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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록 제95권
3. 인증장[5]
[광대한 한 마음]
성구광명정의경(成具光明定意經)에 이르되,
“무엇을 광대한 한 마음[廣一心]이라고 하는가?
부모를 효도로 섬기는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요,
스승과 벗을 존경하는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며,
애욕을 끊고 세속을 멀리하는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다.
37품(品)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며,
쓸쓸하고 고요한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요,
대중의 번거롭고 어지러운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다.
욕심이 많고 다툼이 많고 짓는 일이 많고 괴로움이 많을 적에 여기서 처(處)하는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요,
칭찬과 비방과 이익과 손실과 선행과 악행이 있는 일에 여기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다.
숨을 세며 선정에 들어가고 여섯[六]을 버리고 깨끗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의 그 마음이요,
자신이 능히 행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는 것들이니, 이것을 광대한 한 마음이라고 한다”고 했다.
[하나의 법이 있다고 보면]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의 게송에서 말했다.
만일 하나의 법이 있다고 보면
그 밖의 법도 다 보아야 하나니
하나의 법이 ≺공≻하기 때문에
온갖 법 또한 ≺공≻하느니라.
해석하여 보자.
마음에 법이 있으면 있게 되고 마음에 법이 ≺공≻하면 ≺공≻한 것이니,
만법은 한 마음이 근원이므로 ≺공≻이니 존재니 하는 것은 다 붙을 데가 없다.
하나를 들어서 여럿에 본을 보이는 것이므로, 모두가 종경(宗鏡)으로 돌아간다.
대승천발대교왕경(大乘千鉢大敎王經)에 이르되,
“문수사리보살이 세존과대중과 보살들 앞에서 말하였다.
‘만일 모든 보살과 모든 유정 중생들이 위 없는 보리에 뜻을 두어 진실한 부처님의 금강성성삼마지(金剛聖性三摩地)의 온갖 법을 닦아 지닌다면,
온갖 법이 곧 모든 유정들의 마음 그것입니다.
유정 중생들의 심지 법장(心地法藏)에는 번뇌의 종성(種性)이 있고,
번뇌의 종성은 바로 보리 성품인 것이므로 유정의 마음 처소는 본 성품이 참되고 깨끗하며 ≺공≻하여 얻을 바가 없나니,
그러므로 유정의 마음은 바로 대원경지(大圓鏡智)의 마음 처소 그것입니다’”고 했다.
마하연보엄경(摩訶衍寶嚴經)에 이르되,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이가 귀신의 형상을 그려 놓고는 스스로가 두려워하는 것과 같아서,
가섭아,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은 스스로 빛깔ㆍ소리ㆍ내음ㆍ맛ㆍ감촉의 법을 만들고는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 이 법을 알지 못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느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행하는 뭇 덕의 근본]
문수회과경(文殊悔過經)에 이르되,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행하는 뭇 덕(德)의 근본이란 뜻하는 성질이 각각 다르므로 총지(摠持) 광명의 지혜에 들게해야 합니다.
여러 하늘과 모든 백성들로서 근심과 괴로움이 있으면 그 뭇 화난을 없애기 위해 총지 광명의 찬란한 빛에 모두 들어가게 하고,
모든 의론과 문자의 근본되는 맨 끝도 총지 광명의 찬란한 빛에 들어가게 하며,
온갖 모든 행(行)과 모든 생각이 응(應)하는 바도 총지 광명의 찬란한 빛에 모두 들어가게 하고,
넓은 문[普門]에 이르게 되어 모든 감관이 빙빙 도는 것도 총지 광명의 찬란한 빛에 들어가게 하며,
온갖 장엄과 청정함과 여러 가지 장식도 총지 광명의 문에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의 일에 머물면서 뭇 일을 널리 보고 뭇 일에 머물면서 하나의 일을 모두 봅니다.
