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조망에 달맞이꽃은 기대어 피고
허형만(본회 객원 시인)
녹슨 철조망에 달맞이꽃은 기대어 피고
먼 하늘로 별빛 푸르다
바람은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재두루미 훠이훠이 하늘을 품는데
손 내밀면 잡힐 듯
발 디디면 내달릴 듯
눈앞에 두고도
사람만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비무장지대여
그러나 우리 슬퍼 말자
그리움은 희망을 낳는 법
손 내밀어 따뜻이 손잡고
발 딛어 발목이 시리도록 내달릴
그리하여 마침내 어루얼싸 하나가 될
그날이 우레처럼 오리니
녹슨 철조망에 달맞이꽃은 기대어 피고
먼 하늘로 별빛 푸르다
영혼의 눈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가장 아름다운 꿈
이태규(본회 객원 시인)
어디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41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정말 곱고 청량한 아가씨의 음성입니다 소박하고 아무 티 없는 가장 행복한 음성입니다
얼마나 부드럽고 곱던지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촛불을 끄라는 말에
‘후~’
깜짝 놀라서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75세가 되는 새 아침에 꾼 꿈이었습니다
인생은 꿈속에서도 늘 행복해지고 싶은 꿈을 꾸는 존재인가 봅니다
아내와 소박한 아침 식탁에 앉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아침을 맞는 것도 꿈같은 꿈입니다
잔디길
사람들은 아무도 밟히려고 하지 않죠
그건 나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느 묘지 앞을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후손들이 잘 가꾸려고 정성을 쏟은 봉분보다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는 묘지 앞길 잔디가 훨씬 싱싱하고 건강한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의 보살핌이나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상처만 받은 잔디길
그렇습니다
누구에게 조금 밟히고 상처받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는 것을
그 잔디 길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건강하게 키워 주었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이 드는 아침이었습니다
오, 주여
김우식(객원 시인)
나는
숨 쉬어도
죽은 몸이요
오늘도
당신이 보고파
종일을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
참으로
고통과 혼란이네
나를 맴도는 당신의 숨결
아리랑이 꽃 피면은
나의 호흡은 멈추고
오늘도
당신이 보고파
더 잘할 걸 눈물만 흐르네
여보!
어떻게 이런 일이
나 홀로 두고
당신만 갈 수 있소
오, 주여
나를 부르소서
꿈속에 아롱진 아내 모습
머언∼∼
발치라도
보게 하소서
초가을의 창
최진규(객원 시인)
등나무 아래 쉬던 여름이
꿈을 붙이는 동안
고추잠자리 유희에 홀린 가을 자락이
호수에 씻겨 하늘도 푸르다
소나기에 개운한 오후
너와 지붕 위 뽀얗게 피어나는 그리움이
너울처럼 밀려드는데
느긋한 황소의 게으름을 쫓는 쇠파리들이
총채 하나 들고 펑퍼짐한 뒤뜰 쓸고 있다
방실
코스모스의 태에 홀린 노을은
시샘에 내달린 색바람 눈초리에
두근두근 애태우는데
아쉬움에 눈시울 붉힌 해는
별 그림자로 장면을 지우고 있다
안면도 시인으로 월간 『모던포엠』 세계 작가회원. 2012년 월간 사회복지 신문, 칼럼 연재. 재림 문학상 2회 수상.
시집 『그리움의 그림자』 외 공저시집 다수. 성서 에세이집 『Finding true Rest』(영문판) 『가을걷이』 등
하늘 문
이순우(객원 시인)
보름달은 저 하늘 문이다
그리워
문 열면
잃어버린 지난 길 따라
보고 싶은 그대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네요.
보름달 닮은 어머니 얼굴
지엄했던 아버지
소중했던 그 사람
앞서 가버린 친구
현존하는 그리운 사람들까지
모두 만날 수 있지요
그 나라는
달빛 머금은 이슬이다
폐각이다
꿈길이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매어둘 수 없기에
수심 깊은 심저
밑
바닥에서 문을 닫는다.
여명에 수놓다
배정향(객원 시인)
재봉틀이 있던 자리를 눈먼 송아지로
의역(意譯)하시는 어머니의
낡은 저고리 깃에 웅크린
목 언저리 푸르스름한 고요와
잠을 놓친 희뿌연 새벽 창문 너머로
오래된 송아지들의 울음소리가
어둠의 숨결에 닿아 비스듬히 기운다
움직이지 않던 가녀린 어깨도 간간이 들먹인다
어느 날의 눈물 저 끝에 맺힌 문장 속에서
어린 뿔은 조금씩 돋아나고 있다지만
새삼 늙어 보이는
어머니
힘겹게 새벽을 걸어 나오시는….
