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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수가 천왕여래를 다시 만나다
문수사리는 뜻을 일으키자마자 광명당과 함께 철위산 꼭대기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곧 천왕여래 앞에 나아가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는 한쪽에 물러나서 합장하고 공손히 섰으며,
시방세계의 여러 천자 등도 또한 그와 같이 하였다.
4.1. 문수의 의문
문수사리가 천왕불께 여쭈었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모두 덕의 근본을 심고 깊고 미묘한 법을 닦았다면 의심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법기(法器)를 이루고 나면 일체가 은혜를 입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큰 성인을 보면 덕이 용상(龍象)보다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 큰 성인께서 이미 함께 모이셨는데 저는 밖에 있으면서 수(數)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그와 같은 깊고 미묘한 법의 이치들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의(離意)라는 여인의 몸만은 계속 홀로 있었으며,
이곳에 오로지 앉아 움직이거나 옮기지도 않았고 물러가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와 같이 미묘한 경전의 요점을 여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당했고, 저는 도리어 철위산 꼭대기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 기억해 볼 때, 저는 한 끼 아침을 먹는 동안에 동방의 셀 수 없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불국토에 두루 이르러 모든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연설하시는 법을 들어 마음에 지녔습니다.
모든 부처님께 여쭈어서 의심스러운 것을 해결하면서 일찍이 의식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져 다른 불국토에 있는 것을 보셨다면,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는 저의 지조를 살피시고 오히려 다시 권유하여 경의 도를 널리 펴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큰 성인께서는 도리어 저를 철위산 꼭대기에 옮겨 놓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끝없는 법의 가르침을 일으켜 기쁘고 즐거운 바가 많았다고 다 같이 크게 우러렀으나,
도의 감화와 여러 가지 법의 가르침에 굶주렸으므로 그 마음이 편치 않아 여래를 뵙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홀로 내 몸만 옮겨져 대중의 모임을 떠나게 하고, 그 이의라는 여인은 편안히 두어 보내지 않았을까?’
또 다시 ‘여래ㆍ지진께서 연설하시는 경의 가르침에는 어긋나고 굽은 것을 찾아볼 수 없고,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미치지 못한 것이요, 그 설해진 법에 내가 마땅한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여기로 옮겨놓았을 뿐이며, 홀로 여인은 옮기지 않으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4.2. 문수가 어려움에 떨어진 까닭
천왕여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께서 펴신 경전의 도를 그대는 그곳에서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었다.
또 모든 부처님ㆍ세존의 도의 지혜는 깊고 빼어나 반연하거나 다다를 수가 없다.
그 때문에 평상시처럼 한결같이 뜻대로 모든 부처님의 요집을 연설할 수 없었다.
또 문수사리여, 아까 인세계에서 출발하여 찾아올 때, 그대는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지금 보광세계에서 부처님 요집의 경전의 이치를 강설하시니, 나는 나아가서 모든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연설하시는 법을 들어야겠다.’
바로 그때 큰 어려움에 떨어진 것이다.
끝없이 전도되어 불순한 사상에 있으면서 그 세계로부터 와서 부처를 보고 설법을 들으려 하였으니,
곧 세 가지 일로써 스스로 장애에 집착한 것이다.
이런 뜻을 품고서 이 불국토에 이르렀던 것이다.
무엇이 세 가지 일인가?
첫째 자기 몸을 탐하였고,
둘째 모든 부처님을 탐하였고,
셋째 모든 법에 집착하였다.
문수여, 전도된 행으로는 모든 보살의 걸림없는 지혜의 행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랜 옛날 이래로 과연 여래를 볼 수 있는 자가 있었는가?
여래는 과연 또 관찰할 수 있는 것인가?”
문수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된 이치로 법을 관하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법이 없습니다.
일체법은 모두 생기는 것이 없으므로 여래는 봄이 없고 부처님을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죄다 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4.3. 부처님을 보는 눈과 경전을 듣는 귀
이때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으셨다.
“모든 행을 밝게 보는 어떤 눈으로 여래를 보려고 하였으며,
모든 이치를 밝게 듣는 어떤 귀로 여래가 설하는 경전을 들으려 하였는가?”