곧 하나의 일로써 온갖 일에 들어가고,
온갖 일로써 하나의 일에 들어가며,
하나의 이치로 가르쳐서 온갖 이치를 깨우쳐 주고 온갖 이치로써 하나의 이치를 일으켜 내며,
인연이 없는 것으로써 모든 인연에 들어가고 모든 인연을 변화시켜 인연 없는 데로 들어가게 하며,
일이 없는 법으로써 중생에 들어가서 성격과 행동이 각기 다른 그 모양과 행위를 좇으면서 그들을 가르쳐 줍니다’”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무릇, 다른 성질을 없애고 괴로운 윤회를 영원히 구제하며, 모든 행의 문을 융합시켜 청정하고 장엄하게 꾸미는 것을 모두 한 마음인 총지의 문에 들어가게 한다.
종경(宗鏡) 광명의 빛을 입기 때문에 하나의 일에 머무르면서도 여러 가지 일을 보며,
하나로써 여럿을 이루고 여러 이치로써 하나의 이치를 일으킨다.
여럿으로써 하나를 이루고 하나로써 여럿을 이루면서 작용이 두루하다.
여럿으로써 하나를 이루면서 체성이 원융하므로 체성과 작용이 서로가 늘어서고 하나와 여럿이 자재한 것이다.
[관불삼매]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 이르되,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박복해서 여러 호귀(豪貴)한 이들에게 의지하여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 하자.
때마침 어떤 왕자가 유람을 다니는데 큰 보배 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 보배 병 안에는 왕의 인수(印綬)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때, 가난한 이는 속임수로 와서 가깝게 따르고 있다가 왕의 보배 병을 얻어서는 가지고 도망을 쳤다.
왕자는 깨닫자마자 여섯 무리의 큰 병사들과 여섯 마리의 검은 코끼리를 거느리고 손수 날카로운 검(劒)을 붙잡고 그를 쫓아갔다.
그때, 병을 가진 사람은 달아나다가 풀이 우거진 빈 벌판의 진펄 가운데로 들어갔는데, 벌판의 진펄에서 보니 독사들이 그 속에 가득 차 있었다. 4면에서 독사들이 병 가진 이에게 독을 뿜어댔으므로, 그 가난한 사람은 두려워 어쩔 줄을 모르고 이리 저리 도망 다녔으나 독사들도 그를 따라왔으므로 숨거나 피할 곳이 없었다.
마침, 빈 진펄 가운데에 가지가 울창하고 무성한 하나의 큰 나무가 있음을 보고는 매우 흡족해하면서 머리에 보배 병을 이고 나무를 붙잡고 올라갔다.
다 올라가고 나자 여섯 무리의 병사들과 코끼리는 질풍같이 달려와서 그 곳에 와 닿았다.
가난한 사람은 그것을 보자마자 왕의 보배 인(印)을 삼켜버리고는 가진 병을 머리에다 쓰고 손으로 가리면서 악착같이 살기 위해 그것을 보지도 않고 있었다.
이 때에 여섯 마리의 검은 코끼리들이 코로 나무를 걸어서 넘어뜨리자 가난한 사람은 땅으로, 떨어지면서 몸이 산산이 부셔졌다.
오직 금 인이 있는 보배 병에서 광명이 나타났을 뿐이며, 독사들은 광명을 보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염불(念佛)에 머무는 이의 마음 인[心印]이 부서지지 않는 것도 역시 그와 같느니라.”
해석하여 보자.
무릇 관불삼매(觀佛三昧)라 함은, 곧 자기 마음을 진실로 아는 것을 관불이라 하며,
마음을 알고 나면 경계의 산란함을 당하지 않고 잔잔하여 언제나 안정하므로 삼매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박복하다’고 함은, 어떤 사람이라 함에서 유인(有人)의 유는 곧 25유(有)요 인은 곧 모든 중생이다.
법과 재물이 없으므로 가난하다고 하고, 마음의 부처를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박복하다고 한다.
‘여러 호귀한 이에게 의지한다’ 함은, 바로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며,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 함은 곧 관불삼매의 문에 의해 제 성품을 보게 되고 지혜의 생명을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땅으로 떨어졌다’ 함은, 곧 범부 몸으로서 인공(人空)과 법공(法空)을 통탈하고 한 마음을 깨달아 진여의 자리에 머물렀다는 것이요,
‘몸이 산산이 부서졌다’ 함은, 이미 유식(唯識)의 성품을 알았으므로 몸에 대한 소견이 저절로 없어졌다는 것이다.
