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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옥천군향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곽봉호
안남면 지수1리 모사마을의 아낙네들은 1년 내내 쉴틈이없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쉴틈이 있어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 잡아서 일을 만드는 한편 소득증대를 꾀하는 분위기가 일반화되어 있다.
"겨울에 노는게 뭐예요? 나는 지금 50평생을 넘게 살도록 봄이면 나물캐서 팔고, 여름에는 농사짓고, 가을.겨울이면 달래 심어 대전에다 내다 팔았어요. 지금도 밭 한켠에 달래 심어놨어요. 여기서는 나물 팔아서 자식들 다 갈쳤어요"
안남면 소재지를 조금 지난 연주교 쯤에서 우연히 만나 차를 태워준 모산사는 한 아낙네의 자식키운 자랑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모산에 거주하고 있는 것도 징조다(?) 싶었지만 그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모산의 얘기가 첫인상을 좋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진작부터 포장되었거나 올해 포장을 완료한 마을진입로를 지나 굽이 굽이 마을 안길까지 깨끗이 포장된 것을 보며 마을에 대한 인상을 좋게 가질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모산가는 길에서 만난 아낙네의 말처럼 마을에서 듣는 얘기 또한 '우리마을에 자랑할 것이 어디있어' 하면서도 줄줄이 마을주민끼리 단합 잘된다는 자랑이 대부분이다.
올해 모은 공병으로 이미 3만원의 수입을 얻었고 책 등을 팔아 4만원을 부녀회 기금으로 적립했다. 지금 순간에도 부녀회원들이 분리수거해 모아놓은 재활용품이나 폐품들은 쌓여가고.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다름아닌 주영춘(43) 부녀회장임은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마을주민들로부터 김영숙 이장과 더불어 주영춘 부녀회장에 대한 칭찬이 안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신망을 받고 있는 주 부녀회장은 올해가 부녀회장 경력 4년째로 모산마을을 안남면 내에서도 드문 부채없는 마을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부녀자 중 한사람이다.
친정이 대전시 중동으로 어린나이인 21살때 이곳으로 시집와서 보니 '길에 깔려 있는 것이 모두 돈'으로 보이더란다. 친정어머니가 식품가게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설명을 하는 주 부녀회장은 이때부터 나물을 캔 후 삶아 대전역 반짝시장으로 장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잣집 며느리가 그런다고 흉도 되었건만 마을 아낙네 한 두명이 같이 나가다보니 어느덧 지천에서 나는 나물을 돈으로 바꾸는 재미가 쌓여 자연스레 대부분의 아낙네들이 이 짭짤한 장사에 나서게 되었다.
나물 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다슬기도 잡아다 파는 등 1년이면 4~5백만원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모아졌다는 사실을 회고하며 마을을 일으키는데 부녀자의 힘이 컸음을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게 되었다. 당시 다섯군데에 이르던 마을내의 술집도 이들 부녀자들의 노력으로 모두 없앴다는 것이 당시 산업계장과 부면장을 역임했던 현 정구훈 면장의 증언이고 보면 이들의 노력은 이 대목에서 더욱 빛난다.
현재 모산과 진벌 두 자연마을에 54가구, 160여명이 살고 있는데 한집에 일이 있거나 잔치가 있을 경우 온 마을일이 돼버리는 것이 전통으로 뿌리내렸을 만큼 주민 의식속에는 한가족같은 친밀감이 감돈다. 올해는 지수1리 2개 자연마을에 각각 1개동씩의 경로당겸 마을회관이 갖춰져 주민들을 기쁘게 했는데 모산의 경우 지난 1월부터 시간있을 때마다 기술적인 공사를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모두 부역에 나서 공사기간은 길었건만(8월준공) 4백만원의 적은 지원금만 가지고 자부담 약 1천만원을 들여 22.5평형 건물을 깨끗하게 완공시켰다.
누가 뭐라해도 주민들의 땀과 노력이 벽돌 한장 한장에 깃들어 있는 경로당이었다. 그만큼 마을노인들이 고마워한 것은 당연한 이치. 이와 함께 진벌에도 투표소 겸해서 새경로당을 지었다. 진벌에 사는 손영근씨와 육씨문중에서 대지를 희사해 얻을 수 있었던 결실이었다. 그런만큼 출향인과의 연결도 극히 자연스럽다. 모산의 경우 90년에 출향인들과 마을주민들간의 연결고리를 하는 상조회를 조직, 음력 1월2일에 모여 계를 하고 있는데 마을에 어떤 일만 있으면 객지에서만 약 20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온다.
경로당 준공식에서도 출향인 모임인 모단회 등에서 가구와 TV 등을 기증하는 등 활발한 주민접촉과 함께 박진기(대전시청)씨와 하동욱씨 가족인 하동식.하동철.하동만씨 등의 효행은 주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 마을의 소득작목이라고 해야 특별한 것은 없다. 모산은 고추와 참깨 등을 주로 비탈밭에 경작하고 진벌은 인삼재배가 조금 많다. 인삼은 모두 10가구에서 하고 있는데 진벌의 육동칠씨 부부의 노력은 전 주민들의 본보기가 된다.
이들 부부는 부부가 다 장애인이면서도 정상인들 보다 더욱 노력,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농가로 면내에서도 부지런하기로 손꼽히고 있다. 가구수는 그리 많지 않으나 65세이상 노인은 43명에 이를 정도로 노인층 인구가 많은 반면 마을에 붙박고 살고 있는 젊은이의 수도 다른 마을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30~40세까지의 젊은이가 11명에 이르러 안남면 애향청년회원들 중 1/5을 이 마을에서 차지하고 있다면 적어도 이 마을은 충분한 희망이 있다는 말이 된다. 현재 공사중에 있는 마을 간이상수도의 수량이 적은 것과 모산-진벌간 농로확포장 공사를 숙원으로 안고 있는 점 외에 마을에서는 농촌쓰레기를 줄이는 한편 한데 모아 자체 처리하기 위한 쓰레기처리장 마련을 모색하고 있다.
노소를 막론하고 단합이 잘돼 '면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마을' '결코 큰 인물이 난 곳도 아니고 담배농사는 짓지도 않지만 이웃집 담배수매한다고 수매장까지 따라가 도와주는 곳' '모은 돈은 없어도 부채는 없다는 마을' 등등이 이 마을을 설명하는 수식어일 수는 있어도 '어른들께서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해왔던 전통인지라 마을이 이처럼 좋아졌다'는 설명을 다는데에야 더이상의 얘기가 필요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