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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경전 ‘御書’에서 배운다 (47)
우에노전답서(도장난사)
上野殿答書(刀杖難事)
폭풍을 이겨내고!
삼세에 길이 남을 사제공전(師弟共戰)의 명예
은사(恩師)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이 숙연하고도 자랑스럽게 선언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을 처음 만난이래, 스승과도, 부모와도, 주종(主從)과도 같은 끈끈한 사이였습니다. 선생님이 네 번의 난(難)을 겪을 때도 나는 항상 그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는 교장(校長)을 맡았던 니시마치심상소학교(西町尋常小學校)에서 좌천당했을 때(1920년), 두 번째는 그 다음 학교인 미카사(三笠)심상소학교에서 배척의 음모(1922년), 세 번째는 시로가네(白金)심상소학교 교장을 어쩔 수 없이 퇴직한 일(1931년, 폐교가 결정된 소학교에 전근시켜 이듬해 퇴직), 그리고 네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 회장으로서 군부 정권의 탄압을 받아 투옥(1943년), 이 모든 난을 도다 선생님은 불이(不二)의 제자로서 스승의 곁을 지켰습니다. 바로 ‘사제공전’의 대투쟁을 거듭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1950년 11월, 마키구치 선생님의 7회기의 법요(法要)를 치르던 자리에서였습니다. 하시던 사업이 궁지에 몰리는 속에서 학회 이사장 자리를 사임해야 했던 가장 힘든 와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에 열린 학회총회에서 도다 선생님은 노도(怒濤)와 같은 폭풍 속을 뚫고 나가듯이 광선유포는 불의불칙(佛意佛勅)이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설령 어떠한 대난을 당할지라도 한번 제목을 부른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물과 풀뿌리로 연명하고 그 대난(大難) 때문에 죽는 날이 오더라도, 목숨이 있는 한 여러분과 함께 광선유포를 위해 매진하고 싶다. 이것이 나의 유일무상(唯一無上)한 바람입니다.”라고 사자후를 하며 인사를 마치셨습니다.
어디까지나 스승과 함께
온갖 대난은 이미 각오한데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광선유포의 대원(大願)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엄연한 스승의 모습에 나는 용기백배였습니다. 젊은 날의 도다 선생님이 마키구치 선생님과 행동을 같이하며 지켜 드리듯이, 나도 반드시 도다 선생님을 지켜 드리겠다는 결의가 뭉클하게 솟아올랐습니다.
그날 밤의 일기에는 “스승을 따르려는 내 결의는 더욱더 굳어졌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스승과 함께 싸우고, 스승과 함께 대난을 극복하여 광포의 대도(大道)를 나아간다, 이 ‘사제공전’이 바로 니치렌불법(日蓮佛法) 실천의 진수입니다.
‘사제공전’의 길을 걸어가려면 제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스승의 투쟁을 알아야 합니다.
스승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어떻게 싸웠는가.
어떻게 하여 승리했는가.
그 투혼과 행동과 지혜를 자신의 투쟁 속에서 생명에 각인(刻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가 현실적으로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이 달은 니치렌대성인이 청년 난조 도키미쓰(南條時光)에게 자신의 대투쟁의 의의를 가르쳐 주신<우에노 전답서(도장난사)>를 함께 배독하겠습니다.
<본문> (어서 1555쪽 처음~5행)
니치렌·종종(種種)의 대난(大難) 중에는 다쓰노구치(龍口)의 참수(斬首)의 좌(座)와·도조(東條)의 난보다 더함은 없노라.
그 까닭은 제난(諸難) 중에는 목숨을 버릴 만큼의 대난은 없느니라. 혹은 매리(罵詈)당하고, 혹은 사는 곳을 쫓기고, 무실(無實)을 뒤집어쓰고, 혹은 얼굴을 맞는 등은 대수롭지 않다. 그러니 색심(色心)의 이법(二法)으로부터 일어나 비방을 당한 자는 일본국 중에는 니치렌 한 사람이로다.
그러나 있다고 해도 법화경 때문은 아니로다.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일은 쇼우보(少輔房)가 법화경의 제5권을 빼앗아서 니치렌의 얼굴을 때린 것은 삼독(三毒)에서 일어나는 바의 타척(打擲)이니라.
<현대어역>
생각해보면 니치렌이 받은 갖가지 대난 중에서 다쓰노구치의 참수 자리와 도조의 난(고마쓰바라법난)보다 더한 대난은 없다.
