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 함께 카파도기아의 로칼투어에 조인을 하기위해 괴뢰메에 있는 '로제투어'라는 조그마한 여행사에 들어갔다.
그 여행사의 사장은 에르칸 나즐리Ercan Nazeli라는 50대의 콧수염을 긴 나이 지긋한 분이었는데, 나는 그와 잠시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졌다.
그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나는 무심코 그의 책상넘어 벽에서 강열하게 나를 쏘아보고 있는 사진을 보고 섬득한 기분마저 들었다.
"저 사진의 주인공은 당신의 아버지이신가요?"
"아닙니다. 그는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 대통령이십니다."
"아, 그런가요? 그 분은 어떤분입니까?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시나요?"
"그 분은 터키를 구해낸 우리의 국부이시지요. 돌아가신지 이미 60년이 넘었구요."
그는 사진의 주인공을 서슴없이 국부라는 표현을 쓰며 존경의 눈초리를 사진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오늘날의 터키공화국은 1919년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군대에 의하여 현재의 영토를 회복하고 1923년 수립한 정부이다.
그는 아사직전에 있던 터키를 오스만 제국의 무서운 '예니체리'라는 군인정신을 부활시켜 구해낸 터키의 영웅이다.
그래서 터키인들은 지금도 무스타파 케말을 터키의 국부로 떠받들고 있으며, 그를 '아타튀르크’라고 부른다.
아타튀르크는 아버지라는 뜻의 ‘ata'와 터키인이라는 의미의 'turk'의 합성어로 국부라는 뜻이다.
이스탄불의 국제공항도 아타튀르크로 불리우고 있으며, 터키의 지방 곳곳 작은 여행사의 벽에도 이 국부인 아타튀르크의 사진이 걸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왕정을 폐지하고 터키의 수도를 1600여 년간 유지해 왔던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겼으며, 터키고유의 문자를 창조했다. 각종 사회, 교육제도, 법률을 과감하게 유럽식으로 개혁하였으며,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세속화 정책을 추구하였다.
앙카라의 시내에 있는
國父 아타튀르크의 무덤
.
즉 이슬람종교에 의한 오랜 왕정의 폐습을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여 서구화, 민주주의, 경제개발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세속주의로의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나라 이조시대의 세종대왕과 같은 인물이다.
터키는 아타튀르크 이후 그가 심어놓은 군인정신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해도 과언이아니다.
터키의 정당 뒤에는 항상 엘리트를 자처하는 군부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터키의 군인은 반드시 정직, 관용, 용기, 군사지식 등 네가지 덕목을 겸비해야 엘리트 군인이 될 수 있다.
철저한 교육과 검증을 거쳐 구성된 군부는 국민의
강한 신뢰를 받고 있다.
정부가 국가를 잘못 경영하면 군부는 가차없이 군사혁명을 일으킨다.
1960, 1971, 1980년 세 차례에 걸쳐 부패화 되는 정권을 보고, 군부는 즉각 군사 혁명을 일켰다. 그리고 질서가 회복되자 군부는 곧 정권을 민정에 이양하였다.
이 것이 우리나라 군부와 다른 점이다. 국가를 위한 애국심. 그리고 정권의 욕심을 버리는 깨끗한 마음. 이것이
터키의 군인정신이다.
또 만약에 어느 정당이 반 세속주의를 지향하면 헌법재판소는 정당을 폐쇄하는 판결을 내린다.
1996년에는 이슬람계 복지당이 총선에 승리하여 이슬람을 중심으로 한 정치로 회귀하려고 하다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정당 폐쇄결정을 내려졌다.
우리로선 국민이 선출한 정당을 폐쇄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뒤에는 강력한 군부가 버티고 있고, 군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신뢰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국부 아타튀르크의 푸르고 강열한 눈은 그가 타계한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전국 곳곳에
서 국민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지금도 터키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왔노라,보았노라, 정복했노라'고
명언을 남긴 율리우스 카이사르.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역사의 현장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소아시아를 정복하고 유명한 말을 남긴 아마시아.
그는 현재의 카파도기아 지방과 흑해 근해까지 지쳐들어가 소아시아를 정복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Vidi, Vinici)"
이 명언은 '주사위는 던져 졌다’는 말과 ‘부르투스, 너마저!“라는 그의 최후의 부르짖음과 함께 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시저의 명언이다.
그 역사의 현장이 터키에 있다.
그 밖에도 터키는 인류사에 기록된 역사의 현장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작가 호메로스가 탄생한 이즈미르,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태어난 보드룸,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일했던 종합병원 아스클래피온, 궤변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태어난 시노프 등등.
그런가 하면 절세의 미인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명장 안토니우스와 사랑을 속삭였다는 지중해변의 안탈랴와 같은 아름다운 휴양지도 많다.
터키는 지중해와 에게해, 흑해를 끼고 있는 천혜의 휴양지가 국토를 에워싸고 있다.
◈히타이트 제국에서 오스만 제국까지
‘터키(Turkey)'라는 말을 소문자로 쓰면 그만 칠면조라는 뜻으로 변하고 만다. 그런데 터키라는 어원은 우리민족과 같은 혈통인 몽고족인 돌궐(突厥)이 ‘튀뤽’, ‘튀르크’, ‘터키’로 변했다고 하는데, 이 뜻은 ‘힘센’ 또는 ‘방패’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터키는 동서길이 1,600km, 남북 폭 550km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북부에는 흑해, 남부에는 지중해, 서쪽에는 에게해
등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터키의 고대 역사는 기원전 1900년부터 기원전 1200년까지 오리엔트를 석권한 ‘히타이트’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타이트 제국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2세와 격전을 벌이며 지중해지역의 패권을 다투었던 왕국이기도 하다.
이어서 터키는 프리기아 시대, 리디아 시대 등을 거쳐 기원전 6세기에는 페르시아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그 후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헬레니즘 시대가 열리고, 로마의 정복으로 1453년까지 비잔틴문화가 꽃을 피운다.
이 강대한 동로마 제국인 비잔틴 제국도 10세기 경부터 중앙아시에서 몰려들어온 오스만 토후국에 의해 멸망을 하고 만다.
한 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했던 오스만 제국도 군부의
부패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 아나톨리아 고원만을 차지하게 된다. 제국의 흥망성쇠.... 역사는 이렇게 끈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아이구! 역사 이야기가 너무 길어 졌나요?
허나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꼭 한번쯤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 이제 딱딱한 역사 공부는 이 정도로 그치고 전국토가 종교와 신화와 역사가 야외 박물관처럼 널브러진 터키 땅으로 슬슬 떠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