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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歷 代 歌
천지광탕(天地廣蕩)하여 고금에 역려(逆旅)되고(1)
광음(光陰)은 거래하여 백대의 과객(過客)이라.
적적한 저 청산(靑山)은 말이 없이 높아 있고
왕왕(汪汪)한 벽강수(碧江水)는 무심히 흘러가니
천고 흥망사(千古興亡史)를 어디가 물어 보리.
하수신후천재명(何須身後千載名)은(2)
이청련(李靑蓮)(3) 탄식(歎息)이요
불여안전일배주(不如眼前一盃酒)는
장사군(張使君)의(4) 글귀로다.
역대사(歷代事)를 생각하니 거려일몽(거廬一夢)(5)
가소롭다.
반고씨(盤古氏)(6) 그 뉘신고,
천지인(天地人) 삼황시절(三皇時節)(7)
사만 오천 육백년을 덧없이 지냈구나.
유소씨(有巢氏)(8) 지은 집에 수인씨(燧人氏)(9)
화식(火食) 먹고
복희씨(伏羲氏)(10) 맺은 그물 전천(前川)에
고기잡기 신농씨(神農氏)(11) 만든 따부(12)
상평전(上坪田) 갈아 보세.
헌원씨(軒轅氏)(13) 습용간과(習用干戈)
치우(蚩尤)를(14) 잡은 후에
동정장악(洞庭張樂)(15)큰 놀음을 제 뉘라 보았던가.
요(堯)임금의(16) 대장풍류(大章風流)(17)
평장백성(平章百姓) 하올(18)적에
강구(康衢)의(19) 아희(兒희) 노래
노인의 격양가(擊壤歌)라(20).
순(舜)임금(21) 오현금(五絃琴)
남훈전(南薰殿)(22) 달 밝은데
백공가(百工歌)(23) 화답하니
태평가 이 아닌가.
하우씨(夏禹氏)(24) 높은 공덕
구년 홍수 다스릴 제
구용산(九容山)(25) 운화부인(雲和夫人)(26)
금간옥첩(金簡玉牒)(27) 주시거다.
지평천성(地平天成) 도산 도수(導山導水)
고궐성공(告厥成功) 거룩할사
무쌍(無雙)한 걸(桀)의(28) 포학
경궁요대(瓊宮瑤臺)(29) 무슨일고.
매희(妹姬)의(30) 요얼(妖얼)로(31)
초학초재(招虐招災)하단 말가.
탕(湯) 임금의(32) 지덕(至德)으로
하대록(夏臺獄)을(33) 벗어나서
칠년 대한(大旱) 비를 빌 제
상림(桑林)의(34) 신영백모(身영 白茅)(35)
태갑(太甲)이(36) 개과(改過)하고
무정(武丁)에(37) 와 중흥터니
불초손(不肖孫) 주(紂)가(38) 나고
달기(달己)가 생기어서 포락지형(포烙之刑)(39)
남은 앙화(殃禍) 목야(牧野)에(40) 타죽었다.
기산(岐山)에(41) 봉(鳳)이 우니
문왕(文王)(42) 무왕(武王)(43) 나 계시네
예악이 빈빈(斌斌)하고 문물이 욱욱(郁郁)하니
목왕(穆王)(44) 팔준마(八駿馬)(45)
요지연(瑤池宴)에(46) 즐겨 논다.
깁비단 찢는 소리 서산(西山)에 봉화드니
포사(褒사)의(47) 한 번 웃음 왕실이 망하거다.
춘추전국(春秋戰國)(48) 오패(五覇)(49) 사업
다 어찌 형언하리
팔백년 동서주(東西周)가 백예산하(伯예山河)되단(50)말가.
여가자(呂家子)(51) 진황정(秦皇政)이
황제(皇帝)라(52) 자칭하고
만리장성(53) 왼담 안에
아방궁(阿房宮)이(54) 솟았구나.
호시탐탐 높이 앉아 천하를 호령하여
삼신산(三神山)(55) 채약(採藥)하러
동남동녀(童男童女)(56) 보냈더니
불사약(不死藥)은 아니 오고
사구평대(砂丘平臺)(57) 허황하다.
형산(荊山)의(58) 범이 울고
패택(沛澤)의 용(龍)이(59) 나니
팔년 풍진(風塵) 초한전쟁(楚漢戰爭)
사슴을 뉘 얻은고.
역발산(力拔山) 초패왕(楚覇王)은(60)
신세도 가련하다.
해영(垓營)의(61) 미인이별(美人離別)(62)
오강(烏江)(63) 낙일(落日) 할일 없네.
