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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이중성(분열) : 시간과 공간
류 종렬, 2022 06 18, 철학아카데미.
줌 참석: ID: 831 2983 9916, 암호: 202202,
00. 서양 철학사에서 형이상학을 제기한 플라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냐 공간이냐 둘 뿐이에요. 플라톤은 둘 다를 놓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에서형상이론(form theory)을 놓았고, 베르그송은 시간에서정리했습니다. 그 이외는 없어요.” (54)
“모든 존재자는 그것이 있다면 있을 만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에요. 다만 대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면 수학 같은 것들이 나오겠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서양 철학에 접근(approach)하는 것은 우선 데이터로서의 서양철학에 접근해 보려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독일 철학은 그 나름대로 일단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고, 독일 철학을 어디 영미철학이나 불란서 철학에다 옮겨놓고 이해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희랍철학도 마찬가지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추상적인 어떤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또 철학은 데이터 그 자체가 어떻게 성립하느냐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든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55) [강조는 필자가 한 것이다]
위의 두 문단은 정년퇴임에서 소은 박홍규의 「고별강연(1984)」(1984년 6월 15일)에서 나온 것이다. 알다시피 플라톤이 형이상학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형이상학이란 용어가 나중에 안드로니코스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의 편집 명칭에서 나왔다고 하나, 아리스토텔레스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의 전승되지 않은 저술의 제목으로 “형이상학”이라는 용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개념작업에 매일 것이 아니라 박홍규처럼 공간과 시간을 내용면에서 다룬 측면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런 작업을 시도한 플라톤에서 형이상학의 시작이라 할 수도 있다. 고대의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작업이 근세 철학에서 운동들의 관계로 다룸과, 현대에 와서 내재성의 연관으로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르지만, 그 원인 또는 기원에 관한한 플라톤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우리가 빨강이와 파랑이라는 비유적 색깔로서 시간과 공간에 대비시키는 것은 우리나라가 빨강이를 두려워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대해 달리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또한 빨강이를 아페이론에 파랑이는 페라스에 유비시킬 적에, 박홍규의 강의에서 흥미로운 점은 아페이론이 무화되거나 결함으로서만 존재 또는 현존하는 것이라기보다, 필연적으로 여기는 아페이론이 있는 그 이유를 플라톤은 끊임없이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플라톤은 기하학적 정확성을 염두에 두고서, 아페이론을 수학적 방법으로 다룰 수 있는 측면도있고, 다른 한편으로 대상화로 잘 다룰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 후자의 부분을 어떻게 설명 또는 해명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벩송은 강의록에서 아페이론 안에서서, 플라톤에게 가능한 표현이 될 수 없을지라도, 영혼 안에서시작해야만 풀어질 문제를 플라톤이 고민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페이론 속에서라고 생각까지는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속은 비실재성이자 비현실성으로 여겼는데, 왜냐하면 페라스를 지닌 이데아가 직관의 대상이라 여겼고, 이데아가 실재성이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상을 아는데 이데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페이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인정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다루면서, 이뭣꼬의 “뭣”의 가장 근원적 토대가 영혼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그 영혼이 아페이론에 내재하는 것으로 여기기에는, 인간이 고귀하고 추상적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아페이론의 필연이 있다는 점에서 어떤 원인이 아닐까 라는 점에서, 박홍규는 플라톤의 플라노메네 아이티아(방황하는 원인)라는 개념을 주목하였다. 달리 생각하여, 원인이 자발성이며 자치적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박홍규는 플라톤에서 원인 개념이 기원(시초)이라는 의미가 있을지라도 자발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자발성이라고 보는 경우는 벩송이었다.
