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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처럼 우리의 사는 모습도 매우 다양하다. 이 위대한 지구는 말없이 우리들 모두에게 무한한 에너지로 생명을 영위하게 한다. 마치 생명 자체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하다. 지구의 이 위대한 축복은 한이 없어 무한하다. 우리들을 각양각색으로 살아가도록 함에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다. 차도 그런 지구를 닮았다. 지구상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은 수십억에 이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방법과 차를 마시면서 느끼는 감정, 그리고 차를 대하는 태도 등은 너무도 다양하다. 중국에는 “평생 차를 마셔도 죽을 때까지 모든 종류의 차를 마실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차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글은 차의 종류에 대한 글이 아니다. 그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다. 중국의 속담처럼 그렇게 많은 종류의 차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마시는지를 일일이 다 정리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몇 가지 형태로 분류하여 지금 현재 우리들이 차를 마시는 모습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차를 마시는 행위에 정답이란 없다. 마치 지구가 생명 자체를 축복하는 것처럼, 차 역시 마시는 사람 모두에게 그저 각자가 원하는 바를 비춰 줄 뿐이다.
찻잎을 말리고 가공하는 모습을 담은 중국의 그림. 중국은 육우의 [다경(茶經)]을 통해 당나라 때에 이미 차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일상음료로서 차를 즐기게 되었을 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쳐 세계 차문화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출처: gettyimages>
역사적으로 보면 차를 마신 사람들의 훌륭한 글이 많이 전해진다. 차를 마신 사람들이 모두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역사 자체의 특성상 가치 있는 것들만 기록되고 그 중에서도 가치 있는 것들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다성(茶聖)으로까지 추앙받는 당나라의 육우(陸羽, ?~804)를 들 수 있다.
그가 저술한 [다경(茶經)]은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기록과 육우가 직접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모두 상, 중, 하 3권, 총 10장 7천여 자(字)로 구성되어 있다.
[다경]에는 차의 기원, 효능, 차를 만드는 도구와 방법, 차를 끓이는 기구와 방법, 차 마시는 법, 차산지 및 차의 고사 등 차에 관련된 일들이 총체적으로 다뤄져, 그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경]이 편찬된 이후로 음다법(飮茶法)이 체계화되어 차가 일상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경의 중요한 가치는 기존의 습관이나 취미에 불과하였던 차를 보다 깊이 연구하고 정신문화로까지 격상시켜, 차를 진리탐구의 도구로 여길 수 있게 하는 차학(茶學)의 기초를 정립하는 데에 있다. 이후 다경은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쳐 차문화의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경에서는 차를 마시기에 적합한 사람은 정행검덕(精行儉德)한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차가 쓰이게 됨은, 맛이 지극히 차가워서茶之爲用 味至寒
마실 거리로 삼기에 가장 마땅하기는爲飮最宜
정행검덕(精行儉德: 행실이 바르고 단정하며 검소하고 겸허함)한 사람이다.精行儉德之人
맛이나 향기보다 효능이 우선!: 기능형
차의 맛이나 향보다 효능을 중시하는 ‘기능형’ 음다법은 차를 보약처럼 생각하고 마시기도 한다. 차가 유럽에 처음 전해졌을 당시 유럽인들은 차를 ‘동양의 신비한 약’으로 여기기도 했다. <출처: gettyimages>
차를 마시는 유형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에는 차의 효능 때문에 마시는 기능형이 있다. 이런 유형은 차의 맛이나 향기보다는 기능적인 효능을 중요시하여 차를 보약처럼 생각하고 마신다. 남녀를 불문하고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다이어트와 젊음의 유지이다. 사람들은 어떤 차를 마시면 이러한 방면에서 효과를 볼 수 있냐고 자주 질문한다.
그들에게는 차를 마셔 효과만 볼 수 있다면 차의 쓰고 떫은 맛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며 기꺼이 즐겨 마신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차를 음미하기보다는 마신다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얼마 만큼의 차를 언제, 어떻게 마셔야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차는 최초에 농업의 신 신농(神農)에 의해 발견되면서 약용(藥用)으로 사용되었다. 한의학적인 차의 효능은 매우 다양하다. 육우의 [다경(茶經)]에는 “열이 있어 갈증이 나거나 번민이 있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껄끄럽거나 팔다리가 나른하거나 뼈마디가 편치 않을 때 차를 네다섯 잔 마시면 신선의 약인 제호나 감로에 못지않은 효능이 있다”라고 하였고,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작설차인 고다(苦茶)는 기운을 내리게 하고 체한 것을 소화시켜 주며 머리를 맑게 해 주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해주며 불에 덴 화상을 해독시켜 준다”라며 차의 약효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차의 효능에 대한 인식은 유럽인에게도 전해져, 초기에 유럽인들은 차를 ‘동양의 신비한 약’으로 여기고 심지어 차를 마시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있었다.
