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니까 신문기사가 나고 친구들은 축하를 하고 야단법석이 났는데 그 쾌감이야말로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줄거움이 문제가 아니고 병원에 계시는 선생님의 안위가 걱정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이튼날 전주 예수병원으로 갔는데 선생님이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시다 목에서 피가 나왔다고 하시지 않겠어요
나는 착찹한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어서 병원뒤로 돌아가 부처님께 기도를 하였답니다
병원에다 선생님을 두고 나오는 마음 어떻게 표현을 할까요
저러다 돌아 가시면 어떡하나 하고 근심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병원 관계자는 치료하면 낫는다 하였읍니다
그 후로 사개월만에 퇴원을 하셨지요
선생님을 위하는 마음 변함 있겠습니까
속병에는 붕어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그냥 있을수가 없지요
그 이튼날부터 저수지에 가서 붕어를 낚아다가 즙을 내어 하루에 두 컵식 드시게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삼개월동안 일주일에 3키로씩 잡아다가 드렸는데
어느날 김향순씨 (정홍수선생님 사모님)께서 나도 이젠 붕어를 구할수 있으니 그만 가져와도 된다고 하시지 않겠어요
그 후로 김향순선생님은 지극 정성으로 붕어를 잡아다가 자기 남편에게 먹여드려 정성을 다해 약 삼 년만에 병이 완치됐답니다
전주 전국 고수대회 명고부 장원을 하고 이듬해 바로 대명고부에 출전하였는데 첫해는 장려상 두번째 해에는 우수상 세번째에는 장려상 네번째 해에는 우수상 다섯번째 해에도 우수상을 받았는데
여기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정홍수선생님 문하에 들어가서 북공부을 하는데 소리를 많이 들어야 소리 보비위를 하지요
이임예명창을 찾아가 소리을 듣고 북을 치며 공부를 하는데 그해 가울 12월중순인데 하루는 밤에 이명창한데서 전화가 걸려 왔어요 받아보니 자기집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졌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추워 죽겠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순천에서 광주로 올라 가는데 쌍암재부터 눈이 많이 와서 쌓여 빙판이 되어 있어요
조심조심 광주에 도착하여 보니까 유류 파동이 나서 기름을 주지 않는것입니다
나는 하는수 없이 20리터짜리 프라스틱 통을 5개를 사서 들고 주유소마다 다니면서 20리터씩
동냥을 하여 다섯통을 사서 이임예명창집으로 들어 가니까 이임예씨는 방안에서 이불을 둘러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유소마다 다니면서 동냥을 하여다가 기름 다섯통을 사다가 기름통에 부었읍니다 하고 말했더니 이임예씨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 하시지 않겠어요
보일러 기름통에 부어 놓고 다시 가서 주유소마다 다니며 동냥을 하여 다섯통을 더 사다 보일러통에 부어주고 순천으로 돌아 왔지요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입니까
그러다 장흥에 유영애명창이 장흥에서 후학을 지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유영애명창은 나한테는 참으로 고마운 분이지요
왜냐하면 이때 나는 뉴 삼우관광회사에 영업부장으로 재직중인데 퇴근시간을 맞추고 오후 일곱시에 출발하여 장흥에 도착하면 유영애명창은 자기 집으로 가서 휴식하고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나때문에 집에도 못가고 하는수 없이 소리를 시작하면 두시간 이상으로 소리를 하여 줍니다.
이 두 분한테서 한 이년정도 노럭을 했습니다
우리 유영애씨 그때 그 마음을 절대 잊을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송순섭명창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송순섭씨가 방성춘명창하고 결혼하여 광주에서 사실때 입니다
이임예씨도 부족하고 유영애씨도 부족하여 여기서 해석을 잘못하면 큰일이 납니다
소리가 잘못도 아니요 오바탕 소리를 듣는게 부족하다 그런 말씁입니다
송순섭선생님은 또한 우리고장 사람이요 나의 처가편으로도 남이 아닙니다
송순섭명창한테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때로는 수형고수로도 따라 다니기도 하고
방성춘명창 수형고수도 하고 그 뿐만이 아니라 송순섭 명창 가고자 하는데는 어디든지 실고 다니면서 보비를 하였지요
그런데 어느날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송순성명창 하시는말씀이 박봉술선생님을 욕을 하면서 자기가 먼저 공부를 했고 부산에서 누가 먹여 살리고 병원이 어떻고 야단이 났습니다
들어본즉 박봉술선생님이 서울에서 김일구씨를 먼저 이수증을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이해를 하고 알았습니다 하고는 서울로 올라가 그때는 이미 박봉술선생님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박봉술선생님은 나의처 작은 아버님이셨지요
송순섭 명창 이야기를 하였더니 바로 와서 이수증 받아 가라고 하시기에 송순섭씨에게 빨리 서울로 올라가시요 그렇게 해서 송순섭씨가 이수증을 받았습니다
다시 전주에서 이야기할랍니다
대명고수부에 출전을 하였는데 김일구명창이 나만 만나면 소리를 어렵게 하여 나를 못 살게 하였습니다
김일구씨는 자기만 이수증을 가지고 있어야 할텐데 송순섭씨을 주게 했다는 이유로 나를 못 살게 하였지요
그러니까 대명고수부에서 장려상 세번 우수상 한번 최우수상 두번 오년만에 장원하고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읍니다
첫댓글 대박~~~~~~~~~~ 인생역전~~~ 축하축하여~~~~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런 역사의 한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적 이야기를 어디서 구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