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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설악산 천화대 릿지 일자 : 2009. 8.17 참석자 : 23정하선, 27송기훈, 28정기섭, 29조성대, 34이용재, 35이훈상, 39손광윤, 51이헌석 (이상8명)
언제나 마음은 청춘 집합 장소인 성내 역에 모두가 모인 시간은 아침 7시 10분. 날씨가 흐릿한 것이 오늘 산행에 땡볕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다행이다. 다만 오후에 비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의 산행대장인 이 훈상 대장의 배낭 점검이 있었다. 공지사항에 이번 산행은 배낭무게와의 전쟁이라고 미리 알려준 대로 이런저런 불급한 물품들은 넣지 않았건만 커다란 코펠을 지적 받았다. 코펠 세트 중 안쪽의 제일 작은 것 하나만 넣기로 하고 매트리스와 여벌 옷 등도 빼기로 했다. 배급 받은 개인 식량을 추가로 넣고 배낭 꾸리기는 완료. 모두가 60에서 70리터 싸이즈의 커다란 배낭을 메고 보니 히말라야 원정이라도 떠나는 듯 그럴싸해 보인다. 7시 30분, 훈상의 9인승 트라제에 6명이 타기로 하고 광윤이의 애마 마티즈에 2명이 분승하여 출발한다.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여 설악동에 도착하니 10시 30분, 휴가철이 끝나서인지 길이 막히지도 않았지만 미시령 터널도 뚫리고 도로도 많이 정비한 덕에 이동시간이 많이도 줄여졌다. 설악산 산악구조대원이 운영하는 식당 ‘설악촌’에서 시원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들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간간이 비가 올 것이란 날씨정보가 틀리기를 바라면서 경쾌한 발걸음을 옮겨본다. 신흥사 처마끝도 구경하지 않음에도 1인당 거금 2500원씩을 문화재관람료란 명목으로 강제징수하는 것에 투덜거리며 비선대에 도착했다. 천불동과 금강굴로 갈라지는 길목에 있는 입산통제소에 미리 받아둔 입산 신고서를 제출하고 설악골 초입으로 들어섰다. 입산이 철저히 통제된 깊은 골에서 물소리도 시원하게 콸콸 흐르는 일급 청정수를 미리 준비한 1.5리터 PET병에 제각기 가득 채웠다. 1인당 예상 소비량은 4리터씩이다. 여기서 모두가 헬멧과 하네스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등반을 준비했다.
희망이 절벽으로 다가서다 하늘의 화원 같다 하여 이름 붙인 천화대(天花臺)는 시작부터가 가파른 잡목길이다. 가뜩이나 거대한 70리터 배낭의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 4리터의 물까지 얹어 넣으니 급경사 길에 몸이 자꾸 뒤로 넘어지려고만 한다. 비가 오려는 듯 사위는 짙은 안개가 짙게 퍼지기 시작한다. 심마니나 겨우 찾을 정도의 희미한 길을 더듬다시피 30여분을 기어올라가니 드디어 암릉의 시작점을 만난다. 저절로 으악 소리가 나온다. 그 동안 개념도를 충분히 보기는 하였지만 릿지길이라고 하니 대충 원효릿지나 만경대 릿지정도의 그림을 머리 속에 입력시켜 놓았는데, 웬걸 우이암 첫피치를 닮은 십 수 미터의 직상 침니 혼합 오픈크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덤비려면 덤벼보란 듯 천하장사 씨름꾼처럼 우뚝 버티고 서있는 천화대의 첫 피치. 이걸 어떡하나? 우선 무거운 배낭은 별도로 달아 올리기로 하고 맨몸으로 붙기로 했다. 선등하는 광윤이는 가뿐히 오르고 막내 헌석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올랐다. 내 차례, 훌륭한 릿지화로 알고 있었던 S사의 신발은 릿지화가 아니었다. 안개비로 촉촉하게 젖은 바위에 발을 갖다 대기가 무섭게 마치 신발창에 콩기름 발라 놓은 듯 미끄러지는 게 아닌가. 온몸을 사용하여 천신만고 끝에 겨우 첫 피치를 마쳤으나 너무 많은 에너지를 첫 피치에서 소진을 하여버렸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앞 길이 막막하다.