그 까닭은 여러 난 중에서도 신명을 버릴 정도의 대난은 없기 때문이다. 혹은 욕설을 듣고, 혹은 거처에서 쫓겨나고, 참언(讒言)을 당하고, 혹은 얼굴을 맞는 일들은 이 두가지 대난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다. 따라서 색법(色法,정신)의 양면에서 비방을 당한 사람은 일본국 중에서는 오직 니치렌 한 사람뿐이다.
설령 난을 당한 사람이 있다 해도 법화경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일은(다쓰노구치법난 때, 마쓰바가야쓰<松葉谷>의 초암<草庵>에서) 쇼우보가 (니치렌 품에 있던) 법화경 제5권을 빼앗아 니치렌의 얼굴을 때린 일이다. 이것은 탐진치(貪瞋癡)의 삼독에서 일어난 타척이다.
더욱더 긴박해지는 아쓰하라(熱原)의 정세
니치렌대성인이 이 어서를 미노부(身延)에서 쓰시어, 스루가(駿河)지방(지금의 시즈오카현 중앙부) 후지군 우에노향(上野郡上野鄕)의 지두(地頭)인 스물한 살의 젊은 난조 도키미쓰에게 보낸 것은 1279년 4월 20일입니다.
이때가 바로 ① 아쓰하라에서 본격적인 법난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스루가지방에서는 당시, 닛코상인(日興上人)을 중심으로 하는 과감한 홍교로 류센사(瀧 泉寺) 등, 지역의 유력한 사원에 있는 승(僧) 외에 아쓰하라의 농민 중에도 법화경 신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후지방면에는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를 지배하는 ② 호조득종가(北条得宗家)의 직할령(直轄領)이
많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대성인을 적대시해 온 세력의 근거지인 그곳에서 묘법유포가 급속도로 진전하는 것은 지배자들에게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1279년 4월에는 센겐대사(淺間大社)에서 신사(神事)가 한창일 때 대성인 문하인 ‘시로오사(四郞男)’(시로의 아들)가 습격을 당하는 상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신앙 때문에 일어난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어서에는 첫머리부터 대성인 자신이 견디신 ‘종종의 대난’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대성인에게 긴박한 상황보고가 도착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그 ‘종종의 대난’ 중에서도 ‘목숨을 버릴 만큼의 대난’으로 든 것이 다음 두 가지 난입니다.
하나는 ‘다쓰노구치의 참수의 자리’. 1271년 9월 12일, 가마쿠라막부의 권력자인 ③ 헤이노 사이몬노조(平左衛門尉)의 군대가 대성인을 체포하여 다쓰노구치에서 참수하려던 법난입니다.
또 하나는 1264년 11월 11일, 아와(安房)지방의 ‘도조의 마쓰바라’에서 지두인 ④ 도조 가게노부(동(東條景信) 일파의 습격을 받아, 제자 한 사람이 죽고, 대성인도 팔이 부러지고 이마에 칼에 상처를 입은 난입니다.(고마쓰바라난)
모두 ‘도(刀)의 난’으로, 신변에서 칼부림 사태의 박해를 당한 도키미쓰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문에 비추어 법화경 행자에게 난이 일어난다는 것은 몇 번이나 배웠습니다. ⑤
도키미쓰 자신도 주변의 압박이나 비판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목숨이 위태로운 사태가 현실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문하들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성인은 자신이 받은 대난의 의미를 적으시고, 제자라면 스승처럼 엄연하게 극복해 나가도록 격려하시고 있습니다.
대성인은 목숨이 위태로운 대난에 비하면 그 외의 난, 악구매리 당하고, 사는 곳을 쫓기고, 참언을 당하고, 얼굴을 맞는 등의 일은 ‘대수롭지 않다.’ 즉 사소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색법(色法)’의 면과 ‘심법(心法)’의 면의 양면에서 박해를 받은 사람은 일본국 중에서 ‘니치렌 한 사람’이라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법화경 때문에 이만큼 대난을 받은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대난 또 대난의 노도를 엄연하게 이겨냈다.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자왕의 투쟁정신을 배독하고, 도키미쓰의 흉중에 용기가 용솟음쳤을 것입니다.
‘역연(逆緣)의 공덕’
대성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로, 다쓰노구치법난 때 무장한 병사들이 대성인을 포박하려고 마쓰바가야쓰(松葉谷)의 초암에 침입했을 때 상황을 듭니다.
이 때, 헤이노사에몬노조의 수하인 ‘쇼우보’라는 남자가 달려들어 대성인이 품속에 넣어두었던 ‘법화경 제5권’을 빼앗아 그것으로 대성인의 얼굴을 세 번이나 때렸습니다.
