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온성교회 이스라엘 성지순례기 9▣
성지순례 9지역 순례지도
▣【텔 므깃도 (Tel Megiddo)와 갈멜산(Mt,Carmel)】
[오랜동안 흥망성쇄의 도시 인공으로 쌓아 올린 텔 므깃도]
(므깃도 성은 개방하지 않아 순례하지 못하고 박물관만 관람하였다.)
[므깃도 박물관 뒷 정원에 있는 알로애 꽃]
[므깃도 박물관 입구 우측에 전시한 당시 지도]
[므깃도 박물관에 전시한 유물도]
[므깃도 박물관에 전시한 유물도]
[박물관 내부에 전시한 솔로몬 병거성 므깃도 요새의 조형물]
(
3,000년 전 므깃도 성안에는 물을 공급하는 터널식수도(지하35~60m, 터널200m)시설유적과 마구간 ,마초 보관창고, 물 저장고 등이 보존되여있다.)
☆므깃도[Megiddo, 아마겟돈(Armegeddon)]는 BC4.000년 전부터 사람이 정착한 광야 한복판에 21m정도까지 여러 번 쌓아올려 우뚝 솟은 텔-므깃도[Tel Megiddo]의 므깃도 성이며, 이스르엘 평원으로 접근하는 산지이다. 므낫세 지파에 배분된 이곳은 아마겟돈 전쟁을 비롯하여 수많은 전쟁이 있었으며, 옛 부터 군사, 교통의 요지였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통일시대에 거대한성을 축성하였고, 솔로몬 시대에는 막강한 마병의 성이였다.[열왕기상 10:26~29] 현재는 가나안의 옛 므깃도 성읍의 유적만 남아있다.
[에리야의 영적전쟁 터 갈멜 산(Mt,-Carmel) 무흐라크 정상의 기념교회정문]
[오른 손은 단검을 치켜들고, 왼발은 바알 선지자의 어깨를 밟고 있는 엘이야의석상]
[손에든 휘어져 검은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를 너무 많이 죽여서 휘어졌다고 전해짐]
☆갈멜 산[Mt,-Carmel, Al-Muhraqa]의 갈멜은 카렘 엘[karem El]에서 [카렘-포도원] [엘-하나님]의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이며, 거룩한 머리 산[Holy Headland]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산이다. 갈멜산의 정상은 해발546m이며, 아셀 지파에게 분배 되었고, 많은 상수리나무와 소나무, 감람나무, 2월~3월에는 초원에 들의 백합화[아네모네]와 겨자꽃등 야생화가 많다. 금년에는 지구온난화로 1월에 들의 백합화를 볼 수 있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불 대결 한곳은 해발482m의 무흐라카 봉우리이다.
[갈멜산의 무흐라카(Muchlaka)정상에 있는『불의 제단, 불이 내려온 곳』의 엘리야 기념교회]
[엘리야가 12지파 수데로 12돌로 돌단을 쌓은 무흐라카의 돌로 만든 교회내부의 돌제단]
[말씀을 형상화한 교회벽의 부조]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이르되 일어나서 먹어라 하는 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의 물이 있더라[왕상19:5~6])
☆엘리야 기념교회는 아합 왕[BC874-853] 부인 이세벨이 시돈[레바논]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며, 악행으로 3년 6개월 동안의 가물어 엘리야 선지자 1명과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850:1의 불 대결에서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도 핥았다.』는 불의 제단이 있는 갈멜산 무흐라크[Muchlaka, Muchlaka]에 엘리야 기념교회가 있다. 현재교회는 1936년 그리스 정교회에서 건축하였다.
[갈멜산 무흐라카(Muchlaka)봉우리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이스르엘평원과 기손 강]
(기손강은 에리야가 불 대경에서 승리하고바알 선지자 450인을 죽인 곳)
[갈멜산 무흐라카(Muchlaka)봉우리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전경과 건너편 다볼 산]
[기손강이 흐르는 이스르엘 평원과 남쪽으로 멀리보이는 사마리아 산지]
※기손 강은 갈멜산 바로 밑에 흐르며, 건기에는 물이 지중해 인근지역만 약간 흐르고, 비가 내리는 우기에만 물이 흘러가는 강이다. 다볼 산에서 발원하여 이스르엘[Jezreel] 평원과 골짜기를 굽이굽이 통과하여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며 길이는 약 37km 정도 된다.