우리는 철학사에서 아페이론 없이 패라스를 말하는 자들이 착각에 빠졌다고 생각하거나, 정신적으로 공상과 심지어는 망상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공상 또는 망상에서 “선의 이데아”가 인식적이고 대상화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들이 선의 이데아를 실재성으로 여긴 것은 이 관념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유용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표현으로 공상 소설의 공상적 공간이 우월하다는 사고는 지성의 성립과 더불어 2천5백 동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권위와 권력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치 설화나 우화가 어린애에게 교훈적으로 또한 성장 과정에서 소중한 추억이듯이, 문학과 예술도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홍규의 관심에서, 모든 존재자를 다룬다고 할 때 시간과 공간을 토대로 하여 개별물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형이상학이라고 할 때, 시간과 공간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거리이다. 다음으로 시간과 공간에 있는 존재자들을(또는 현존자들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 철학에서 존재자들의 존재(관념), 또는 그 존재자들이 있을 만한 원인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에서든 원인에서든, 존재자들이 대상화를 이루는 측면은 다양하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에서 통일성을 보았을 것이다. 이 통일성을 구해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정확성은 증명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수학을 도구로 삼으면서 다양한 존재자들의 일반화와 추상화의 길을 가면서 통일성을 마련한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수학(기하학)의 통일성과 완전성의 길을 거쳐서, 그 다음으로 언어의 일반화와 추상화도 같은 길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상들의 차이에서, 이 존재자들을 구별하고 닮음과 대비에 의해 분류하고, 유사성에서 일반화를 거쳐서 추상화의 관념을 다룰 수 있는 체계를 보여준 철학자는 플라톤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알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모든 데이터의 총체를 먼저 같이 놓고서(동시에)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플라톤 이전의 고대에서도 존재자들(현존자)도 또한 그 추상화로서 존재도 다루었지만, 소크라테스를 거쳐서 플라톤에 와서야 ‘안다’는 방법에 대한 체계가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안다’에서, 대상으로 다시 앞에 두고 동일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재현하는 것이고, 재현과 더불어 현실에서 사용과 용도에 맞는 것을 구별해 내면서, 안다는 곧 행하다와 같은 의미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우리는 ‘안다’에서 다시 안다는 두 의미를 나중에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짧게 말하면, “다시 안다”에는 재현(représentation)할 줄 아는 것과 재인식(reconnaissance)하여 새롭게 생성하는 두 가지가 있다. 플라톤에서는 재현과 재인식에 구별이 분명하지 않지만, 그 두 방향 또는 경향을 구별하려는 의도를 찾을 수는 있다.
01. 플라톤 생애와 주변 인물들
431 펠로포네소스 전쟁(la guerre du Péloponnèse, 기원전 431-404) 시작 / 델로스 동맹 해체(477년 결성).
430 크세노폰 (Xenophon, Ξενοφῶν, 430경-355경) 그리스 철학자, 역사가, 장군. 부유한 귀족 출신, 소피스트들에게 배우다가 소크라테스 제자. 많은 저술이 있다.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플라톤이란 ‘어깨가 넓음’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18세 이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415 테아이테토스(Théétète d'Athènes, Θεαίτητος ὁ Ἀθηναῖος, 전415-전395 ou 전369) 그리스 수학자. 플라톤의 작품에 등장. 무리수에 대한 작업.
413 디오게네스(Diogène le cynique, Διογένης / Diogénês, 413-327; 87살) 시노페(Sinope)출신 탄생 (소크라테스 사망시 14살) 고대철학자, 키니코스학파의 대표철학자.
408? 에우독소스(Eudoxe de Cnide, Εὔδοξος ὁ Κνίδιος/ Eúdoxos ho Knídios -408 ? -355 ou -395 ? -342) 그리스 천문학자가 기하학자 의사 철학자.
407 스페우시포스(Speusippe, Σπεύσιππος, 전407-전339) 플라톤의 조카. 정통 플라톤주의자. 플라톤 사후 아카데미아 초대 학장.
431-404펠로포네소스 전쟁(Guerre du Péloponèse) 끝
404 30인참주(三十人僭主, Thirty Tyrants 404-403) 고대 그리스 과두정치(寡頭政治)를 이끈 30명의 세력자. 그리스에서 BC 404~BC 403년 펠로폰네소스전쟁에 패한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드로스의 후견(後見)하에 민주정치가 폐지되고, 크리티아스(Critias), 테라메네스 등을 대표로 한 30명의 과두정치 체제가 수립되었다. 이들은 민주파 시민 1,500여 명이 살해되고 다수가 추방되어 재산이 몰수되는 등 공포정치가 시행되었다.
403 민주파의 트라시불로스가 그의 추총자들을 이끌고, BC 403년 1월 페레우스에서 크리티아스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고, BC 403년 6월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부활되었다.
40? 히케타스(Hicétas, Ἱκέτας or Ἱκέτης; ca. 400–335전) 전4세기경 그리스 천문학자, 철학자. 시라쿠스 태생으로 360년경에 활동하였다. 천문학자 엨판토스(Ecphantos, Ἔκφαντος)는 그의 제자이다. 이 둘은 태양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다.
399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사망 - (당시 플라톤 28살: 플라톤이 20세 때 소크라테스를 만났다면, 소씨는 62살로 활발한 사상을 가질 것이다. 플씨의 젊은 8년의 공부는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죽고 데모크리토스가 30여년을 더 산다. 그러면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를 잘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되네... 플라톤과 동시대를 30여년을 산 셈인데 말이야....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를 잘 알았다고 하고... (45RMG))]
397 투키디데스(Thucydide Θουκυδίδης / Thoukudídês, 전460년경-397) 아테네 정치가 역사가, 아마도 암살당했다.『펠로포네소스 전쟁(histoire de la guerre du Péloponèse)』
396 크세노크라테스(Xénocrate de Chalcédoine, Ξενοκράτης, -396 -314)는 플라톤의 조카(스페우시포스, Speusippe Σπεύσιππος, 전407-전339)에 이어서 셋째 아카데미 학장이다.
