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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예루살렘(Jerusalem)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와 황금의 도시 예루살렘은 지중해와 사해사이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도시이다. 해발 800m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역사가 3000년 전으로 올라가 기원전 1000년경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세운이래. 수많은 역경 속에서 오늘날 까지 세계역사 중심에서 하나의 신앙만을 고집하고 꿋꿋하게 이어오고 있다. 언뜻 보아 보잘것없어 보이는 유다광야 불모의 언덕에 이곳을 수도로 정한 이후 수많은 침략자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주인이 바뀌고 주민은 쫓겨나는 등 질곡의 역사를 거쳐 온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성스러운 신앙으로서 충만 되어 은혜가 넘치고 평화로움이 가득하여야 할 이 도시는 궁극적인 최후의 주도권 싸움에 살기가 넘치고 피의 참혹한 살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앙과 평화의 원천이 되어야 할 이 예루살렘이 무려 50차례의 포위 공격과 10차례의 심한 파괴를 당하면서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 많은 전쟁과 슬픔. 사랑과 증오. 그리고 영광과 오욕이 교차된 역사를 지닌 도시는 별로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인류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의 중심지이기도 한데 전 세계 인구의 약 절반가량인 30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신앙적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검은 모자와 검은 두루마기 차림에 검은 수염을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정통파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모습의 기독교 종파의 수도사들도 있고 그리고 하얀 통치마 같은 옷을 입고 머리에 터번을 두른 무슬림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유대인의 안식일(토요일) 거리엔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며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엔 교회의 종탑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하는 이슬람 사원의 확성기에서 나오는 아잔(기도)소리는 묘한 불협화음 속에서 도시 하늘을 뒤덮곤 한다. 예루살렘은 인구 70만 명이 살아가는 대도시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서로 다른 신앙과 색깔로 제각각 분주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때때로 욕심과 만용으로 배타적 감정과 보복의 법칙에 따라 죽고 죽이는 피 흘림이 자행되는 곳이다. 언제 어디서 보복과 폭력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곳이지만 그렇게도 대조적인 삶의 모습 에서도 한결같이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호흡과 요동치는 고동소리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간 기독교의 발생지이자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한 자손으로 끝없는 종교의 갈등과 민족분쟁의 중심지가 되는 도시이다. 그래서 수많은 방문객과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울고 웃으며 발길이 이어지는 흥미로운 도시이다.
예루살렘 성 (구 시가=Old city) -----예루살렘성 약도----- 오늘날의 예루살렘의 구시가(Old City)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성벽은 오스만 터키제국의 슐레이만 황제가 예루살렘을 견고한 요새로 만들기 위해 1537년부터 1542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둘레는 4km 높이는 12m로 모두 34개의 탑이 있는 대형 축조물로 4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과 곳곳에 24개의 망루가 세워져 있고 성을 드나들 수 있는 문은 모두8개로 문마다 각각 특색을 살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예루살렘성은 3000년 전에 다윗이 세운 성에서부터 솔로몬성. 그리고 제1성전과 제2성전의 모습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술레이만이 재건한 성의 모습까지 여러 차례 그 위치와 크기가 변화되어 온 것이다. 전기에 의하면 지금의 성이 완성되었을 때 이 대역사를 지휘한 2명의 건축가가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예루살렘 성벽 건축과 관련된 모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였다고 한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이만한 장대한 성을 축조할 수 없는 유일한 성으로 남게 하고 싶은 술레이만 대제의 과욕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의 대표적인 욥바문(Jaffa Gate) 안쪽 한편에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이름 없는 두 개의 무덤이 바로 그 건축가들의 묘인데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도 비운을 맞은 것이다. 아름다운 성벽을 축조하는 대역사(大役事)도 중요하지만 이 성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여행자에겐 더 크게 다가왔다.
