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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이 닥칠 때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성경:약1:12
시험을 견뎌 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모든 사람에게는 시기와 방법과 대상이 다를 뿐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야고보는 시험을 견뎌낸 자는 복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련이라고 하는 것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하여 받는 고난이나 역경과 같이 어려운 과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시험은 최종적인 결과를 위한 테스트라면 시련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시련을 용광로로 비유하고 있다.
사48:10 보라, 내가 너를 정련하였으나 은과 함께하지 아니하고, 고난의 용광로에서 너를 택하였노라.
따라서 시련은 불과 같이 뜨겁다.
불은 세 가지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준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며, 강하게 만든다.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망치로 원하는 모양을 만든 다음에 다시 불에 넣었다가 찬 물에 담금질을 통해 목적에 합당한 강한 농기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도구는 모양은 비슷할지 모르나 농기구로서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처야 할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일꾼으로 검증받기 위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시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 설교제목은 “ 어려움이 닥칠 때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 이다.
시련은 그리스도인들을 연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
누구든지 시련을 잘 견디어 내고 이겨내면 비로소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시련을 견디어내고 주님의 훌륭한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으나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주저앉아 버림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시련을 이겨내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알면서도 시련을 피하지 않고 견디어 내는 이유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즐기라는 말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피할 수 없는 시련이라면 오히려 그 시련을 즐기면서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시련이 닥칠 때 반응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살펴보라.
어려움이 닥칠 때
첫째 유익을 위해 도피하는 사람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기거나 입장이 난처해지면 일단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외면하거나 슬며시 도망가는 자들이다.
교회 안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손님처럼 대접만 받기 원하고 구경꾼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은 뒷짐만 지고 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불평만 한다.
죄인들은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면 질수록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술, 마약에 중독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현실을 도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한 마디로 비겁하고 야비하며 무책임한 자들이다.
도피하는 이유는
1.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일에 손해와 이익을 따져보고 즉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계산 적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동지를 배반할 수도 있고 유익하다면 적과 연합할 수도 있다.
마26:56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선지자들의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더라. 그때에 모든 제자가 주를 버리고 도망가더라.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자들조차도 주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했다.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종교를 바꿀 수도 있고 새로운 종교를 선택할 수 도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사람들은 시련이 오면 도망하는 사람들이다.
도피하는 이유는
2. 세상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보다 지금 살아있는 동안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이다.
따라서 내일 일보다는 오늘 어떻게 하든지 손해를 보지 않거나 어려움을 피하고자 한다.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혼도 팔아먹을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명예와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뭐든지 서슴치 않고 실행하는 자들로 모든 가치기준을 세상에 있는 것으로 국한 시킨다.
눅7:31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의 사람들을 무엇에다 비교할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이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중심, 세상 중심적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세상 제도를 따른다.
보이는 것에 더 관심과 마음을 쏟는다.
고후4:18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모든 가치관도 세상 중심적이고 사람 중심적이다.
소망 또한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얻고자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시련이 오면 더 안전한 곳을 찾아서 도망하는 사람들이다.
도피하는 이유는
3. 핑계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잘하면 자기 탓이고 못하면 다른 사람의 탓으로 여긴다.
자신이 한 일일지라도 모든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 시키는 사람들이다.
결코 이런 자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자들이다.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허물만 탓하는 자들로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며 상대의 눈에 티를 빼겠다고 하는 자들이다.
창3:12 그 남자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도록 주신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기에, 내가 먹었나이다." 하더라.
아담은 이브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자 이브는 뱀을 탓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창3:13 주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행한 이 일이 어찌된 것이냐?" 하시니 그 여자가 말하기를 "그 뱀이 나를 속여, 내가 먹었나이다." 하더라.
자신이 분명 동의하고 행하였으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남을 탓하고 잘못을 전가 시키려고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곤경에 처하고 손해를 볼지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조차도 갖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시련이 오면 온갖 핑계를 앞세워서 도망가는 사람들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
둘째 마음속으로 갈등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도망가는 사람들보다는 조금은 양심적인 사람들로 대부분 종교인들이다.