387 아카데미아(L’Académie, Attic Greek: Ἀκαδήμεια) 플라톤이 아테네에 세운 철학학교. 기원전 387년경에서 기원전 86년까지 지속되었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 (플라톤 나이 4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6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372 테오프라스토스(Théophraste, Θεόφαστος, 전372-287)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계승자, 초대 리케이온학장(322 à 288) 식물학자, 박물학자. 다방면의 작가, 연금술사.
367 시실리 시라쿠사에서 드니 2세가 드니 1세를 계승하다. [드니, 디오뉘시오스(Denys, Διονύσιος / Dionýsios, 전431-전367) Denys l'Ancien 시라쿠사의 그리스 식민지 참주. / 드니 2세(Denys le Jeune, Dionysios II de Syracuse, 전397-전354) 그리스 식민지 참주. 367년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전354년 암살당했다. ]
365 회의학파의 퓌론(Pyrrhon, Πύρρων 기원전 365-275) (90살)가 태어나다.
30? 아리스톡세노스(Aristoxène de Tarente, Ἀριστόξενος ὀ Ταραντίνος, 전330년 주로 활동 (IVe siècle av. J.-C.) 그리스 소요학파 철학자 반플라톤주의자. 음악과 리듬 이론가.
356 퀴레네 학파의 아리스티포스(Aristippe, 435-356) 사망
356 알렉산드로스, 알렉산더 대왕(Alexandre le Grand, 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 전356-전323)
351 데모스테네스(Démosthène, 384-322) 필립왕 공격(비난) 연설(『Philippique』)
347 플라톤 사망(Platon, 427-347) 향년 80세.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43살이었다, 그러니깐 26년을 플라톤과 사제지간 관계를 맺었다.)
02 플라톤의 작품들
케나다 출신 플라톤 전공자인 브리송(Luc Brisson, 1946)의 견해에 따라,
1) 플라톤의 젊은 시기(전399-390) 작품들(6편) [소크라테스 사후 10년 간]
소 히피아스, 이온, 라케스: 용기에 관하여, 카르미데스, 도덕적 지혜에 관하여, 프로타고라스 에우튀프론: 경건에 관하여
2) 플라톤의 이행기(390-385) 작품들(8편)
고르기아스: 수사학에 관하여, 메논: 덕에 관하여, 소크라테스 변론, 크리톤: 의무에 관하여, 에우튀데모스, 뤼시스, 우정에 관하여, 메넥세노스, 크라튈로스,
3) 플라톤의 성숙기(385-370) (4편)
파이돈: 영혼에 관하여, 향연: 사랑에 관하여, 공화국: 정의에 관하여, 파이드로스: 아름다움에 관하여
4) 만년의 작품들(370-348) (8편)
테아이테토스: 과학에 관하여, 파르메니데스: 이데아들에 관하여, 소피스트: 존재에 관하여, 정치가,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필레보스: 즐거움에 관하여, 법률
* 진작으로 의심되는 대화편들 9편도 있고
* 위작들 6편이 있다고 한다.
* 13편 편지들(3편 정도를 진작이라 한다.) (47QKB)
1.1. ‘안다’: ‘어떻게’, ‘무엇을’
‘안다’에서 단번에 주어져 아는 것은 어떤 지식인의 것이라 보고, 사람들은 학습과 과정을 따라서 ‘따라야 할 방법’도 필요하다. 무엇을 대상으로 삼느냐도 중요하다. 그리고 고대 철학에서 ‘누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인간이겠지. 그렇다고 주체라는 개념을 쓰기에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철학사에서 주체의 개념은 데카르트로부터라고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공유하는 것은, 그 ‘누가’의 실제 담당자는 어쩌면 영혼(psychē)의 능력(la faculté)일 것이고, 이를 대상화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철학자는 그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동방의 참주도 그리스 전통의 신화도 아닌, 행할 줄 아는 인간(영혼)의 진솔한 모습을 찾으려 했다고 보았다. 한편으로 소크라테스에게서 보면, 인간은 안다는 사유의 두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고, 그 두 방식을 하나의 방향에서 사유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노력했을 것이라 했다. 다른 한편 비극 시인들의 측면에서는 산다는 의미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 있는데, 인간들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해결에는 신화의 신들을 끌어들이듯이, 연극에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끌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해결 또는 해소에서 전승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시인들이 했다기보다, 원리를 찾으려는 철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해 보려고 했다.
