 가운데 발전해 왔다. 물리학도 이에 다를 바 없다.
靜中動, 90.9cm x 72.7cm, 혼합재료, 2009년
그리스 시대에 시작된 물리학은 뉴턴의 기계론을 지나서 18세기까지도 질량과 에너지를 2원적으로 구분해 왔다. 질량불변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법칙이 그것이다. 질량은 질량일 수밖에 없으며 에너지는 절대로 질량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양의 사관 속에선 질량과 에너지의 개념을 2원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물(物)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動)과 정(靜)의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정(靜)과 동(動)을 음(陰)과 양(陽)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서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속에 음의 기운이 내포되어 있고 음 속에도 양의 기운이 있어서 서로 유기적인 소통을 하는 것이다.
生動, 98cmx 50cm, 혼합재료, 2008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말이 있다. 유형이 무형이고 무형이 유형이라는 의미일 터. 동양에선 서양의 의식처럼 흑백을 분리하지 않고 이렇게 흑 속에 백이 있고 백 속에 흑이 있음을 본다. 그리스시대의 2원적 사고는 데카르트의 기계론과 뉴턴의 역학으로 발전되어 과학의 발달을 가져 왔으나 이러한 분열의 과학문명 속에서 인간과 자연도 함께 분열 되었고 미래의 재앙적 위기를 예고하며 성장해 온 것이다. 이 2원적 기계문명의 꽃(?)이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경제적 풍요라고 말하며 이 풍요를 누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고 선전하지만 뒤에 감춘 손에는 비수가 들려있다. 자본주의의 전략은 계속 인간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2원적 대립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의 풍요를 인간의 가치로 인식시키기 위해 빈부의 대립을 부추기며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의 풍요에 따른 자연의 훼손을 방조키 위해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방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에 따른 종말적 재앙을 책임지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고스란히 이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명제: 動中靜, 130.3cm x97cm, 혼합재료, 2008년
지금도 정보화와 광고의 홍수 속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전일적 인간상을 성찰해 볼 기회를 상실한 채 자본주의라는 거대기계가 계속 살아 있게 해야 할 톱니바퀴의 톱니가 되어 있음을 잘 모른다. 얼마 전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에너지가 별개의 구분된 성질이 아니고 유기적인 요소라는 등가원리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때 세상의 물리학자들은 그를 두고 몽상가라고 비웃었다. 그가 실험에 성공할 때까지. 이 원리는 물과 얼음의 변화로 쉽게 설명될 수 있겠다. 물은 에너지이고 얼음은 질량인데 에너지인 물이 얼면 얼음이 되고 녹으면 다시 물인 에너지가 된다. 물과 얼음은 항상 서로를 받아들여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유기적인 가능태(可能態) 인 것이다. 이렇듯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입장의 차이에서 달라지는 유기적 속성이다.
動中靜 130.3cmx97cm,혼합재료,2008년
동양에선 만물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통하는 이러한 전일적 사고가 수 천년 전부터 있어 왔으나 서양에선 뒤 늦게 19세기 20세기에 와서 현대 물리학자들이 뉴턴적 고전 물리학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그들의 이론과 실험에 동양사상적 원리를 수용하면서 물리학을 새롭게 다시 쓰고 있다 상대성 원리가 그렇고 양자론이 그렇다. 그런데 인류에게 유익할 수 있는 우주의 에너지인 원자 물리학의 순수한 업적이 인류를 위협하는 핵무기로 변질되었듯이 이러한 분열과 갈등의 문명 속에선 인류에게 이로운 가치도 대결의 이기심에 지배될 수 있는 것이어서 이처럼 사회적 철학과 문화가 상생 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발전을 앞세운 이 기계문명 속에서 제어할 길 없는 이기와 물욕에 내몰린 인간은 성찰의 기회를 점점 상실한 채 소외되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靜中動 90.9 cm x 72.7,혼합재료,2008년
과거에 나는 샤머니즘을 모티브로 작업한 적이 있는데 서구의 ‘합리/ 비합리’의 도식에 따른, 고정되고 부정적인 개념이 아닌, 유기적이고 무위적(無爲的)인 자유로움. 과학의 인위적인 문명 속에서 굴절되었던 패배주의 의식에 젖은, 개선되어야 할 동양정서가 아닌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열 수 있는 우리민족 혼의 원형을 그리고자 했었다. 마치 피오타르가 탈 현대의 본질적인 문제의식이 ‘현대를 시간의 뒷방으로 밀쳐 넣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말 했던 것처럼, 과거와 현대의 간격을 메우고 보편적이며 원형적인 문화의 저변을 탐구하던 샤머니즘적 작업을 정리하고 지금 나는 이 시대가 갖고 있는 갈등과 분열의 원인을 찾고 치유하고자 하는 의도로서 작업을 통해 물리학의 요소인 질량과 에너지의 소통문제를 현대 물리학적 측면과 동양사상에 입각한 철학적 의미 속에서 구성해 보고자 한다.
