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가면서 이런 저런 일을 경험하기도 하며, 우연찮게 아주 좋은 일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문화적인 혜택이 주어져 적어도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공연을 관람하거나 그 공연에 초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골에서 살게 된 2006년 이후에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시골에서 문화행사를 하려면 그 비용에 대한 영리효과가 적어서인지, 아니면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적어서인지 몰라도 문화적인 혜택을 보지 못해서 그 욕구가 더욱 거세게 일어나게 되고 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다른 것에 몰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런 욕구에 대한 해결책이 있었으니 음악이라는 것을 대하게 되었고, 젊은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음악은 나의 대상이었지만 산다는 것 자체에 몰두하게 되니 음악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는 그냥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하는 사항에 이르게 되었다.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의 뮤지션이 아니라 음악이 좋아서 듣게 되고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게 되고…….그냥 음악이 좋았던 것이다. 그래도 가슴 속에 응어리져 남아있었던 것은 ‘나도 한번 음악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동경의 색소폰은 이름만으로 대리만족해야 하는 대상이었지 그냥 호락호락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음악(듣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하면서 들렀던 것은 우리 카페의 [전라필하모닉 색소폰 오케스트라]로의 이끌림이었다.
[전라필하모닉 색소폰 오케스트라]의 카페에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없었다기 보다는 그냥 듣고만 가야하는 어떤 도둑(훔쳐듣는 도둑) 같은 마음이었다. 악기도 없는 사람이 무슨 넘의 색소폰 연주를 해보겠다는 것인가?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상식과 조옮김이라던지 색소폰에 대한 지식을 넓히겠다고 자주 클릭하다보니 동영상 강의도 들어보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의 악기가 없는 상태에서 강의를 들어봐도 음악에 대한 필(Feeling)이 전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이 더 어려워지는 듯한 느낌이 나 자신을 압박해왔다.
그러던 지난 달 어느 날 공지사항이 전라필카페에 떴다. ‘전라필’이 완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주에서 공연을 갖는 다는 것이다. 7월 5일 토요일 19:30~91:00에 나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꼭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문의를 해 보았지만 전혀 공연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달랑 한 장의 포스터가 스크랩되어있을 뿐. 공연 티켓이며, 예약 등 공연관람을 위한 배려가 없어서 카페에 문의를 해놓았더니 '무료공연'이라는 리플이 달려있었다. '그래 7월 5일은 나주로 가는 거야. 그날은 나주에 가서 연주회를 관람하는 거야. 나주에 가서 전주의 연주를 듣는 거야.' 혼자만의 결심을 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은 섬나라인 전남 완도이다. 완도군청이 위치해 있는 군소재지의 읍내마을이 아니라 완도에서도 격지. 오지라고 분류하는 생일도라는 섬이다. 생일도가 어디에 있어?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육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면사무소가 있는 섬이다. 전남 강진의 마량 항에서 철부선(鐵浮船=카페리 일종)으로 1시간 50분이면 도달하는 완도의 오지인 섬, 그래도 지금은 생일도라는 섬이 육지에 훨씬 가까이 붙어있는 느낌이다. 그것은 강진군의 마량과 완도군의 섬인 고금도가 다리로 작년 6월에 이어져 이제는 고금섬을 거치고 약산도(조약도)의 끝자락에 더 이상 버스가 갈 수 없는 곳에 당목(당숲마을)이라는 항포구에 다다르면 거기서 철부선을 타야만 가는 섬, 생일도가 있는 있다. 완도군 약산의 당목 항에서 철부선으로 바다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과 푸르른 바다와 여름날의 안개가 이는 섬, 배 안에서 나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한 안개산 속의 봉우리를 내놓은 산(백운산)이 바로 생일도이다. 앿나 당목항에서 철부선으로 30분이면 도달하는데 무료함을 달라라고 3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조용하고 천연 그대로를 간직한 섬이다. 처음 이 섬에 당도하였을 때 그 깨끗함에 반해버린 작은 면단위의 섬에서 3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생일도에서 나주까지 공연을 보러가는 그런 바보가 또 어디에 있을까? 시간 거리로 환산한다면 전주에서 광주에 갈 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아니 전주에서 나주에 가는 시간과 맞먹을 시간거리이다. 참으로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먼 곳까지 공연을 보러갈 얼빠지거나 쓸개가 없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나주 혹은 전주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혼자 너털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 자신이 꼭 보고 싶어 하고 아름다운 색소폰 하모니를 감사하고픈 마음 하나로 나주에 가게 되었다.