이 한 편의 시를 당신에게
안해
허태연(객원 시인)
그이는
이 골짜기에 누워있을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7세 때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 곁 호롱불 밑에서 자라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와서
대학교수를 한 분입니다
하늘을 봐도 부끄럼 한 점 없는
일생이었지요
방학 때마다 김천 지례 부황에 내려와
술도가에 말술을 시키고
돼지 잡고 닭 잡고 하여
동네 분들을 대접했습니다
저도 남편 따라 벌초 때는
이웃 마을까지 타월을 돌렸습니다
부황댐으로 인하여
마을이 수몰되기 직전
동네 분들은 그동안 감사 편지와
그해 비싼 곶감을 두 상자나 보냈습니다
김천 산들래공원 이 골짜기는
동래 정씨의 집성촌이며
그이는
이 골짜기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김우식(객원 시인)
나는
숨 쉬어도
죽은 몸이요
오늘도
당신이 보고파
종일을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
참으로
고통과 혼란이네
나를 맴도는 당신의 숨결
아리랑이 꽃 피면은
나의 호흡은 멈추고
오늘도
당신이 보고파
더 잘할 걸 눈물만 흐르네
여보!
어떻게 이런 일이
나 홀로 두고
당신만 갈 수 있소
오, 주여
나를 부르소서
꿈속에 아롱진 아내 모습
머언∼∼
발치라도
보게 하소서
초가을의 창
최진규(객원 시인)
등나무 아래 쉬던 여름이
꿈을 붙이는 동안
고추잠자리 유희에 홀린 가을 자락이
호수에 씻겨 하늘도 푸르다
소나기에 개운한 오후
너와 지붕 위 뽀얗게 피어나는 그리움이
너울처럼 밀려드는데
느긋한 황소의 게으름을 쫓는 쇠파리들이
총채 하나 들고 펑퍼짐한 뒤뜰 쓸고 있다
방실
코스모스의 태에 홀린 노을은
시샘에 내달린 색바람 눈초리에
두근두근 애태우는데
아쉬움에 눈시울 붉힌 해는
별 그림자로 장면을 지우고 있다
안면도 시인으로 월간 『모던포엠』 세계 작가회원. 2012년 월간 사회복지 신문, 칼럼 연재. 재림 문학상 2회 수상.
시집 『그리움의 그림자』 외 공저시집 다수. 성서 에세이집 『Finding true Rest』(영문판) 『가을걷이』 등
하늘 문
이순우(객원 시인)
보름달은 저 하늘 문이다
그리워
문 열면
잃어버린 지난 길 따라
보고 싶은 그대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네요.
보름달 닮은 어머니 얼굴
지엄했던 아버지
소중했던 그 사람
앞서 가버린 친구
현존하는 그리운 사람들까지
모두 만날 수 있지요
그 나라는
달빛 머금은 이슬이다
폐각이다
꿈길이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매어둘 수 없기에
수심 깊은 심저
밑
바닥에서 문을 닫는다.
여명에 수놓다
배정향(객원 시인)
재봉틀이 있던 자리를 눈먼 송아지로
의역(意譯)하시는 어머니의
낡은 저고리 깃에 웅크린
목 언저리 푸르스름한 고요와
잠을 놓친 희뿌연 새벽 창문 너머로
오래된 송아지들의 울음소리가
어둠의 숨결에 닿아 비스듬히 기운다
움직이지 않던 가녀린 어깨도 간간이 들먹인다
어느 날의 눈물 저 끝에 맺힌 문장 속에서
어린 뿔은 조금씩 돋아나고 있다지만
새삼 늙어 보이는
어머니
힘겹게 새벽을 걸어 나오시는….
안해
허태연(객원 시인)
그이는
이 골짜기에 누워있을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7세 때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 곁 호롱불 밑에서 자라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와서
대학교수를 한 분입니다
하늘을 봐도 부끄럼 한 점 없는
일생이었지요
방학 때마다 김천 지례 부황에 내려와
술도가에 말술을 시키고
돼지 잡고 닭 잡고 하여
동네 분들을 대접했습니다
저도 남편 따라 벌초 때는
이웃 마을까지 타월을 돌렸습니다
부황댐으로 인하여
마을이 수몰되기 직전
동네 분들은 그동안 감사 편지와
그해 비싼 곶감을 두 상자나 보냈습니다
김천 산들래공원 이 골짜기는
동래 정씨의 집성촌이며
그이는
이 골짜기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숨 쉬어도
죽은 몸이요
오늘도
당신이 보고파
종일을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
참으로
고통과 혼란이네
나를 맴도는 당신의 숨결
아리랑이 꽃 피면은
나의 호흡은 멈추고
오늘도
당신이 보고파
더 잘할 걸 눈물만 흐르네
여보!
어떻게 이런 일이
나 홀로 두고
당신만 갈 수 있소
오, 주여
나를 부르소서
꿈속에 아롱진 아내 모습
머언∼∼
발치라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