어려운 상황을 함께 하자니 불 보듯 어려움을 당할 것이 뻔하고 도망가자니 그래도 무엇인가 비굴한 것 같아서 눈치를 보는 부류다.
참으로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동안 자신의 이미지나, 쌓아놓은 신뢰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약간의 위험과 손해는 감수하더라도 적당히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자들을 의리가 있다고 말하거나 믿음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원해서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육신적인 어떠한 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갈등을 느끼는 것은 삶에 우선순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 없이 갈등과 방황을 하면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다.
갈등하는 이유는
1.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록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양심이 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양심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그 양심이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분명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종교적인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게 죄악으로 가득 찬 모습들이 보여 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윤리 도덕을 외치면서 정화시키려고 하지만 결국 세상은 죄로 가득하게 될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딛1:15 정결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정결하나 더럽혀진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정결한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다 더럽혀져 있느니라.
이미 타락한 성품을 가진 종교인에게서는 그 어떤 기대도 할 것이 없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선한 양심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딤전4:2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으로 마비되어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죄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 오히려 공격한다.
온갖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마저 속이는 자들로 인해 세상은 온통 거짓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갈등하는 이유는
2.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의 요구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한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위해 편법을 쓰거나 타협을 시도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특히 자신들의 세력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 드리고 자신들이 내세웠던 교리도 적당히 바꾸기도 한다.
롬16:18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먹고 살기 위해 종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장사를 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자신의 더러움을 감추기 위해 종교를 갖기도 한다.
유1:16 이들은 원망하는 자들이요, 불평하는 자들이요, 그들의 정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또 그들의 입으로는 과장하는 말을 하고 유익을 위해 아첨하는 자들이라.
겉으로는 정직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 마음은 악으로 가득하며 온갖 술수를 일삼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시련이 다가오면 많은 갈등을 가지게 된다.
우선순위도 없고 확신과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갈등하는 이유는
3. 위선자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다.
겉으로는 착하고, 친절하지만 속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하다.
분명 손해를 보거나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하여 불편하고 싫어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시대나 이러한 자들은 있었고 앞으로도 더욱 많아 질 것이다.
눅11:44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들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는 보이지 않는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고 다니는 사람들이 무덤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니라.
위선자들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경도 변개 시킬 수 있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대단히 종교적이고 믿음을 가진 자들처럼 흉내 낸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위선자일 뿐이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다.
어려움이 닥칠 때
셋째 스스로 극복하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처럼 도망가거나 종교인들과 같이 갈등하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고난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견디어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이라면 반드시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오실 때까지 영적전쟁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과 함께 해야 한다.
주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한다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이며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은 영적성장과 그리스도의 군사를 양성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따라서 시련이 크면 클수록 더욱 강하고 담대한 일꾼으로 빚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극복하는 이유는
1. 반드시 시련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련이 닥치면 오히려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므로 시련을 이겨내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시련은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시련을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야 한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 도 있다.
행20:19 나에게 가해진 유대인들의 계략으로 인하여 온갖 마음의 겸손과 많은 눈물과 시련으로 주를 섬겼노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다만 내용과 방법과 과정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어떤 시련이 언제 찾아오던 반드시 시련은 이겨내야 한다.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더욱 다가갈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스스로 극복하는 이유는
2.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나 어려움에 대한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반드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 한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해결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기도를 통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성도들을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깨어 있으라.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무엇 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필요를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고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항상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인하여 올바르게 대처하고 처신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스스로 극복하는 이유는
3.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련이 닥칠 때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시련을 극복해 내느냐는 것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온갖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 할 때도 그리스도인들은 참고 인내하며 주님께 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큰 변화를 가져 온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써 단련될지라도 없어져 버리는 금보다 훨씬 더 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자신의 시련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실한 간증의 삶을 살 때만 가능하다.
시련이 없다면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전쟁이 있어야 영웅이 나온다.
시련이 오면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련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