융준용안(隆準龍顔)(64) 한천자(漢天子)의
사백년 기업(基業)이라.
남궁연(南宮宴)(65) 대풍가(大風歌)에(66)
삼걸(三傑)을(67) 자랑한다.
음학(淫虐)한 여태후(呂太后)야(68)
척부인(戚夫人)이(69) 무슨 죄고
무황제(武皇帝)의(70) 위엄으로
수항성(受降城)(71) 선우대(單于臺)를(72)
다 다녀 돌아오서
백량대(柏梁臺)(73) 승로반(承露盤)이(74)
그림 밖에 높았구나.
칠월 칠일 승화전(承華殿)에(75)
서왕모(西王母)(76) 맞아들여
장생술(長生術) 못 배우고
분수(汾水)에 가을 바람
무릉(茂陵)(77) 송백(松栢) 처량(悽凉)하다.
왕망(王莽)의(78) 간흉(姦凶)으로
한실(漢室)이 거의거의
춘릉(79)가기(春陵佳氣) 울울총총(鬱鬱叢叢)
백수진인(白水眞人)(80) 나시겠다.
명장(明章)은(81) 황홀하고
환령(桓靈)의(82) 혼용(昏庸)이라
난세간웅(亂世奸雄) 조아만(曹阿瞞)과(83)
벽안자염(碧眼紫髥) 손중모(孫仲謀)(84)
각거일방(各據一方) 쟁웅(爭雄)할 제
방면대이(方面大耳) 유황숙(劉皇叔)이(85)
관장(關張)과(86) 도원결의(桃園結義)(87)
남양초당(南陽草堂)(88) 찾아가서
제갈선생(諸葛先生)(89) 어수환정(魚水환 情)(90)
삼분천하(三分天下) 겨우 하고
백제성(白帝城)(91) 영안궁(永安宮)에(92)
만사(萬事)가 창황(蒼黃)이라.
출사표(出師表)(93) 이훈(伊訓) 열명(說命)(94)
만고 영웅 눈물이라.
진대의관(晋代衣冠)(95) 육조(96) 기려(六朝奇麗)
낙화유수(落花流水) 분분하다.
동혼후(東昏侯)(97) 반숙비(潘淑妃)는
보보금련(步步金蓮)(98) 어디 가며
진후주(陳後主)의(99) 장려화(張麗華)는(100)
경양정(景陽井)의(101) 원혼(寃魂)이라
용봉지자(龍鳳之姿) 천일지표(天日之表)
당태종(唐太宗)이(102) 아니신가.
정관지치(貞觀之治)(103) 장(壯)커니와
누덕(累德)을(104) 어이할꼬.
삼십년 측천 황제(則天皇帝)(105)
제재동궁(帝在東宮) 한심(寒心)하다.
풍류천자(風流天子) 이삼랑(李三郞)(106)
해어화(解語花) 양태진(楊太眞)(107)
삼생(三生)의 중한 언약
어찌 서로 만났는가.
부용장(芙蓉帳) 무궁행락(無窮行樂)
장생전(長生殿)(108) 깊은 맹서(盟誓)
어양풍우(漁陽風雨)(109) 북소리에
우의무(羽衣舞)를(110) 파하거든
마외역(馬嵬驛)(111) 생리사별(生離死別)
천지가 망망쿠나.
촉도란(蜀道難)(112) 험한 길에
청노새 또박또박
수록산청(水綠山靑) 조제화락(鳥啼花落)
어찌 아니 슬플소냐.
그리구러 대당천지(大唐天地)
오계풍우(五季風雨)(113) 침침(沈沈)하다.
천도(天道)가 순환하여
송태조(宋太祖)(114) 나시거다.
성자신손(聖子神孫) 태평성치(太平盛治)
화석망(花石網)이(115) 무슨 일꼬
오국성(五國城)(116) 찬바람에
이제(二帝)의(117) 행색(行色)이라
좋을씨고. 서호풍경(西湖風景)(118)
중원(中原)을 잃단 말가.
남송(南宋)이 중흥(中興)하니
훌훌(숙숙)한 백년이라
호원(胡元)의(119) 세계되어
재이(災異)도 분분(紛紛)터니
금화성(金華星)이(120) 하강하사
대명(大明) 태조(太祖)(121) 나시거다.
삼백년 천하태평 요순지치(堯舜之治) 장하더니
어느덧 번복(飜覆)하여
이 세상이 뉘 세상고
열사(烈士)의 탄식이요.
