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제45 (열전 제5) 귀산
귀산(貴山)은 사량부(沙梁部) 사람이다. 아버지는 아간(阿干) 무은(武殷)이다. 귀산이 어렸을 적에 같은 부(部)의 사람 추항(項)과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학문이 있고 덕이 높은 사람과 더불어 놀기로 기약하였으니,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수양하지 않으면 아마 치욕을 자초할지 모르겠다. 어찌 어진이에게 나아가서 도를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때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수(隋)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돌아와서 가실사(加悉寺)에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높이 예우하였다. 귀산 등이 그 문에 나아가 옷자락을 걷어 잡고[衣] 말하기를 "저희들 세속 선비는 몽매하여 아는 바가 없사오니 원컨대 한 말씀을 주셔서 종신토록 지킬 교훈을 삼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법사가 말하였다.
"불계(佛戒)에는 보살계(菩薩戒)가 있는데 그 종목이 열 가지이다. 너희들이 남의 신하로서는 아마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있으니, 첫째는 임금 섬기기를 충(忠)으로써 할 것, 둘째는 어버이 섬기기를 효(孝)로써 할 것, 셋째는 친구 사귀기를 신(信)으로써 할 것, 넷째는 전쟁에 다다라서는 물러서지 말 것, 다섯째는 생명 있는 것을 죽이되 가려서 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를 실행함에 소홀히 하지 말라!"
귀산 등이 "다른 것은 이미 말씀하신대로 따르겠습니다만 말씀하신 '살생유택(殺生有擇)'만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법사(師)가 말하였다.
"육재일(六齋日)과 봄 여름철에는 살생치 아니한다는 것이니, 이것은 때를 가리는 것이다. 부리는 가축을 죽여서는 안되니, 말, 소, 닭, 개를 말하며, 작은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니, 이는 고기가 한 점도 되지 못하는 것을 말함이다. 이는 물건을 가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직 꼭 필요한 것만 죽이고 많이 죽이지 말 것이다. 이것은 세속(世俗)의 좋은 계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였다.
귀산 등이 "지금부터 받들어 실천하여 감히 명을 실추시키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진평왕 건복(建福) 19년 임술(진평왕 24년: 602) 8월에 백제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아막성(阿莫城)<막(莫)자는 모(暮)로도 썼다.>을 포위하니, 왕이 장군 파진간 건품(乾品)․무리굴(武梨屈)․이리벌(伊梨伐), 급간 무은(武殷)․비리야(比梨耶)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막게 하였는데, 귀산과 추항도 함께 소감직(少監職)으로 전선에 나갔다. 백제가 패하여 천산(泉山)의 못가로 물러가 군대를 숨겨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군사가 진격하다가 힘이 다하여 이끌고 돌아올 때 무은이 후군이 되어 군대의 맨 뒤에 섰는데, 복병이 갑자기 일어나 갈고리로 [무은을] 잡아당겨 떨어뜨리었다.
귀산이 큰소리로 외치기를 "내가 일찍이 스승에게 들으니, 선비는 전쟁에 다달아 물러서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찌 감히 달아나겠는가!" 하며 적 수십 인을 격살하고, 자기 말로 아버지를 태워 보낸 다음 추항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힘껏 싸우니 모든 군사가 [이것을] 보고 용감히 공격하였다. 적의 넘어진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여 한 필의 말, 한 채의 수레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귀산 등도 온몸에 칼을 맞아 중로(中路)에서 죽었다. 왕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아나(阿那)의 들판에서 맞이하여 시체 앞에 나가 통곡하고 예(禮)로 장례를 치르게 하고, 귀산에게는 관등 나마를, 추항에게는 대사(大舍)를 추증하였다.
貴山 沙梁部人也 父武殷阿干 貴山少與部人項爲友 二人相謂曰 "我等期與士君子遊 而不先正心修身 則恐不免於招辱 聞道於賢者之側乎" 時圓光法師 入隋遊學 還居加悉寺 爲時人所尊禮 貴山等詣門 衣進告曰 "俗士蒙 無所知識 願賜一言 以爲終身之誡" 法師曰 "佛戒有菩薩戒 其別有十 若等爲人臣子 恐不能堪 今有世俗五戒 一曰事君以忠 二曰事親以孝 三曰交友以信 四曰臨戰無退 五曰殺生有擇 若等 行之無忽ꡓ 貴山等曰 "他則旣受命矣 所謂殺生有擇 獨未曉也" 師曰 "六齋日․春夏月不殺 是擇時也 不殺使畜 謂馬牛犬 不殺細物 謂肉不足一 是擇物也 如此 唯其所用 不求多殺 此可謂世俗之善戒也" 貴山等曰 "自今已後 奉以周旋 不敢失墜"
眞平王建福十九年壬戌秋八月 百濟大發兵 來圍阿莫一作暮城 王使將軍波珍干乾品․武梨屈․伊梨伐․級干武殷․比梨耶等 領兵拒之 貴山․項 以少監赴焉 百濟敗退於泉山之澤 伏兵以待之 我軍進擊 力困引還 時武殷爲殿 立於軍尾 伏猝出 鉤而下之 貴山大言曰 "吾嘗聞之師曰 '士當軍無退' 豈敢奔北乎" 擊殺賊數十人 以己馬出父 與項揮戈力鬪 諸軍見之奮擊 橫尸滿野 匹馬隻輪 無反者 貴山等金瘡滿身 半路而卒 王與臣 迎於阿那之野 臨尸痛哭 以禮殯葬 追賜位貴山奈麻 項大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