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 전통술은 쌀 등의 곡식과 누룩, 물을 기본원료로 하여 발효시키는 ‘발효주(醱酵酒)’ 곧 ‘곡주(穀酒)’가 주류를 이루며, 이 발효주를 증류하여 소주(燒酒)를 만든다. 그런데 발효주는 순하고 부드러우며 맛과 향이 좋긴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아 상온에서 변질이 쉽게 일어난다. 이에 비해 소주는 도수가 높아 오래 두어도 변질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맛과 향이 좋아지고, 소량을 마셔도 빨리 취하고 깨끗하게 깨는 것이 장점이지만, 음주에 따른 건강의 피해가 자못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러한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술이 세계 최고(最古)의 과하주(過夏酒) 제조법이다. 과하주는 혼양주(混釀酒)로 분류하는데, 이 술빚기는 누룩과 곡식을 주원료로 술빚기가 이뤄지는 동양권을 비롯 세계에서도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통 과하주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쌀 등의 곡식과 누룩, 물을 재료로 발효시킨 술에 따로 빚어 증류한 소주를 넣어 재차 발효, 숙성시켜 완성됨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과하주의 주방문(술 빚는 법)을 기록한 옛 문헌으로 [규곤시의방], [술 만드는 법], [치생요람], [역주방문],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양주방], [주찬] 등이 있다. 이들 문헌을 보면, 쌀과 누룩, 물을 주재료로 하여 빚은 술이 한차례 발효되면 익히는 과정, 곧 후발효에 들어갈 때쯤, 같은 방법으로 빚어 증류한 소주를 붓고 재차 발효, 숙성과정을 거치는 방법이다. 세계 최고의 양조기술을 개발해 낸 조상들의 뛰어난 지혜를 발견하는 부분이다.
흔히 일반인들이 양주의 하나인 와인에 대해 ‘오래될수록 좋은 과일주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포르투갈에서 개발된 소위 알코올강화와인이라 불리는 ‘포트와인(Port Wine)’의 등장 이후부터이다. 이 포트와인이 개발되게 된 배경과 그 방법이 우리의 과하주와 너무나 유사한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포트와인보다 개발 시기 앞선 과하주
17세기 견원지간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전쟁을 치르면서, 프랑스와인의 절대 소비국이었던 영국은 자국 와인 공급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 처하게 되자 포르투갈 와인으로 대체하게 된다. 이때 포르투갈 와인이 배로 운반되면서, 오랜 항해 중에 변패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와인 변패의 진행을 막을 방법을 찾던 중 우연히 와인에 ‘브랜디(Brandy)’를 첨가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효모 증식과 발효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와인의 발효가 일정한 정도가 되었을 때 포도 속 당분의 절반 정도가 변화를 일으켜 알코올로 변하게 되는데, 이때 브랜디를 숙성 또는 완성된 와인에 적당량 첨가하여 알코올 농도가 20% 정도가 되도록 하면, 단맛이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와인보다 알코올 농도가 강한 와인이 된다. 이것을 오크통(Oak)에 다시 일정기간 숙성시키면 포트와인이 되는데 제조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포트와인이 만들어지고 상온에서도 저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과하주와 포트와인은 그 방법에서 유사하지만 기술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 즉, 포트와인이 완성된 포도주에 주정을 첨가하여 재발효를 중지시키는 방법이라면, 과하주는 발효 중인 술에 소주를 첨가하여 발효 숙성시키는 개념의 양조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재발효를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 한번의 발효를 일으키며 저장성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술적인 면에서 앞선다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과하주의 발효법은 포트와인보다 앞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포트와인이 개발된 시기가 1750년 경인데 반해 과하주는 1600년대 초에 이미 제조되어 반가와 부유층을 중심으로 일반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과하주는 우리나라의 기후상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일반적인 양조가 힘들었으므로, 온도와 습도 등에 따른 술의 변패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술이였으며, 소주의 음용에 따른 주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개발된 것으로 부유층과 사대부가에서 여름철에 특별히 빚어 마시는 고급술이었다. 