사군자(士君子)의 눈물이라.
아동방(我東邦)(122) 예악 문물
천하에 유명하다.
묘향산(妙香山)(123) 단목(檀木) 아래
단군(檀君)이 나리시고,
기자(箕子)가 동출(東出)하사
교민팔조(敎民八條)하시거다(124).
제일 강산 평양 도읍(平壤都邑)
덕화(德化) 지금 남았구나.
요란한 삼조(三朝) 시절
고구려 백제로다. 신라에 와 통일터니
고려의 왕실기업(王室基業) 송악산(松嶽山)만 남은지라.
아태조(我太祖)(125) 성신문무(聖神文武)
성진(腥塵)을(126) 소탕하고
한양 도읍(漢陽都邑)하시거다.
삼각산(三角山) 숫돌 되고
한강수(漢江水)가 띠같도록
열성조(列聖朝)의 지인(至仁) 지덕(至德)
곳곳마다 강구연월(康衢烟月)(127)
대대(代代)로 명왕(明王) 성주(聖主)
고기직설(皐夔稷契)(128) 만조정(滿朝廷)에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만만세지무궁(萬萬世之無窮)이라.
【解 說】
이 <역대가(歷代歌)>는 단가로서 종래에 있던 것을 <창악대강(唱樂大綱)>의 저자인 기산(岐山) 박 헌봉(朴憲鳳)에 의해 고쳐지고, 뒤에 우리 나라 역대 제왕(帝王)이 실린 것이다. 또한 <창악대강>의 사설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천지 개벽(天地開闢) 이후 역사가 생긴 것을 낱낱이 섬겼다.
처음에 반고씨(盤古氏)로부터 삼황오제(三皇五帝)를 비롯하여 요(堯)·순(舜)·우(禹)·탕(湯)·주(周)·한(漢)·당(唐)·송(宋)·원(元)·명(明)·청(淸)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골고루 들고 끝에 단군(檀君)·기자(箕子),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들었는데, 결국 인생 무상을 절실히 엮은 노래이다.
註 (1) 逆旅 旅館의 뜻. 李白 <春夜宴桃李園序>「天地者 萬物之逆旅」<莊子>「陽子之宋 宿於逆旅」
(2) 何須身後千載名 지금 먹고 노는 것이 제일이지, 죽은 뒤에는 모두 쓸데없다 뜻. 李白詩「何須身後千載名 不如生前一杯酒」
(3) 李靑蓮 李太白을 말함. 이름은 白, 字는 太白, 號는 靑蓮居士. 唐 玄宗 때의 大詩人. 謫仙이라고 함은 天上에서 罪를 짓고 人間으로 귀양 왔다는 뜻인데, 賀季眞이 白의 仙風道骨이 謫仙人이었다고 한 데서 유래. 또 騎鯨이라고 하는 것은 李白의 死去를 말함이니, 물에 빠져 죽은 것을 고래를 타고 神仙이 되어 올라갔다고 하는 것임. 秦少游 詩「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閒多年」
(4) 張使君 張翰을 말함. <丈夫恨> 註 (2) 참조.
(5) 거廬一夢 거廬는 旅舍라는 뜻. 거廬一夢은 즉 旅舍에서의 허황한 한 꿈. <莊子>「仁義先王之거廬也」
(6) 盤古氏 天地開闢 초에 세상에 제일 먼저 생긴 자. <述異記>「盤古氏 天地萬物之祖也 然則 生物始於 盤古」
(7) 三皇 天皇氏·地皇氏·人皇氏 또는 伏羲氏·神農氏·軒轅氏를 말함.
(8) 有巢氏 上古 때 처음으로 집을 지어 백성에게 거처하는 법을 가르친 帝王. <史要>「構本爲巢 食木實」
(9) 燧人氏 古代의 帝王으로 불을 내어 백성에게 火食함을 가르침. <史要>「始鑽燧 敎人食」
(10) 伏羲氏 중국 古代의 임금 이름. 성은 風. 蛇身人首였고 八卦를 그리고 書契를 만들었음. <十八史略>「始劃八卦 造書契以代結繩之政」
(11) 神農氏 姓은 姜. 人身牛頭며 炎帝라고 일컬음. 伏羲氏 뒤를 이어 뇌거를 창?하고 百草를 맛보아서 醫藥을 마련하고 日中에 設市하여 商去來 賣買法을 이루고 나라를 8?년간 傳承하였음.
(12) 따부 農耕의 道具. 쟁기와 같이 땅과 흙을 파 젖히는 것.
