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세가와 1/72 F-100 슈퍼 세이버 키트 박스 아트)
정말 이 키트는 제가 오래 오래 에어로 모델링에 대한 울렁증을 안겨준 키트였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탱크 쪽에 자신감이 있느냐하면 절대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전투기 키트를 산더미(?) 같이 사재기 해놓고도 단 한대 도전을 못하는 지금의 참담한 울렁증의 시작은 바로 이 키트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이니까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됩니다. 어머님은 명동 미도파 백화점에 저를 데리고 가서 원하는 것을 하나 사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그때 뭔가 제가 엄청 칭찬 받을 일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그때 저는 어머님 손을 붙잡고 플라스틱 모델 키트 코너로 가서 바로 위에 키트 (수입품이었던 탓에 가격도 무척 비쌌을 것입니다...)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저희 집 형편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당시 어느 가정이나 이런 일제 프라모델 키트를 턱 턱 사주는 형편의 부모는 그리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어머님은 사주셨고 당시 프라모델 취미에 대하여 동경심만 있었지 합동과학과 같은 국산 브랜드의 싸구려 키트 몇개 만들어 본 제가 이런 에어로 키트를 멋들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과제였고 도색은 아예 생각도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 와서 이 키트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하세가와 키트 중에서도 무척 세부 묘사가 부족하고 결코 고급 수준의 키트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저는 정말 허접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캐노피에 "쎄메다인" 한방울을 떨어뜨려서 울고 싶은 절망감마져 느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데칼 부착에서 저지른 기초적인 실수는 완성 자체를 못하고 구석에 쳐박아버리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슈퍼 세이버 전투기를 보면 언젠가는 멋들어지게 만들어보고 말리라 하는 "야심"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에어로 프라모델에 대한 울렁증은 여전하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일본 프라모델러의 하세가와 동일 키트 완성품. 이작품이 엄청난 걸작이라서
사진 올린 것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런 작품 흉내를 낼 엄두도 못낸다는 것이
너무 속이 상한다는.....)
자! 각설하고! 오늘은 바로 저에게 아픈 기억을 남겨준 F-100 슈퍼 세이버 바로 이 기종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노스 아메리칸社는 F-86 세이버 전투기로써 이미 한국전쟁 때 소련의 미그-15와의 진검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냉전 시대 개막에 미소 양국의 제트 전투기의 첫 대결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F-86 세이버 - 제트 전투기 초창기에 V자형 주익을 선택한 결과
거의 같은 시기에 1자형 주익을 적용하여 쉽게 쉽게 설계를 했던
다른 제트 전투기들에 비해서 월등한 성능을 자랑했던 성공작이었습니다.)
이렇게 성공작을 내놓고 제트 전투기 시대의 개막과 함께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게 된 노스 아메리칸 社는 1954년에 "세이버"라는 이름을 이어 받은 초음속 제트 전투기 "슈퍼 세이버"를 개발하게 됩니다. 미공군은 이 전투기를 최초 배치된 싯점에서 무려 17년이나 사용하였고 미국 국토 방위군 항공단 (Air National Guard)는 1979년까지 사용하였습니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오랫동안 실전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전폭기 (전투기라기보다는 지상 공격을 주로 수행하는 전폭기 임무가 더 많았음.)