-----다메섹 문앞 풍경----------다메섹 문(Damascus Gate)----- 다메섹 문은 동쪽의 헤롯문과 서쪽의 새문 중앙에 있는 문으로 문들 가운데 가장 크고 인상적인 문으로 알려져 있다. 다메섹 문이란 이름은 세겜을 거쳐 다메섹 도시로 가는 길이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히브리어로는 세겜문. 아랍어로는 바브 엘 아무드(원주기둥 성문)라고 부른다. 로마시대에 이 다메섹 문을 중심으로 두 개의 길이 뻗어 나갔는데 그 하나가 성전 서쪽 벽 앞으로 지나갔고 다른 하나는 시온 문이 서쪽으로 좀 옮겨졌지만 시온 문으로 통했다. 이 문은 적의 갑작스런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중각을 이루고 있고 원래는 쇠가 덮여 있는 나무로 된 삼중의 문이었으나 현재는 한 쌍의 문만 남아 있다. 문 위에는 1536년에서 1538년 사이에 이 문을 세운 술레이만 대제를 기념하는 문구가 아랍어로 쓰여 있다. 문 밑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서쪽으로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를 볼 수 있고 동쪽으로는 성안으로 통하던 옛 문이 있는데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아랍 사람들의 상가----------아랍사람들의 상가-----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말 혼잡스러워 여행자를 놀라게 한다. 넓지 않은 도로엔 양쪽으로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지나는 사람들은 몸이 부딪칠 정도로 복잡하여 꼭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짤따란 성경지식에 예루살렘의 거룩한 신령스런 예수님의 흔적을 잔뜩 머리에 그리며 예루살렘의 구시가(The old city of Jerusalem)를 찾은 여행자로서는 기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실망 그 자체였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예루살렘 성지가 어떻게 이렇게 도떼기시장 모양으로 복잡하고 요란스런 곳으로 변해 버린단 말인가? 이곳이 기독교인 주거지역이 아니고 이슬람교 지역이여서 성역화 하기엔 좀 무리가 따르고 교리갈등이 심화 되어 그렇게 상황을 만들지 안했나 싶었지만 이건 너무 한 것 같았다. 성 안에는 아르메니아 주거지역(Armenian Quarter). 기독교인 주거지역(Christian Quarter) 유대교 주거지역(Jewish Quarter). 이슬람교 주거지역(Muslim Quarter)으로 나뉘어 제각기의 율례대로 생활방식과 믿음이 다른 사람들이 공존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 그럼 여기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의 앙숙적(怏宿的) 관계를 알아보자. 이들 3종교는 똑같이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며 디그리스 강이 있는 중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아브라함”이라는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 다 같이 하느님(여호와. 야훼. 알라)을 섬기며 구약이라는 거의 동일한 경전을 사용하고 있는데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에서 동일하게 존경하며 추앙하는 조상이다. 열국의 아비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지시대로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본토와 친척을 떠나 이주하게 되는데 하느님으로부터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는 약속을 받고 가나안에 정착생활을 하게 된다. “네 씨로 크게 창대하게 하겠다” 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자신과 아내 사라의 나이가 많아지자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아내 사라의 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 이라는 아들을 낳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약속의 지녀가 아니라고 하면서 12년이 지난 100세가 되어서야 본처의 사라로부터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게 된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정상적인 양육을 위하여 “이스마엘“에게 집을 떠나도록 축복해 주었는데 후에 그가 바로 터키인과 아랍인의 조상이 된다. 이스마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아브라함의 분명한 장자이며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은 당연히 자신이 유업으로 상속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슬람교가 아브라함의 정통이며 자신들이 바로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본처의 소생인 이삭의 주장은 이와 정반대의 설명이다. 하느님은 본처의 소생인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삼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과 유업은 당연히 이삭의 후손들이 누려야 함을 주장한다.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는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이삭은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고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꾼 야곱은 4아내를 통해 12명의 자녀를 얻게 되는데 이들이 이스라엘 12지파가 되며 이중 유대 지파는 4번째 아들인 것이다)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동일하게 하느님을 섬기며 자신을 구원해 줄 메시야(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메시야 즉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로 받아드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 및 재림을 믿으며 새로운 언약인 신약성서를 경전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는 하느님의 신성을 모독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십자가 처형을 받아 마땅한 자”로 여기며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 역시 이단 종교를 퍼트리는 용서 할 수 없는 이단의 괴수들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으며 탈무드를 자신의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고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은 그들에게는 읽어서는 안 되는 금지의 책인 것이다. 이슬람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필요치 않으며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라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마지막 예언자인 무하마드와 동일한 5대 성사에 불과하며 오히려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계시로 받은 쿨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경전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 3종교는 같은 하느님을 섬기면서도 하느님의 약속하신 메시야가 누구인가 하는 메시야 관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것이다. 동일한 유일신을 섬기고 하느님의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며 그 메시야를 믿는 믿음에서는 동일하나 메시야 관에서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는 이슬람의 말대로 5대 성사중의 하나인 인간인가? 유대인들의 말대로 하느님을 모독한 십자가 처형이 마땅한 극악무도한 죄인인가? 아니면 기독교인들이 믿는 대로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메시야인가? 이것이 세종교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라 하겠다. 한 자손의 사람들이 경전해석에 휘말려 살벌하게 반목하고 피 흘리며 투쟁하고 싸우면서 함께 모여 지역을 나누어 살아가는 곳이 곧 예루살렘인 것이다.
