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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세 차례 찾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말하라고 한다면 유대 광야를 꼽고 싶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광야가 주는 아련함 때문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냥 광야를 물끄러미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한 없이 바라보고 있을 듯 싶습니다.
우리 일행은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기념 교회를 떠나 예루살렘을 거쳐 유대 광야로 나갔습니다.
유대 광야로 나간다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입니다.
차가 유대 광야를 향하여 가는데,
행선지가 어디인가?
굳이 행선지를 말하라면 여리고라고 해야 하겠지만,
저는 유대 광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정표는 여리고를 가리키는군요.
[사진: 차 안에서 본 이정표]
차가 예루살렘을 벗어나 유대 광야 지경으로 접어듭니다.
유대 광야로 접어들면서 눈은 더욱 빛이 나는 듯 합니다.
눈에 더 힘이 들어가는 듯 합니다.
차창 밖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유대 광야는 그런 곳입니다.
흔들리는 차 안이지만, 눈에 띠는 광경들을 담기 위해 들고 간 카메라 셔터를 연방 눌러댔습니다.
베두인들의 거주지를 지나치기도 하고,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을 보기도 합니다.
[사진: 흔들리는 차 안에서 찍어 본 양들의 모습]
[사진: 베두인 거주지. 베두인들의 거주지를 여러 곳 지나갔지만,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건지지 못했습니다. 부득이 2011년에 찍은 사진을 올려봅니다.]
차가 어느 만큼 달리다가 차도를 벗어나 왼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광야 한 곳으로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광야를 조망하기 위해 주로 가는 곳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와디 켈트의 남쪽 능선 전망대입니다.
이곳에 가면 광야를 조망할 수 있고,
고대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길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나도 모르게 전망대 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게 됩니다.
일초라도 빨리 유대 광야를 눈에 담고 싶기 때문입니다.
능선을 넘어서자 눈 앞에 펼쳐지는 유대 광야.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유대 광야의 모습이 오늘도 어김없이 눈 앞에 전개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오늘 시계가 썩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맑은 날이면 훨씬 더 깨끗하게 먼 곳 까지 볼 수 있을텐데요...
[사진: 와디 켈트 전망대에서 본 유대 광야]
그런데 이번 유대 광야를 찾으면서 정말 귀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사진을 비교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진: 1994말-1995초 성지를 처음 찾았을 때 찍은 유대광야입니다. 이 때는 1월 초였습니다. 우기였지만 광야는 아직 황량해 보일 때였습니다.]
[사진: 2011년 8월 유대 광야를 찾았을 때입니다. 건기의 한창 때라서 그렇겠지만, 보는 곳이 다 누런 황야입니다. 정말 황량해 보이지요?]
이번에 찍은 사진과 뭔가 다른 점이 눈에 보이시는지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찍은 유대 광야는 꽃과 풀이 피어있는 유대 광야입니다.
시계가 맑지 못해 잘 보이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본 유대 광야는 황량하기만 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 널리듯이 피어 있는 꽃이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솔자도 이 꽃을 보고 몹시 놀라더군요.
이스라엘에 수년간 살았고, 광야를 셀 수 없이 찾았지만, 이런 광경은 자주 보지 못한 광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하늘의 천사들이 꽃 바구니를 들고 단체로 내려와 황량한 광야에 꽃을 뿌려 놓은 것 같습니다.
2-3월은 우기의 막바지입니다.
늦은 비가 내리는 시기이지요.
이때 광야에는 파릇파릇한 풀과 꽃들이 올라옵니다.
누렇기만 하던 광야가 파란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본 광경은 정말 눈이 황홀할 정도였습니다.
사진들을 좀 더 보겠습니다.
[사진: 풀과 꽃으로 덮여 있는 광야의 모습]
[사진: 같은 장소를 다시 한 번 비교해 봅니다. 아래 두 장의 사진 중, 위 사진은 2013년 2월, 아래 사진은 2011년 8월. 약간 차이는 있지만, 같은 지점, 같은 방향, 같은 길을 찍은 사진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유대 광야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이런 귀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참 즐거웠습니다.
풀과 꽃이 이렇게 만발한 사진을 꼭 찍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자체는 결코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유대 광야의 이런 모습들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진을 구하려면 인터넷을 통해 구할 수 있겠지만, 직접 제 눈으로 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얼마나 즐거웠던지요...
그런데, 이렇게 광야를 뒤덮다 싶이 피어 있는 풀과 꽃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동풍이 불어오면 순식간에 말라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참 경이로운 자연 현상입니다.
하나님은 유대 광야의 이런 풀과 꿏의 모습을 통해 이사야 선지자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겠지요.
[사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베드로 사도도 그런 관점에서 오직 복음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쳤을 것이구요.
[벧전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아, 유대 광야에 취해, 흥분해서 유대 광야가 대략 어디쯤인지 말씀을 안 드렸군요.