로써 기록되는 기종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F4 팬텀이 아니라 F-100 슈퍼 세이버라는 사실은 좀 의외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F 다음에 최초로 3자리 숫자인 "100"을 붙힌 미공군 전투기인 슈퍼 세이버는 제트 전투기의 제1세대와 구분되는 제2세대를 시작하는 첫번째 전투기로써 인정되었고 통상 F-100~ F-109까지 제트 전투기 시대를 한단계 올라 서게 했던 기종들을 일컬어 "센츄리 시리즈"라고 부르곤 합니다. 센츄리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1세대 전투기들에게 힘겨운 목표였던 초음속 돌파가 일반적인 성능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오늘은 F-100을 소개하겠지만 간단히 F-100 이후에 센츄리 시리즈 기종들을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센츄리 시리즈 전투기들을 주요 임무별로 분류해보면, (어차피 각각 제대로 설명할 기종들이니 오늘은 사진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1.공대공 전투기
(F-100 슈퍼 세이버 - 미공군 소속 곡예비행단 선더버드 버전)
(F-104 스타파이터)
(F-105 썬더치프)
2.전략 폭격기 호위용 전투기
(F-101 부우두)
3.요격 전문
(F-102 델타 대거)
(F-106 델타 다트)
대충 이정도 기종들을 "센츄리 시리즈"라고 부르면서 제트 전투기의 초음속 시대를 개막한 주인공들로써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슈퍼 세이버는 바로 이 "센츄리 시리즈"의 첫 주자로써 한국전쟁의 영웅 F-86 세이버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두번째 "세이버"로써 주목을 받으며 개발이 시작됩니다. 1951년 1월 노스 아메리칸 애비에이션 (North American Aviation)社는 미공군으로부터 초음속 주간 임무용 전투기 개발 의뢰를 받게 됩니다. 처음 이 새로운 기종의 명칭은 "세이버 45"라고 불렸는데 이유는 주익의 45도 경사 각도 때문이었습니다. 1951년 11월까지 수없이 많은 개선과 수정을 거듭한 후에 드디어 미공군의 F-100 전투기로써 명명되었는데 티타늄 재질을 사용한 혁신적인 설계가 주목 받았던 F-100은 1953년 5월에 원래 일정보다 무려 7개월을 앞당겨 생산된 시작품 XF-100A가 아직 불안전한 XJ57-P-7 시제품 엔진을 장착하고 마하 1.05에 도달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1953년 10월에 두번째 시작품 비행을 무사히 마치기는 했지만 그해 12월까지 이어진 미공군의 자체 검사 결과 설계상 다수의 결함으로 인해서 장거리 정찰 임무 수행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게 됩니다. 이런 불안정한 기체 성능은 결국 1954년 10월에 노스 아메리칸 社의 수석 테스트 조종사였던 조지 웰치가 급강하 비행 중에 지면에 충돌하여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훗날 "세이버 댄스"라고 불리게 되는 슈퍼 세이버만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써 高고도 기습 공격 비행시 V자형 주익이 안정성을 잃게 기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용도로 개발 중이었던 리퍼블릭 社의 F-84F 썬더스트릭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냉전 시대에 미국 핵 전략의 핵심 조직이었던 전술 공군 사령부 (Tactical Air Command, 이후 줄여서 TAC로 부름)는 성급하게 불안정한 상태의 F-100A를 실전 배치하도록 명령하게 됩니다.
(F-84F 썬더스트릭은 F-84 썬더제트 전투기를 기본 설계로 V자형 주익을
적용한 전투기였습니다. 1자형 주익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지만
또다시 "주먹구구식"으로 날개만 바꿔 달면 될 것이라는 발상이 개발 지연을
초래하게 됩니다.)
TAC는 F-100A를 핵 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전폭기 임무 수행을 기대하였는데 이미 1950년대 중반은 미소 양진영이 핵 폭탄을 탑재한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운용하는 인류 최후의 날의 아슬아슬한 전쟁 가능성이 급증하기 시작하는 싯점이었던 것입니다.
(천재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초기 작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는
냉전 시대 핵전쟁과 지구 멸망의 공포를 풍자한 명작입니다. 이영화의
마지막 약 1분 남짓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핵폭탄의 폭발 장면들을 보면서
그 당시 우리 인류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칼날 위에서 살았었던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공포의 그림자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게지요...)