(13) 軒轅氏 성은 公孫 또는 姬姓. 軒轅의 언덕에서 낳았으므로 軒轅氏라 하고, 有態에 國都를 정한 까닭으로 有態氏라 일컬음. 舟車를 創造하매 교통을 편의하게 하였으?, 당시 蚩尤를 쳐서 平定하니 諸侯가 天子로 받드며 神農氏 뒤를 잇게 되었음. 또한 土德의 瑞氣가 있다고 하며, 黃帝로 일컬었음.
(14) 蚩尤 姓은 姜, 炎帝의 後孫. 銅頂鐵額으로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刀劒과 大弩를 만들어 暴虐作亂하므로 黃帝가 指南車를 만들어 탁鹿의 벌판에서 싸우다가 이를 사로잡아 죽였다.
(15) 洞庭張樂 軒轅氏가 洞庭湖에서 風流놀이한 것을 말함. <莊子>「黃帝張樂於 洞庭之上」
(16) 堯임금 <不須嚬> 註 (1) 참조.
(17) 大章 堯大의 樂章名. <通鑑>「堯作大章 一夔足矣」<白虎通>「堯樂日大章 大明天地人之道也」
(18) 平章百姓 平章은 평화와 같은 뜻이니, 백성을 평화로이 살게 한다는 말. <書傳> 「平章百姓」
(19) 康衢 번화한 큰 거리. 堯 임금이 微服으로 民情을 보살피려고 康衢에 나왔을 때 童謠와 老人의 擊壤歌를 들은 옛일. <列子> 仲尼篇「堯 治天下 五十年不識不知 天下治歟 乃微服 遊於康衢 聞童謠元 粒我蒸民 莫非爾極 順帝之則」
(20) 擊壤歌 農夫가 太平을 노래하는 것. <十八史略>「堯乃微服 遊於康衢 有老人 含哺鼓腹 擊壤而 歌曰」日出而作「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帝力何有於我哉」
(21) 순임금 <不須嚬> 註 (1) 참조.
(22) 南薰殿 舜임금의 殿閣을 일컬음. 舜:琴操「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온兮」가 있으므로 南薰殿이라 이름하였음.
(23) 百工歌 工은 官을 말함. 즉 百官이 和樂하게 부르는 노래. <十八史略>「百工相和而 歌曰 卿雲爛兮 禮漫漫兮 日月光華 旦復旦兮」<書經>「允釐百工」
(24) 夏禹氏 禹는 夏 開國之君이며, 舜을 繼承하였음. 堯代에 治水의 大功을 이루었고, 寅月로 歲首를 하였음.
(25) 九容山 山名. 夏禹氏가 九容山에서 雲和夫人을 만나 玉牒과 金簡을 받아서 治山治水에 成功하였음. <史要>「九容山 遇雲和夫人 乞得 玉牒七讖 蒼水使者 授 金簡玉牒 平水錫玄圭 刻曰 延喜受德 天賜佩 受禪於舜 金德王 都安邑 謂之松桂」
(26) 雲和夫人 仙女의 이름. 前項의 九容山 참조.
(27) 金簡玉牒 夏禹氏가 導山導水 때에 雲和夫人에게서 받은 治山治水의 秘法.
(28) 桀 夏의 末王. 이름은 履癸. 諡號를 桀이라 함은 暴君이란 뜻. 嬖妃 妹姬의 말을 좇아 瓊宮瑤臺 肉山脯林 酒池의 사치를 누리다가 殷湯에게 격멸당하여 南巢에서 죽었음.
(29) 瓊宮瑤臺 玉으로 장식한 宮과 臺. 즉 호화로운 궁궐을 말함. <十八史略>「爲瓊宮瑤臺탄民財」
(30) 妹姬 <丈夫恨> 註 (28) 참조.
(31) 妖蘖 계집이 요망하여 온갖 災禍를 일으킨다는 뜻.
(32) 湯 <不須嚬> 註 (2) 참조.
(33) 夏臺獄 夏國의 獄名. <史記>「桀召湯 囚夏臺 己而得釋」
(34) 桑林 들 이름. 七年大旱 때에 湯이 祈雨하던 곳. <十八史略>「遂齊戒 剪爪斷髮 身영白茅 以身爲犧牲 禱于桑林之野 以六事 自責 言未己 大雨方數千里」
(35) 身영白茅 몸을 白茅에 싼다는 뜻. 成湯이 祈雨祭를 지낼 때 자기가 직접 희생이 도어 하늘에 祭祀하였다 함. (前項 참조)
(36) 太甲 成湯의 孫. 太丁의 子. 卽位 후 너무 不明하여 政事를 잘못하므로 臣下 伊尹이 桐宮으로 추방하였다가 3년 만에 改過하므로 다시 王位에 復位하였다.