이미 예약해버린 나의 마음에도 한 가지 걱정은 있었다. 업무를 마친 금요일 오후에 나가려고 했는데 그 날은 바다의 안개(해무=海霧)로 인하여 첫배의 출항이 여섯 시간이나 지연된 오후 한시가 되어서야 섬을 떠날 수 있었다. 옛 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같은 직장 계열의 후배동료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광주의 시티병원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다는 전갈이 온 것이다. 이미 가까이 지내는 직장후배는 장례준비를 위하여 아침부터 병원에서 일을 거들어부고 있었고, 일부의 직장 동료들이 밤이 되어서야 조문가게 되었는데……. 막상 병원의 장례식장에 도달하고서야 그의 죽음에 실감이 가는 것이다. 젊디젊은 나이의 43세를 일기로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천주님의 품으로 영면하게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야 하나님의 곁으로 간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너무나 젊은 나이에 어린 자식 두 명과 아직 재미있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생이별을 해야 하는 젊은 아내의 모습을 보고나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 눈물이 고이더라. 삶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젠 익숙해져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듯 하던 나 자신의 눈에서도 눈물이 핑도는 것은 암투병상태에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끝까지 직장의 출근을 거부하지 않았던 그 동료가 이젠 고인이 된 영전에서는 나도 인간이구나 하는 원초적인 마음이었으리라.
토요일의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왔는데..... 공연을 보러갈 것인가? 그냥 가지 말아야 할 것인가? 토요일의 하루가 어찌나 길었는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다시 공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였던지라 광주의 풍암동의 친구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공연을 관람하러 나주로 향하고 있는 나 자신. 나주의 문화예술회관이야 길 가에 있으므로 쉽게 찾아갔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그리 많아보이지는 않았지만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계단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짝을 지어 올라가고 있었다. 주차장에 주차시키자마자 공연장의 로비로 들어서는데 안내 석에서 팸플릿을 준다. 그리고는 나주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 안내를 받고 싶으면 e-mail을 신청하면 공연 시마다 알려준다면서 메모지를 내미는 처자의 손에 이끌려 메모장을 작성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려는데 한쪽에서 젊은 학생들의 간이연주가 나왔다. 아마 나주동호회원이거나 나주지역 고등학생이지 않을까 한다. (동호회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므로 그냥 나주 동호회원 이라면 그냥 이해하시기를...)
< 나주문화예술회관의 로비에서 연주하는 나주 동호회원님 ??>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연주회원들이 연주 복을 차려입고 친구나 동료 혹은 카페 동호회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멤버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나는 그냥 부럽기도 하였고, 부끄럽기도 하고, 나 자신이 못난 듯 민망하여 공연장으로 곧장 들어가서 ‘나열’의 맨 앞좌석에 앉았다. 가, 나, 다 열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무대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제일 중앙의 자리를 잡은 셈이다. 내 옆에는 젊은 부인이 초등학교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미리 자리를 하고 있었다. 앞자리가 좋아보여서 앉아보니 연주석 무대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어느 여자 안내원이 안내방송을 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아가씨인데…….연주회 안내 팸플릿을 보니 광주KBC리포터 ‘최한아름’이라고 한다.