1954년 9월 F-100A는 최초로 미공군에 배치됩니다. 하지만 설계 결함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떠밀려서 배치된 탓에 1954년 11월까지 불과 2개월 동안 불안정한 비행 성능과 동체 구조의 결함 등등의 원인으로 무려 6회의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미공군은 이 기종이 공급된 캘리포니아 소재 제 479 전투 비행단의 비행 임무를 1955년 2월까지 금지시키고 원인 분석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이 단기간내에 끝나지 않을 정도의 복합적인 문제임이 드러나면서 1961년까지 무려 7년간 F-100은 미공군 임무에서 제외되고 문제 해결에 주력하게 됩니다.
(1954년 성급하게 미공군 임무에 배치된 F-100A는 1961년 수없이
많은 설계 변경과 수정을 거듭하는 동안 무려 47대가 사고로 파괴
되는 끔찍한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사진은 초기 F-100A형의 시험
비행 모습)
(F-100에는 4정의 20mm M39A1 기관포로 무장되었습니다.)
(F-100에 탑재된 종류와 같은 AIM9 공대공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 사진은
F/A - 18 호넷에 장착된 모습)
만약에 F-100 이전의 1세대 제트 전투기가 이정도 심각한 결함으로 무려 7년 동안 발이 묶여버렸다면 이미 후속 전투기들의 등장으로 밀려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계적인 결함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개선 작업이 진행되자 하나 둘씩 해결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F-100A에서 개선이 거듭되는 동안 F-100C에 이르게 되었고 1961년에 독일에서 서독과 동독간에 베를린 장벽의 긴장이 고조되자 민주와 공산 양진영의 힘의 균형을 위해서 미공군은 안정적인 성능의 핵 폭탄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전폭기가 필요하였는데 그때는 7년전과 달리 핵폭탄 탑재가 가능하면서 착탈식 연료 탱크들을 주익에 부착하여 장거리 비행도 소화할 수 있으면서 안정적인 비행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기종으로 F-100이 적격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 되자 넓은 지역에 효과적인 폭격이 가능한 집속탄(Cluster Bombs), 네이팜탄 (Napalm)과 공대공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등 다양한 화력을 구사할 수 있는 기종으로써 F-100C는 가장 믿을만한 기종이었습니다.
(집속탄이란 폭탄 속에 작은 폭탄들이 빽빽하게 들어간 상태에서
투하되어 넓은 지역에 시설 파괴보다는 인마 살상을 위해 효과적인
매우 비인간적인 폭탄입니다. 심지어 폭발 후에도 약 40%의 작은
폭탄들이 불발탄으로 지역에 남아서 지뢰가 되어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2008년 아일랜드에 웰링턴에서
회의를 열어 다수의 국가들이 이 폭탄의 사용을 금지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미국,러시아,중국 및 대한민국은 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에 베트남 전쟁에서 넓은 정글 지역의 폭격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는 F-100 슈퍼 세이버는 한편으로는 같은 시기에 나토에 배치되어 유럽 대륙에서 동서 양진영의 첨예한 핵 전쟁의 긴장 속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핵 전략 전폭기로써 한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F-100의 최초의 손실은 1964년 8월 월맹측 대공포 사격을 맞고 추락하면서 기록하게 됩니다. 한편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 1965년 4월 F-100은 소련이 지원한 월맹 측의 미그-17과 최초의 제트 전투기 간에 공중전을 치룬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기관포와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 공격으로 F-100 편대는 3대의 미그-17을 격추시키고 아군 피해는 없는 상태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이버 시리즈와 미그 시리즈의 숙명의 대결은 한국전쟁 중에
F-86 세이버와 미그-15와의 1라운드에 이어서 베트남 전쟁에서
F-100 슈퍼 세이버와 미그-17(사진)의 2라운드를 맞이하게 됩니다.)
