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나의 시(詩)
탄도 계산을 하기 위하여 1945년에 에니악(ENIAC)이 나왔는 데 그것이 컴퓨터의 시작이라고 하니 컴퓨터는 나보다 몇 년 뒤에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이제 인공지능(AI) 등으로 발전해 가면서 나보다 앞서가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공대에 위탁교육을 받으면서 1972년에 ‘Fortran IV’라는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였고 그때 사용 된 컴퓨터는 교육용으로 도입된 ‘IBM 1130’이었는데 프로그램을 코딩 용지에 적어 내면 전산실 직원이 카드에 펀치하여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어렵게 접수시켜 시행한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기면 밤 늦게까지 새로 프로그램을 짜기도 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거처하던 육사 독신장교숙소(BOQ)가 지금의 청헌당 옆에 있어서 청헌당에 참새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도 이런날에는 오히려 아득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때 지은 시(詩)가 ‘아침 햇살’이다.
아침 햇살
청헌당(淸憲堂)*
새소리 고요한 아침
큰 미소
자비의 나래를 펴어
끝없는 메아리
창공에 가득한 제
한 소리
고요를 깨다
*청헌당: 조선말의 최고군사기관으로 대궐의 수비, 도성의 순찰 등을 총괄하던 삼군부(청헌당,총무당,덕의당)중 하나이다. 1967년 정부중앙청사를 지으면서 그 자리에 있던 것을 육군사관학교 내로 옮겼다.
그 후에 몇 년이 지나 개인용컴퓨터(PC)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바쁜 직장에 근무할 때였다. 금성사, 삼성전자, 한국상역컴퓨터주식회사 등에서 퍼스널컴퓨터를 만들었는데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했다. 이어서 삼보컴퓨터에서 워드프로세서 ‘보석글’을 개발하였고, 내가 사용한 것은 텔레비디오사의 PC에 탑재된 ‘한글텔레워드’와 ‘한글DBMS(Dbase II)’였다.
그때까지 컴퓨터는 영문으로만 사용되었는데 한글로 입출력이 가능해지니 반갑기는 한데 어디에 쓰는게 좋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시(詩)를 써서 입력해두고 읽는 것이었다. 그러면 서먹서먹하고 딱딱하기만 한 기계지만 좀 친밀하고 가깝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처음 입력한 시가 ‘아침 햇살’이었다.
그런 후로 시상이 떠오를 때 마다 컴퓨터에 시를 입력해 왔다. 이어지는 행사로 바쁜 가운데에도 컴퓨터가 더 많은 시로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고 멋대로 쓴 글이지만 마구 올렸다. 나 혼자 올리고 보니 남의 눈치 볼 일도 없고 겁낼 일도 없었다. 폴더의 이름은 그래서 ‘나 혼자 보는 시’였다. 1985년 8월에 무주구천동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준비를 하면서 덕유산에 오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덕유산을 내려오며
정상이 가까우면
어느 사이
나무가 귀티를 풍긴다
오랜 세월을
오른
구상나무
나무들은 하나 둘
상봉까지 올라와
무리가 되었다
붉은 감색 꽃
보라색 초롱꽃
흰 꽃 향기
이끼 낀 바위에
천 년의 시간이 서리고
선한 마음 이마 위에
김이 오른다
향적봉 구름 속
눈길마다
인사가 정다운데
상봉산장 시원한 약수에
몸이 가벼워
바위 딛고 고목 뿌리 딛고
꿈속을 날듯
산을 내려온다
등에 흰 점 박힌 검정 새가
기슭에
나무 등걸을 쪼고
백련사 풀벌레소리 벌소리
이속대 물소리 새소리에
매월당(梅月堂)
무염국사(無染國師)
구 천 승려가
해탈문(解脫門) 지나는 것을 몰랐구나
컴퓨터가 날로 발전하고 변모해 가면서 메모리 방식도 많이 발전하고 변모해 왔다. 마그네틱 테이프 메모리 방식은 플로피 디스켓(1.6 Mb), 3.5 인치 디스켓(2 Mb), 등을 거쳐 외장 하드디스크를 사용하게 되면서 메모리 용량은 기가 바이트(Giga byte) 단위에서 테라 바이트(Tera byte) 단위로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컴퓨터는 성능이 날로 발전하고 브라우저가 바뀜에따라 수도 없이 바꾸고 버렸지만 나의 시(詩)들이 지금까지 보전된 것은 외장 메모리가 바뀔 때마다 옮겨서 보관이 가능했던 컴퓨터의 덕분이다.