대성인은 ‘제5권’으로 맞은 것을 법화경 경문에 말하는 ‘장(杖)의 난’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도의 질투하는 ⑥ 여성의 설화를 통해서 ⑦ ‘역연(逆緣)의 공덕(功德)’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화경과 니치렌을 미워”(어서 1556쪽)하였기 때문에 ‘법화경 제5권’으로 대성인을 때린 쇼우보의 경우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 없으나 ‘역연의 공덕’으로 ⑧ 불경보살(不輕菩薩)을 박해한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처럼 최후에는 불과(佛果)를 얻는다고 잘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불경보살을 박해한 증상만의 사람들은 그 방법(謗法)으로 타지옥(墮地獄)의 죄를 끝낸 후, 다시 불경보살을 만나 구제받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삼세(三世)에 변하지 않는 생명의 인과율(因果律)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박해자인 쇼우보도 결국은 다시 대성인을 만나 묘법을 신수(信受)하고 성불할 것이라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이 말은 즉, 대성인이 불경보살처럼 불과를 얻게 됨은 틀림없다는 확신이기도 합니다.
① 아쓰하라에서 본격적인 법난 : 275년 무렵부터 1283년 무렵에 걸쳐서 스루가지방 후지군[지금의 시즈오카현 후지시(富士市)]의 아쓰하라지역에서 니치렌대성인 문하들이 심한 박해를 받은 아쓰하라법난을 말함. 1279년 9월에 농민신도 20명이 부당하게 체포 되었다. 그들은 헤이노 사에몬노조 요리쓰나(平左衛門尉賴綱)의 모진 문초에도 퇴전하지 않고, 진시로신(神四郞) 등 세 명이 참수당하여 순교했다.
② 호조득종가(北条得宗家) : 가마쿠라막부의 집권직(執權職)을 차지한 호조 씨의 가독(家督)을 계승하는 본가(本家)
③ 헤이노 사이몬노조(平左衛門尉) : 가마쿠라 막부의 무장, 이름은 요리쓰나(頼綱), 집권 호조 씨의 내관령(內管領)으로, 호조 도키무네(時宗)·사다토키(貞時)의 2대를 섬긴 가마쿠라막부의 정치상 실력자로 권세를 휘둘렀다. 악승들과 결탁하여 대성인 문하를 박해하는 원흉이 되었다.
④ 도조 가게노부(동(東條景信) 일파의 습격 : 입종선언(立宗宣言) 당초부터 니치렌대성인을 박해한 아와지방(지바현 남부) 나가사군도조향(長狹郡東條鄕)의 지두, 염불 강신자이며 막부요인이었던 호조 시게토키(北條重時)들과 결탁하여 대성인에게 갖가지 박해를 가했다. 고마쓰바라법난 후, 얼마 있다가 죽었다고 한다.
⑤ 1277년 5월에 주신<우에노전답서[범제어게사(梵帝御計事)]>에는, 도키미쓰가 주변에서 법화경을 버리도록 훈계를 받았던 데 대해, 법화경의 실천에는 ‘유다원질 황멸도후(猶多怨嫉 況滅度後)’의 대난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의연한 태도로 임하고 마성(魔性)의 세력에게 지지 않도록 지도하시고 있다.
⑥ 여성의 설화 : 어느 질투심이 많은 여성이 남자를 미워하여 살림살이를 모두 때려 부순 후, 분이 안 풀려 평소 남자가 독송하고 있던 법화경 제5권을 두 발로 짓밟았다. 그 뒤, 수명이 다하여 지옥에 떨어졌지만 양 발만은 지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설화, 니치렌대성인은 “이것은 법화경을 밟은 역연(逆緣)의 공덕에 의함”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⑦ 역연(逆緣)의 공덕(功德) : 파법(破法)이나 방법(謗法) 등의 악사(惡事)가 오히려 불도(佛道)를 향한 연(緣)이 되는 것. ‘독고(毒鼓)의 연이라고도 함.
⑧ 불경보살(不輕菩薩) :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제20에 설하는 보살, 석존의 과거세의 모습으로 위음왕불(威音王佛)의 상법(像法)의 말(末)에 “나는 당신을 공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보살의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만인에게 예배했다. 만심(慢心)의 비구(比丘, 출가한 남성)·비구니(比丘尼, 출가한 여성)·우바새(優婆塞, 재가의 여성)라는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지만, 예배행을 끝까지 나갔다. 그 수행이 인(因)이 되어 성불했다.