미공군은 1960년대 초에 새롭게 개발한 F-4 팬텀 전폭기의 양산이 시작되자 베트남에서 활약 중이던 F-100를 신속하게 F-4 팬텀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팬텀 전폭기의 경우 F-100에는 탑재되었던 기관포들이 장착되지 않았고 오직 공대공 미사일만으로 공중전을 치루도록 개발되었는데 실제 미그 전투기들과의 공중전에서 기관포가 없이 미사일만으로 적기를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이것은 나중에 F-4 팬텀을 소개할 때 좀 더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F-4 팬텀 II 의 등장은 F-100 슈퍼 세이버의 퇴장을 의미하였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신속하게 F-100가 베트남 전쟁에서 물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분명히
F-100이 수행해야 할 임무 영역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F-100의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 폭격 모습. 동영상 1분 30초
정도부터 정글 지역에 무자비하게 폭격을 가하는 F-100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실제 모습이라
생각하셔도 무방하겠습니다.)
비록 F-4 팬텀으로 교체되어 갔지만 1971년까지 베트남 전쟁에서 남아있던 F-100의 작전 임무는 계속되었고 기록에 따르면 공중전에서 격추된 F-100은 1대도 없는 것으로 나와있으나 반면에 적의 대공포 공격으로 격추된 경우는 186대나 되었고, 베트콩의 공군기지 공격으로 인한 지상에서 파괴된 경우가 7대였고 그외 사고로 인한 추락 손실까지 포함하면 총 242대의 F-100이 베트남 전쟁에서의 손실을 기록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로켓탄을 발사하여 공대지 공격을 하는 F-100 슈퍼 세이버)
F-100은 미공군이 실전 배치한 최초의 초음속 돌파 제트 전투기였을 뿐만 아니라 최초로 비행 중 공중 재급유를 성공한 전투기로써 기록됩니다. 1957년에 공중 재급유를 하면서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14시간만에 도착한 기록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1959년 북극 상공을 비행한 최초의 제트 전투기였고, 1961년에 최초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제트 전투기로 기록됩니다. 또한 미공군 소속 곡예 비행단 썬더버드 팀이 1956년에서 1968년까지 무려 12년간 사용한 기종으로써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첫댓글 오늘 아침 형님글로 제가 예전에 센츄리 시리즈를 다 만들어 보자 계획했던 것이 생각 나네요.
리엔그레이빙을 해놓은 모노그람의 센츄리 시리즈 킷들이 저의집 벽장에서 잠자고 있는데,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어서 만들어야지 하면서도 손이 않가는것이 참 이상합니다.
지금 제작중인 장갑차를 끝내면 만들어 볼까요? ^^
센츄리 시리즈 모두 말입니까???? 엄청 대단한 규모네요???
언제나 정말 재미있는 정보 감사합니다... 따로 pdf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고 싶네요...근데 저 당시 미군 에어로들은 죄다 은색기체라서..만들기가 참 힘들어요~~
뭉게구름님은 처음 뵙는 것 같네요? 어쨌든 제 글들이 도움이 된다면 저야 너무 감사하고 보람되지요! 조만간에 F-101 부우두 전폭기 소개 글이 올라올 예정인데 재밌게 읽어주시길!!!
굉장히 재밌게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전투기들의 배경에 대해 아는 재미가 솔솔하네요~ 다음 센츄리시리즈도 기대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김작가님 덕분에 갑자기 비행기가 땡겨서 몇일전에 에어픽스사에 1:72 세이버와 미그15가 같이들어있는 한국전 모델사서 정신없이 만들고 오늘 도색하려 하는데 역시 비행기도 힘듭니다! 진짜 개발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 까요! 좋은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저는 글만 쓰지 전투기 키트는 엄두도 못낸다는....
제가 좋아하는 센츄리 씨리즈.......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센츄리 시리즈에 애정을 갖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네요!
제 기준에서는 썬더치프가 가장 예쁘네요 센츄리 중에서는 ..젯 파이터 세계에서 기념비적인 기체들입니다 정말~!
센츄리 시리즈가 있었기에 이글,호넷,톰캣,팰콘과 같은 명작들이 등장할 수 있었지요!
미도파 백화점, 길 건너 맞은편의 코스모스 백화점, 명동 수입 책방 골목...
그리고 그 아픈기억...공감합니다.^^*
하하하 아시네요! 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