‘안다’는 물질을 대상으로 삼아 조작하고 조립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대상을 조작할 수 있듯이 인간의 삶도 합당한 길을 조립하듯이 찾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 당시에 인간이 유한하다는 것도 알고, 또한 마치 천구의 동일반복과 완전성만큼이나, 인간의 자기 완전성을 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인간이 필연적으로 어떤 숙명적인 것에 복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소위 말하는 자유를 획득할 수는 없는 것인가? 대상을 조작하고 실행하듯이 인간 자신의 삶도 조립하고 실천에 옮기는 길이 있을까? 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대상의 지식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삶의 지혜도 있다. 두 가지 안다는 것, 대상을 다룬다와 세상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통일성을 찾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고 또한 불합리한 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챘다. 마치 원의 넓이가 사각형의 넓이와 서로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수학사의 난제를 당시에 알았듯이 말이다.
자연에 대해 ‘안다’는 것과 삶에 대해 ‘안다’는 것이 동일하지 않지만, 전자의 인식과 조작, 후자의 앎과 실행 사이의 간격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은 서양철학사의 기나긴 전개과정이기도 하다. 그 시발은 소크라테스시대에서, 그리고 후자의 삶과 앎이 중요하게 제기되었고 또한 난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려 볼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또는 사유방식 상으로 두 가지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같은 지위에 동시에 올려놓아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통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거쳐야 할 것인데, 그 상황이 아테네의 제국화 길이었고, 곧바로 그리스 전체의 패권다툼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28년간 전쟁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 비극들과 어쩌면 불합리의 극복이라는 그리스 철학이 동시에 왕성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사유의 양면성 또는 분할이 서로 걸맞지 않는 불합리에서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유를 넘어서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 불합리를 해결하려는 데, 인식과 제도라는 양면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 도표1 : 두 상반된 방식의 통합은 가능할까?
동방의 사유 | 서방의 사고 | |
이오니아학파 아르케와 질료 | (델로스 동맹) | 엘레아학파 수와 존재 |
아페이론 | 소피스트 | 페라스 |
직관 | (아르카디아) 신화 =>비극 | 체계 |
비의(오르페우스) | 신탁과 현실 | 참주(황제)제도 |
(노마드) 자연권 | 변론(설득)과 논쟁(논리) 민주정 | 통치권 (노모스) |
자연에서? | 시민(=영혼) | 보편체계에서(?) |
(생성, 변화), 운동 | 철학 아카데미아 | 수학 + 논리, (부동) |
* 20세기 세계 대전은 정치경제학적으로 동방과 서방이란 세계관을 낳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양극 체제의 산물로서 북체제와 남체제로 남았다.
* 21세기에는 혁명을 거친 소련과 중국 대 자본 집중화로 이루어진 미국과 서유럽이라는 양극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사이(가운데) 지형들이 여럿 있을 수 있다. 이 두 극 사이에서, 한반도의 양 체제로 분할과 유사하게, 우크라이나가 분할될 것인가는 역사의 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1.2. “안다”, 플라톤의 인식 설명과 그 대상(실재성)
그리스 철학에서 이중성이 있다. 이 이중성을 통합하려 한 것인지, 또는 어느 쪽을 우선으로 할 것인지는 후대 철학의 과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중성는 앞에서 말한 상반된 방식으로부터 나왔을까? 인간 의식에서부터 분열과 통합 또는 발산과 수렴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그 이중성의 기원은 영혼과 신체, 이를 확장하여 노마드와 폴리스, 그리고 우주론으로 확장하여 하늘과 땅(동양식으로 천문과 지리, 산술학적으로 9와 10의 수)의 대비로서 나타날 것이다.
# 도표2: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 불가(佛家), 염처경(念處經), 유가(儒家) 대학(大學)
영 혼 | (벩)순수추억에서 지각으로 | (벩)지각에서 표상을 거쳐 대상화 | 싯달다 | 대학 | ||||
지성: noēsis epistēmē | noēsis | 인식 | Ideas | 이데아들 | 알 수 있는 것들 ta noēta | 법(法) | 정심 (正心) | |
dianoia | 추론 | Objets mathe. | 수학적 대상들 | 심(心) | 성의 (誠意) | |||
감성: doxa | piste | 신념 | Etres vivants | 물체들 | horata 감각적 대상들 aisthēta | 수(受) | 치지 (致知) | |
eikasia | 추측 짐작 | Images Ombre | 그림자들 | 신(身) | 격물 (格物) |
나로서는 이뭣꼬의 안다는 것은 영혼(psychē)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55QKG)