현재 유럽에서 차는 기호음료로뿐만 아니라 건강음료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차가 몸에 좋다는 인식은 이미 보편적이다.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들이 입증되었고 차의 효과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차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차의 약효는 체질과 환경에 의해 효과가 달리 나타나므로 몸에 좋다고 무조건 많이 마실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체질과 차의 성질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차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가 생활화되어 부지불식간에 차를 마시는 일상형도 있다. 인도에 가면 샐러리맨, 노동자,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모두 길거리에서 홍차에 우유와 설탕 그리고 향신료를 첨가한 차이(Chai)를 하루에 대여섯 잔씩 마신다. 이들에게 차는 생활의 일부로,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처럼 차를 마시는 것이 늘 생활화되어 있는 유형이다. 주변에 보면 “차에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차를 가까이 해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한 지인은 하루에 세 번의 티타임을 갖는다. 가족과 함께 차로 아침을 여는 Family's Morning Tea, 점심을 먹고 마시는 After Lunch Tea, 하루를 정리하는 Night Tea로, 영국인들이 하루에 7~8번의 티타임을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가족의 화목과 건강이 하루 세 번의 티타임으로 인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까닭에 차의 생활화를 실천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의 이러한 생활패턴은 그의 자녀들뿐 아니라 손자들에게까지 이어져 3대가 함께 차를 생활화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홍차에 우유와 설탕, 시나몬(계피) 등의 향신료를 첨가해 끊여낸 차이를 즐겨마신다. 이들에게 차는 생활의 일부이다. <출처: (cc) A Kolkata voter en.wikipedia.org>
티백은 처음 차의 향과 맛을 떨어뜨린다고 여겨져 적극 도입되지 않았으나, 그 편리성으로 인해 지금은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 홍차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출처: gettyimages>
생활 속에서 가장 간단하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차의 음용 형태는 ‘티백(tea bag)'이다. 티백이 유통된 지는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영국에서는 보급률이 80%를 웃돌고 있을 정도로 가장 대중화되어 있는 차 제품이다. 티백은 한 미국인에 의해 전혀 의도치 않게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의 차 수입상들은 차 견본을 주석용기에 넣어 소매상인에게 보냈고, 소매상인들은 이것을 시음한 뒤 주문하였다. 그런데 한 수입상이 이 주석용기가 아까워 비단 주머니에 차를 넣어 보냈는데 이것을 받은 소매상인이 찻잎을 주머니에 넣어 판매하면 아주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단주머니도 함께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후에 종이 주머니로 바뀌며 현재 티백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전통을 중시하던 영국인들에게 미국인이 개발한 티백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은 티백으로 차를 마시면 차의 향과 맛을 떨어뜨린다고 여겼다. 당시 대표적인 차 회사에는 트와이닝(Twining)과 립턴(Lipton)이 있었다. 왕실에 차를 납품하던 트와이닝 사에서는 당연히 티백을 생산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던 립턴은 티백을 적극 도입해 대량생산하게 된다. 립턴은 그 후 트와이닝 사에 버금가는 회사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비싼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치형이 있다. 영국의 유명한 홍차 회사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개발된, 여러 등급의 차를 섞어 최상의 맛을 내는 블렌딩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이 기술은 회사의 극비로 여긴다. 블렌딩의 역사 또한 매우 재미있게 시작되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차를 실은 범선이 중국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유럽에 도착하기까지 반년 이상이 걸렸다.
때문에 차는 오는 도중 비바람과 높은 온도에 의해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상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 변질된 차에 질이 좋은 차를 섞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블렌딩 상업화의 시작이다. 당시 상인들의 상술로 인해 유럽인들은 변질된 차가 포함된 차에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도 만족스러워했다.
메리 카사트(Mary cassatt)의 1885년작 ‘티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여인’. 동양에서 전래된 차 문화는 유럽 상류층 사람들에게 신비하고 숭고한 대상으로 여겨졌으며, 여유롭게 티 타임을 즐기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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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그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좋은 도구가 된다. 서양인들이 차를 마시는 초기의 그림을 보다보면 신기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 차를 찻잔에 마시지 않고 찻잔받침에 부어 마시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것은 유럽 사람들이 동양의 다도를 접하고 그 문화에 감탄한 나머지 영문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모방한 결과이다. 당시 동양의 차 문화는 유럽 상류층 사람들에게 신비하고 숭고한 대상으로 여겨져, 차를 마시는 자체가 권력이나 부를 상징할 정도였다. 동양에서는 말차(가루로 된 찻잎 분말을 이용하여 거품을 내 마시는 차) 등의 진한 차를 마실 때, 순한 맛을 느끼기 위해 공기와 함께 들이쉬며 소리를 내며 마셨다.
