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의 유래(田氏由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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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氏(전씨)는 옛 中國(중국) 전국시대때 舜(순)임금의 후예인 田氏(전씨)가 세운 齊(제)나라가 있었는데 後齊(후제)의 王子(왕자)가 東(동)으로 건너왔다고 傳(전)한다
('임진보','갑자보').
전씨의 본관은 문헌에 담양, 남양, 연안, 영광, 태산, 교동, 안주, 진원, 하음, 정산, 우봉, 예산 등을 비롯하여 159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이 중 가장 연원이 오래 된것은 영광 전씨(靈光田氏)로서 시조는 고려조 개국공신 전종회(田宗會)이다.
다음은 고려때 조산 대부·신호위 대장군등을 지낸 전총문을 시조로 하는 태산 전씨이며, 교동 전씨는 고려 말엽 정용산원을 지낸 전성무를 시조로 하는데, 그의 딸이 조선 개국 공신이자 옥천부원군인 유 창(劉 敞)에게 출가 하였다.
전체 전씨 중에서 대종인 담양 전씨는 고려 의종조에 시사하여 후에 좌복야(左僕射)·참지정사(參知政事)등을 역임한 후 담양군에 봉함을 받은 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하며, 현존하는 전씨 중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시조공 전득시의 선계는 계대와 사적이 소멸되어 상고할 수 없다.
한편 남양전씨는 원래 중국의 한림학사로 고려에 귀화하여 남양군에 봉해진 전 풍(田 豊)을 시조로하여 왔으나 계대(系代)가 분명치 않으며, 고려 말엽에 전 주가 직제학을 비롯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첨의 정승에 이르러 고려가 망하자 정치노예가 되어 일족이 충청도 공주로 유배된 후, 그의 손자 전 흥이 신왕조에 혁혁한 공을 세움으로써 남양 전씨의 중흥조가 되었다.
그외 전씨(田氏)는 거의가 담양 전씨에서 분적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며, 계대와 사적이 소멸되어 자세히 상고할 수 없다.
오늘날 전씨는 담양의 관향은 시조인 전득시가 고려 중엽에 담양군으로 봉해지면서 부터이며, 집중 세거지는 일찌기 담양으로부터, 전국각지로 확대되어 나갔다.
초기에는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살았고 8세손 전화의 대에 충청남도 부여로 이거했던 이래 홍성, 청양, 전북 익산등지에 분산하여 터를 잡았고, 13-14세 손의 대에 일부가 전북 김제, 함남 북청, 홍원 등지로 이거 하였다.
1980년대에는 경남 의령군 용덕면 죽전리에 많은 자손들이 모여 살고 있어며, 현재 인구는 약109,213명(1985년)으로 조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