-----예루살렘성안 상가----------예루살렘성 안 상가----- 가이드는 혼잡스런 거리를 얼마 안 걸어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비아돌로로사) 라틴어로는 “비탄의 길“로 인도 했다. 이 비아돌로로사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집무실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1.5km 연결된 길인데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에게는 구원의 길이자 기독신앙의 완성을 의미하는 길인 것이다.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는 빌라도의 집무실이었던 채찍교회가 있는 곳에서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진 뒤 골고다로 걸어가는데서 시작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돌무덤 장소인 무덤교회에서 끝난다.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안내표지----------비아돌로로사길 1처-----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정이 있는 곳이다.
-----에케 호머 아치(Ecco home Arch)----- 빌라도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서 있는 예수님을 향해 "자 이사람이다" 즉 "에케 호모(Ecco Home)" 라고 했는데 135년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가 이곳에 크고 작은 아치 3개를 연결해서 세운것이 지금도 길 위에 반쯤 남아 걸쳐 있다.
-----비아돌로로사 길 2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로마 병사들에 의해 옷을 벗기우고 가시관을 쓰고 채찍을 맞고 조롱을 당한 곳이다. -----비아돌로로사 길 3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여 가다가 첫 번째로 쓰러진 곳이다. -----비아돌로로사 길 4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마리아가 길가에 서서 지켜 보다가 고통스럽게 앞을 지나가는 아들의 눈과 마주쳐 슬퍼했다는 곳이다. -----비아돌로로사 길 5처----- 고통에 힘 들어 하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키레네에서 온 시몬이 대신해서 십자가를 진 곳이다. -----비아돌로로사 길----- -----비아돌로로사 길-----
통곡의 벽 (Wailing Wall) -----통곡의 벽-----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이다. 구 예루살렘 시가지의 동편에 있는 돌로 이루어진 통곡의 벽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전의 서쪽 벽 일부로 남은 것인데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건설한 성스러운 원래의 신전의 파괴를 슬퍼하고 재건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유대교의 최대 성지인 이 서쪽 벽(Western Wall)은 “솔로몬”왕때 세워진 성전이 전쟁 등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BC20년 “헤로데스” 왕때 여기에 제2 성전을 다시 건립하였으나 로마군에 의하여 파괴된 성전의 일부라 한다. 대부분 성전은 살아지고 현재 남은 것은 18m 높이의 서쪽 벽뿐인데 이벽을 “통곡의 벽”으로 부르게 된 것은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 비극을 지켜보고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과. 로마시대에는 유대인을 예루살렘에 출입을 금지 시켰는데 비잔틴시대에 들어와 1년에 한번 허용하면서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이벽에 와서 나라 잃은 것을 한탄하며 부서진 성전을 보면서 슬프게 우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성전은 처음 지어졌을 때는 하얀 돌로 외부를 마감하고 입구는 황금으로 장식한 무척 웅장하고 화려하게 축조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유대인 역사학자인 “프라비우스 요세프스”는 “지금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아름다운 건물“이였다고만 기록해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이 벽은 전체가 아니고 일부로 모두 43단의 돌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실제 볼 수 있는 28단을 뺀 15단은 아직도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 바위 벽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벽에 손을 짚고 간절히 무언가 중얼거리며 빌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소원을 적은 쪽지를 돌 틈에 끼우고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1948년에서 1967년까지는 요르단 관할 지역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었으나 6일 전쟁 이후 이곳을 다시 회복하여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기쁨과 참배의 장소가 되었다.