※엘리야는 불 대결에서 승리하고 기손 시냇가에서 바알 선지자 450인을 죽이고, 갈멜산 무흐라카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하늘에서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여 3년6개월 동안 가물었던 땅에 단비를 내리게 하였다.[왕상 18:20~42]
▣【지중해연안 인공항구도시 가이사랴(Caesarea)】
[지중해 연안의 팔레스타인의 항구 및 행정도시 가이사랴(Caesarea)]
(로마, 비잔틴, 십자군시대에 따른 도시성벽을 구분하여 표시되여 있다.)
[가이사랴(Caesarea) 국립공원 매표소와 이스라엘 국기]
[지중해 바다에 돌을 매립하여 만든 북쪽 망루 건너에 인공 항구가 있다.]
☆가이사랴[Caesarea, 카이사레아]는 지중해 북쪽해변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항구도시이다. 최초의 마을은 페르시아시대[BC568-332]에 지중해해변을 따라서 건설하였으며, 헬라시대[BC332-37]에 번성하였다. BC103년 하스모니안 왕국의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이 도시를 정복하였고, 로마시대 와서는 헤롯이 로마에 대한 충성심으로 12년[BC22~10년]에 걸쳐 바다를 돌로 매립하여 건설하고, 이름을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황제의 칭호를 따라서 가이사랴[Caesarea]라 하였다.
※가이사랴[Caesarea]는 정복과 파괴의 반복되는 역사로 폐허가 되어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십자군 시대의 성벽이며, 헤롯시대의 가이사랴는 십자군시대의 가이사랴보다 3배가 더 컸고, 비잔틴시대의 가이사랴는 무려 8배가 더 컸다고 한다.
□[가이사랴에 남아있는 중요한 유적 - 우리가 순례한 유적중에서---]
[원형 야외극장]
[헤롯의 야외극장 관람석 북문]
[헤롯의 야외 극장 앞에 있는 당시 활동지역 지중해 연안국 지도]
[헤롯의 야외 극장 앞에 있는 당시의 석관유물]
[관중석에서 본 헤롯의 야외 극장 앞 무대-사진속 열창하는 순례자 모습은 한국사람)]
※극장[The Theatre]은 가장 오래된 야외원형극장이며, 헤롯시대에 만들어 수백년간 사용하였다. 관람석이 약 4,000석으로 지중해 바다의 영향에 자연적 음향조건으로 전 관람석이 소리가 깨끗하고 선명하게 들리며, 지금도 국내 및 국제음악회 등 공연장으로 사용한다.
[헤롯의 지중해안 로마궁전 자리]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도록 유죄 판결을 내린 당시 로마의 유대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있었던 곳]
[사도바울이 로마로 압송되기 전 2년간 갖혔던 헤롯궁전의 감옥 터]
[해롯 궁정에서 원형 야외극장으로 가는 방향]
※절벽 궁전[Promontory Palace]은 서쪽 지중해 바다로 돌출한 곳에 물 정장 저수지까지 만들어 놓은 왕궁으로 로마 시대와 비쟌틴 시대에 축성 하였다.
[로마시대의 헤롯 원형경기장]
[헤롯 원형경기장의 남쪽 부분과 경기 전차와 투사들이 입장하는 남문]
[헤로데의 원형 경기장 중앙 관람석]
※원형경기장[Herodian Amphitheatre]은 헤롯시대에 만들었으며, 그 규모는 길이250m, 폭50m, 12줄의 좌석에 약10,000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U’자형 경기장으로 전차경주, 운동경기, 투사와 맹수와의 싸움, 오락 등에 사용하였다. 관중석은 경기장이 한 눈에 들어오며, 시원한 바다 바람과 아름다운 지중해를 바라다보여 전망이 아주 좋다.
[경기장 북쪽 끝 부분에서 바다쪽으로 돌출되어 보이는 끝 자락이 가이사랴 항구]
[현재 항구쪽에 있는 헤롯의 항구, 비잔틴유적, 십자군 유적, 이슬람사원 등을 순례 하지 못했다.]
※가이사랴 항구[The Harbour]는 헤롯시대에 건설한 거대한 인공적 항구[Sebastos]로 바깥쪽 부두와 함께 400m의 방파제가 있고, 안쪽 부두와 정박지 구역에는 기둥들과 배를 잡아매는 돌들이 세워졌다. 지금은 안쪽 부두는 진흙으로 메워 주거지역이며, 현재 부두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