(37) 武丁 殷 高宗의 이름. 湯의 後孫. 賢臣 傳說을 얻어 殷을 中興시켰음.
(38) 紂 殷의 末王. 이름은 受, 紂는 그의 諡이며 暴君이라는 뜻. 寵姬 달己의 말을 좇아 象箸玉杯의 奢侈를 일삼고 포烙의 酷刑을 加하여 賢臣을 虐殺하므로 周 武王에게 討伐되었으며, 自焚死亡하였음. <周易>「惟婦言是聽」
(39) 포烙之刑 殷 紂의 酷刑. 숯불 가운데 기름을 바른 구리쇠 기둥을 세워 사람을 그 위에
오르게 하여 火中에 미끄러 떨어져 죽게 하는 刑罰. <史記> 註 引列女傳「膏銅柱 下加之암 令有罪者 行焉輒墮炭中 달己笑 名曰 포烙之刑」
(40) 牧野 陜西省 岐山縣에 있는 山. 周 武王이 伐紂 때에 宣誓하고 商을 멸한 곳. <書傳>「王 朝室 商郊牧野 力誓」
(41) 岐山 陜西省 岐山縣에 있는 山. 周 文王 때에 鳳凰이 와서 울었다 함.
(42) 文王 <不須嚬> 註 (3) 참조.
(43) 武王 <不須嚬> 註 (3) 참조.
(44) 穆王 昭王의 子. 이름은 滿. 나이 50이 지나 왕이 되어 卽位한 지 55년 만에 죽었음. 暮년에는 호탕하게 한평생을 보내고자 천하를 周行하였음.
(45) 八駿馬 周 穆王이 타던 八頭의 良馬. 古詩「八駿日行三萬里 穆王何事不重來」
(46) 瑤池宴 周 穆王이 西王母와 會遊하였다는 곳. 崑崙山에 있음. <集仙傳>「西王母所居宮闕 再龜山崑崙之圃 낭風之苑左帶瑤池 左環翠水」
(47) 褒사 <丈夫恨> 註 (32) 참조.
(48) 春秋戰國 <春秋>는 孔子가 修正削筆한 魯史. 周 平王부터 威烈王에 이르기까지 242년간의 일을 記述한 것. 戰國은 周 威烈王부터 秦始皇 統一天下까지 204년간을 말하는데 , 周 平王 이후에 周室이 衰微하고 諸侯가 强盛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므로 春秋戰國時代라 말함.
(49) 五覇 春秋 때의 齊 桓公, 晋 文公, 秦 穆公, 宋 襄王, 楚 莊王을 말함.
(50) 伯예山河 伯예는 伯益을 말함. 秦의 始祖. 伯예山河는 곧 秦나라를 말함.
(51) 呂家子 秦始皇을 말함. 陽翟大賈[大財閥의 商人] 呂不韋가 자기 妾 邯鄲美女가 임신하였음을 알고 秦 莊襄王에게 주었더니 8개월 만에 아들 政을 낳았다. 그러므로 始皇의 實姓은呂氏라고 함.
(52) 皇帝 秦皇 政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德이 三皇을 더불고 功이 五帝에 미친다 하여 皇제라 일컬음. 皇帝란 말은 秦始皇으로부터 시작되었음.
(53) 萬里長城 <不須嚬> 註 (23) 참조.
(54) 阿房宮 <不須嚬> 註 (22) 참조.
(55) 三神山 <不須嚬> 註 (25) 참조.
(56) 童男童女 <不須嚬> 註 (24) 참조.
(57) 砂丘平臺 <不須嚬> 註 (26) 참조.
(58) 荊山의 범 <鴻門宴歌> 註 (6) 참조.
(59) 沛澤의 龍 <鴻門宴歌> 註 (7) 참조.
(60) 楚覇王 <鴻門宴歌> 註 (9) 참조.
(61) 垓營 垓는 安徽省 靈壁縣內에 있는 地名. 漢 高祖가 項羽를 포위한 곳. 營은 ?영.
(62) 美人離別 <不須嚬> 註 (30) 참조.
(63) 烏江 <不須嚬> 註 (31) 참조.
(64) 隆準龍顔 우뚝한 코에 非凡하게 생긴 얼굴. <通監>「劉邦爲人 隆準龍顔 左股?有七十二黑子」
(65) 南宮宴 漢 宮名. 河南 洛陽縣 동쪽에 있음. 漢沛公이 天子가 된 뒤 고향에 돌아가서 父老를 불러 잔치를 베푼 곳.