靜中動53 cm x 45.5 cm혼합재료2009년
이 화면을 나는 정(靜)과 동(動)이 관통되는 형식의 절대치라고 말하고 싶다. 질량은 정지한 듯 보이나 거기엔 우주의 순환하는 기(氣)가 응축되어 내재하며 동(動)의 움직임을 동반한 찰나에 놓여 있고 이 찰나 속에서 다른 질량들과 더불어 상생한다. 또한 하나의 질량이 공간 속에서 홀로 존재하더라도 이것은 독립되고 고립된 개체가 아니요, 정(靜)의 정점에서 동(動)을 머금고 공간과 교감하는 그러한 물(物)이다. 물(物)의 본성은 상호 의존하고 상생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격리되고 독립된 자체로는 무기물에 불과한 것. 이 내밀한 수수께끼 같은 다 차원적 파장 속에서 상호 유기적 소통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화면 속에 내재하는 정과 동의 절대교배를 유도함에 있어 공간 자체 또한 질량과 에너지가 용해되어 순환되는 유기적 장(場)이며 우주의 무한감을 흡수하고 환기시키는 허(虛)이다.
靜中動100 cm x 100 cm혼합재료2009년
老子는 말하기를 “세상에서 미(美)를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만 이야기 할 때 추(醜)가 존재하며 선(善)을 모두 선한 것이라고만 이해할 때 사악한 것이 존재 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통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지적은 아이러니 하게도 서양의 역사에 내재된 의식을 질타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들은 미(美)와 혼(醜)를 구분하여 절대미를 추구하였고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여 독단론을 만들었다. 동양사상에선 미와 추를 2원론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미(美) 속에 추(醜)의 요소가 함께 하여 승화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요 추(醜) 속에도 다가가 보면 美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美)를 절대적인 미로 한정 짓는다면 그것은 폐쇄되고 지겨우며 생명성이 없는, 싸늘한 매너리즘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선의 반대 개념을 지금 우리는 악이라고 알고 있으나 그것은 개화기 이후에 우리 사회가 서구화 되면서 만들어진 문화적 패러독스이다.
靜中動30 cm x 30 cm혼합재료2009년
동양문화에 있어 선(善)의 반대 개념은 불선(不善)이다. 악(惡)이 아닌 것이다. 선하지 않은 상태요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개선의 여지가 있는 미 분별의 카오스인 것이다. 그런데 서양에선 이것을 변할 수 없는 고정된 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가 어떠한 하나의 개념에 의식을 집중하고 절대화 하는 순간 거기에 상반되는 대립자가 생겨나게 되는데 서양 문명은 바로 이 실재와 대립자를 분리하는 2원적 토대 위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동양사상은 개념을 절대화 하지 않으며 차원을 규정하지 않는다. 대립자는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그 실재의 양면성이라고 보고 있다. 실재와 대립자는 상대적인 두 범주가 아니라 동일한 현상의 다른 면에 불과하며 이 실재의 양면에서 생겨나는 개별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때 일체가 통일되는 전일성(全一性)을갖게 되는 것이다.