두레박 나의 등반 속도가 계속 쳐지다 보니 자연히 두 파트로 등반조가 나뉘어졌다. 나의 등반속도에 맞추다 보면 전체 일정에 큰 차질이 올 터, 훈상이를 선등자로 하여 환갑을 훌쩍 넘긴 노장대표 하선형, 오랜 바위 경력의 기섭이 그리고 어떨 결에 선두조에 따라 붙은 막내 헌석이 이렇게 네 명이 선두조로 되어 앞으로 치고 나간다. 힘 빠진 나를 끌어 올리기 위해 힘 좋은 광윤이가 뒷조의 선등자로 남고 나를 위해 기도 해줄 이 목사 그리고 싹쓸이 전문 성대가 남아 주었다. 안개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폭포처럼 흐르는 땀과 함께 온 몸은 푹 절어 있다. 이어지는 칼날의 바위 능선. 신발에 믿음이 없으니 딛는 걸음마다 조심스럽기만 하고 잔뜩 힘을 주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달리는 체력에 소비되는 에너지가 평소의 10배는 되는 것 같으니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렀다. 10여 분을 걸어가 만나는 두 번째 피치는 세 개의 슬링을 사다리 삼아 올라야 하는 10여 m의 직벽과 슬랩으로 되어있다. “형, 배낭 메고 가시죠?” 용재가 슬며시 말을 건넨다. 이런, 누구 죽일 일 있나? 홀몸이라도 올라갈 수만 있다면 다행일터인데. “난 몰러~ 버리던지, 달아 올리던지 맘대로 혀라~~~” 성대와 용재가 기가 막힌 듯 나를 쳐다본다.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무슨 염치며 체면이란 말인가. 탈진하기도 했지만 미끄러운 신발 때문에 거의 두레박 수준으로 오른다. 황소보다 더 힘이 좋은 광윤이가 없었다면 그대로 조난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젖 먹던 힘으로 능선 암릉길의 양쪽으로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절벽이다. 짙은 물안개 사이로 적벽이 까마득히 아래로 보이고 좌측으로는 잦은바위골의 깊은 계곡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안자일렌으로 서로를 묶고 걷는다. 자칫 한 사람이라도 발을 헛딛으면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래도 나를 믿고 한 줄로 연결해 준 후배들이 고맙고 또 미안하기만 하다. 급경사 암릉을 젖 먹던 힘을 짜내 오른다. 암릉의 끝부분에 다다라 10여 미터를 하강하였다. 선두조를 확인해보니 벌써 두 번째 하강을 하였단다. 어림잡아 1시간 반 정도를 앞서가 있다. 아마도 따라잡기는 틀린 것 같다. 돌무더기가 널브러진 가파른 길과 날카로운 암릉길의 연속이다. 릿지는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하며 이어진다. 몸은 이미 대뇌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이고 왼쪽 도가니에서는 스멀스멀 반란의 조짐이 보인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바위는 말랐지만 신발은 아직도 미끄럼을 타고 있다. 신뢰가 가지 않는 신발은 더 이상 등산화가 아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자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능선의 바위 모양새가 모두가 시퍼런 칼날이다. 안자일렌을 했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겨우 한 시간 전진을 했는데 이미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안개는 걷혔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따가운 햇살만은 피할 수가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나 때문에 일행의 등반 속도가 또 다시 늦춰진다. 이제는 등산화만을 더 이상 탓할 수만은 없고 저절로 열여덟 소리가 입에서 튀어 나온다. 힘이 너무 들어 한 피치가 끝날 때마다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천신만고 끝에 30미터 하강을 해야 하는 날카로운 암릉의 끝에 도달했다. 멀리 왕관봉과 범봉이 보인다. 선두조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K~~Rock~!!”을 힘차게 외쳐 본다. 아, 들린다. 멀리서 힘찬 “K~Rock~!”의 화답이 온다. 우리는 조심스레 전방을 살펴 보았다. 저 멀리 암릉에 선두조가 꼬물꼬물 보인다. 너무도 반갑다. 오래 전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는 기쁨이 바로 이것일까. 직선거리로는 수백 미터 밖에 되지 않겠지만 선두조와의 사이에는 두 개의 거대한 봉우리가 막아서 있고 시간상으로는 세 시간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즉시 작전회의를 가졌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진을 할 것이냐 아니면 용감한 후퇴를 할 것이냐. 코 앞의 하강 지점에서 하강 후 바로 탈출을 하지 않으면 다음 탈출로까지는 서너 시간은 더 전진을 해야 한다. 나는 슬며시 내 주장을 감추고 후배들의 눈치만 본다. “이제 범봉을 봤으니 됐슴다. 탈출 하기로 하죠?” 언제나 약한자의 편인 목사님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모두가 대찬성. 역시 후미조의 단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선두조에 탈출을 통보하고 즉시 바위 슬링에 줄을 걸어 30미터를 경쾌하게도 하강한다. “52번 올빼미, 하강 끄읕~~!!”