(66) 大風歌 漢 沛公이 天子가 된 뒤 南宮에서 잔치를 베풀 때 부른 노래. <史記>「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 歸故鄕 安得猛士兮 守四方」
(67) 三傑 漢의 張良·蕭何·韓信.
(68) 呂太后 漢 高祖의 妃. 성은 呂, 이름은 雉.
(69) 戚夫人 漢 高祖의 貴妃. 趙王 如意의 母. 高祖가 죽은 뒤 呂后가 戚夫人의 手足을 끊고 「人체」라고 하였음.
(70) 武皇帝 前漢의 7代王. 儒敎를 國敎로 하여 思想統一을 꾀하고, 中央執權을 강화하였음. 諸侯를 억눌러, 貨幣鑄造權을 國有로 하고, 均輸法·半準法을 시행하는 한편 소금과 쇠의 專賣를 했음. 또 張騫을 중앙 아시아로 파견하여 東西交通路를 열고 匈奴를 구축하였으며, 베트남·衛滿을 멸망시키고 漢西郡을 설치하여 大帝國을 이루어 놓기는 하였으나, 그의 晩 年에는 長期에 걸친 外征의 결과 財政이 악화하고 社會不安이 더했음.
(71) 受降城 現 蒙古 烏喇特旗北에 있음. 漢 武帝가 將軍 公孫敖를 시켜 쌓은 城.
(72) 單于臺 匈奴의 酋長을 單于라 함. 臺는 綏遠縣 歸化城 서쪽에 있음. 당시 武帝가 軍士18만 騎를 움직여 單于臺에 올랐음.
(73) 栢梁臺 漢 武帝가 쌓은 臺. 椽木을 香栢으로 지었으므로 栢梁臺라 함.
(74) 承露盤 <丈夫恨> 註 (6) 참조.
(75) 承華殿 武帝가 西王母를 만나던 殿名.
(76) 西王母 仙女의 이름. 周 穆王과 瑤池에서 會遊하였고 7월 7일에 承華殿에서 武帝와 만나 蟠桃를 주었다고 함. <列女傳>「漢 元封元年 西王母 降武帝殿 進蟠桃七枚於帝」
(77) 茂陵 漢 武帝의 陵. 現 陜西省 與平縣에 있음.
(78) 王莽 성은 王, 이름은 莽. 漢室을 빼앗고 國號를 新이라 일컬었다가 漢 光武帝에게 멸망하였음.
(79) 春陵 湖南省에 있는 地名. 漢 光武帝가 난 곳.
(80) 白水眞人 漢 光武帝가 白水縣에서 起兵하였으므로 白水眞人이라 함. <通鑑>「新莽以劉字 因禁金刀 更鑄錢名曰貨泉 人以其字爲白水眞人 後光武帝竟從白水鄕起兵」
(81) 明章 明은 明帝, 章은 章帝. 漢 光武의 子孫.
(82) 桓靈 桓帝와 靈帝.
(83) 曹阿瞞 성은 曹, 이름은 操, 阿瞞은 小名, 字는 孟德, 漢末의 逆臣으로 魏太祖 武帝가 되었음.
(84) 孫仲謨 이름은 權, 仲謨는 字, 孫堅의 아들. 三國時代 東吳의 主.
(85) 劉皇叔 이름은 備, 字는 玄德. 漢獻帝의 叔行이였으므로 皇叔이라 함. 漢末 諸葛亮의 輔弼을 얻어 蜀을 建國.
(86) 關張 蜀의 명장. 關羽와 張飛.
(87) 桃園結義 劉備·關羽·張飛 3人이 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었음.
(88) 南陽草堂 南陽은 舊襄陽의 地名. 現 河南 沁陽縣. 草堂은 諸葛亮의 居室.
(89) 諸葛先生 성은 諸葛, 이름은 亮, 字는 孔明, 諡는 武侯이다. 南陽에서 躬耕하여 八陣圖兵法을 熱達하였음. 劉備의 三顧한 誠意를 갚고자 세상에 나와서 三分天下의 大業을 이루었다. 赤壁戰에서 東南風을 빌고 中原討伐 때는 木牛流馬를 창조하였다.
