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 참가 산우
동문산악회 선후배 산우 31명(17~38회)
2. 산행 기록
큰재(320m) 03:10
국수봉(웅이산, 795m) 04:25
용문산(710m) 05:45
무좌골산(474m) 07:15(아침 요기)
작점고개(340m) 07:45
사기점고개(430m) 09:10
금산(376m) 11:00
추풍령(220m) 11:20
3. 산행 落穗
오늘 20km쯤의 산길이 전체적으로 돌아선 <ㄴ>字 형태인데 남진하다가 난함산 부근을 돌아들며 서진을 한다.
경북 상주의 큰재를 출발한 산길이 국수봉부터는 충북(영동)과 경북(김천)의 도계를 이루며 남서쪽으로 흘러가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 간다는 秋風嶺에 닿는 것이다.
산길이 이른바 醉仙緩步가 계속되는 구간이라지만 국수봉 오르막이 조금 가파르거니와 평소 늦가을 찬바람에 따스한 것을 찾고 싶다는 이유로 醉客橫步를 일삼는 몇몇에게는 만만치 아니한 산길이 될 듯하다.
오랜만의 무박산행이다.
비가 일찍 그친다는 일기예보와 달리 가랑비가 토요일 오후 늦게라도 멈추어 다행이다. 오전 3시쯤 도착한 큰재가 축축한 안개에 젖어있고 별도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하늘이 맞아준다.
2차선 아스팔트길에서 작은 건물을 끼고 바로 국수봉 산길이 시작된다. 젖은 낙옆이 쌓여 뒹구는 산길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민다. 산길이 젖어 조금 미끄럽지만 일단 흙먼지가 풀풀 날리지 않아 좋다.
立冬이 지난 11월은 단풍에 물들은 晩秋의 아늑함도 느끼지만 어디선가 낙엽을 날리는 스산한 바람 불어오고 추적추적 궂은 비까지 내릴 때면 웬지 쓸쓸한 계절인 듯하다.
이럴수록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그립기도 하거니와 이조백자 항아리 같은 달이 뜨기를 기다리고 싶은데 우선 詩 한 줄 떠올리며 젖은 낙엽을 밟아 비탈길을 올라간다.
<11월은 쓸쓸한 달, 흰 항아리 같은 달이 뜨고 잎 진 나무들 사이
배고픈 유령들이 우는 밤
잠은 오지 않고 보고 또 보고 싶어지는 애인아. (중략)
/고성만의 시 11월, 애인에게중에서>
산길 왼쪽으로 상주시 공성면의 야경이 붉게 빛나고 오른쪽 상주시 모동면의 불빛은 띄엄띄엄하다. 산길 오른쪽에서 들짐승인지 날짐승인지 정체를 모를 동물의 괴성이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소리를 듣는 입장도 못마땅하지만 캄캄한 새벽에 이런 소리를 내는 쪽이 더 못마땅한 것 같다.
산길이 전체적으로 완만한 구간이라 하지만 큰재에서 오늘의 최고봉 해발 795m의 국수봉까지는 수직 고도를 450m 이상 높여야 하므로 한 시간 남짓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랜턴 행렬의 선두를 맡은 아우가 속보로 걷는 듯한데 작은 봉우리들을 두어 개 넘어가는 산길이 계속 오르막이라 땀이 흐르고 아직 적응이 덜 된 몸이 오르막에 힘들어 해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낡은 나무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언젠가 이 산길에 계단을 설치하느라 비탈길에서 돌과 통나무를 힘겹게 져 나르고 얻은 적다면 적은 노임을 손에 쥐고 기뻐하였을 일꾼들의 땀과 勞苦를 생각할 때 그냥 걷는 것조차도 마냥 힘들어 한다면 실례가 아니겠는가.
국수봉 바로 아래 봉우리를 지나 10여분쯤 다시 비탈을 오르니 드디어 오늘 산길의 최고점 국수봉 정상이다.
예전의 정상 돌기둥에는 763m의 높이와 움켜쥘 국字와 물 수字가 새겨져 있었는데 뜻밖에도 795m 熊耳山이라는 새 정상석이 서 있다.
지도를 살피면 충북 영동쪽에 웅북리와 상웅, 중웅, 하웅 등 곰과 관련된 마을 지명이 있는데 정상석은 2012년 상주시에서 국가지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세운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물을 움켜쥔다는 <국수>라는 표현이 詩的이기도 하지만 결국 물을 나누는 分水嶺의 의미로 씌여졌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나.