유대 광야는, 쉽게 생각하면 동서로는 요단강과 유대 중앙 산간 지역의 동쪽 경사면 사이라고 하면 될까요?
동서의 넓이는 자료를 보니 약 24킬로 정도 된다고 하는군요.
남북으로는 북쪽 와디 우자에서 시작하여 남쪽 네게브의 아라드까지 이르는 약 100킬로 구간입니다.
유대 광야에서 벌어진 성경의 사건들을 얼른 생각해 보면,
그래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일입니다.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곳이 유대 광야 어디쯤일까요?
이 넓은 유대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곳을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쉽지는 않겠지요.
다만 전승에 의하면,
여리고의 시험산 수도원에 있는 동굴이 예수님께서 사십 일간 금식하신 곳이고, 마귀의 시험을 받은 곳이라고 하는군요.
물론 전승이니 참고하고 들어야겠습니다만...
[사진: 시험산 수도원. 절벽 중턱의 수도원 건물이 보이시는지요? 너무 멀리서 찍혀서 잘 안 보이는군요. 도보로도 올라갈 수 있지만, 보통은 케이블카로 올라갑니다. 우리 일행은 올라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사진을 좀 더 잘 찍었더라면 좋았을텐데요...
가지고 간 렌즈의 능력이 여기까지였습니다.
2011년에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참고할 만한 사진이 서너 장 있겠군요.
[사진: 아래 사진들은 조금 방향이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볼 만한 사진 몇 장을 더 첨부해봅니다.
[사진: 조금 가까이 다가가 찍은 사진입니다. 물론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사진: 오를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합니다. 세 대가 나란히 가는 것이 이채롭군요.]
[사진: 수도원 좌측에는 동굴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수도사들이 수도한다는 군요.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동굴은 수도원 안 쪽에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 못해서 어떤 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진: 동굴쪽에서 바라본 수도원입니다. 아랫쪽으로 요단협곡평야와 여리고 지역이 보이는군요.]
유대 광야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얼른 생각나는 일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주로 다니던 지역이 바로 이 유대 광야라는 것입니다.
[삼상23: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십 광야는 유대 광야의 한 부분을 이르는 명칭입니다.
사울을 피해 다니던 다윗의 이동 경로를 보면, 주로 유대 광야와 블레셋 사이를 왕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이동 이야기는 이야기하자면 분량이 너무 많아 다 다룰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목동 시절부터 유대 광야는 다윗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들레헴의 서부 지역은 유다 산간 지역입니다.
여기서 서쪽 낮은 지역으로 더 내려가면 쉐펠라가 나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에 살 던 중, 쉐펠라의 엘라 골짜기로 아버지 심부름을 갔다가 골리앗을 벤 것은 이미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동쪽은 조금만 나가면 곧 유대 광야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참고로 사진 몇 장 올려봅니다.
헤로디움이라는 곳에 올라 조망한 베들레헴 주변의 사진입니다.
이번에는 헤로디움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2011년에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사진: 헤로디움이라는 곳을 향해 가면서 차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헤로디움은 높은 봉우리 위에 헤롯이 요새를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베들레헴에 있습니다. 이 봉우리는 자연적인 산이 아니라 헤롯이 인공적으로 만든 봉우리입니다.]
[사진: 헤로디움을 올려다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헤로디움에 올라 베들레헴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베들레헴 시가 보입니다.]
[사진: 헤로디움에서 좌측, 그러니까 서쪽 방향을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유대 중앙 산간 지역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산간 지역 지평선을 넘어 계속 내려가면 쉐펠라가 나옵니다.]
[사진: 헤로디움에서 동쪽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가까운 곳은 베들레헴 들입니다. 그 너머는 유대 광야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동쪽에서 약간 남쪽, 그러니까 헤로디움의 동남쪽을 찍은 사진입니다. 역시 가까운 곳은 베들레헴 들이고, 그 들을 넘어서면 유대 광야가 시작이 됩니다. 멀리 유대 광야가 보이시는지요?]
양치기 목동으로 일했던 다윗은 아마 베들레헴 동서면의 산간지역과 광야를 모두 오가면서 양을 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군요.
물론 이는 순전히 저의 추정입니다.
이 추측이 맞다면, 광야는 그만큼 다윗에게 익숙한 곳이었겠지요.
다윗은 이 광야에서 양을 돌보다가 때로는 맹수를 만나기도 했고,
이 광야에서 사울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도피생활을 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광야의 삭막한 자연 환경 이외에도 수 많은 죽음의 위협을 겪으며 다윗은 험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다윗의 입에서 나온 노래 중에 가장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는 시편 23편이지요.
[시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시편에서 다윗이 노래하는 푸른 풀밭, 쉴 만한 물 가는 어디일까요?
물론 유대 광야에도 풀밭이 있고,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대 광야는 틀림없이 자연적으로 척박한 곳입니다.
지형이 험악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말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골짜기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 골짜기들은 여기 저기 함정들이 있고, 맹수들의 굴이 있습니다.
