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Technology의 문화적 의의
▲ 최혜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가장 관계가 멀 것 같은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디지털 매체의 발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문화와 산업계에 화두로 ‘감성’이 등장한 가장 큰 원인으로 정보 통신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인터넷 공동체가 감성의 공동체이며 기술 발달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불확실한 미래를 감각적인 꿈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 문자가 이성적이라면 영상은 감성적, 직관적 감각을 요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이 감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인터넷이 ‘정감적 공동체’라는 사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터넷의 공동체는 현실 세계처럼 학연, 지연, 혈연의 이해 관계에 얽매어 있지 않다. 인터넷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접속하는 사람들은 익명성을 보장받는다. 대전에서 서울에서 혹은 뉴욕에서의 네티즌들이 같은 게시판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으며 아이디(ID)만으로 통하기에 현실의 지위나 나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억눌린 자아는 활개를 치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 상태에서 등장하는 가벼운 농담, 황당함의 방식은 어디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무엇이나 부정할 수 있는 ‘무정형’의 특성 때문에 사이버 공간을 가볍게 흘러다니며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분출하게 된다. 사회학자 마페졸리(Maffesoli)는 현 사회가 사회적으로 선언된 것이 상실된, 즉 거대담론이 상실되는 시대이면서도 어느 순간 명백히 대중적인 결집력을 드러내는데 대해 ‘신부족주의(Neo-Tribalism)’란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부족들은 자신들의 소수 가치에 기초해서 응집하여 집단을 만든다. 예술 축제, 축구장 관중석, 극장 객석 등과 같이 이들은 강한 집합적 정서에 의해 응집했다가 곧 흩어진다. 이들은 고착된 가치관이나 이해관계 없이 구경거리에 순수한 감성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그 힘은 무한하며 매력적인 것이다.
또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근대의 문자체계보다는 멀티미디어로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소통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감성적 속성은 증가한다. 본능적, 즉각적, 감성적인 부분과 연결된 우뇌의 인식이 시각과 관련된다면, 좌뇌는 문자해독과 관련된다. 결과적으로 영상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우뇌의 해석 작용에 무게중심이 가해지는 쪽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상성이 증대될수록 현대인들은 영상의 세계의 감각적 속성, 놀이적 속성을 공간에 적용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이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근대인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가상놀이인간(Homo Virtuens Ludens)으로 새로운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상 시대에 사람들은 인간 사이의 소통보다 TV, 비디오, 컴퓨터 등 각종 디지털 영상 매체와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 병적이 된 사람을 우리는 ‘오타쿠’라고 한다. 오타쿠들은 가상의 세계에 자신을 가두고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에 심취하여 산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관련되는 것을 모두 모으며 그 스타의 복장으로 축제를 열기도 한다. 물론 입시제도, 극심한 경쟁도 원인이 있겠으나 젊은이들의 중독 현상은 일종의 멀티미디어 중독 때문이다. 이들은 코스프레, 펜진 행사 등 가상 세계의 사고방식으로 현실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현대인들 모두가 조금씩 오타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영상매체, 특히 디지털 매체는 그 상호작용성, 시청각성 때문에 대단한 몰입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이 몰입의 정신 상태는 현실 세계에까지 유지된다. 그 전형적인 예가 오락의 요소(entertainment factor)이다. 최근 산업계에 엔터테인먼트가 중요한 견인차로 자리잡고 있다. 거대한 쇼핑몰과 은행, 놀이 공원이 한 도시를 이루어 구매 행위가 오락 행위로 되는 양상이 그것이다. 또 최근 소비자들은 상품을 사기보다 자신의 꿈과 감성을 만족시키는 것을 구매하려 한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상품의 사용가치나 교환 가치가 아니라 그 상품에 스며 있는 이야기다.
이제 사람들은 놀이 공간으로 변해버린 메가플렉스를 거닐며 그 공간 속의 캐릭터로, 플롯으로 각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구매하고 있다. 이처럼 현실 전체가 놀이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 까닭은 영상의 폭격으로 몰입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정도에 몰입했던 근대인들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할 수 있었으나 영상의 폭격에 세뇌된 가상 인간들은 놀이의 세계를 현실에 적용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만나고 체험하고 사용하는 물건들, 공간, 사람들을 가상에서 겪은 이야기로 꾸미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관계 등에 있어 이익보다는 재미와 감성의 만족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21세기는 근대 이후 강력하게 형성되어 온 예술의 순수성이 모호해지고 상품과 예술의 경계가 해체되는 시기이다. 자본주의가 의식 산업에까지 침투하여 정보가 이윤을 낳는 상품이 되었다. 이에 따라 상품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보다 기호가치가 강조되면서 상품의 미학적 가치가 중요시되기 시작한다. 즉 상품의 품질이 좋거나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합리적 목적을 넘어 상품의 사용이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게 되었다. 이 방식은 예술작품이 감상자를 감동시키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때 디지털 기술 등 정보통신의 발달 때문에 이런 경향이 가속화한다. 정보가 일종의 씨앗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디지털 매체에서 원본과 복사본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종래 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기 때문에 그 아우라(Aura)가 빛났던 예술의 개념이 약화된다. 여기에 양방향성의 특성 때문에 작가와 그것을 감상하는 수용자의 이분법이 모호해지면서 천재로서 예술가 개념이 약화되고 프로슈머로서 생산 및 소비자 개념이 등장한다. 즉 예술작품과 상품을 구분했던 일회성/대량 생산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CT(Culture Technology)의 등장은 바로 이 시대적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다. 예술과 상품, 기술이 서로 밀접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융합되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정보가 중요해졌고 이 중 기술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IT가 인지적 정보라 한다면 CT는 심미적 정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CT기술이란 문화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기술로서, 최근의 문화콘텐츠 산업의 급속한 성장은 컴퓨터 및 디지털 정보처리 기술의 응용을 통해 가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CT 기술은 문화예술 및 문화예술적 속성을 지닌 상품, 나아가 현대 사회의 삶을 진보시키고 변화시키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