◇
<본문> (어서 1556쪽 4행 ~ 1557쪽 첫 행)
대저 제오(第五)의 권은 일경(一經) 제일의 간심(肝心)이니라. 용녀(龍女)의 즉신성불도 명백하도다. 제바(堤婆)는 마음의 성불을 나타내고, 용녀는 몸의 성불을 나타내니, 일대경(一代經) 중에 무비(無比)한 법문이로다. (중략)
그러므로 악역(惡逆)의 달다(達多)에게는 자비의 석가여래가 스승이 되고·우치(愚癡)의 용녀에게는 지혜의 문수(文殊)가 스승이 되며·문수·석가여래보다도 니치렌은 못하지 않느니라.
일본국의 남자는 제바와 같고·여인은 용녀와 흡사하니라. 역순(逆順) 다 같이 성불을 기할 수 있느니라·이것이 제바품(提婆品)의 의(意)로다.
<현대어역>
그런데 법화경 제5권은 일경 제일의 간심이다. 여기에는 용녀의 즉신성불이 명백하게 설해져 있다. 제바달다는 마음의 성불을 나타내고, 용녀는 몸의 성불을 타나내고 있다. 이 같은 심오한 법문은 석존 일대의 가르침에서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중략)
그러므로 악역의 제바달다에게는 자비의 석가여래가 스승이 되고, 우치한 용녀에게는 지혜의 문수보살이 스승이 된다. 이 니치렌은 문수보살이나 석가여래보다 못하지 않는다.
일본국의 남자는 제바달다와 같고, 여자는 용녀와 흡사하다. 법화경 행자를 따르는 사람도, 거역하며 위배하는 자도, 역순 다 같이 성불을 기할 수 있다. 이것이 제바달다품 제12에 담긴 뜻이다.
청년을 본격적으로 단련
여기서는 쇼우보가 대성인을 때린 ‘법화경 제5권’은 법화경 총 8권 중에서도 극히 중요한 권이라고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제5권’에는 제바달다품 제12부터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 제15까지의 4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제5권’은 즉신성불의 현증, 멸후홍통(滅後弘通)의 대난, 묘법(妙法) 오자를 홍통하는 ⑨ 지용보살(地涌菩薩)의 출현 등, 말법시대 홍통의 방궤(方軌)를 제시하는 “불가사의 한 미래기(未來記)의 경문”(어서 1557쪽)입니다.
법화경 때문에 일어난 대난은 ‘제5권’을 신독(身讀)한 것으로 되어 ‘불과를 얻는’길입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에 몸을 맡기고 법화경을 끝까지 믿고 법화경의 제목을 홍교한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도키미쓰에게 신앙의 진수를 가르쳐 주고 싶다. 진실한 지용의 사명에 꿋꿋하게 살아나가, 삼세에 걸쳐 사제공전의 서원의 길을 관철하기 바라는 대성인의 진심이 전해 옵니다.
이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여 도키미쓰는 아쓰하라법난 속에서 문하들을 지키고 끝까지 정의 깃발을 드높이 들었습니다. 후에 이 젊은 후계의 벗을 대성인은 ‘우에노현인(上野賢人)’ 이라고 칭찬하게 됩니다. ⑩
‘진정한 신앙을 가르쳐 주고 싶다.’ ‘스승과 함께 대원(大願)에 살아가는 인생의 가치를 가르쳐 주고 싶다.’라는 청년에 대한 한없는 기대와 단련이라고도 배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부응하는 청년 문하의 서원과 분투, 이 사제의 관계 속에서만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맥동이 있습니다.
제바품의 즉신성불과 악인성불
제바달다품 제12에는 가장 중요한 법리(法理)로서 ⑪ 용녀(龍女)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 밝혀지고 더불어 악역의 ⑫ 제바달다의 성불, 악인성불(惡人成佛)도 설해져 있습니다.
제바달다는 온갖 악행을 저지른 ‘악심(惡心)’의 대표입니다. 그 몸은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전해지지만, 법화경에는 미래세에 천왕여래(天王如來)가 된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서에서 제바달다의 성불은 ‘마음의 성불’을 나타낸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용녀는 여러 이전경(爾前經)에서 불성불(不成佛)이라고 규정된 여인의 몸으로, 게다가 ‘용’이라는 축신(畜身)이었습니다. 그 몸 그대로 즉신성불 했기 때문에 ‘몸의 성불’을 나타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법화경의 ‘마음의 성불’ ‘몸의 성불’의 법리는 어떠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어도 생명의 근본적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어느 누구도 반드시 최고의 행복경애를 열어나갈 권리가 있고, 저력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법화경에만 즉신성불의 의가 있다는 것을 밝히시고, 진언종(眞言宗) 등이 근거도 없이 즉신성불을 설하는 오류를 파절(破折)하시고 있습니다.