문수사리는 잠자코 말이 없었다.
그때 그곳에 모인 다른 보살 대중들이 각기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문수사리는 실로 여래께서 물으시는 법의 이치에 대답하지 못하는구나.
왜냐하면 여래께서 조금 전 질문하셨는데 잠자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천왕여래께서 모든 보살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족성자들이여. 문수의 생각과 말이 미치지 못하였다고 보지 말라.
무엇 때문인가?
깊은 법인을 깨달았고, 방편과 지혜를 모두 갖추었으며,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고, 지혜가 허공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잠자코 말하지 않음으로써 여래에게 답한 것이다.”
모든 보살들은 여쭈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무슨 뜻으로 지혜와 이치를 연구하고 통달하였기에 이 질문에 묵묵히 있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족성자들이여, 문수사리는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이 눈과 귀가 있어서 보고 들은 것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곧 영원하다고 헤아린다고 할 것이며,
만일 또 눈도 없고 귀도 없다고 말한다면 곧 단멸에 떨어졌다고 하실 것이다.
그 단멸한다는 것을 행하고 영원하다고 헤아리는 것은 법을 분명히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여법(如法)이란 거기엔 단멸도 없고 영원하다고 헤아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단멸하지도 않고 영원하다고 헤아리지도 않으면 생기는 것이 없으며,
그것이 생기는 것이 없으면 언사도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문수가 질문을 받고도 잠자코 말이 없었던 것이니,
그것이 곧 부처에게 대답한 것이다.”
이 말씀을 하셨을 때 6백의 보살이 무소종생법인을 얻었다.
4.4. 이의라는 여인의 몸
그때 세존은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세 가지 일로써 걸림에 집착하였으므로 그 때문에 보내져 철위산 꼭대기에 머물렀던 것이다.
또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이의라는 여인의 몸만 홀로 있으며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이의라는 여인은 보월이구광명삼매정수(普月離垢光明三昧正受)에 든 것이다.
마음에 영원히 생각이 없어져,
모든 부처님이 오셔도 오지 않은 듯, 경법을 설하여도 설하지 않은 듯 여기며,
부처라는 생각이 끝내 없고 법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남과 나라는 생각도 없고 모든 기억과 망상을 버렸다.
그 여인은 이 정에 머물러 시방의 무앙수해(無央數姟) 백천억(百千億) 현재 불국토의 모든 부처님 설법을 듣지만 집착하는 것이 없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을 남들을 위해 설한다.
또 이 여인의 몸은 이 세계로부터 다른 불국토에 이르는 것이 아니며,
여러 불국토에 있으면서도 불국토라는 생각이 없다.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 있어도 모든 부처님이란 생각이 없고,
설해진 법을 들어도 경전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나라는 생각도 없고 남이라는 생각도 없다.
마치 달이 궁전에서 일찍이 이동한 일이 없지만 인간세계로 내려가 광명이 널리 비추어 보지 못하는 자가 없으며,
달은 비출 때 멀고 가까움을 생각지 않으며,
또한 내가 아무개는 비추고 또 아무개는 비추지 않겠다는 생각도 없는 것과 같다.
여인도 그와 같아서, 삼매정(三昧定)에 머물러 한량없고 끝없는 세계에 나타나 수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며 일깨워 교화한다.
모든 부처님 국토에 나타나 중생이라 생각지 않고 평등하게 경전을 설한다.
부처가 1겁에서 다시 1겁을 지나면서 이의 여인의 덕을 찬탄한다고 해도 그 끝을 모두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니, 그 여인의 공훈은 불가사의하며 이처럼 높고 뛰어나다.”
4.5. 부처님의 몸, 법신
문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불국토의 모든 보살 대중은 억백천해나 됩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모이실 때 이 모든 보살을 옮겨서 다른 세계에 두시는 겁니까?
저처럼 보내지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 말라. 문수사리여, 여래의 거룩한 지혜를 제한하여 일컫지 말며,
또한 여래의 변화로 세워진 것을 평등한 모양이라 하지도 말라.
무엇 때문인가?
