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1987년
박준(1983∼)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飯店)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https://youtu.be/wfnFtFOmU0c?si=_EbiQsu6dyS1vVIC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 윤 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죽음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아들로
나는 숨을 마쳤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 범치 못할 총자루
내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옹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믈린 탑까지 밀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우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어리라.
그러나
나의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로움을 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나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나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위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시베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소위 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1950년 8월 그믐 광주(廣州) 산곡(山谷)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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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김주대
아버지만 당신의 생애를 모를 뿐
우리는 아버지의 삼개월 길면 일년을
모두 알고 있다
누이는 설거지통에다가도 국그릇에다가도
눈물을 찔끔 거렸고
눈물이 날려고 하면 어머니는
아이구 더봐라 아이구 더봐라 하며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 놓고 했다
아직은 아버지가 눈치 채지 못했으니
모두들 목구멍에다가 잔뜩 울음을 올려놓고도
내뱉지는 않았다
병원 출입이 잦아지면서 어느 때보다
무표정해진 아버지 얼굴에는
숨차게 걸어온 오십구 년 세월이
가족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전에 없이 친절한 가족들의 태도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이미
가족을 위해
살아온 생애가 그렇듯 애써 태연한 건지도
여름내 아버지 머리맡에 쌓이는
수많은 불교서적들에서
내가 그걸 눈치 챌 무렵
어머니가 열어 놓은 창 밖에는
긴 장마가 끝나가고 있었다
- 김주대, 『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시작,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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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치기 위해 내리고
나는 슬프기 위해 웃는다
송용탁
맨몸의 지렁이를 물고 온 아스팔트
길에도 앙 다문 입술이 선명하다
비의 분절성은 늘 아프고 길어서
뱉은 말들의 귀로를 따라 걷게 된다
미소가 아름다워지기 전
입가의 근육이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나의 질문은 급히 뜨거워졌다가
답을 듣기도 전에 식어버리니까
세상 지루한 것들이 시작되면
멈추기 위한 동작은 개연성을 묻는다
내가 슬프다고 말한 만큼
슬픔은 슬픔 나름대로의 가능성을 믿겠지
그러니까 비가 오지 않는 영토를 미지라고 부르자
그러니까 슬픔이 없는 사람은 멀어진 행간이라고 부르자
서로를 물고 있는 지렁이와 아스팔트
이 투명한 문장의 외곽에서 찾아오는 것은
반복이었다
지나치게 흐르고 있다
첨벙첨벙, 부서지는 민낯
바닥이 한참을 떠든다
외롭게 살아온 건 나인데
장화도 없이
섹스 후 말 없는 애인처럼
섹스 후 말 없는 속옷처럼
지렁이와 아스팔트는 어디까지 흘러가는 걸까
결국 비를 데려온 첫 문장에 대해서
미완으로 끝나도록,
도무지 슬픔이 죽지 않는 이유,가 더 단단해지는 이유를
울게 되겠지
나는 지렁이도 아스팔트도 키우지 않기 때문에
쓰러진 비의 꼬리를 밟아보자
그것 또한 흔한 사건이라고
미소의 무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의무이니까
#시감상
재석이 삼촌
박성빈
왼손 하나뿐이지만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울 어무이가 옛날부터 놀다가 장갑 한 짝만 잃아뿌고 와도
퍼뜩 가서 찾아올 때까지는 집에 오지도 말라꼬 그랬는데
전쟁에 나가 싸우다가 팔을 하나 잃아뿠다 아입니까?
그르이 어무이가 분명히 팔 찾아오라칼낀데
겁이 나서 집에 갈 수가 있어야지예.
그래서 내 억수로 좋은 생각을 했다 아입니까?
손 잃아뿐 걸 어무이한테 안 들키야 되겠다.
왼손 하나로 두 손 있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아입니까.
팔 하나가 없는 재석이 삼촌
나라에 팔을 바친 재석이 삼촌
항상 웃는 나무 같은 재석이 삼촌
한쪽 팔을 휘휘 저으며 논으로 일 나가는
고맙고도 고마운
재석이 삼촌
제24회 (2020년) 대한민국 보훈콘텐츠 공모전 문예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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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박종현
다들 괜찮다 위로하기에
정말 괜찮아진 줄 알았어
삶은 박살이 나고 있었는데
참 슬프게
그 말을 한 그누구도
그 말에 책임지는 사람 없었어
듣기 편한 거짓말이더라
괜찮다는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