물기에 젖은 가파른 비탈을 내려와 용문산으로 향한다. 선두가 이정표를 잘못 보고 마을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작은 <알바> 소동 끝에 산길을 제대로 찾는데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이 실제 산길의 방향과 조금 일치하지 않는 듯도 하다. 이정표 <용문사>를 <용문산>으로 잘못 읽은 것은 분명 부주의에 의한 불찰이다.
200m쯤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100m 쯤 올라가는 그리 험하지 않은 산길이 작은 봉우리를 두어 개 넘는다.
산길에 스멀거리는 안개와 상주쪽의 야경이 계속 따라오고 어느 사이 가까운 곳 용문산 기도원쪽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새벽 종소리는 산길이 상주시를 벗어나 김천시 구간에 닿은 것을 알려준다. 속리산 북쪽 청화산에서부터 시작된 70km쯤의 상주의 대간길과는 이제 작별인가.
국수봉을 떠난지 한 시간쯤만에 넓찍한 헬기장이 있는 용문산 정상에 닿아 편안한 시간을 갖는다.
예전 이 용문산 정상에서 당시 대간 단장의 제의로 새해의 大運 發福을 비는 박수를 대간팀과 자신 스스로에게 보낸 추억이 떠오른다.
용문산 정상부터 작점고개까지 5km쯤의 산길은 내리막 일변도이고 가끔 오르막이 있더라도 길지 않아 대부분 부드러운 비단길이 펼쳐 진다.
어느 사이 일곱시가 가까와지자 동녘이 조금씩 밝아와 산길이 시나브로 훤해지는데 가랑잎과 마른 솔잎이 등산화에 부드럽게 밟히는 감촉을 즐기며 편안한 걸음을 옮긴다. 숨을 고르게 쉬자니 걷는 것이 즐겁다. 산길 왼편에 검은 막을 둘러친 움막 비슷한 것이 보이는데 듣자니 기도터라는 소식이다.
무좌골산이라는 곳에서 잠시 아침 요기를 하고 마저 내리막길을 내려가자니 앞쪽으로 안개에 싸인 난함산이 가깝게 다가오고 곧 작점고개에 닿는다. 경북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를 아스팔트 도로로 잇는 고개이다.
작점고개가 아마도 새(鳥)로 점을 치는 점포가 있었던 고개인 줄 생각했었는데 이 고개가 충북의 마을 이름을 땄고 새들이 많았거니와 한 때 질좋은 유기 그릇을 생산, 판매하는 점포가 여러 곳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고갯마루에 세워진 정자는 경북에서 세워 경북쪽 마을 이름을 따 능치쉼터라 되어 있으니 兩道의 절묘한 妥協과 競爭의 산물인듯도 하다.
정자에서 충분히 쉰 다음 매여진 리본을 보고 작은 비탈을 따라 산길로 들어 선다. 산길이 곧 시멘트 포장길을 만난다.
답파 시간의 단축을 위해서는 난함산 자락의 시멘트 포장길을 계속 걷는 것이 낫겠지만 산행대장(31회 남하규)이 미리 매어놓은 리본을 따라 대간 마루금을 찾아 걷자니 볼록 솟은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게 되어 조금 숨이 가빠온다.
산허리를 감아돌아 올라가는 시멘트길과 마루금이 두어 번 교차하는 것을 보다가 토목 시설물들이 보이는 곳에서 시멘트길과 작별하고 편안한 산길로 들어선다. 시멘트 포장길을 계속 따라가면 대간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고 통신 시설을 안고 있는 난함산 정상(733m)으로 간다는 소식이다.
산길이 편안하여 조금 속도를 내어보고도 싶지만 피곤해지는 몸에 오히려 발걸음이 늦어지는 듯하다. 안개가 몰려왔다 몰려가고 날씨가 맑아지며 가끔 햇볕도 비쳐오기 시작한다.
임도와 만나는 사기막고개를 지난다. 예전 양질의 사기가 생산되었다는 곳이지만 아무 흔적이 없다.
산길이 낮은 봉우리인 435봉, 486봉을 오르내리는데 예상보다 꽤 시간이 더 걸린다. 요즈음 산중의 날씨가 교란된 것인지 몇 군데 철을 잊은 철없는 진달래와 철쭉이 슬그머니 꽃봉오리를 벌리고 있다. 산중의 전망이 계속 신통치않아 산길이 길어지는 느낌인가.