이 문수사리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신 모든 부처님은 마치 감자ㆍ대ㆍ갈대ㆍ벼ㆍ삼ㆍ잡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
모든 여래께서 모인 그 수가 그와 같지만, 이 찰토의 모든 보살대중ㆍ하늘ㆍ용ㆍ귀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타라ㆍ마휴륵 등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 중에 이를 보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오직 나 하나의 여래 몸만 보며,
또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 못하고 오직 나의 이 몸이 도의 교화를 널리 펴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문수여, 여래ㆍ지진이 세운 신족변화는 한계를 헤아릴 수 없고, 그 몸은 미묘하며,
모든 부처님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모든 보살대중의 도안(道眼)으로도 한 여래만 볼 수 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 즉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답화 등과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이 부처님을 만나 뵙고자 한들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삼천대천세계를 노니시며 돌고 가고 오고 서고 앉고 눕고 잠자고 고요하고 담박하며, 위의와 예절로 행하는 것이 가지런하고 또한 방해할 수도 없으니, 모든 여래의 몸은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문수여, 이렇게 관해야 한다.
모든 여래 등은 곧 법신(法身)인지라 물질과 형상이 없으며,
부처님의 몸은 번뇌가 없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몸도 없으며,
그것을 관함에 비슷한 부류가 없으며,
생기는 것도 없고 일어나는 것도 없으며,
볼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으며, 뜻도 없고 처소도 없다.
또한 허공과 같아서, 모든 번뇌도 없고 인연의 바탕도 없으며,
형상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어서 잡을 수 없으니,
허공은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또 다섯 가지 눈도 없다.
다섯 가지 눈이란 첫째 천안(天眼)이며,
둘째 육안(肉眼)이며,
셋째 혜안(慧眼)이며,
넷째 법안(法眼)이며,
다섯째 불안(佛眼)이다.
그 허공이 거짓으로 이름만 있을 뿐인 것처럼,
그 여래의 몸도 그와 같아 번뇌도 없고 색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바탕도 없다.
여래도 볼 수 없고 부처에게 다섯 가지 눈이 없으며,
여래ㆍ지진이란 것도 거짓으로 이름만 있는 것이니, 곧 감응할 것이 없다.
문수여, 이 모든 여래들의 신족 변화를 관하라.
몸은 허공과 같으나 도리어 수시로 육신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나타내 보인다.
문수사리여, 아까 본 모든 여래의 몸도 바로 모든 부처님의 위엄과 신력으로 세운 것에 감동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를 위한 까닭에 끝없는 깊고 미묘한 법의 가르침을 나타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그 불국토에 모인 모든 보살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 높여 찬탄하였다.
“전에 없던 놀라움과 기쁨과 즐거움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부처님ㆍ세존의 위엄과 신력의 변화는 높고 뛰어나기 이와 같으십니다.
시방의 여래께서 모두 오셔서 여기에 모여 불국토에 가득히 차셨으나 저희 보살들은 한 분의 부처님도 보지 못하였고 형상과 소리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느 분이 오고 가셨으며 어떤 경의 이치를 해설하고 분별하셨습니까?
저희들 모두 여기 계신 한 분의 여래ㆍ세존만 볼 수 있습니다.
원컨대 큰 성인이시여, 지금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대승의 끝없는 거룩한 지혜를 보여 주십시오.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을 지옥에서 끓임을 당하더라도 보살의 도를 행하며 이 환난을 참게 하시고,
이 같은 지혜를 따라 어기거나 버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문수사리가 천왕불에게 여쭈었다.
“지금 이 여인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낸 지 얼마나 오래 되었기에 행하는 바가 고요하고 서원이 높고 원대하며 정의(定意)가 이와 같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낸 지가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되었다.
부지런히 힘써 믿음을 품었고 항상 방일하지 않았으며,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로 부처님의 도를 완전히 갖추었으며,
할 일을 마치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다.
과거 부처님 때부터 여러 덕의 근본을 심었고 무수한 억백천해의 모든 큰 성인들께 공양하였다.
문수사리여, 이제 이 여인이 삼매에서 일어나거든, 도의 뜻을 낸 지 얼마나 오래되어 이 세상에 보내어졌는가를 그대가 물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