왜 선분의 비유일까? 그 당대에 과학의 미발달로, 상식(공통감관: 5관)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도 마찬가지였고, 주역의 4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각각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리스의 플라톤은 정확성을 찾으려고 수학(기하학)을 동원하였고, 싯달다는 삶의 어려움(고苦, 고독孤獨)을 해결하기 위해 숨 쉬는 것으로부터 확장하였고, 신유학은 12세기에 격물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새로운 과학이 도래하지 못하여 과거의 기표적 해석학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서양은 플라톤의 기하학을 원리로 삼았다가, 근세에서는 산술학+기하학으로 바꾸는 좌표 기하학이 등장하고, 대수학이 들어오게 되고, 곧이어 원과 타원의 미분에서 동역학을 생각하게 되면서, 형상의 원리에서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물리학적 운동(가속도)을 설명하면서, 미적분이 도래하여, 법칙이라는 체계를 세운다. 그리고 칸트는 이 산술적(종합적) 기하학(분석적)을 그 용법들의 자리를 바꾸어 선천적 종합판단이라는 추론적 사고를 정립한다. 그러나 이런 사고의 틀은 열역학과 전자기학, 그리고 비유클리트 기하학과 생물학의 발달로 관계라는 법칙적 체계와 달리 연관의 상호침투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이로서 형이상학이 대상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영혼의 자기변화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철학자는 벩송이었다. ‘안다’는 영혼의 활동 기능이 아니라(원리와 법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능력의 확장과 세분화에서 새로운 창조적 활동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 참조(도표3): 플라톤 폴리테이아, 불가(佛家) 염처경(念處經), 주역(周易) 4상과 8괘, 유가(儒家) 대학(大學)
이데아들 | Ideas | 법(法) | 태양 (太陽) | 건(乾) | 정심 (正心) | 평천하(平天下) : 조화와 정의 |
태(兌) | 치국(治國) : 교환과 소통 | |||||
수학적 대상들 | Objets mathe. | 심(心) | 소양 (少陽) | 이(離) | 성의 (誠意) | 제가(濟家) 아낌(경제) |
진(震) | 수신(修身) : 학습과 수련 | |||||
사물들 | Etres vivants | 수(受) | 소음 (少陰) | 손(巽) | 치지 (致知) | 정심(正心) |
감(坎) | 성의(誠意) | |||||
그림자들 | Images Ombre | 신(身) | 태음 (太陰) | 간(艮) | 격물 (格物) | 치지(致知) |
곤(坤) | 격물(格物) |
(55PLA)
사유의 시작에서 정리된 방식으로 도래에서는 분류는 유사하다. 1에서 2, 2에서 4, 4에서 8로 이어지는 방식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1에서 2, 그리고 3에서 다양성의 기호에 대한 이해의 방식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철학사는 왜 전자의 길이 우선했는가? 내부의 직관에 대한 이해와 설명에 어려움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고대인에게서 사유의 전개의 바탕은 5감관 중에서 눈의 관점이 중요하게 제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분법적 분류를 생각하는 과정은 도표로 보여줄 수 있는 것과 같이 단순한 것은 아니다. 철학사의 2500여년의 서양 철학사의 과정에서 중요철학자들이, 자연에서 기호들(징후든, 증상이든)의 등장에서 보면, 수학과 물리학적 관점을 중요시한 고대철학과 르네상스의 차이든지, 생물학과 심리학의 등장으로 기호들의 실재성을 실증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비슷하게 보이지만, 차히를 통해 서로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1. 행동에 걸 맞는 지혜와 지식
지식은세계를 스스로 들어내는 또는 표명하는 방식들이 있다고 여기고, 이것을 인식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 지식에는 자발성과 자치성이 있을까, 또는 자연의 자발성과 자치성을 본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고대인들은 인간의 인식이 자치성과 자발성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 선택이 있을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 기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면 우선 플라톤의 고르기아스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도표4: 고르기아스편의 도표
실물 -정치 | 그림자–아첨 | ||
영혼 | 사법(정의) | 수사술 | 변증론 |
정치: 입법 | 소피스트술 | 논증술 | |
육체 | 의술 | 요리술 | 의식상태 유지 |
체육술 | 화장술 | 신체 겉모습 |
* 이 설명은 유비적으로 플라톤 폴리테이아편의 선분의 비유와 닮았다. 선분의 비유는 인식을 설명하면서 인식 대상을 정립한다. 여기 고르기아스에서는 이분법을 통해 영혼과 신체를 대립시키고 영혼의 영역에서는 폴리스사회에서 요구되는 제도와 그에 맞게 실천할 수 있는 언술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제도 속에서 현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분류해 보아야할 것이다. 소피스테스편에서는 행동하는 지혜의 측면을 찾아냈을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술을 사용한다고 여기지만, 아래에서 드러나지 않은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한편 스스로 자신을 가꾸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재배(자기지배)와 교양이 있을 수 있고, 다른 한편 혼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자선과 자비와 같은 선물의 제공도 있을 것이다. ‘선물’을 언급하였는데, 이는 영혼의 산파술에 의해 덕을 실행하는 쪽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전통 속에서(dedans) 활동하는 현자로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꺽쇠([])로 보여주듯이 여러 부분이 암시적으로 들어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소은 박홍규가 말하듯이 플라톤의 총체적 사유에는 다른 대화편들과 연관 속에서 탐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도표5: 소피스테스