이런 곳이 다윗에게는 푸른 풀밭, 쉴 만한 물 가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안위하기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자연 환경이 좋을 때도 있겠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그곳이 바로 푸른 풀밭이요, 쉴 만한 물 가라는 다윗의 고백은 사도 바울의 고백과도 맥이 통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유대 광야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와디 켈트의 남쪽 능선을 보고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의 이야기입니다.
[눅10:30-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이야기는 한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시기 위해 비유로 하신 이야기이지만, 예수님 당시에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실적인 일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당시 이 사건이 일어났음직한 길을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위에서 사용했던 사진과 같은 사진도 있습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사용합니다.
사진의 이 길은 실제로 고대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갈 때 사용되었던 길이라고 합니다.
와디 켈트의 전망대에서 동쪽, 그러니까 예루살렘쪽(서쪽)에서 여리고 방향(동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진: 위 설명 참조하세요]
[사진: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이런 낭떠러지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속에서 강도 만난 사람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을지는 이 사진이 잘 말해줍니다.
황량한 광야, 인적 없는 광야 한 가운데, 잘 못 하면 떨어질 절벽.
그나마 지금은 풀과 꽃이라도 있습니다만, 황량한 건기를 생각한다면 더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광야에 피 흘리며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한 사람.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사람을 제사장도, 레위인도 지나쳐갑니다.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은 곳입니다.
쓰러져 있는 사람이 충분히 기대할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냥 지나갑니다.
의식을 잃고 있었다면 몰라도, 쓰러진 사람이 의식이 있었다면 그 배신감에 치를 떨었겠지요?
그런데 뜻 밖의 돕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지나가던 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도운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그를 위해 응급조치를 할 뿐 아니라,
한 여인숙에 그를 데려다 주고 치료비 전액을 부담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왜 그를 도와주었을까요?
그게 바로 이웃이라는 예수님의 설명이었지요.
그리고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까요?
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스쳐 지나갔을까요?
바빠서일까요?
원래 인정이 없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런 이유들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능한 추정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간 이유는 유대인들의 정결법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듯 합니다.
피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사람, 그가 혹시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라면? 또는 아직은 안 죽었지만 혹시 그를 돕다가 그가 죽는다면? 시체는 부정한 것이고 이를 접촉한 사람도 부정한 것이니, 제사장과 레위인은 부정해지는 것이지요.
그들은 부정해질 것을 염려하여 그냥 지나갔다고 보는 것이 문맥에 맞는 해석이라고 보여집니다.
안식일 법과 함께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정결법.
그 정결법이 죽어가는 사람을 버리게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사마리아인은 왜 도와주었을까요?
왜 도와주었느냐보다 어떤 부담을 감수하고 도와주었느냐를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는 상종하지 않는 인종입니다.
쓰러져 피흘리는 사람은 유대인일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죽으면 죽었지 부정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아 그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그가 깨어났을 때, 자기를 도운 사람이 사마리아인인 것을 안다면 어떨까요? 고마워할까요?
아마 고마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분노할지도 모르지요.
부정한 인간과 접촉했으니까요.
사마리아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소리는 커녕 저주를 받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를 도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본질적으로 같은 일 아닌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는 제자의 길이 이것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바로 이 사마리아인과 같은 일을 행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감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 마땅히 그 일을 하는 사람.
그가 바로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유대 광야 이야기 쓰다 보니 몹시 길어 졌습니다.
그래도 한 마디 더 첨부해야겠습니다.
학자들에 의해서 사마리아인이 들렸음직한 여인숙을 찾는 작업도 진행된 바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예루살렘과 여리고의 중간 지점 쯤 되는 곳에 여인숙 용도의 막사가 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이에는 여인숙이 없었다고 합니다.
만약, 여인숙이 없었다고 한다면(사실 이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 주기 위해 그를 여리고까지 데리고 가서 여인숙에 맡기고 자기 길을 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유대 광야를 걸어본 이들은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냥 한 마디 첨언 해 보았습니다.
열공하는 사진, 기념 사진 몇 장 더 올리고 유대 광야 이야기 마칩니다.
다음은 여리고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2013. 3. 28,
여러분의 목사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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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유대광야 언덕에 다시 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저는 세 곳을 꼽으라면 유대광야, 갈멜산맥, 골란고원입니다~~~~^^
성지는 늘 마음 속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는 땅입니다. 전문적으로 성지를 연구하는 학자,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평생 성지를 70여회 답사했다는 분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간과 경제 능력만 된다면 휴가 때마다 성지를 다녀 볼 수 있다면, 아마 가장 풍성한 영적 휴식기가 될 듯 합니다. ^^
아~~~! 유대광야, 전문가의 사진과 해설을 봐도 여전히 극적이며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산수려님 저도 유대광야 사진을 보니 가슴이 떨립니다. 다시 서보고 싶은 마음 간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