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0127.
나의 KBS 아나운서 수험번호이다. 그 당시 한 8백 명 정도가 지원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시험을
앞두고는 항상 소문이 무성하다. 이번에는 몇 명을 뽑는데 여자는 몇 명이고 남자는 몇 명이라는
둥, 지원자들 실력이 좋으면 한 두 명 더 뽑을 수도 있다는 둥, 남자를 더 많이 뽑을지도 모른다
는 둥. 소문을 접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갔다. 대체로 5명을 뽑을 것이라는게 중
론이었는데, 결국 우리 20기 아나운서는 5명으로 최종 선정되었다.
시험이 있는 날. 아침 일찍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다른 시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장한 심정이었다. 실로 내 인생에 있어서 아나운서로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1차 카메라 테스트를 했는데 너무나도 떨렸다. 그렇게나 떨면서 시험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시험
볼 때도 떨렸지만 보고 나서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도 마음 편하지는 않았다. 11월 9일에 시험을
보고 11일에 발표를 하는데 그 이틀이 한 20년은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대로 예감이 좋았
다. 음성도 괜찮았고 더듬지도 않았으며, 아쉬움이야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량은 발휘한 것
같았다.
발표날이 왔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통해서 합격자를 알 수 있지만 그 때는 전화로 물어보거나
직접 KBS에 가서 게시판에 붙어있는 명단을 확인해야 했다. 1차 합격자 발표를 보러 KBS 건물에
들어서 신관 IBC 계단을 올라가는데 다리가 어찌나 후들거리던지! 지금도 그 떨리는 감정이 생
생이 기억난다.
1차 합격! 내 수험번호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명단이 붙어 있는 그 앞에서 감히
환호하지 못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떨어지다보니 좋아도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앞서 말했지만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 즉 10명 중에 한 두명 정도가 통과하는 시험이 1차 실기시험이다. 여지
껏 단 한번도 붙어본 적이 없는 KBS의 1차 시험. 이번에는 붙었다.
그리고 곧바로 2차 카메라 테스트를 했다. 2차 시험 역시 카메라 앞에서 뉴스를 낭독하는 것이었
다. 힘있게, 하지만 차분하게 뉴스를 낭독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그리
고 나는, '행운이 나와 함께 한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시험관은
나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았다. 여지껏 시험을 하도
많이 봐서, 꼭 질문을 받아야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면접 자리에서, 뭔가
아리송한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떨어뜨리기에는 좀 아깝고 붙이기에는 아쉬움이
있고. 그런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2차 실기시험도 합격을 했다. 2차 실기시험 발표가 있은 그 주 일요일 경희대에서 필기시
험을 봤다. 시험이 어려웠다. 예년에 비해 난이도도 높아졌고 KBS 스타일이 아닌 문제들이 많이
나왔다. 일단 시험이 어려워서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 쉬우면 뜻밖에 잘 치른 사람
들이 속출하기 때문에 꾸준히 준비해 오던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으니까.
이제 공부는 끝이다. 필기시험을 끝내고 나서며, 한없이 허전한 기분으로 나는 중얼거렸다. 결과
가 어떻게 되었든 이제 취업서적들에 다시는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도 이제 끝이다. 연세
대, 이화여대, 국립 중앙도서관, 한양대, 홍익대, 고려대 도서관. 이제는 모두 안녕이다.
아버지는 필기시험도 끝났으니 콘도에 가서 쉬었다 오라고 하셨다. 뜻밖이었다. 매번 시험을 치르
고 낙방하고 또 시험을 준비하고 하는 꼴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시던 당신이 자진해서 휴가를 주신
것이다. 콘도 셔틀버스를 타고 혼자 양평으로 향했다. 수영장에 갔다가 볼링장에 갔다가 하며 머
리를 비웠다. 그날 밤 나는 모처럼만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1993년 12월 28일.
전화를 통해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겨울 바람 차갑게
부는 여의도로 향했다. 임성민. KBS의 본관 벽에 붙어 있는 내 이름을 확인하며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그날부터 자리에 앓아누워야 했다. 열이 갑자기 오르기 시작하더니 가벼운 감기인가 싶었는데
몸살에 걸린 것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폭발한 모양이었다. 얼굴에 열꽃
이 피고 종합감기약 포장지에 나열된 각종 증상을 죄다 몸으로 겪어야 했다.
그리하여 합격자 발표날 이후 정확하게 한달 동안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놀 수도 있는데, 외출은 물론이고 밥도 못 먹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아나운서가 되었는데 그 기쁨을 즐기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늘 그랬다. 좋은 일이 생겨
도 가벼이 즐거워하지 못하게, 나쁜 일이 생겨도 쉽게 내색을 못하도록 나는 늘 훈련을 받아왔다.
그게 하늘이 내게 주시는 쓰고 귀한 선물이다.
이러다가 입사식에나 갈 수 있을까.
그토록 그리던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고, 긴 겨울 한 달을 이부자리에서 보내며 나는 그런 걱정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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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민 아나운서 후기6
뎁따빠른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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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4.2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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