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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시작된 영농철. 마을 앞 논이나 밭에는 여지없이 주민들의 일손이 바쁘고 막대 하나 세우는데도 정성을 쏟는다. 오전시간에 찾은 세산1리, 용운리의 풍경은 새롭다. 경지정리가 다 된 논에 나무를 세우는가 하면 군데군데 구덩이를 파는 모습을 보며 어림짐작은 하면서도 일에 여념이 없는 한 주민에게 물었다.
"어디 벼농사가 수지나 맞습니끼? 거기에다 이제는 매상도 안받는다지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은 포도를 심는거요." 역시 아무리 이론에 밝은 사람일지라도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농군의 경험적 선택에는 못미친다 싶다. 논을 포도밭으로 전환했다.
최근 몇 년들어 포도시세 등 과수가격이 높았던 것이 농민들의 선택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듯 과감한 작목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곳이기에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옥천포도의 중심지로 용운리를 손꼽는구나 싶다. 올해 논을 포도밭으로 전환하는 가구수는 총 40여호. 1백10여가구가 포도 작목반으로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 그 절반 가량이 포도재배를 논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용운리 어디를 가도 모두 포도밭이다. 1백10여가구가 이루고 있는 이 마을 포도작목반(회장 정달영)의 소득은 연간 10억원에 이른다. 가히 포도가 마을의 소득작목이라는 점이 수치로 확인되는 순간. 충북도내에서도 가장 많은 농가로 형성된 작목반일 뿐더러 생산에서부터 서울 가락동 시장 등에 판매하는 부분에까지 모범을 보이는 모범작목반으로 꼽힌다. 포도로 인한 소득이 많은 만큼 그동안 주민들의 애환도 포도송이 속에 담겨져 있다.
마을 전체 1백49가구 가운데 1백10여가구가 포도재배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포도재배기술 또한 군내에서도 어느 마을 못지 않게 선진적이다. 현재 60여가구가 하우스 재배로 포도를 조기에 출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용운리에서의 포도재배 역사는 군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
6.25 전쟁이 막 끝났을 무려 현재 용운리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정종택(83) 회장을 비롯, 정종덕씨와 이치종씨가 이 마을에 포도를 들여온 장본인. 당시로서는 포도를 처음보았던 때인지라 생소하기도 했거니와 소득작목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으나 몇 년 뒤 그것이 모태가 되어 옥천군의 특산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
그러다 보니 자연 포도작목반이 형성되었고 작목반의 역사 또한 수십년에 이르게 되었다. 전국에서 유명한 포도주산지인 옥천에서도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동이면 용운리. 모두 1백49호가 탁군동, 천수동, 용암동, 오가동 등 4개 자연마을에 제각각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가구수로 보아 동이면 소재지인 평촌리 보다도 규모가 더 큰 면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용운리가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전. 하동정씨인 정종택 노인회장의 14대조 정유인 할아버지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지금은 불과 13가구만이 남아 있는 오가동이 첫마을이다.
각 자연마을 마다에는 수십가구가 같은 성씨를 이루며 살고 있는 문중은 없으나 용암동에는 전주이씨, 탁군동에는 연일정씨와 하동정씨, 천수동에는 연흥민씨가 그 중 가장 많은 가구를 이룬다. 뭐니뭐니해도 용운의 자랑거리는 젊은이들의 의욕과 마을어른들의 경륜이 어우러져 경로사상이 높은 점. 3년전 도내에서도 처음으로 용운리에 마을자랑비가 세워질 만큼 자랑거리를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 걸맞게 군으로부터 도덕성회복 시범마을로 지정되었다.
그만큼 모범주민이 많은 탓도 있겠으나 마을어른들로부터 체계적인 효행, 예절교육으로 어른들을 모실 줄 아는 고장이라는 자부심이 마을주민들에게 뿌리를 내린 결과였다. 이와 함께 각종 표창도 잦은 마을이다 보니 지난해에는 황해인 부녀회장이 새마을훈장 협동장을 수상한 비롯, 정무영(46)씨는 그동안 4대가 한집에 살면서도 큰소리 한번 안나고 화목하게 살아온 집안으로 주민들의 눈길을 받고 있는 한편 농사일에서도 선진적인 농가로 농협중앙회에서 수여한 '새농민상'을 받기도 했다.
주소득작목인 포도 이외에 최근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또 있다. 민경열씨를 주축으로 4가구에서 재배하고 있는 딸기 조기재배. 이중 하우스를 설치하여 수박재배를 하고 있는 이들은 한겨울인 1월부터 딸기를 출하, 세산리 딸기의 진가를 높여주고 있다. 거주하는 주민들이 많은 한편 타지에서 활약하는 출향인들의 수도 많다.
전 도교육청 중등교직과장인 임순재씨를 비롯, 박희택(서울 거주)씨, 김영식(농촌지도소 동이농민상담 소장)씨, 민윤기(만수당한약방)씨, 이현종(옥천고 교사)씨, 임준호(대전 거주)씨, 이규대(대전)씨, 정범기(옥천읍 호남전기(주))씨, 정찬영씨, 정보영(서울)씨, 연창호(삼양초교 교감)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중 임순재씨 등이 마을발전에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편 많은 출향인들과의 유대를 기대하고 있다.
마을문고 운영에 있어서도 모범적인 용운리라도 숙원사업이 없을 수는 없다. 자연마을이 네 개로 나누어져 있다 보니 우선 마을안길 포장이 가장 큰 문제. 진입로가 길다 보니 마을안길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국도 4호선이 지나 위험요소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도 큰 문제. 그나마 동이지서에서 이곳 사고위험지에 대한 예방차원에서 관심을 쏟고 있어 주민들이 고마워하고 있다. 옛부터 세산을 거쳐 평산-매화리로 과거를 보러 다녔다는 곳. 마을 뒷산인 도덕산의 정기를 받아 마을이 화평하고 소득이 높은 모범마을로 발전했다는 정종택 노인회장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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