이 모습을 모방한 유럽 사람들은 찻잔에 담긴 차가 뜨거워 우습게도 찻잔받침에 차를 따라서 의미도 모른 채 소리를 내며 마셨던 것이다. 한 잔의 차를 우려내기까지에는 번거로운 과정들이 많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지만 그들에게 차를 마시는 행위는 충분히 자신을 과시할 만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즐기며 만족했다. 그들은 차의 맛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면을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나라도 70년대 후반부터 일정한 형식에 따라 차를 우려내는 다례(茶禮) 혹은 다도(茶道)가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다례의 주된 목적인 차를 맛있게 우려내고 타인과 진정한 교감을 하며 정신적 풍요로움 얻는 것을 잊어버리고, 값비싼 다구와 옷의 과시 그리고 남들과 다른 문화의 향유에 대한 우월감을 나타내기에 급급하다. 물론 가치는 각자가 정하는 것이지만, 유럽인들이 처음 차를 모르고 찻잔받침에 차를 따라 마셨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동진시대 [진중흥서(晋中興書)]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육납이라는 사람이 오흥의 태수로 있을 때 위나라 장군 사안이 뵙기를 청하자 육납은 차와 과일만을 대접하였다. 이를 본 육납의 조카는 서둘러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하고 육납에게 칭찬받기를 기대했지만, 육납은 사안을 돌려보낸 후 오히려 조카를 몽둥이로 때리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름난 다인(茶人)으로 알려진 사안에게 융숭히 대접하는 길은 좋은 차를 정성스럽게 끓여 드리는 것뿐인데, 오히려 진수성찬으로 사안을 욕되게 했으니 육납이 그토록 부끄러워 화를 냈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차를 마시는 다회(茶會)의 모습. 차를 더불어 마시면 차의 맛도, 만남의 즐거움도 배가 될 수 있다.
더불어 마시길 좋아하는 사교형도 차를 마시는 유형 중 빼놓을 수 없다. 사교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할 때에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성격의 사람들은 혼자서 차를 마시기보다는 더불어 마시기를 좋아하며, 그들에게 차는 상대와 교감하게 하는 통로로써의 역할이 보다 크다.
1744년 아일랜드 교회의 주교 조지 버클리(George Berkley, 1685~1753)는 “홍차는 매우 온화하고 부드럽게 작용하므로 사람들의 기분을 밝고 명랑하게 해 준다”고 주장했다. 차를 더불어 마시면 차의 맛도, 만남의 즐거움도 배가 되어 대화가 원활하게 되며 만남이 깊어지게 된다.
영국에서 차가 처음 판매된 곳은 1657년 ‘개러웨이스(Garraways)'라는 커피하우스였다. 당시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상류층 인사들이나 외국을 오고가는 상인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사교를 위한 장소였지만, 후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정치, 경제를 논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이곳에서는 상인들에 의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진귀한 물건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차도 그 중의 하나였다. 차가 들어온 후 커피하우스에서 차의 판매율이 점차적으로 상승하게 되면서 사교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차문화가 번성했던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는 태조부터 공민왕까지 모두 차를 즐겼고, 차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다방(茶房)’이라는 부서를 만들어 국가의 각종 연회나 외국 사신 접대 등 중요한 행사에 꼭 ‘다회(茶會)’를 베풀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는 ‘다점(茶店: 차와 다식, 술을 파는 곳으로 상업이 발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됨)’이라는 찻집이 있어 서민들까지도 이용할 수 있었다.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는 “정사와 부사는 여가 있는 날에는 언제나 상절의 관속들과 차를 끓이고 그 위에서 바둑을 두며 종일토록 담소하니, 이는 마음과 눈을 유쾌하게 하고 무더위를 물리치는 방편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차는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여가를 즐기며 마실 수 있었다.