앞쪽으로 금산의 암봉이 보일 무렵 오른쪽으로 길쭉한 추풍령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왼쪽으로 경부고속도로와 넓은 4번 국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경부선 열차도 달리고 있으리라.
산길이 끝나가는 곳에 금산의 모습이 나타나고 비탈을 내려갔다가 조금 올라가니 발파와 채석 공사로 한쪽 면이 흉하게 절개된 금산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는 절개지 위를 따라 걸으면 훼손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마루금을 따라 말뚝과 밧줄을 설치해 근접 관찰을 제한해 놓은 듯하다.
대간 마루금이 무참하게 훼손되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데 중요한 것은 土木 본연의 정신에 입각한 깔끔한 후속 복구조치일 것이다.
정상까지 오버행이 되도록 발파한 법면을 낙석방지망으로 얼기설기 옭아매 눈가림을 한 것은 볼썽이 사납다. 큰 길을 뚫고 건물을 짓기 위한 돌이 필요해 암봉을 쪼개냈더라도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산비탈의 모습으로 복구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행정의 당위사항이 아닌가.
고속도로 건너 솟은 대간 봉우리 눌의산을 바라보며 금산 비탈을 내려오니 바로 추풍령면의 동네이어서 산중의 자취는 사라지고 아스팔트길들이 교차하고 있어 어느 길이 대간의 연장선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우선 국도 옆에서 추풍령 노래비를 확인하고 바로 옆 감나무에서 잘 익어 떨어진 홍시 몇 알 주워 맛을 본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단박에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주렁주렁 감을 매달고 있는 가로수 감나무들도 다 주인이 있다는 소식이다.
평지처럼 낮아진 고개인 유서 깊은 추풍령은 嶺南과 湖西(충남북)의 경계이자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고 조일전쟁 당시에는 격전지로서 수천명의 의병들이 순절한 충절의 장소이기도 하다.
옛날 선비들이 추풍령을 넘을 경우 科擧에 떨어지는 것이 연상되어 추풍령을 피해 다음 대간구간의 괘방령을 넘었다 하여 추풍령은 벼슬아치들이 넘나들던 官路의 역할을 하고 괘방령은 商路 내지 民路의 역할을 했다던가. 어원은 눌의산과 난함산 사이 추풍마을의 고개라는 뜻이다.
늘 그렇듯이 산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원한 맥주 한 모금 꼴깍꼴깍 목에 들이 붓는 목넘김의 감촉을 즐기며 길었든 짧았든 산길 完踏의 흐뭇함을 즐긴다. 땀 흘린 산행 뒤에 몸이 필요로 하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마시는 것은 소박하고 성실한 산행을 마친 사람의 권리이자 기쁨이고 두어 잔 마셔 조금 橫步가 되어도 그리 탓할 일은 아닌가.
山行은 苦行이라 하였으니 마음의 점이야 찍는둥 마는둥 해도 괜찮고 산행 뒤 모든 것이 맛있기도 하지만 직지사 부근 식당에서 토속 반찬들을 한 상 그득히 차린 훌륭한 밥상을 받는다. 오늘의 좌장 형님께서 아우들을 위해 기꺼이 사시는 밥상엔 더덕구이, 석쇠불고기, 싸리버섯, 취나물, 메뚜기 등 추억의 안주가 풍성하니 술 한 잔의 맛이 더욱 좋다.
五餠二魚의 소박한 풍성함 같이 아우가 형님, 아우에게 고루 따라주는 21년산 위스키를 한 모금 입속에 머금으니 짜릿하고 향긋하다. 이렇게 먹고 마실 것의 풍성함 뒤에는 산행 모임의 좋은 결실을 뒷받침하려는 아름다운 마음씨들이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직지사 앞이니 황악산과 함께 직지사의 이름을 낳은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옛 大師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깊은 뜻이야 모르지만 짐작컨대 누구의 마음 속에라도 깃들어 있을 부처의 마음을 스스로의 손가락으로 직접 가르켜 최소한 진실한 인간이 되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사람 마음이 부처라는 뜻일게다.
좋은 산행 후 좋은 음식까지 먹었으니 앞으로 허위단심의 발걸음에 더욱 힘을 싣고 부처의 마음으로 한두 가지 좋은 일도 하여야 될 듯하다.
혼곤한 잠에 빠져 서울로 돌아온다.
章
2015. 11.
(사기점고개)
첫댓글 남령의 멋진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