획 득 술 | 젊은이 사냥 (소피스트술) | ||||||
의견 교육 | - | ||||||
보수를 받는 기술 | - | ||||||
개인사냥 (설득) | - | ||||||
발짐승사냥 | - | ||||||
동물사냥 | - | ||||||
사냥술 | -[식물] | [ ‥…채집 ‥… 재배(cultiver), 문화(la culture)] | |||||
선물 | [자애(慈愛), 무상보시, 아가페, ... 포틀래치(Potlatch)] | ||||||
교환 | 덕에 대한 지식 | (소피스트술) | |||||
매매 | 직매술 | 영혼의 양식 | 다른 지식 | ||||
교역술 | 소매술 | 신체의 양식 | |||||
도매술 | 물건(신체)에의해 팜 | ||||||
영혼에 의해 팜 | 뽐내면서 선보이는 기술 | ||||||
훌륭한 앎과배움으로 파는 기술 | (소피스트술) |
* 소피스트들이 획득술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기에 하나의 일반화로 정의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제작술에도 이미지(eidōlon)를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자이다. 그런 ‘인듯한’ 것들은 시뮬라크르들이다. 진리인 이데아를 모방하려는 시뮬라크르와 ‘그럴듯한’ 시뮬라크는 다르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럴듯한 시뮬라크르를 실행하는 소피스트는 추방해야 하고, 아네테의 전통과 진리를 추구하는 소크라테스야 말로 진실한 철학자라는 것이다.
2.2 총체적 사유로서 지혜.
플라톤은 초기 작품들에서 도덕적 행동의 규범들이 지식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개인을 문제 삼고, 그를 폴리스측면에서 제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바꾸어 생각하였을 것이며, 폴리테이아편에서 폴리스 속에서 개인을 다루어보았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제도의 조화와 영혼의 조화를 설명하는데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서, 보다 넓게 우주 속에서 인간을 다루는 티마이오스편을 쓰고, 천문과 지리 사이에 상응관계를 내보인다. 천문의 원리와 지상의 관계들을 아울러 법칙화를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나라 건설을 제도 속에서 마련하고자 법률편을 썼다고 한다.
벩송은 플라톤의 사유가 분할의 기준을 마련하려는 작업으로서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하며, 그럼에도 분할의 근본이유에 대해 깊이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상식에 기반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고나서 관계의 동시성이 성립하는 것은 갈릴레이 이후이며, 이런 상대성의 성립으로부터 데카르트가 영혼과 신체의 이원성을 제안하게 된다. 이로서 고대의 양자의 연대성(une solidarité)으로서 상응연관은 대수학의 도입으로 두 실체의 대응관계로 설명하며 법칙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상식을 넘어서 법칙을 다루는 양식(le bon sens)을 제시할 것이며, 이어서 대수적으로 연산하는 기능(함수)를 제시할 것이다.
플라톤은 영혼과 신체 또는 자연과 제도라는 이분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둘 사이를 계속해서 분할하여 분류하는 것으로 삶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을 알았을 것이다. 전쟁을 겪고, 아테네의 몰락을 보면서, 게다가 민주정이 자기 스승에게 사약을 주었다는 추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해야 할 것인가는 평생의 과제였을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대화편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데미우르고스를 생산자, 제작자, 우주의 생성자로서 해석하는 방식을 벗어나 제도 속에서 위상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데미우르고스는 지성을 지닌 지혜의 철학자로 본다면, 폴리테이아편에서 일반적으로 지혜 용기 절제의 조화로서 정의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서 영혼의 자기 형성과정 또는 운동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은 근세철학자들에서 이원성 이래로 평행론의 등장에서 볼 수 있지만, 플라톤 자신이 영혼의 이중성을 비유로서 설명했다는 데 근거를 둔다.
또한 소피스트편의 실천가의 두 부류를 설명하는 들뢰즈의 견해로서, 모방자 시뮬라크르와 생성자 시뮬라크르라는 관점, 즉 상층과 심층의 두 관점으로 분류를 따라가면 아래와 같은 도표로 볼 수도 있다. 벩송이 의식, 기억, 생명의 공연성을 말하고 난 뒤, 따라야 할 방법에서는 항상 흐름 속에(dedans) 자리잡고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산다는 것이 먼저이고 그다음에 철학한다(Primum vivere, deinde philosophari)”이다. 그 흐름 안에서 산다는 것이 존재(l’être) 문제가 아니라 현존(l’existence)이며, 실재성이다. 안에서 안다는 것, 그것은 지식의 표상 인식과 달리 실천의 행위가 재인식하며 안다는 점에서 실증되어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아래 도표는 제도와 연관하여 영혼이 자유를 실현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그 현존자가 자기실현으로서 자유를 실현하는가 하는 문제는 달리 생각할 문제일 것이다.