혼자서 마시기를 즐겨하는 몰입형도 있다. 몰입형은 차에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내면으로 깊이 심취하는 유형으로,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차의 색(色), 향(香), 미(味), 형(形) 등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즐기고 혹은 보다 더 고원한 정신적 측면에 심취하기도 한다. 차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그 다양한 차들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의 특징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차의 맛과 향의 차이는 물론 차나무가 어디서 자라났는지, 어떤 품종의 찻잎인지, 가공 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차가 어디에서 유통되고 보관되었는지 등 차의 전반적인 사항을 단지 오감(五感)만으로 알아차린다. 비록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특징의 차이를 찾아내기 힘든 매우 비슷한 차일지라도 그들에게는 판이하게 다른 차로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차의 섬세한 매력들은 그들이 더욱 차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초의선사가 보내준 차에 대하여 다음부터는 차가 타지 않도록 불 살피기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추사의 차에 대한 미감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알 수 있다.
옛 선인들 중에는 차의 정신적 측면에 집중한 사람들이 많다. 고려말의 충신으로 이름난 정몽주는 <돌솥에 차 달이며(石鼎煎茶)>라는 제목의 시에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 못한 늙은 서생이 차 마시는 일로 세상을 잊는구나. 눈보라 세찬 밤 그윽한 서재에 홀로 누워 돌솥의 솔바람 소리 즐겨 듣네” 라고 차를 마시며 느끼는 감회를 표현했다.
우리나라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조선후기의 선승 초의선사(草衣禪師, 의순, 1786~1866)는 [다신전(茶神傳)]에서 차를 마시는 법에 '손님이 너무 많으면 주위가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아취(雅趣: 우아한 정취)가 사라진다. 홀로 마시면 신령스럽고(神), 둘이 마시면 좋은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勝), 서너 명은 즐겁고 유쾌하다(趣).
대여섯은 평범하고 구속받지 않으며(泛) 일곱 여덟명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施)'라고 하였다(飮茶之法 客衆則喧 喧則雅趣索然 獨啜曰神 二客曰勝 三四曰趣 五六曰泛 七八曰施也).” 그만큼 혼자 마시는 차를 귀히 여겼으며 사람이 많으면 정신이 분산되어 차의 참맛을 즐기기 어렵다고 여겼다.
차 한잔을 마시는 데에도 다양한 경지가 존재한다. 태산에 오르고 나서야 동산이 낮음을 안다는 말처럼, 다도를 통해 태산의 경지에 이르러 봄은 어떨까.
똑같은 이슬을 마시고 뱀은 독을 만들고 벌은 꿀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차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차를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시는 사람에 달려 있다. 차를 마심이 자기의 편협한 마음을 키워주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차는 오히려 마시지 않느니만 못하리라. 반면에 차를 마심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의 독을 제거하고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으며 가까이의 벗들과의 교제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면 그런 차의 가치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 차 한잔이 침묵의 노래요 별들의 정원이며 우주의 숨결로까지 다가올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차의 생화학적 특성을 훨씬 뛰어넘는 경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을, 불교인들에게는 부처님의 광명을 그리고 유학자들에게는 공맹의 도를 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사이비 차교주의 억지 논리라 여길 수도 있지만, 하지만 어쩌랴 차를 마시면 분명히 느껴지는 것을. 물론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어야 하고, 불교인이라면 나름대로 계를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며, 문리를 궁구한다면 사서(四書) 정도는 정독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종교이든 당신이 신앙생활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면, 차는 보다 선명하고 구체적 모습으로 당신이 가는 길에 기댈 수 있는 좋은 안식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의 눈은 단지 시각이다. 그러나 이 작은 두 눈으로 인해 우리 몸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안 좋은 광경을 보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이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가슴이 더없이 넓어지게 된다. 좋은 것을 바라보면 그것과 닮아가는 법. 그러니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보자. 그리고 찻잔을 들어 대지의 축복을 마시자.
태산에 오르고 나서야 동네의 동산이 낮음을 알았다는 말이 있다. 학문의 완성으로 인식의 변화와 새로운 광활함을 마주한 감동의 순간에 대한 노래이다. 차 한잔을 마심에도 다양한 경지가 존재한다. 동산에서 마시는 차와 태산에 올라 마시는 차는 벌써 바람이 틀리다. 어찌 같은 차맛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들 제 스스로 아니 오고 공연히 좋은 경치 없다 말하네”라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동산의 차도 차다. 분명 차는 그 자체로 즐겁다.
하지만 그대 아는가 태산의 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같은 시간에 같은 차 한잔이지만 누구에게는 동산의 즐거움으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태산의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태산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당신과 나의 차 이야기.
-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1932&category_type=series
첫댓글 동국이상국집의 이규보 또한 차를 좋아하여 茶詩 40수가 있습니다^^
저는 혼자나 두명이 차마시기에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