-----통곡의 벽-----통로는 남녀가 따로 펜스로 구분되어 있었고 열심히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3000년 전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이슬람교에게도 “바위의 돔” 다음가는 중요한 큰 성지로 십자군 전쟁에서 피를 흘려가며 값지게 얻은 곳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세상에 다시 돌아 올 무함마드가 그를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온 날개 달린 말(天馬)을 서쪽 성벽에 묶어 두어 머무는 곳이라고 믿는다. 이곳에 온 무하마드는 천사가 그를 천상에 데려가 모세. 예수. 엘리야와 만나게 해 주었다고 이슬람교에선 믿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인간이 죽은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보았다고 하면서 하늘과 통하는 이곳에 “바위의 돔”을 세웠다. 무하마드가 타고 온 천마는 이 서쪽 성벽광장에서 대기하면서 예언자 무하마드가 다시 세상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곳이다. 통곡의 벽과 바위의 성전(Western Wall and Dome of the Rock)은 나란히 있는데 이 황금빛 돔의 성전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하늘로 올라간 장소이며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곳이다. 바로 옆이지만 유대인들은 종교법에 의해 이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다. 통곡의 벽은 이슬람 사원의 성전 벽이고 유대인들은 그 이슬람의 성벽 아래서 기도를 하고 그것을 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종교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그들의 갈등이 착잡하기만 하다. 이 통곡의 벽은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3종교유적들이 나란히 겹쳐 존재해 있는 성지이지만 얄궂게도 예루살렘의 숙명적인 과거역사를 오늘에 대물려 주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시온 문----- 시온산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에 시온 문으로 부르게 되었고 아랍어로는 바브 나비 다우드(Bab nabi Daud) 즉 "예언자 다윗의 문"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다윗의 무덤이 시온산에 있기 때문이다. -----시온문(Zion Gate), 예언자 다윗의문----- 시온문은 성의 남쪽 성벽 서쪽에 있다. 시온산으로 통하기 때문에 ‘시온문’이라 부르고 시온산에 있는 다윗왕의 무덤을 갈 때 이 문을 통해서 가기 때문에 아랍어로 ‘예언자 다윗의 문’이라고도 한다. 문의 바깥쪽에서 보면 많은 총알 자국이 있다. 이는 1948년 독립전쟁 동안 아랍인과 싸울 때 아랍군인이 쏜 총탄 흔적이다. 시온문은 1968년 6일 전쟁 후 회복되어 보수되었다. 입구 위쪽에 이 문을 세운 슐레이만 대제를 기념하는 터어키 문구가 있다.
올리브 산(Mount of Olives) 에서 -----올리브 산에서 바라 본 예루살렘 시가----- 올리브 산은(감람산이라 고도함)은 해발 830m로 예루살렘 성 동쪽 키드론 골짜기의 건너편에 있다. 이 산이 이렇게 불린 것은 예로부터 이 산에 올리브 나무들이 무성했기 때문인데 지금은 개발되어 많은 주택들이 들어섰고 근래에 생긴 유대인들의 공동묘지가 산의 일부를 차지하여 올리브 산의 옛 모습을 별로 못 느끼게 한다. 올리브 산에서 서쪽의 예루살렘의 시가를 보면 대단히 가까운 거리에 있어 금방 손에 잡힐 듯한 풍광이 펼쳐 저 파노라마처럼 시원스럽게 시야가 전개 된다. 구시가의 성곽은 물론 “황금 돔“을 비롯하여 신시가지도 한눈에 들어와 예루살렘 시가를 조망하는 데는 최고의 전망대가 될 성싶다.