< 사회를 맡은 광주 KBC 방송국의 최한아름 >
그 리포터의 말은 전라필하모닉 색소폰 오케스트라에 대한 소개와 전라도라는 옛 이름이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고 말하면서 실수를 하는 것이 귀에 걸렸다. 즉, ‘전라’라는 것은 전주의 ‘전(全)’자와 나주의 ‘라(羅)’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실수로 전주의 ‘전’자와 나주의 ‘주’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하더니만 본 공연이 진행되고 오케스트라를 지휘자와 단장, 부단장 등을 소개하면서도 전주필하모닉 색소폰 오케스트라의 전주라는 말은 전주의 ‘전(全)’자와 나주의 ‘주(州)’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또 한 번의 실수를 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음악에 빠져서 느끼지 못 했으면 좋겠는데 알았더라도 이해해 주었으리라. <전라의 뜻을 잘못 말하여 그냥 쓴 것임>
첫 연주로 ‘경기병 서곡’을 연주하는데 지휘자의 왼쪽(?) 방향의 어느 주자가 색소폰의 삑소리를 낸다. 그것이 귀에 들어왔다. 너무나 하모니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그런 소리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나머지는 부드럽게 넘어갔다. 행진곡 풍의 연주가 이어지는 순간에는 관중들도 고개나 다리를 이용하여 박자를 맞추는 느낌이 왔다. 저 자신도 그런 곡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손목으로 행진곡에 맞추어 리듬을 타고 있었다.
< 전라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윤강기 님>
두 번째 연주는 고전 영화음악인 영광의 탈출의 주제음악인 EXODUS로 장식하였다. 원곡은 아마 트럼펫과 트롬본, 수자폰 등의 음색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전라필의 나주연주회에서는 색소폰위주의 편곡으로 원음악인 오리지널의 음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 음계를 어떻게 소화해 줄인가를 기대 반 고심 반으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게 어인 일입니까? 타악기의 팀파니와 일렉전자기타, 그리고 금관악기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커버해주는 것이 바리톤색소폰이었다. 정확히 음정을 이해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그게 바로 바리톤 음색이 오리지널의 음계를 보충해주고 있었다.
<팡파라~ 봐~앙, 빵빠라바라 봐앙~~~~, .....!!!> 진짜 영화의 화면이 뇌리를 스치면서 무대가 바로 영화 속의 장면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 영화의 음악은 라디오 방송국의 ‘영화음악실’ 혹은 ‘한밤의 영화음악’의 프로그램과 텔레비전 방송의 주말 영화를 시작할 때 나오는 Signal Music 으로 사용되었던 음악이기에 여러 가지 형태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의 이야기는 성경의 ‘출애굽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이집트(애굽)에서 40년간의 노예생활을 벗어버리고 그의 지도자였던 모세를 따라서 그들의 고향 땅인 이스라엘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인데 그 화면 속에 녹아내린 것이 바로 ‘영광의 탈출’의 OST인 것이다. 이 영화 음악의 선율을 들은 나의 옆자리의 젊은 아주머니는 눈을 감고 그 영상의 미를 감상하는 듯 하였는데 거의 모든 관중이 옆의 아주머니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나 자신은 음악도 중요하지만 순간순간에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담느라고 열정 속에서 잠시 나와 있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앙상블은 나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어 밖으로 표출시켜주는 울림이었다.
다음에 연주된 곡은 리멘시타(L'immensita)였는데 아주 오래된 칸초네 곡이었다. '밀바'라는 가수가 부른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눈물 속에 피는 꽃’으로 번안되어 여러 가수들이 쌓여진 세월의 깊이만큼 많이 불렀던 것으로 우리나라 백성들 중에서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그 리듬을 기억하고 있는 곡이다. 그 제목이 ‘리멘시타’인지 ‘눈물 속에 핀꽃’인지는 모르지라도 그 리듬만큼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곡일 것이다. 아마 리멘시타라는 식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는데 잘 모르지만 그만큼 혹독한 가운데서의 꽃을 피워내는 것과 같은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이번 ‘전라필’의 나주 공연에서 테너 색소폰의 솔로부분을 연주해 주신 분은 전라필의 부단장인 나주의 김관선 님께서 열정의 무대를 이끌어 주었다. 알토음색에서 느끼지 못했던 테너만의 응어리짐을 풀어내는 음색이 나를 매료시켰다. 왜 색소폰 주자들이 알토를 불다가 테너로, 혹은 알토에서 소프라노로 옮겨가면서 연주하는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 할 것 같았다. 나주의 대표자이면서 이번의 나주공연을 이끌어주신 분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눈물 속에서도, 왜 그곳에서 마저 설움을 딛고 일어나야 하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가슴속에서 이끌어 내야 하는가를 관중에게 말해주듯이 열정으로 토해내는 김관선님의 테너색소 연주 또한 울분 속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던 지난 80년대의 울분이라도 토해내는 듯하였다. 그것이 바로 음악을 통한 몸부림치는 가슴속에서 끓어올라 용암처럼 토해내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한다.
