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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제방, 고수부지의 변천 이해>
60~70년대 홍수로부터 여의도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의 윤중로 제방을 쌓았고, 80년대 한강기슭을 정리하여 고수부지가 생겼음. 현재는 도심의 휴식처로 발전해오며 윤중로 안 여의도의 1.6배까지 확장 되었음 |
* 붙임4. 여의도동 필지 수 및 면적 설명 (위 A,B,C 경계사진 참조)
구분 |
설명 | ||
구역 |
필지 수 |
면적 | |
A구역 |
416 |
2.9㎢ |
윤중로 제방안쪽 면적 |
B구역 |
535 |
4.5㎢ |
윤중로 제방 및 한강시민공원 포함 면적 |
C구역 |
523 |
8.4㎢ |
여의도동 전체 (하천(한강)바닥, 밤섬 일부 포함) |
여의도, 여의도 유래
여의도 [汝矣島]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딸린 한강의 하중도(河中島).
위 치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면 적 : 8.4㎢
면적 8.48㎢, 인구 2만 9756명(2001)이다. 한강에 발달한 범람원으로 영등포 쪽에 작은
샛강이 있다. 모래땅으로 이루어진 쓸모없는 벌판이었으나, 1916년 9월 일제가 이 섬
(당시는 경기 고양군 용강면)에 간이비행장을 건설함으로써 비행기지로서의 여의도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22년 12월 안창남(安昌男)의 모국방문 비행도 이곳에서
실시되었다.
1936년 김포 비행장이 새로 건설된 후에도 여의도 비행장은 존속하였고 8·15광복 후에는
미군이 접수, 한때 사용하다가 1968년에 이르러 서울특별시에 의한 윤중제(輪中堤) 축조
및 신개발 사업이 착수되었다. 착공 반년 만에 윤중제가 완성되었고 이 섬의 복판을 가로
질러 마포와 영등포를 직결한 6차선의 마포대교가 1970년 5월 개통함으로써 신시가지
발전이 한층 가속화되었다.
1981년 10월 4차선의 원효대교가 준공·개통하여 여의도와 용산구 원효로 4가를 이어
놓았다. 국회의사당·한국방송공사·문화방송국·동아일보사 별관·전국경제인연합회·
순복음교회와 각종 금융관계사, 아파트 등이 밀집해 있으며, 대한생명 63빌딩·엘지(LG)
쌍둥이 빌딩 등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여의도 [ 汝矣島 ]
구 분 : 자연명 > 섬
위 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유 래 : 홍수에 휩쓸릴 때 양말산 만이 물 속에 잠기지 않아 ‘나의섬’ ‘너의섬’이라 지칭한
데서 유래됨.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해당하는 섬으로서, 나의주/잉화도라고도 하였다. 한강 하류 용산/
마포나루터에서 당인리 앞까지, 남쪽으로는 노량진에서 양화동까지, 한강 흐름의 한복판에
넓게 펴진 백사장 섬이었다. 여의도가 홍수에 휩쓸릴 때 제일 높은 곳인 지금 국회의사당이
자리 잡은 양말산 만이 물속에 잠기지 않아 부근 사람들이 그것을 ‘나의섬’ ‘너의섬’이라
지칭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네이버지식사전]
* 출처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여의도동(汝矣島洞 / Yeouido-dong), 여의동
여의동은 여의동이란 1개의 행정동을 보유한 동으로서,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나의주 (羅衣洲) 라고도 불렸던 동으로, 여의도가 홍수로 인하여 휩쓸릴 때도 제일 높은
곳인 지금의 국회의사당에 자리잡았던 양말산만은 물에 잠기지 않고 나타나 부근 사람들이
"나의 섬" 이니 "너의 섬" 이니 하고 지칭한 것중 "너의 섬" 을우리말 발음을 딴 이두어로
표기한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양말산 : 지금의 국회자리로 엣날부터 말이나 양을 기르던 산으로, 말을 기르는
양마산(養馬山), 또는 양을 기르는 양마산(洋馬山)의 의미로 그렇게 불렸음
* 영등포구청 홈페이지: 내사랑영등포>영등포소개>동명칭 및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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