“질남비 천(千)에다 망치 하나와 같으니라”(어서 1556쪽) 애벌구이 질냄비(이전경의 성불)가 천 개 있어도 망치(법화경의 즉신성불) 한 개로 모두 부서지고 만다. 그만큼 법화경의즉신성불의 법리는 유일한 진리이고 모든 방편(方便)의 가르침을 타파합니다. 그러므로 ‘⑬ 법화절복(法華折伏)·파권문리(破權門理)’라고 합니다.
어쨌든 ‘악역의 제바달다’에게는 ‘자비로운 석가여래’가 스승이 되고, ‘우치한 용녀’에게는 ‘지혜로운 문수(보살)’가 스승이 된다. 그리고 “문수·석가여래보다도 니치렌은 못하지 않느니라.”입니다.
진정한 불법에 무지해서, 정법에 거역하여 등을 돌리는 사람들에게는 ‘만인성불의 법’인 법화경을 인난홍통(忍難弘通)하시는 대성인이 ‘지혜로운 문수’나 ‘자비로운 석가불’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적대하는 자도 몰이해 하는 자도 모두 불연(佛緣)을 맺고 있습니다.
“역연도 순연도 함께 성불을 기할 수 있다.”
여기에 법화경의 그리고 니치렌불법의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대립과 분단’을 ‘협조와 조화’로
또, 한 가지 ‘역연의 공덕’을 덧붙이자면 법화경에는 고정적인 불변의 ‘적(敵)’이라는 실체는 없고,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법화경에 대한 ‘신(信)’과 ‘방(謗)’이라는 행동이 따릅니다.
인류의 역사를 부감(俯瞰)하면, 한쪽을 자기편, 다른 쪽을 적이라 결정짓고 적을 말살하는, 그러한 끔찍한 대립과 분단이 너무나도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21세기 오늘날에도 민족 분쟁이나 종교의 이름을 빌린 정치 분쟁 등의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한번 고정관념을 가져버리면 어쩔 수 없이 그것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같은 인간, 같은 생명이라는 공통적인 기반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성실한 행동과 납득의 대화로 함께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건설이라는 이상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생명 존엄’ ‘인간 존경’이라는 영원하고도 보편적인 가치 기준에 입각해서 각각의 문화와 전통을 살리면서, 공생(共生), 공존(共存)의 길을 모색하는 이외에 인류의 조화와 번영은 없습니다.
그 전환의 열쇠가 이 어서에서 밝힌 ‘지혜’와 ‘자비’입니다.
법화경은 그 진실과 실천을 가장 극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처를 박해한 적인 악역의 제바달다가 사실은 석가여래의 ‘옛 스승’이고, 미래에 성불한다. 그리고 여덟 살의 어린 축생의 몸인 소녀가 그 몸 그대로 즉석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역동적인 가치전환에도, 법화경의 진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⑨ 지용보살(地涌菩薩) : 법화경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 제5에서 석존멸후 법화경 홍통을 맡김에 있어서 다른 보살들을 물리치면서 불러낸, 구원(久遠)의 옛날부터 교화(敎化)해 온 제자인 보살, 대지의 아래쪽에서 용출(涌出)했기 때문에 지용보살이라고 한다. 그 수는 무량천억만(無量千億萬)이라 하며 그 각각의 육만항하사(六萬恒河沙, 갠지스 강 모래 숫자의 6만배, 무수히 많다는 뜻) 등의 권속(眷屬)을 이끄는 지도자라고 설한다.
⑩ 1279년 11월에 쓰신 <우에노전답서[용문어서(龍門御書)]>(어서 1560쪽)에서 대성인은 난조 도키미쓰가 아쓰하라법난에서 외호에 진력한 일을 들어 ‘우에노현인’이라는 칭호를 주셨다.
⑪ 용녀(龍女)의 즉신성불(卽身成佛) : 용녀는 사갈라용왕(沙竭羅龍王)의 여덟살의 딸이다.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12에는 바다 속 용궁에 살고 있었으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법화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 발심하여, 법화경 설법의 자리에서 즉신성불의 모습을 나타냈다고 설하고 있다.
⑫ 제바달다의 성불 : 제바달다는 처음에는 석존을 따르고 있었으나, 만심을 일으켜 석존에게 적대하고, 파화합승(破和合僧) 등 중대한 악행을 거듭했다. 그 죄로 살아있는 채로 지옥에 떨어졌지만 법화경에서 기별(記別)을 받았다.
⑬ 법화절복(法華折伏)·파권문리(破權門理) : 천태대사의<법화현의(法華玄義)>권9상에 “법화의 절복은
권문의 이를 파한다”라고 있다.