(90) 魚水환情 君臣間에 서로 좋아함이 고기가 물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는 뜻. <蜀誌>「先主曰 孤之有孔明 如魚之有水」
(91) 白帝城 現 四川省 夔州府에 있는 城明. <元和郡國誌>「公孫述 至魚腹 有白虎 出井中 因號魚腹 爲白帝城」
(92) 永安宮 白帝城에 있는 宮. 蜀帝 昭烈皇帝가 죽은 곳.
(93) 出師表 諸葛亮의 蜀 昭烈皇帝의 아들인 後主 劉禪에게 魏를 征伐하려고 出師함을 이르는 글월. 萬古歷代에 爲國盡忠의 표본이 될 수 있는 前後表文의 二篇임.
(94) 伊訓說命 <書經>의 篇名. 伊訓은 伊尹이 太甲에게 가르친 것. 說命(열명)은 傅說(부열)이 武丁에게 명령한 것을 말함.
(95) 晋代衣冠 晋代의 仕族을 말함.
(96) 六朝 吳(孫權)·東晋(懷帝 江東에 遷都)·宋(劉祐)·齊(蕭道成)·梁(蕭衍)·陳(陳覇先) 등 六國. 혹은 南北朝時代라고도 함.
(97) 東昏侯 성은 蕭, 이름은 寶卷, 字는 智藏. 齊 明帝의 세째 아들. 在位 2년에 暴虐無道하므로 王位에서 쫓겨나 東昏侯가 되었음.
(98) 潘淑妃의 步步金蓮 潘淑妃는 齊 東昏侯의 妃. 金으로 蓮花를 만들어 놓고 淑妃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하고, 이것을 步步生蓮花라 하였음.
(99) 陳後主 이름은 叔寶, 宣帝의 子. 荒淫無道하여 陽春 結綺 望山 등 세 개의 樓閣을 짓고 妃嬪·狎客들과 놀이하다가 隋 文帝에게 망하였음.
(100) 張麗花 陳 後主의 貴妃. 才色이 絶美하여 後主가 늘 무릎 위에 앉혀 놓고 國事를 같이 議決하였다. 陳이 망할 때 後主와 함께 景陽井으로 들어가니 隋軍이 잡아 내어 淸溪中에서 죽였음.
(101) 景陽井 陳後主 宮中에 있던 井名.
(102) 唐太宗 唐 高祖이 次子. 이름은 世民. 高祖를 도와서 唐을 創業하였음.
(103) 貞觀之治 貞觀은 唐 太宗의 年號. 治는 太宗이 善政하여 천하가 태평함을 말한 것. 太宗이 蝗災가 심함을 보고 蝗충[메뚜기]을 잡아먹으며 하는 말이「차라리 내 肝을 먹을지언정 백성들의 양식은 먹지 마라. 나의 얼굴은 야위어져도 天下와 萬百姓은 살찌리라」하였음.
(104) 累德 더러운 德(다음 항 則天 참조).
(105) 則天 성은 武, 이름은 , 諡는 則天. 唐 太宗의 才人. 太宗이 죽은 뒤 削髮하고 중이 되었다가 高宗 때에 다시 머리를 기르고 宮中에 들어가 高宗의 皇后가 되었다. 才色을 兼備했음. 高宗이 죽은 뒤에 中宗·睿宗을 폐하고 690년 스스로 帝位에 올라 國號를 周로 고침. 佛敎를 보호했으며, 옛 周나라의 制度를 따르는 則天文字를 만들어 쓰게 했음. 中國史上 단 한사람의 女帝였으며, 후에 宰相 張柬之 등에 의하여 廢位됨. 則天武后.
(106) 李三郞 唐 玄宗이 中宗의 셋째 아들이므로 三郞이라 함.
(107) 解語花 楊太眞 楊은 성, 太眞은 이름. 唐 玄宗의 貴妃. 姿色이 꽃과 같으므로 玄宗이 모란을 보는 자리에서 貴妃를 가리켜 이는 나의 말하는 꽃이라 하였음.
(108) 長生殿 唐 淸華宮中에 있는 殿名. 白樂天 <長恨歌>「七月七夕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109) 漁陽風雨 漁陽은 地名. 直隸省 계縣 平谷 등지. 風雨는 兵亂을 말함. 즉 安祿山이 唐 玄宗의 寵愛를 받는 楊貴妃와 密通하고 范陽에서 亂을 일으켜 漁陽과 호응하고 洛陽을 함락하여 長安으로 침입할 때 玄宗은 西蜀으로 피난하였음.