고급술이라는 말은 일반에 보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는 말이고, 1670년에 발간된 [규곤시의방]에 과하주가 처음 언급된 것을 보아, 이미 한참 전(1600년대 초반)에 과하주가 개발된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역과 재료에 따른 과하주
1450년경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산가요록]에 과하백주가 등장하는데, 이때 과하백주는 소주가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1670년에 간행된 [규곤시의방]의 과하주와 17세기의 [온주볍]의 과하주는 후발효 과정에서 소주를 붓고 30~40일간 발효, 숙성시킨다고 나와있다. 또한 1827년의 [임원십육지]에 수록된 '오향소주'는 '찹쌀고두밥에 누룩가루와 끓인 물로 빚어 술이 발효되면 단향, 목향, 천궁, 정향, 인삼 등을 가루로 만들고, 호도, 대추 등과 함께 술독에 넣고 소주를 부은 뒤, 김이 새지 않도록 단단히 밀봉하고 7일 후에 술독 뚜껑을 한 번 열어보고 다시 밀봉하여 29일간 숙성시켜 마신다.'고 하였다. 문헌에 수록된 과하주는 그간 거의 맥이 끊겼고, 현재는 인삼, 대추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빚는 약용 목적의 지방색을 띤 토속주, 곧 전승 가양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과하주이면서 강하주로 불리우는 술이 또 있는데, 수원시에 사는 김명자씨 댁의 약소주(藥燒酒)와 전남 영광읍 조희자씨 댁의 강하주(薑荷酒), 보성군 회천면의 도화자씨 댁의 강하주, 그리고 남원의 김길임씨 댁의 신선주(神仙酒)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이들 술이 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하주류에 속하는 것은 제조방법의 공통점과 부재료의 이용법에 따른 차이점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들 주류 모두 두 번 빚는 이양주이면서 술덧에 소주를 붓고 발효, 숙성시킨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술 이름을 결정짓는 부재료의 종류나 사용방법을 보면 각각의 특징과 차이가 나타난다.
먼저, 수원의 약소주는 술에 넣을 재료 중 용안육은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볕에 건조시킨 건삼(인삼)과 찜통에 넣어 찐 대추, 생강즙, 적당한 크기로 쪼갠 계피를 사용하는 등 소위 ‘법제’한 재료를 자루에 담아 발효 중인 술독에 깊이 쑤셔 넣어 발효, 숙성시키는 방법으로 빚어진다. 남원의 신선주는 부재료로 솔잎, 녹두, 밤, 인삼, 백복령, 죽엽을 물에 넣고 끓여서 절반으로 줄어들면 건더기와 함께 소주도 넣는다. 한편, 영광 강하주와 보성 강하주는 이름이 같지만 부재료가 다른 술이다. 영광 강하주는 부재료로 볶은 구기자, 찐 대추, 강활, 용안육과 함께 주머니에 담아서 술독에 쑤셔 박은 후 생강즙을 맨 마지막에 넣어준다. 보성강하주는 대추, 생강, 곶감을 부재료로 넣는데, 생강즙, 두 쪽 낸 대추와 곶감을 고두밥과 함께 섞어 덧술을 해 넣는다는 점에서 약재의 종류와 사용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과하주류는 그 빛깔이 마치 오랜 세월 숙성시킨 브랜디와 같아, 시각적인 자극과 함께 여느 혼성주에 비해 향기와 부드러운 맛을 으뜸으로 친다. 과하주류의 이러한 맛과 특징은 주재료로 찹쌀을 사용한데다 대추, 계피, 생강, 인삼 등 감미와 방향성이 강한 약재가 들어가기 때문으로, 달고 부드러운 맛에 한 번 빠지면 취하는 줄 모르고 거푸 마시게 된다. 이 과하주의 술맛이 어떠하였는지, 조선시대엔 지방 수령들이 내직으로의 승차도 사양하거나 홍문관 관원들마저도 특히 굴비와 함께 이 술맛을 즐기려 전남 영광의 수령이 되기를 자원(自願)했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과하주 빚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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