직장을 퇴직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동네 가까운 곳에서 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 데 강의를 해 주시던 조세용 교수님과 ‘문학예술’ 편집인 이일기 시인님의 심사로 ‘문학예술 2012년 봄호’ 신인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오랫동안 컴퓨터 속에 잠들었던 시들이 처음 비정(批正)과 퇴고(推敲)를 거쳐 빛을 내는 순간이었다. 컴퓨터에 저장했던 시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시인으로 등단을 하게 되었는 데, 30여 년 전에 내가 보낸 따듯한 시선을 받고 컴퓨터가 나에게 보답을 한 것으로 느껴진다. 보관된 자료 중에 10여 편을 제출했는데 당선작으로 뽑힌 시 3편이 위에 소개한 2편과 1990년 12월 러시아와 처음 수교를 맺으며 국빈방문 때 현장의 느낌을 적은 ‘러시아’이다. 그 때는 개방을 시작하는 시기였는 데, 오랜 공산주의 경제의 결과는 극심한 빈곤으로 하루하루의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다.
러 시 아
베리오스카*
숲 속에 비밀은
눈을 덮고
아득한 추억에 잠겨 있는가
음울한 나날
속은 텅 비고
페레스트로이카**
모진 아픔에 신음소리 들린다
얼어붙은 네바강***
정지된 세월
응어리진 사연을 가슴에 안고
그리던 꿈은 산산이 깨어졌구나
베리오스카
눈발 날리는 숲 사이로
안단테 칸타빌레 선율 흐르는 세월 찾아
카츄사는 다시
과거로 돌아 가고만 싶다
*베리오스카: 어린 자작나무
**페레스트로이카: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이 1985년 집권 후 대내적으로 펼친 개혁정책
***네바강: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흐르는 강
지금까지 내 컴퓨터에 시를 써서 ‘나 혼자 보는 시’로 있을 때는 아무 부담이 없었는데 이제 작품을 문학지에 올리고 외부에 발표를 하게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퇴고를 하여 다듬게 된 것이다. 한 번 쓰면 그대로 두던 버릇이 잘못 된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비록 늦깎이 시인이 되었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망원경의 초점을 조정하여 먼 천체의 상을 선명하게 얻듯이 시상을 다듬어 아름다운 시를 탄생시키는 일은 큰 기쁨이다.
첫댓글 컴푸터에 차곡 차곡 저장된 그 시들을,
하나씩, 둘씩 꺼내어 이방을 통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하소서.
늦었지만 시를 다듬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카페가 마련되었으니 작품을 많이 올려서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혼자 보는 시'의 역사를 쓰셨군요
강물처럼 흐르는 '함께 보는 시'의 역사가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전념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엉뚱한 일에 시간을 보내고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함께 보는 시' 한 수 건지면 보람을 느끼지요.
고맙습니다.
서울공대 출신이 시인이 되다니 대단한 문학적 재능이 있소이다. 세편의 시를 보니 앞으로 대성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계속 정진하시오.
공대가 신공덕에 있을 때입니다. 수업에 들어가려는데 정문에서 수위가, "여보시요! 어디가시오?" 해서 "수업에 들어갑니다." 했더니, "당신이 학생이요?" 했습니다. 위탁교육을 마치고 육군본부에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군인 같지 않다고 지적을 받고...이렇게 항상 에뜨랑제로 지낸 일이 다반사였는데, 이제 시작한 글쓰기에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시와 친절한 해설, 반갑고 유익하고 감동적입니다. 이재관
감사합니다. 진작 나가서 인사도 드리고 해야되는데 아직 못 나갔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나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