(110) 羽衣舞 神仙의 춤. 唐 開元 中秋夜에 羅公遠이 玄宗을 모시고 宮中에서 翫月하다가 公遠이 지팡이를 공중으로 던지니 이 지팡이가 큰 다리로 변하며 그 色이 銀과 같았다. 玄宗이 함께 올라 數里를 가니 精光이 앞에 어리고 寒氣가 침입하였으며, 大城闕에 이르니 수백명의 仙女가 흰띠와 구슬소매로 黃庭에서 춤을 추었다. 玄宗이 물으니 公遠이「이곳은 ?宮이며 춤이름은 霓裳羽衣舞」라 대답하였다. 玄宗이 돌아와 이를 宮女에게 가르쳤다고 함.
(111) 馬嵬驛 陜西省 興平縣 서쪽 25리에 있음. 一名 馬嵬鎭 또는 馬嵬堡라고도 함. 明皇이 安祿山의 亂을 피하여 蜀으로 가는 도중 六軍이 떠나지 않고 楊貴妃 죽이기를 强請하므로 부득이 貴妃를 죽인 곳.
(112) 蜀道難 西蜀은 山이 높고 험하며 棧道가 없이는 통행할 수 없으므로 험한 산길을 말할 때 蜀道難이라 함. 李白 詩「噫우噫危乎高哉 蜀道之難 難於上靑天」
(113) 五季風雨 唐 후에 일어난 後梁·後唐·後晋·後漢·後周 등 五國의 戰亂 때를 말함. <宋史>「唐室旣衰 五季迭興 五十餘年 更易八姓」
(114) 宋太祖 姓은 趙, 이름은 匡胤. 宋의 創業主.
(115) 花石網 宋 徽宗이 珍奇한 물건을 좋아하며 특히 奇花와 怪石을 偏愛하므로 蔡京이 徽宗의 뜻을 맞추려고 浙中珍異를 구하며, 축로[배]에 싣고 淮水 변水에 연달아 운반하였으므로 그 光景을 花石網이라 불렀고, 그 花石網의 弊風은 당시 큰 소란을 일으켰음.
(116) 五國城 現 吉林省 동북부 依蘭臨江 부근에 있는 城名. 宋 徽宗의 죽은 곳. 遼 때 이 地方이 다섯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으므로 五國이라 하였음. 一說에 의하면 五國城은 雲頭山城을 말하며 咸鏡北道 會寧 서쪽, 지금 吉林城 延吉縣 지방임. 城外에 徽宗의 무덤이 있음.
(117) 二帝 宋의 徽宗과 欽宗을 말함. 金人에게 포로가 되어 金에서 죽었음.
(118) 西湖 安徽省 蘇州에 있는 湖名. 또 杭州 錢塘湖도 西湖라 함. 兩湖風景이 다 天下第一이라고 함.
(119) 胡元 蒙古國을 말함. 始祖는 각特氏. 宋 寧宗 때 鐵木眞이 幹難河上에서 帝라 自稱하여 號를 成吉思汗이라 하였고, 그 아들 忽必烈이 國號를 元이라 일컬었고 宋을 멸하여 中國을 통일하고 燕京에 도읍하였다. 그때 疆域이 東으로 東海, 南으로 安南, 北으로 西伯利亞. 西北에는 歐洲까지 이르러 境域의 광대함이 歷代에 제일이었음.
(120) 金華星 金星을 말함. <朱子 註>「啓明長庚星 皆金星也」
(121) 大明太祖 明은 國號. 太祖의 성은 朱, 이름은 元璋임.
(122) 我東邦 우리 나라를 말함. 즉 中國의 동쪽에 있다는 뜻.
(123) 妙香山 平安北道 寧邊郡에 있는 山 이름. 이 山에 들어가면 묘한 香氣가 난다고 하여 妙香山이라 함.
(124) 敎民八條 古朝鮮 때에 社會의 安寧秩序를 유지하는 不文禁約이 행하여졌는데, 이것을 箕子의 八條敎라 함. 八條의 全文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다만 그 가운데 三條만이 <漢書地理志>에 傳記되어 있음.
其一「相殺 以當時償殺」
其二「相傷 以穀償」
其三「相盜者 男沒入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五十萬」
(125) 我太祖 朝鮮을 開國한 創業主. 이름은 成桂. 뒤에 旦으로 改名하였음.
(126) 腥塵 세상은 어지럽고 殺戮이 심하며 피비린내 나는 티끌과 같다는 뜻.
(127) 康衢烟月 태평한 시대의 번화한 거리의 평화스러운 모습.
(128) 皐夔稷契 堯代 네 사람의 賢臣. 우리 나라 朝臣의 착실함이 堯代 賢臣과 같다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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