무사생환 탈출로는 예상외로 험하기만 하다. 뚜렷한 길도 없지만 물길 따라 내려오는 길은 온통 돌 덩어리 투성이다. 경사가 매우 가팔라서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십 수 미터는 그냥 굴러 떨어질 판이라 모두가 안자일렌을 하고 탈출을 한다. 비 오듯 땀이 흘러도 도가니에 통증이 심해도 곧 알탕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은 마냥 좋다. 그렇게 한 시간을 조금 넘게 내려 오니 어느덧 설악골의 시원한 물줄기를 만났다. 땀에 젖은 옷들을 훌훌 벗고는 시원한 탁족을 시작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원시의 설악골,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대연주 같은 폭포들의 합창, 그리고 끝없이 투명한 계곡수. 나는 온 몸이 얼어 붙는 것을 즐기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무사 생환을 감사드리며.
** 후기 : 선두조는 희야봉을 넘어 석주동판길로 하산을 했다. 후미조는 먼저 하산했음을 미안해 하였고 선두조는 후미조를 남겨두고 등반했음을 미안해 하였다.
설악동에서
비선대 직전의 천불동 계곡
비선대 앞 적벽을 뒤로 한 28정기섭
멋진 고별산행 34이용재
설악골 초입 -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한다
등반준비 끝
설악골 따라 스타트 지점으로 이동
첫 피치를 우회하는 35이훈상
금강굴을 저 밑으로
언제 다시 와 볼까? 34이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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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힘은 들었지만 평생에 한두번 오르기 힘든 산행을 하셨으니 큰 보람이심니다..
마음은 언제나 여러 대원들과 함께 등반을 하고 있읍니다. 눈은 기훈이의 등반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머리 속은 옛날 기억 속의 빛바랜 설악골, 잦은바위꼴의 전경이 떠오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설악으로 달려가고 싶읍니다... 수도했다 기훈아!!!!
고생 많았습니다. 도전정신이 아름답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부럽고 샘도 나는군요...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도전한 그 정신, 대단하십니다... 추카추카...
참석해서 울조 하선행님하구 기훈행님하구 설악산에서 김치된장찌개도 먹구,. 짐두 줄여드리구 했어야 하는데,.,. 아쉽네여~ 행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천화대 자체가 공룡이나 용아는 댈 것도 아니라니 힘들기도 하셨겠지만 (우리 회장님의 겸손된 표현으로 알아듣겠습니다) 그야말로 경치 또한 장관이였겠습니다. 그나저나 형이 익일 새벽 01:39분에 베이스 켐프로 " 날카로운 능선위에서 향기로운 더덕향 맡으며 비박중. 현재 노가리 안주 삼아 한창 썰 풀고 있다" 라는 무전 날리시고는 하선형이 짱박아 갖고 가신 550 cc짜리 소주 1병의 헹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시니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
선두조는 주사파 후미조는 비주류...^^
천화대를 모두 끝까지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경동OB산악회 의 모두가 함께한 멋진 산행 이었읍니다.... 기훈회장님 말씀대로 다행히 선두조에 속한 덕분에 하선형님께서 무겁게 지고 오신 600ml를 버너에 끓인 컵라면을 안주로 맛나게 먹었읍니다...헌석후배와~~~쩝 꾸벅~ 하선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