# 도표 6: 제도(폴리스) 속에서 현존의 상태들의 연관들
조화 (하르 모니 아 = 영혼) | 폴리테이아 (도시국가) | 티마이오스 (우주생성론) | 노모이 (공동체) | 소피스트 앎 → 실행 | 대학(大學) | |
도시 국가 | 선의 이데아 | <통치> 새로운 국가 | 상징 (선의 이데아) | 평천하(平天下): 조화와 정의 | ||
지혜 | 용기 | 이데아 | 입법 | 시뮬라크르↓ | 치국(治國): 교환과 소통 제가(濟家): 아낌(경제) | |
데미우르고스 | 현존자들 | 수신(修身): 학습과 수련 | ||||
절제 | 교육(시민) | |||||
효라(χώρα) | 시뮬라크르↑ | 정심(正心) | ||||
성의(誠意) | ||||||
<생산> | 아페이론 방황 원인 | [노예] 이방인 코스모폴리탄 | 생성 | 치지(致知) | ||
격물(格物) |
(55QKG)
3.1. 플라톤 사유의 철학사적 영향
플라톤의 사유에서 선분의 비유는 지식의 문제제기로서 기초적인 것일 뿐이다. 그 속의 함의를 다양하게 전개해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서양철학사가 거의 2천년 동안 이런 공시태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인도나 동양에서도 세 가지 분류와 네 가지 분류 사이는 연관을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도 여전하다. 지혜가 필요하다.
각자의 위치, 또는 삶에서 자기의 위상에 대한 재인식으로 즐겁고 현명하게 사는 방식은 다시 인식하는 끊임없는노력에 있을 것이다. 삶에서 자아 노력으로 학이습지든, 돈수돈수든, 인식-재인식이든 노력하면서 자기완성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 셀 라비(C’est la vie)
# 도표7: 철학사적으로 본 공시태의 위상적 도표 (55PMF)
소크라테스 | 플라톤 | 플로티노스 | 스피노자 | 벩송 | 박홍규 | 들뢰즈 | |
<지행합일> | <유명론> | 환희(빛, 샘) | (상징) | 모순 | (단일성) | ||
선 이데아 | 일자(합일) | 고착 | 단어 | 파라노이아 | |||
상층 | 플라톤 | 이데아 | 누스 | 수동 양태들 | 지성 공간 | 정지 | 개별자 |
크세노폰 | 도형들 | 세계영혼 | 능동 양태들 | 사고 | 미분화 | ||
<틈> | [메가라] | <데미우르> | 두 속성 | 현존자들 | (시뮬라) | ||
심층 | 크리시포스 | 코라 | 개별영혼 | 여러 속성들 | 사유 | 세분화 | |
안티스테네 | 이페이론 | 질료 | 자연 | 직관 시간 | 운동 | 무차별 | |
(어둠) | “성운” | 스키조 | |||||
<행지합일> | <실재론> | 영원 | 흐름 | 영혼 | 다양체 |
(55PMF)
3.2. 이중화: 노모스 대 노마드, 체계(코드) 대 다양체(탈코드)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제도 속에서 인간이 행위 할 때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에 영향을 입지 않는 영역을 확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필연성에 매이지 않는 영혼의 자유를 구하려 했지만, 필연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갔다고 볼 수 있다. 이 방향으로 선택은 플라톤의 장점이자, 서양철학사의 긴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필연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필연성에 대해 임의적 자유(le libre arbitre)를 실행하는 것인데, 벩송이 보기에 우연성을 인정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의자유란 비극의 해소를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의 개입과 같은 방식이라 보고, 플라톤이 대화편에서 여러 신화를 끌어들이는 이유와 같다고 보았다.
플라톤에는 총체적 사유가 있다고 한다. 그 사유에서 분류의 방식이라기보다 변화과정 또는 생성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유를 전개한 첫 철학자가 플로티노스라고 벩송은 본다. 플라톤의 정치사상을 이데아의 이상을 추구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할 것이지만, 총체적 자료들에 대한 고민을 한 첫 철학자로서 본다면, 필연성을 벗어나는 자유를 찾기 위해 자료들을 전부 다루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자료들 중에 지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도 있지만, 벩송의 견해에 따르면, 그 점에서는 그도 직관을 통해서는 ‘뭣’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존에 자리한 흐름들 안에서 위상들 사이에 경계를 그을 수 없지만, 기호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경계가 긋는 것은 지성의 작업일 것이다. 이런 경계 작업에 의해 위격들이 여럿 있을 수 있는 것도 지성의 기능(la fonction)이며, 의미론이 해석하는 것들이다. 위격들을 벤다이아 그램으로 표시하면, 요소들의 4승에 이르면 지성으로 해석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주역에서도 3승까지를 분류하고 4승의 분류를 만들지 않았다. 인간 지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리라.