◇
<본문> (어서 1557쪽 2행 ~ 8행)
다음에 권지품(勸持品)에 팔십만억나유타(八十万億那由他)의 보살의 이구동음(異口同音)의 이십행(二十行)의 게(偈)는 니치렌 한 사람이 읽었노라.
누가 나와서 일본국·당토(唐土)·천축(天竺)·삼국에서 불멸후(佛滅後)에 읽은 사람이 있느뇨. 또한 나는 읽었노라 자칭할 사람도 없으며·또한 있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급가도장(及加刀杖)의 도장의 이자(二字) 중에·혹은 장(杖)의 자를 만난 사람은 있으리라·도(刀)의 자를 만났다는 사람은 듣지 못했노라. (중략)
니치렌은 도장의 이자 모두 만났느니라. 더구나 도난(刀難)은 앞에 말하였듯이 도조(東條)의 마쓰바라(松原)와 다쓰노구치(龍口)이며, 한 번도 만난 사람이 없는데, 니치렌은 두 번 만났도다.
장(杖)의 난에는 이미 쇼우보소(少輔房)에게 얼굴을 맞았는데 제오권(第五卷)으로써 맞았노라. 때린 장도 제오의 권, 맞게 될 것이라는 경문도 오의 권불가사의(不可思議)한 미래기(未來記)의 경문이로다.
<현대어역>
다음에 권지품 제13에서 80만억나유타의 보살이 이구동성으로 맹세한 20행의 게는 니치렌 한 사람이 몸으로 읽었다.
석존 멸후, 일본국·중국·인도의 세 나라에 20행의 게를 몸으로 읽은 사람이 있겠는가. 또한 “내가 읽었노라.” 하고 자칭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또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20행의 게 중에 ‘급가도장’이라는 도장의 두 글자 중, 장(杖)으로 맞은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刀)로 베인 사람은 듣지 못했다. (중략)
니치렌은 도장의 두 글자 모두 몸으로 읽었다. 특히 도의 난은 앞서 말한 것처럼 도조의 마쓰바라와 다쓰노구치이다. 도의 난을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니치렌은 그것을 두 번이나 만났다.
장(杖)의 난은 쇼우보에게 얼굴을 맞았는데 법화경 제5권으로 맞았다. 때린 장도 제5권, “맞을 것이다”라고 설한 경문도 제5권, 불가사의한 미래 예언의 경문이다.
권지품의 ‘도장의 난’을 신독
이 부분은 이 어서가 <도장난사(刀杖難事)>라는 별명으로 불린 유래가 된 글월입니다.
권지품 제13의 마지막 부분에 팔십만억나유타라는 무수한 보살들이 석존 멸후, 어떠한 대난에도 굴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고 법화경을 홍통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 불퇴전의 결의를 설한 ‘20행의 게’ 중에 밝힌 법화경 행자를 박해하는 ⑭ ‘삼류강적(三流强敵)’의 출현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삼류강적’을 불러일으켜 자신의 몸에 난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래야만 비로소 ‘몸으로 읽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부처의 멸후에 인도·중국·일본 세 나라에서 ‘나는 분명히 몸으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는가. 어서에는 “니치렌 한 사람이 읽었노라.”라고 엄연히 말씀하십니다.
이 법화경 신독의 실증으로 대성인은 속중증상만(俗衆增上慢)의 박해를 밝힌 경문⑮에 있는 ‘급가도장’ 중 ‘도장’의 두 글자를 들고 있습니다.
대성인은 수많은 박해를 받은 불경보살조차도 경문에는 ‘장목(杖木)·와석(瓦石)’이라고만 있고 ‘도(刀)의 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십니다.
이에 대해 “니치렌은 도장의 이자(二字) 모두 만났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도의 난’은 이 어서 첫머리에서 말씀하신 고마쓰바라법난과 다쓰노구치법난입니다. 그리고 쇼우보에게 법화경 ‘제5권’으로 얼굴을 맞은 일이 ‘장(杖)의 난’에 해당됩니다.
이어지는 어서에서는 초암을 습격한 무장한 수십 명이 둘러싼 가운데 쇼우보에게 맞았을 때의 심경을
쓰시고 있습니다.
