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안과진료를 받는 날.
서울대학교병원 안과진료를 마치고 나니 9시30분.
아산병원의 진료시간까지 5시간이 남기에 서울대학병원 맞은편의 창경궁을 찾았다.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상왕이 되어 물러난 아버지 태종이 머무를 집으로 창덕궁 동쪽에 수강궁을 지었다. 이후 제9대 임금인 성종은 1483년에 수강궁을 다시 크게 지어 할머니, 어머니, 작은어머니를 위한 궁궐을 짓고 이름을 창경궁이라고 했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 창덕궁 등과 함께 불에 탔다가 광해군 때 다시 세워졌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짓는 일을 되풀이했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이 복원되지 않아 광해군 때 다시 지은 창덕궁이 정궁(임금이 거주하면서 정사를 담당하는 궁궐)의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창덕궁에 붙어 있던 창경궁에서도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TV 역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장희빈이 생활했던 취선당이 창경궁에 있었고, 영조의 아들인 사도 세자는 창경궁 안뜰에 놓인 뒤주 속에서 8일이나 갇혀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창경궁은 일제의 통치를 받으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일제는 창경궁에 일본식 건물과 정자를 짓고 곳곳에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를 심었으며, 창경궁 전체를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만들었다. 또한 창경궁 안의 높은 곳에 일본식 건물을 지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이름을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해 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흙을 파내어 큰 길을 냈다.
뒤쪽계단으로 올라가면 후원(왕실정원)과 창덕궁으로 연결이 된다.
계단위 산책로
창경궁을 둘러보고 통명전 계단 위로 올라가서 창덕궁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