靜中動162.2 cm x 130.3 cm혼합재료2008년
나는 화면의 생동감을 위해 일탈적 변화를 수용하기도 한다. 미적(美的) 가치란 어떠한 의식적 범위 안에서 고정되어 있는 관념이 아니라 형성된 아름다움 안에 배타적 요소가 가미되고 조율되는 유기적 순환이 따를 때 살아 있는 생명의 구조가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에네르기의 교감 속에서 초월된 상생의 세계가 만들어 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기 (氣)의 운화(運化)를 가변화(可變化)하여 나타내 보고자 하는 조형적 시도이며 또한 분리의 구조가 아닌 유기적이고 치유적인 상호작용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의지의 다름 아니다. 이 고도화 된 자본주의적 기계문명 속에서 인간에게 처해진 숙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지난(至難)한 문제겠지만 원자 물리학자들이 2원적 기계론을 탈피하여 1원적 통일성을 회복해 나아가고 있듯이 우리의 사회와 문화 또한 보다 근본적인 상생의 소통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발터 벤야민’은 현대의 시대에 예술작품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의 문제는 ‘아우라의 상실’이라고 지적했다. 아마도 이 시대에 있어 질적 가치의 부재는 예술에 국한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靜中動90.9 cm x 72.7 cm혼합재료2009년
靜中動72.7 cm x60.6 cm혼합재료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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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오
- 개인전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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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깨끗하네요~~~^^*
이달의 작가 -- 이광오, < 靜과 動의 소통 >
이달의 작가.. 이광오 - 靜(정)과 動(동)의 소통 ... 입니다.. ^_^
월간전시 3월호 이달의 작가는 [이광오], 초대전의 전시 제목은 [靜과 動의 소통] 입니다.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이동엽 화가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네요. (그분이 백색 미학의 대가라면 이광오 작가는 하늘색 미학의 대가라고 해야할까요?)여백의 미가 물씬 풍겨납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듯 해요.
이달의 작가: 이광오-- ((靜과 動의 소통))입니다.^^
이달의 작가 : 이광오 "정과 동의 소통" 베어님 안녕하세요 ^^ ㅎㅎㅎ 여기서 뵙네요~
이달의 작가.. 이광오(정과 동)의 소통 입니다.
2009년 03월호의 작가는 이광오, 전시제목: 靜과 動의 소통 입니다. 좋은 소식 기다릴께요.ㅎㅎㅎ
미션..이달의 작가.. 이광오(정과 동)의 소통 ^^
이달의 작가) 이광오 ,초대전제목) '정(靜)과 동(動)의 소통' 입니다~
[365 일] 매일이벤트 3월 17일의 미션의 답은 <이달의 작가- 이광오, 초대전 제목 - 靜과 動의 소통>입니다.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광오 '정(靜)과 동(動)의 소통' 입니다. 동중정 가장첫번째 작품이 특히 맘에 드네요 ^^
이달의 작가 [ 이광오 - 靜과 動의 소통]굉장히 철학적이며 물리학적인...어...설명이 어렵다....^^;;;
이광오/靜과 動의 소통
정답!!! 월간전시 3월호 이달의 작가는 이광오, 그리고 이번 초대전의 전시제목은 정과 동의 소통!!!
/이광오-- 정靜과 動의 소통/ 들풀처럼님 말씀처럼 새로운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즐겁네요
이달의 작가: 이광오 / 초대전제목 : '정(靜)과 동(動)의 소통'
이달의 작가: 이광오-- ((靜과 動의 소통))입니다.^^
2009년 03월호의 작가는 이광오님, 전시제목은 - <靜과 動의 소통> 입니다. 매일 재미있네요. ㅎㅎㅎ
이달의 작가는 '이광오'이고, 초대전 제목은 '정(靜)과 동(動)의 소통' 입니다. ^----^
이광오/ 靜과 動의 소통
이달의 작가--> 이광오 "정과 동의 소통"입니다.
이광오 작가-"靜과 動의 소통" 입니다~~~^-^
이달의 작가는 [이광오], 초대전의 전시 제목은 [靜과 動의 소통] 입니다
이달의 작가 : 이광오 초대전제목 : 정과 동의 소통 입니다.
오늘 정말 맘에 드는 카페 하나를 발견했네요^ ^미술을 사랑하는 여대생입니다. 퀴즈도 참여하고 갈게요~ 이달의 작가는 이광오 선생님 그리고 초대전 제목은 "靜과 動의 소통" 이네요. ^ ^
이달의 작가 : 이 광오. 초대전 제목 : 靜과 動의 소통 ---매일 들어오면서도 매일 이벤트를 그냥 지나쳤었네요. ㅋ. 오늘 참여해요.^^
소통..참 간절한 주제네요..
좋은작품보게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