“맞았을 때는 이것도 법화경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직 범부이므로 맞는 동안 쇼우보가 쥐고 있는 장(杖)을 빼앗아 힘이 있다면 밟아 분질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장(杖)은 법화경 제5권이었다.”(어서 1557쪽)
부당한 처사를 당하면 누구나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게 진솔한 범부의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권을 위협하는 폭력에 대해 정의 분노를 불태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 분노를 인욕(忍辱)의 갑옷으로 참아내고 끝까지 당당한 모습으로 의연하게 자신의 정의를 말씀하셨습니다. 폭력과 증오, 복수심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처지에서 긴 안목으로 바라보면 닥쳐오는 고난은 나를 단련하고 성장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고난에 지지만 않으면 나중에는 그간의 일들이 모두 내게 힘이 되는 날이 옵니다. 불법에는 절대로 헛됨이 없습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가르쳐 주려고 젊은 도키미쓰에게 ‘물푸레나무의 활’의 고사를 인용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릴 적 부모에게 ‘물푸레나무의 활’로 매를 맞아가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떄는 그게 원망스러웠지만 학문을 대성하고 나서는 오히려 자신을 물푸레나무로 때린 부모에게 감사했습니다.
이 고사를 통해서 대성인은 “니치렌이 불과(佛果)를 얻음에 어찌 쇼우보의 은혜를 보릴소냐. 황차 법화경의 은혜의 장(杖)에 있어서랴. 이와 같이 내내 생각하니 감루(感淚)를 참기 어렵도다.”(어서 1557쪽) 하시며 박해자인 쇼우보에게도 그리고 ‘장(杖)의 난’에도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신의 소설 <인간혁명>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종교탄압으로 투옥된 주인공 간(嚴)씨가 간수로부터 네 번에 걸친 구타를 당했을 때 자신의 과거세 숙업의 죄가 끝났음을 확신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고난을 숙명전환의 원동력으로 하는 것이 법화경의 심오한 법리입니다.
용출품의 지용보살의 실천
용출품 제15에서, 홀연히 대지가 갈라지면서 출현한 불가사의한 지용보살들은 도대체 어떠한 사명을 지닌 존재인가.
‘법화경 행자’인 대성인은 또한 동시에 지용보살, 그 중에서도 육만항하사라는 무수한 보살의 선두에 서는 상수(上首) ‘상행보살’이라는 것이 시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키미쓰에게 “귀하의 스승은 경문에 비추어 보면 말법을 위해 싸움을 일으킨 상행보살이고, 육만항하사의 지용보살로부터 반드시 칭찬을 받는다.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일은 없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법화경에 몸을 맡기시오”라는 이 어서의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절은 어디까지나 근본인 스승, 대성인과 함께 끝까지 살아갈 것 그리고 투쟁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스승과 함께 자신의 신심을 항상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신심을 관철하는 일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세에 부모가 되어준 분들을 구제하는 일, 즉 이번 인생에서 무수히 만나는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 된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루 잠시도 마음이 편한 날은 없었다.”라고 끊임없는 연속 투쟁을 되돌아보시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심정은 여러 어서에서 되풀이 피력하고 있습니다. (16)
(16) 예를 들면 “일일(一日)·편시(片時)도 게을리 함이 없이”(어서 1226쪽). “이십여년간 한시 반시도 마음편한 일이 없노라.”(어서 1514쪽)
도키미쓰도 법화경 신심 때문에, 난조 가문 중에도 악구를 듣고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후지방면의 니치렌 문하의 중심자의 한 사람으로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그 도키미쓰에게, 대성인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투쟁해 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대난이 잇따르는 인생을 살아왔는지 더한층 깊게 가르쳐 주십니다.
⑭ ‘삼류강적(三流强敵)’ : 석존 멸후 악세에서 법화경을 홍통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세 종류의 강적, 법화경 권지품(勸持品) 제3의 게(偈)에서, 한역(漢譯)으로 20행에 걸친 게에 설해져 있다. 속중증상만(俗衆增上慢, 재가의 박해자), 도문증상만(道門增上慢, 출가의 박해자), 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 박해의 원흉이 되는 고승)
⑮ “모든 무지한 사람이 악구매리(惡口罵詈)하고, 또한 칼과 몽둥이로 해하는 자가 있어도 우리는 모두 마땅히 참겠나이다.”(법화경 48쪽)
◇
<본문> (어서 1557쪽 16행 ~ 1558쪽 3행)
또한 용출품(涌出品)은 니치렌을 위해서는 조금 연(緣)이 있는 품이로다. 그 까닭은 상행보살(上行菩薩) 등이 말법에 출현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오자(五 字)를 홍통(弘通)하리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먼저 니치렌 한 사람이 출래했기에, 육만항하사(六萬恒河沙)의 보살로부터 필시 충상(忠賞)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니, 믿음직스러운 일이로다.
어쨌든 법화경에 몸을 맡기고 믿으시라. 귀하 한 사람에 한하지 말지니라 · 신심을 권하시어 과거의 부모 등을 구하시라.
