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오픈 에어링이 부럽지 않다. 닛산 휘가로
이효리는 타고난 연예인이다. 그녀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갖게 하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패션과 음악에 그녀의 당당함을 거침 없이 반영하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앨범을 들고 나올 때마다 음악과 그녀가 입는 옷이 뜨거운 아이템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자동차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가 타는 차는 ‘이효리 자동차’라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끈다.
이효리는 닛산의 큐브, 휘가로를 탔다. 두 모델 모두 작고 소박한 느낌의 차다. 그녀가 거둔 성공을 생각해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우람하고 큰 차를 골라도 될법하다. 반면 아담한 크기에 작은 엔진 달아 소소하게 다니는 차를 골랐다. 지속적으로 환경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차다. 도심과 야외 활동에도 적합한 주행성능을 바탕으로 여유롭고 편안한 이동이 가능하다. 야외에서 데이트를 위해 와인과 샌드위치 그리고 간식을 바구니에 넣고 시골길을 달리는 영화 속 한 장면에 어울릴만한 차들이다.
큐브는 한국 닛산을 통해 정식으로 수입되며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닛산 휘가로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이미 생산을 마친지 20년이 넘은 준 클래식카이기 때문이다. 귀여운 모습은 알아도 어떤 차인지는 모를, 닛산 휘가로를 알아보자.
휘가로는 1989년 도쿄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일본이 버블 시대의 절정을 달릴 때다. 넘쳐나는 부의 시대였다. 경제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지만, 역설적으로 이 때 기획돼 등장한 차들은 매우 훌륭했다. 특이한 아이디어를 담은 차들도 있었고, 기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차들이 많았다. 금전적 제약이 느슨해져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돈을 아끼지 않고 기술에 투자했다.
휘가로는 닛산의 특수 프로젝트 그룹인 ‘파이크 팩토리(Pike Factory)’에서 기획한 차다. 파이크 팩토리는 니치 마켓을 공략하기 위한 그룹이다. 닛산의 소형차 마치(닛산 마이크라, 코드명 K10)을 바탕으로 안팎을 새롭게 꾸민 차를 내놓았다. 그 결과물이 지금도 독창적인 시도로 기억되는 Be-1, 파오, 에스카르고, 휘가로다.
휘가로는 복고 스타일링을 휘감고 등장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이발사 휘가로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래서인지 유럽 분위기 잡는데 능숙하다. 마치 60년대 유럽차들에서 보이던 경향이 보인다. 박스형 차체를 바탕으로 하지만 약간씩 유연하게 선을 다듬었다. 몇몇 장식을 더해 옛 분위기를 더욱 살렸다. 원형이지만 작게 눈뜬 헤드램프와 크롬링, 그 아래 자리한 격자 무늬 그릴, 광택나게 다듬은 앞뒤 끝자락에 달린 조그만 범퍼가 그렇다. 백테 타이어 느낌 내려 칠한 12인치 휠 덮개가 그 포장을 확실히 마무리한다.
실내도 고풍스럽게 다듬었다. 옛 정취가 가득하다. 곳곳에 고풍스러운 디테일을 살렸다. 계기판은 마치 옛 시계같은 글자체와 바늘을 사용해 꾸몄고 크롬링을 둘렀다. 스티어링 휠은 얇은 살을 사용하고 크롬 장식을 더해 다듬었다. 토글 스위치의 모양은 휘가로의 로고를 꼭 빼닮았다. 더불어 글로브 박스를 여닫는 모양새도 옛 차 그대로다.
휘가로의 실내. 단순함 속에 일본 특유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오래된 차라 닛산에서도 흑백 사진을 제공했다). 오픈도 가능하다. 휘가로의 오픈 방식은 필러 사이에 자리한 천 지붕만 접혀 들어가는 방식이다. 개방감은 조금 덜할지 몰라도 B필러와 C필러가 그대로 남아 혹시 모를 전복 상황의 안전도를 높인다. 여는 방법은 3단계. 첫째, 천정에 자리한 2개의 걸쇠를 풀어 뒤로 젖힌 후 손잡이를 뒤로 젖힌다. 둘째, 차에서 내려 트렁크 위쪽을 들어올린다. 그러면 지붕을 가지런히 접어 숨길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셋째, 가지런히 접은 지붕을 넣고 안에 자리한 보조띠로 잘 고정하고 닫는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0L 터보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75마력으로 6000rpm에서 나오며, 최대 토크는 10.8kg•m로 4400rpm에서 나온다. 연료분사 방식은 카뷰레터(기화기) 방식이다. 자동 3단 변속기를 맞물려 앞 바퀴를 굴린다. 당시 기준으로 시내 연비는 13.6km/L를 냈다. 하지만 3단 기어로 속도를 제법 올리기도 쉽지 않고, 고속 연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느릿하게 달리기 알맞은 차다. 평지에서 시속 60km/L를 유지할 시 연비는 24.1km/L에 달했다고 한다.
소프트탑 오픈 방식. 소프트탑 트렁크 아래 짐을 싣는 트렁크가 따로 있다. 차체 길이는 3740mm. 휠베이스는 2300mm에 너비는 1630mm다. 공차중량은 810kg로 가벼운 편이다. 아쉽게도 휘가로는 경차가 아니다. 배기량은 국내 경차 기준에 맞지만 차체가 기준보다 조금 더 커 소형차로 분류된다. 경차 혜택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일이다. 안전장비는 브레이크 뿐. 에어백이나 주행안정 보조장치는 없다. 지금의 차와 비교하니 부족해보이지만 당시 차급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앞바퀴 브레이크는 벤틸레이티드 디스크를 쓴다. 뒷바퀴 브레이크는 드럼 방식이다. 타이어는 165/70R12 사이즈를 단다.
세계에 단 2000대만 있는 토파즈 미스트 색의 휘가로. 휘가로는 처음부터 한정판을 겨냥했기에 8000대만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며 신청자가 넘치기 시작했다. 결국 6000대씩 두 번을 더 생산해 2만 대를 만들고 추첨방식으로 팔았다. 돈을 줘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운도 따라줘야 살 수 있는 차였다. 휘가로의 에메랄드 그린, 페일 아쿠아, 토파즈 미스트, 라피스 그레이의 각 색은 사계절을 나타낸다. 이중 토파즈 미스트는 단 2000대만 생산돼 희귀차종이 됐다. 다른 색이라면 후에 차주가 따로 도색한 것.
국내에서도 휘가로를 만나볼 수 있다. 정식 수입된 적은 없지만 일본에서 수입해 휘가로를 몰고 있는 이들이 있다. 대수는 많지 않지만 오너스 클럽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휘가로에 관심이 있다면 들려보길 권한다. 어디까지나 휘가로는 20년 넘은 준 클래식카다. 당연히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 부품은 닛산 마치와 공유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지만 관리 자체가 요즘 차에 비하면 어렵다. 일본을 통해서 부품을 받아 정비를 하려해도 시간과 비용이 꽤든다. 귀여운 모습에 끌려 쉽게 선택했다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휘가로는 매력적인 클래식카다. 옛 정취 가득 담은 차로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에서 오픈 에어링을 즐기는 낭만적인 시간은 흔치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