흐름의 과정에 경계를 지워서 분류하는 방식에서 지성은 네 가지를 기본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동서양이 유사하다. 네 가지의 위격들을 해석하면서, 양 극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지성이다. 그 양극은 실재하는 것인가는 형이상학의 난제로서 여전히 남아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학처럼 양극의 위치에 동시에 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불가능하다. 그 둘 사이의 조화라는 것도 사변적으로 동시성을 설명하려 하는 것일 뿐이다. 이 둘 사이의 선택이 현실에서 인간들의 삶이다. 어떤 쪽에 있건 간에 다른 쪽에 대해 인정 또는 현실화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서양은 한쪽을 무화시키고, 그 허무의 극복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지성의 오만이라 여긴다.
대학(大學)의 마지막 10장에는 “혈구지도(絜矩之道)”라는 말이 있다. 곧은 자(척尺)가 아니라 굽은 자로 재는 방법이라 하는데, 비유적으로 자기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 자기 인식방법으로 타의 것을 재단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삶에는 하나의 잣대로 다른 것을 재고 자르지 말자는 것이다. 지식 없는 지혜가 (무)질서를 만들듯이, 지혜없는 지식이 오만과 편견을 낳는다. 무질서도 없고, 하나의 질서만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 지식을 통해 교대, 상부상조, 순환 등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개인은 노력의 과정을 걷는다는 것이 필연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이 교훈이 있다. 우여곡절(la sinuosité)을 겪는 과정에서, 필연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솟아나는 지점에서 자유를 맛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인간을 벩송은 별종(anomalie)이라 부른다.
# 도표 8: 통시적 흐름의 위상들
지속(la durée): 흐름(le flux), 과정(le procès), 긴 드라마(le long drame)= 삶(la vie)
프랑스 정치위상: 극좌파를 검은색, 좌파로부터 우파로 경향을 색깔별로 보면,
검은색 | 빨강 | 주황 | 노랑 | 파랑 | 백색 | |
플라톤 | 아페이론 | 그림자 | 사물(신체, 물체) | 수학적 형상 | 이데아들 | 페라스 |
아리스 | 질료인 | 효과인 | 형상인 | 목적인 | 원동자 | |
플로티 | [자연] | 물체(신체) | 개인 영혼 | 세계 영혼 | 누스 | [일자] |
데카르 | 영혼 | 신체 | 물체(자연학) | 정신 | [신] | |
스피노 | 신,자연 | 영혼 | 사유와 운동 | 능산적 자연 | 소산적 자연 | |
라이프 | 물체 | 생명체 | 인간 | 우주 | 모나드 | |
벩송 | 지속 | 심층자아(Moi) | 표면자아(moi) | 사회자아(soi) | 신비자아(Soi) | [보살] |
박홍규 | 아페이론 | 운동→ ← 정지 | 페라스 | |||
들뢰즈 | 무권위 | 리좀(인민) | 노마드(용출선) | 국가기구 | 제국 |
(55PLD)
* 검은 색과 백색으로 양 끝을 나눈 것은 셸링과 헤겔에 대한 평에서 가져온 것이다. 셸링은 우주가 검다는 점에서, 헤겔은 절대자의 완전함이 빛과 같다는 의미로 볼 경우이다. 두 철학자의 사유의 전개는 도표에 넣지 않았던 것은, 나로서는 그쪽 전공도 아니라서, 여기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과를 원인에 대입시키지 않고, 진솔하게 생성 과정을 탐구하면, 생명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오랜 노력이 죽 이어져 왔으며, 수많은 갈래 길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느끼게 한다. 여기 위의 도표는 단지 상징화된 용어들일 뿐이다.
플라톤의 사유에는 총체적인 자료에 대한 성찰이 있어서, 역지사지(易地思之), 혈구지도(絜矩之道)가 있다. 그럼에도 서양사상사는 플라톤주의에 빠져서, 상층이 선하고 심층은 악이며, 상층을 존재로 두고 심층은 무화(無化)하였다. 이로써 허무주의 극복, 악의 교화 등이 이어져 왔다. 내로남불이라는 상층의 지성(이성, 오성)의 오만은 탐진치에 빠진 것과 같다. 달리 생각하기, 같잖은 이야기의 중요성은 상층의 하향과 심층의 상향이 서로 침투하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음과 양의 교대이며, 불교는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 둘의 사고에서는 현존의 실재성에 대한 깊이와 강도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심층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제반 과학들이 발달한 19세기 중반 이후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서는 0과1의 교대와 호환이 있고 상호 소통하는 것이다. 이 소통에서 다양체의 활동이 무엇이 나올 것인지는 이제 겨우 70여년을 지났으나 아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민은 느끼고 있으나, 오랜 습관과 제도의 관습에서 벗어나기에는,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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