<나주의 김관선 부단장의 테너 색소 연주 모습>
드라마 속에서 텔레비전의 시작과 중간에 삽입되어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 항쟁'의 실재를 드라마로 각색하여 국민의 가슴을 울려내었던 ‘모래시계’의 OST는 기대하고픈 제목이었다. 드라마에서 동해안의 작은 역을 끼고 있는 정동진의 작은 포구를 국민관광지로 이끌어주었고 새해가 되는 날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명소가 된 것이 바로 드라마 ‘모래시계’인데……. 그 모래시계 속에서 80년대를 살아가는 권력과 돈의 암투 속에서 친구의 우정과 연인의 사랑을 그리면서 그 시대가 쳐해있었던 암울한 시대, 그것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하는 청년과 오로지 오로지 공부만 하던 친구와의 이해와 갈등을 그린 암울한 시대의 대표곡이었다. 드라마에서는 그 당시의 최고의 미녀 탤런트인 고현정과 시대의 반항아의 최민수, 이정재의 열연이 참으로 일품이었다고 생각하던 것이었는데.....
연주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매끄럽지 못하는 듯 불협화음 같은 느낌이 왔는데, 그냥 잘 넘어갔다. 나주의 단원과 전주의 단원이 본연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오직 색소폰이 좋아서 서로 시간을 쪼개어 튜닝을 하고, 각 파트별로 협연을 해보고, 그리고는 전체 연습을 하였으리라. 한사람의 쏠로가 연주한다면 기본을 베이스로 하여 연주자의 마음 가는대로, 그때의 필링에 따라서 연주하면 되는 것이지만 앙상블이란 것은 참으로 힘든 것일진대 바로 이곳에서 조금의 뒤틀림소리가 나온 듯 하였다. 일명 삑사리라는 것이 관중에서 보아 무대좌측방향에서 조금 튀어나온 것 같았다. 날씨가 어찌나 무더운 장마기간 동안의 날씨였던지 무대 조명의 열기에다 관중의 환호가 함께 어울어진 열기로 아마 흥분되어 자기 파트의 운지를 잘못했다거나 습도가 높아서 리드의 상태가 다른 때와 달라서 그렇게 실수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관중은 숨소리마져 죽이고 단원들의 연주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리라.
다음은 째즈 가수가 나오는 무대가 이어졌다. 광주 KBC방송국의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최한아름씨의 멘트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사랑할꺼야' 로 데뷔한 가수이며,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
째즈와 현대 가요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가수,
열정의 무대가 이어지겠습니다.
여러분 힘찬 박수로 맞이합시다.]
야~ 진짜로 가수가 나온다.
저 사람이 김혜정이라는 사람인가? 진짜로?
빨간 원피스형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무대의 중앙에 서서 관중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예쁜 미모의 가수.
오른손에는 마이크를 잡고,
왼손으로는 드레스의 가슴 윗쪽을 살포시 감싸안으면서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한다.
뒤를 연주자에게 살짝 뒤돌아보면서 지휘자인 윤필쓰~와 눈으로 얘기한다.
<미소를 머금고 관중에게 인사한 후 잠시 기다리는 가수 김혜정 님과 웃고 있는 색소폰오케스트라 연주자 분..>
그리고 연주되어지는 곡은...
너무나 우리의 귀를 익은 곡이다.
우리나라 영화중에서 큰 획을 그었다는 관중몰이의 영화, 쉬리.....