니치렌은 태어났을 때부터·지금껏 일일(一日)·편시(片時)도·마음 편한 일은 없었다. 이 법화경의제목을 홍통 하려고 생각할 뿐이니라.
명심하고 명심하여 자타의 생사는 알 수 없지만 임종의 시각, 생사(生死)의 중간에 니치렌이 반드시 마중하러 나갈 것이외다.
<현대어역>
또 종지용출품 제15는 니치렌에게는 조금 연이 있는 품이다. 그것은 상행보살들이 말법에 출현하여 남묘호렌겐쿄의 다섯 글자를 홍통하리라고 설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니치렌 한 사람이 출현한 것은 육만항하사의 지용보살로부터 틀림없이 칭찬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믿음직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법화경에 몸을 맡기고 믿으시라. 귀하 한 사람만 믿지 말고 신심을 권하여 과거의 부모들을 구하시라.
니치렌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날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오직 법화경의 제목을 홍통하려고 생각할 뿐이다.
자타의 생사는 알 수 없으나, 귀하의 임종의 순간에, 생과 사의 중간에는 니치렌이 반드시 마중 나갈 것입니다.
사제(師弟)의 원정(遠征)은 삼세 영원한 여로
어서에는 “자타의 생사는 알 수 없지만 임종의 시각, 생사(生死)의 중간에 니치렌이 반드시 마중하러 나갈 것이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도키미쓰에게는 이미 칼부림 사태가 일어난 법난의 와중에서 싸우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5개월 후에는 아쓰하라의 20명의 농민 신도가 체포되어 가마쿠라로 연행되었고, 끝내는 생명이 처형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스승께서 자신의 투쟁을 지켜보고 계신다. 생사를 초월해 사제는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다는 스승의 광대한 자애를 도키미쓰는 얼마나 마음 깊이 느꼈을까요. 사제공전의 원정(遠征)은 실로 삼세 영원한 여로입니다.
그 무엇도 단절할 수 없는 생명의 유대로 맺어져 영원히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순수한 구도심(求道心)이 바로 승리의 원천
추신을 보면 “굶주려서 먹을 것을 바라고, 목말라서 물을 그리듯이, 그리워서 사람을 보고 싶어하듯이, 병에 약을 의지하듯이, 용모가 좋은 사람 연지 분을 바르듯이 법화경에 신심을 다하시라, 그렇지 아니하면 후회가 있으리라,”라고 있습니다.
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제16의 자아게(自我偈)에도, “모두가 연모(戀慕)하며 갈앙(渴仰)하는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중생(衆生)은 이미 신복(信伏)하여 질직해서 마음이 유연하느니라. 일심으로 부처님을 뵙고자 스스로 신명(身命)을 아끼지 아니하느니라.”(법화경 490쪽)라고 있습니다.
본존님을 믿고, 묘법을 구하는 마음은 어디까지나 강성하고 외곬으로 또한 순진해야 합니다.
자신의 숙명전환을 바라고, 광선유포의 실현을 기원하고 신명을 아끼지 않고 싸울 때, 반드시 행복승리의 인생을 열 수 있습니다.
평생 순수하게 신심을 관철한 사람이 승자입니다.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신심의 극리(極理)가 있습니다.
고투(苦鬪) 속에서 진정한 인간이 단련된다.
고투 속에서 강인한 강철 같은 의지를 기를 수 있다.
고투 속에서 인생의 진실한 눈물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투 속에서 위대한 인간혁명이 있다.
창가(創價)의 청년이 바로 희망의 광채(光彩)
도다 선생님이, 마키구치 선생님과 ‘네 번의 난’을 함께 싸웠다고 말씀하신 지 한 달쯤 지난 섣달 어는 날 밤, 나는 “대악(大惡)이 일어나면 대선(大善)이 온다.”(어서 1300쪽)는 일절을 대확신하면서 “마지막 그날까지 법도(法刀)를 높이 치켜들어 끝까지 싸우리라.”라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해가 지금 어둠을 뚫고 떠오르려 한다.”라고 쓰고, 새로운 한 해의 영광과 승리의 출발을 기약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은사 도다 선생님의 제2대 회장 취임이라는 영광스러운 5월 3일에 결실했습니다.
바야흐로 21세기 하늘을 비추며 떠오르는 아침 해란 무엇인가. 그 눈부신 희망의 서광이 바로 나의 직계 문하인 창가의 청년입니다.
자 ‘청년학회 승리의 해’의 개막을 향해, 나와 함께 투쟁하자!
삼세에 사제공전의 대도(大道)를 전진하자!
그 어떤 폭풍에도 승리로 장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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