-----올리브 산에서 바라 본 황금 돔----- -----시가와 주위 풍광----------시가와 러시아 정교회도 보인다 ----- -----러시아 정교회에서 설립한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
-----눈물교회(Dominus Flevit)----- Dominus Flevit는 라틴어로 “주께서 우셨다(The Lord Wept)”라는 뜻이다.(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붕괴를 예언하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해지고 있는 예수 눈물교회인데 5세기경 비잔틴 양식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1955년 겟세마네 교회를 설계하였던 이탈리아인 바를루치(Antonio Barluzzi)가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을 형상화하여 재건축한 것이다)
예루살렘의 성 박의 올리브 산은 성안에의 유대교와 이슬람 역사와는 달리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아주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중요한 성지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두루 깊게 남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베다니에 머무르시는 동안 예루살렘을 오가실 때 이산 고갯길을 오르셨고 예루살렘 시가지를 보시고 한탄하시며 눈물을 흘리신 곳이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을 내려다보시며 세상의 종말에 일어날 사태에 관해 말씀하셨고 가짜 그리스도에 현혹되지 말고 전쟁과 지진에 놀라지 말고 장차 박해가 닥칠지라도 항상 영적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곳이다.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고 죽음의 공포에서 고뇌하시며 성부께 기도하신 곳도 올리브 산이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3일 만에 부활 후 승천하신 곳도 바로 이 올리브 산이다. 초세기 부터 이곳은 중요한 성지로 여겨져 왔으며 성경에 세상의 종말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이 감람산 묵시록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 돔 (바위 돔=Dorme of the Rock) -----예루살렘 시가속의 황금 돔----- -----크로즈 업 시킨 황금 돔----- 바위 돔은 화려했던 예루살렘 최초의 성전 터에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3번의 건축과 파괴로 수난의 역사를 지닌 성전이다. 그리고 3대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충돌하며 분쟁의 뇌관이 되는 성소이기도 한 이 바위 돔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 마크 중 하나이다. 코란에 따르면 예언자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과 함께 천국으로 가기 위해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왔다는 이 바위 돔은 아랍어로는 쿱밧 아스 사크라(Qubba al Sakhra)라고도 하며 뜻은 고귀한 성소(The Noble Sanctuary)라고 한다. 원래 이곳 성전 산(temple Mount)엔 헤롯 대왕의 2번째 유대인 성전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AD691년 이슬람인 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당시 통치자인 칼리프 압둘 말리크(Caliph Abdal Malik)가 마호메트 승천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큰 바위 위에 종교적으로 기념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사원을 건축한 것이 그것이다. 이곳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칠 것을 시험했고 솔로몬 시대에는 언약궤가 이 바위 위에 놓여 있다고 하며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과 함께 메카에서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이 바위로 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3대 종교의 최고의 성지다. 그럼 이 대목에서 3대종교의 충돌과 끊임없이 갈등이 비저 지는 근원을 살펴보자. 이슬람교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이곳에서 승천했고 다시 재림 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반면 유대교와 기독교는 하느님께서 그의 아들이삭을 희생 시키도록 명한 곳으로만 믿는다. 이슬람에게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가 자신들 종교에 중요한 선지자이고 예언자이지만 유대교와 기독교는 마호메트를 부정하고 아브라함의 조상만 인정하니 한쪽은 보듬고 한쪽은 밀어내는 형국이다. 여기에서 피의 살육이 계속되는 진원지가 되고 새로운 십자군의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쳐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다. 종교에서 신앙은 최고의 가치가 되겠지만 서로 자기 편에 서서 유리하게만 경전해석을 주장하는 한 첨예하게 부딪치는 충돌과 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올리브 산에서 본 예루살렘-----
황금돔 성전은 지름이 78피트 높이가 108피트인 돔은 구리와 알루미늄의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 태양빛이 비칠 때에는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게 반사 한다. 1300년 동안 여러 차례 보수는 하였지만 외형은 변형시키지 않았으며 1960대 사원의 돔을 교체하면서 황금빛으로 변조 시킨 것이 독특하여 황금의 돔(Golden Dome of Rock)이라고도 부른다. 최근에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650만 달러의 사채를 드려 돔을 24k의 금으로 씌우게 했는데 이는 현존하는 다른 유일신 종교에 비해 이슬람이 우월함을 상징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첫댓글 사진에 빠져들어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온듯한
착각속에서 사진을 감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여행하시는
분들이 여행 가기전에 보시면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갔습니다.
아버님께서 펴내시는 책은 아마도 최고의 책이 되리라 믿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오늘도 화이팅 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