그 영화의 영화으로 삽입되어 우리 한국사람의 귀에 부드럽게 다가온 아름다우면서 부드러운 곡이 바로
When I Dream. 이다
<살포시 눈을 감고 가사 속으로 심취하면서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를 하는 가수 김혜정>
I could build the mansion that is higher than a dreams
꿈보다 더 높은 저택도 나는 세울 수가 있어요
I could have all the gifts I want And never ask to please
애걸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얻을 수 있지요
I could fly to Paris.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날아갈 수도 있지요
It's at my beckand call.
그건은 내가 시키는 데로 어디든지 가주지만
Why do I live my life alone With nothing at all?
왜 난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은 채, 삶을 외로이 보내는 것일까요?
BUT , ......When I Dreaeeeeeeem !
<무대의 오키스트라와 관람석의 청중을 사로잡는 열창의 무대 매너로....>
공연장에 울려지는 가수 김혜정의 목소리가 공연관람을 하는 나주 시민들의 가슴을 어르만지며, 때로는 울렁이게하고
때로는 달콤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랑의 아리아로.....
<열정으로 노래를 하는 나주 무대에서의 가수 김혜정>
울분을 가라앉히는 고요의 침묵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으리라.
나 또한 나주시민과 함께 그곳에서 우리의 가수 김혜정님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한 것이다.
<전라필 윤강기 지휘자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마음으로 노래하는 가수 김혜정 님>
노래가 끝나고 그칠 줄 모르는 박수소리가 연주회의 진행을 방해할 정도였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노래는.........
원로가수?에 포함되는 정훈희 원로? 가수의
꽃밭에서....였다.
<무대 조명등 마져 꽃으로 만들어진 것은 김혜정 가수의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아는 듯 후광이 서리고...>
<꽃밭에서....>라는 노래는 정훈희를 비롯하여 가수 적우, 소녀시대, 김관우....
여러 가수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편곡하여 불렀다.
나주 공연장에서 들리는 노래도 옛날의 <꽃밭에서>였다.
가느다란 목줄기에서 타고 내려오는 감미로움의 속삭임.
때로는 열정이 솟구치는 강렬한 열정을 통한 호소력으로.
가끔은 애절하게 갈구하는 애간장 녹임으로.
어떤 때는 천상을 울리는 간절한 기도로.
김혜정 가수가 뿜어내는 여름날의 열정은
나를 포함한 나주 시민의 가슴을 붕붕띄우게 했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은 잎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고운 날에
이렇게 고운 나알~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후
그 노래속의 그 님이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혼자만의 착각은 자유라고 말하는데....
그 착각의 자유가 그리운 마음마져 앗아간 무대에서의 아름다고 고운 목소리.....
<나주의 공연이 이렇게 가슴 뿌듯해 하듯 노래가사도 ..이렇게 좋은 날에~~~~~>
사회자가 왜 그렇게 소개를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한 순간에 달아났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가수인 김혜정이라는 소개가 바로 무대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꽃밭에서의 마지막 후렴구인
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룰...루~
루루루.........................로 이어지는 곳은 관중과 함께 했는데
가수 김혜정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청중을 사로잡는 열창이 아니었다면
나주의 관중은 가만히 앉아있었겠지만
그녀만의 열정과 노래 사랑에서 뽑아내는 아름다운 음성은 나주 공연의 꽃이 아니었을까.
<가수 김혜정도 나주에서의 환호가 그리 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스스로 만족해 !!!하는 모습 ~~>
김혜정 가수의 공연이 끝나고
그 빨간 드레스가 부대 옆으로 빠져 나갈 때 청중들은 앵코르~ 앙콜~ 앵콜을 외쳐댔지만.....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나주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다.
혹시 공연이 끝나고 나서 다시 모습이라도 보여줄거라고 기대했던 나를 바보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거 자리에서 앵콜 요청이 있었으니까
자신의 곡인 <사랑할꺼야>를 불러주었다면 진짜로 좋았을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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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를 1부로 접고 2부는 다음에 또... 이어지는 무대의 모습은 어떻했을까?
<2008. 7. 5 나주공연을 보고나서…….전남 완도의 생일도에서 김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