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장
소발의 첫 번째 말
(찬송 569장, 구찬송가 442장)
2020-7-15, 수
맥락과 의미
앞서 두 친구는 욥에게 이 불행을 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욥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말했습니다(4:12). 빌닷의 선조의 지혜와 자연계의 질서를 통해 말했습니다(8:8-19). 그들은 욥을 설득시키지 못합니다. 소발이 바통을 이어
받습니다. 더 강하게 말합니다.
1. 하나님의 벌하심은 욥의 죄보다 가볍다 (11:1-6)
소발은 욥이 “말이 많은 사람” “입이 부푼 사람”이라고 몰아 세웁니다 말합니다. 욥이 말이 많기 때문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을 암암리에 전제하고서 하는 말입니다(참조. 잠 10:19). “내
도(가르침)는 깨끗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정결하다”고 말했다고 몰아 붙입니다(4절).
사실은 욥은 그 정도까지는 말하지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나의 가르침”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신명기
32:2)에 대해 말합니다. 가르침은 지혜자가 남을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참언 16:21,23). 욥은 그냥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순전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10:20,21,22). 욥은 자신은 몰랐지만 그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그를 평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순전한” 욥, 1:8, 2:3).
소말은 욥이 교만하게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구합니다(4-5절). 욥이 고난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가 받는 벌은 그의 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6절).
2.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다 (11:7-11)
욥은 9-10장에서 하나님은 질서뿐 아니라
무질서를 창조하시며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9:10). 소발은 욥의 말을 받아서 하나님의 지혜는 “오묘” 하다고 합니다(11:6). 하나님의 오묘한 일의 것의 크기는 땅보다
길도 바다보다 넓습니다. 하나님께서 잡아 가두시면 사람이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크신 하나님께서는 허망하고 악한 자를 다 보고 계신다고 합니다.
3. 회개하라 (11:12-20)
소발은 욥에게 들나귀 새끼처럼 멋대로 인생을 살지 말라고 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 그 분을
향하여 손을 들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죄를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면
흠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치로부터 벗어나 얼굴을 들며 명예를 회복할 것입니다(15절). 앞에서 욥이 자신이 죄가 없어도 하나님이 그를 억누르셔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신다고 한 말(10:15)에 대해 비판한 말입니다. 욥이 회개하면 그가 당하는 고난은 역전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겪는 고난은 이미 흘러간 물처럼 잊혀질 것이고 그의 생명은 대낮처럼 밝게 될 것입니다. 희망 가운데서
안전하게 살 것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으리라고 합니다. 욥은
풍성하게 되어서 심지어 많은 사람이 욥에게 은혜를 구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19절).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어둠 가운데서 도망할 곳도 찾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유일한 소망은 죽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소발은 앞서 욥이 했던 마지막 말을 반박하며 자기 말을 끝냅니다)11:20). 욥은 자신이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평안하게 내버려 달라고 했습니다(10:18-22). 소발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절망가운데 계속 있을 것이라고 욥을 비판합니다.
요약-욥의 세 친구와 욥의 차이: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소발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으로서 다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욥이 고난을 당한 것은 죄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4-11장까지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욥에게 같은 말을 합니다.
엘리바스는 부드럽게 말을 시작하면서 욥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4-5장). 욥도 부드럽게 변호했습니다(6-7장).
빌닷은 선조의 지혜와 자연계의 질서가 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알 수 있다는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욥의 고난에 대해서도 그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적했습니다(8장).
그에 대하여 욥이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와 흑암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욥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변호합니다.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9-10장).
그러자 소발은 욥을 “입이 부푼 사람”이라고 부르고 욥의 말을 “네 자랑하는 말”로 평가하고(11:2) 허망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들나귀 새끼에 비교하며(11:11-12)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11:20).
여기에서 욥과 세 친구의 관계는 더 이상 친구라고 할 수 없고 사이가 완전히 갈라진
것을 봅니다. 세 친구는 욥의 고난을 듣고서 찾아왔습니다. 처음
7일 동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의 고통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화가 전개되면서 그들의 생각이 다른 점이 더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어떻게 일하시는가?” 이 생각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고통은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라는 관점을 고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사람이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자기들에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해의 틀에 심지어 하나님까지
가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잘못입니다. 이것은 대화가
진행되면서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42장에서 하나님은 친구들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욥이 그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데에서 해결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욥의 세 친구와 같은 모습은 우리의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슬픔을 그 사람의 죄로 전제하고서 대하거나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시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시적으로 말을 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을 자기의 이해에 가두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일뿐 아니라 사람 사이도 갈라놓는 큰 죄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태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욥뿐 아니라 세 친구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려고 42장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십니다. 쉬운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고통을
지나면서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고통가운데 인내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묻고 인내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욥기를 길게 써 주신 것
같습니다. 읽어도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욥기를 인내를 가지고 읽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돌아보고, 힘든 성도와 이웃에 대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욥의 친구와 같은 나의 모습이 욥기의 말씀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하며 성경을
읽읍시다. 바뀌기를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어갑니다.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하기 보다 침묵하고 있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을 줍니다. 조용히 기도하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