‘금 인만이 있다’ 함은 바로 마음을 깨쳐서 항상 머무른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발화상(一鉢和尙)이 이르되,
“진로(塵勞)가 다 사라지면 진여만이 있으니 뚜렷이 밝은 한 알의 값을 칠 수 없는 구슬일세”라고 했다.
‘보배 병에서 광명을 나타내었다’ 함은 곧 반야의 지혜요,
‘독사들이 광명을 보고 4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고 함은 곧 4대(大)의 몸은 독사라 3독(毒)의 번뇌인데 지혜로 ≺공≻함을 분명히 알므로 달아났다고 한다.
‘염불에 머무는 이의 마음의 도장이 부서지지 않은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하는 것은, 무념지(無念智)로써 참된 깨달음의 성품을 보기 때문에 염불에 머무는 이라 한다.
모든 대경에 동요하지 않고 하나의 본체는 옮아가지 않으므로 마음 도장이라고 하며,
항상 법위(法位)에 머무르고 마지막에는 적멸(寂滅)해지므로 부서지지 않는다고 하고,
오직 금 도장만이 남아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역시 그와 같다고 일컫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기신론(起信論)에 이르되,
“심성(心性)을 보게 됨을 구경각(究竟覺)이라고 한다”고 함이 곧 이런 뜻이다.
[수능엄삼매]
수능엄삼매경(首楞嚴三昧經)에 이르되,
“그때, 부처님이 현의천자(現意天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수능엄삼매의 본래 사실인 조그마한 부분을 나타내어 보여야 하느니라.’
현의천자가 견의(堅意)에게 말하였다.
‘어진이여, 수능엄삼매의 조그마한 세력을 보고 싶습니까?’
대답하였다.
‘천자여, 즐거이 보려고 합니다.’
현의천자는 수능엄삼매를 잘 닦은 힘 때문에 곧 변화를 나타내면서 모인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전륜성왕이 되어 32상(相)으로 저절로 장엄하고 모든 권속들과 7보(寶)로 시중하게 하였으며,
다시 신통력을 나타내어 널리 모인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석가모니불의 상호와 위의가 같게 하여 저마다 비구 권속들이 에워싸게 하였다”고 하였다.
해석하여 보자.
천자를 현의(現意)라고 이름붙인 것은, 온갖 법은 뜻[意]으로부터 생기고 형상은 마음으로 인하여 나타난[現] 바이기 때문에 현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자기 마음이 허깨비와 같아서 일정한 거동이 없고 보는 바도 틀려서 마음을 따라 생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허깨비라 진실이 없음을 알고 곧 참 성품을 보면, 참 성품을 얻었기 때문에 바야흐로 법계에 두루하게 여환법문(如幻法門)을 보이며 색신(色身)을 널리 나타내면서 허깨비인 중생을 인도하여 다 같이 진실한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눈은 빛깔을 보지 못하고]
전유경(轉有經)의 게송에서 말했다.
만일 진실로 말을 하게 된다면
눈은 곧 빛깔을 보지 못하고
뜻으로는 법을 알지 못하나니
이것이 최고의 비밀이니라.
해석하여 보자.
이 한 마음이란 비밀한 곳집에 들어가면 주관[能]ㆍ객관[所]이 모두 없어지고,
6진(塵)을 대경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는 빛깔 따위를 보지 못한다.
[열반]
대법고경(大法鼓經)에 이르되,
“모든 중생에게는 모두 불성(佛性)이 있어서 한량없는 상호로 장엄하여 밝게 비추나니, 그 불성 때문에 모든 중생들은 열반을 얻느니라”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그러므로, 모든 중생에게는 모두가 정인불성(正因佛性)이 있으며 만행(萬行)으로 장엄함으로써 그 성품을 끌어내게 되는 줄 알 것이니,
그리하면 원인이 원만해져서 결과 성품을 얻기에 이르게 되며 필경에는 한 마음의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의 도를 성취한다.
[허공을 두려워하다]
보정경(寶頂經)에 이르되,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가섭아, 마치 어떤 사람이 허공을 두려워하여 가슴을 치며 부르짖으면서 말하기를,
≺착한 벗이여,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이 허공을 없애 주시오. 이 허공을 없애 주시오≻ 한다면,
가섭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허공을 없앨 수가 있느냐?’
가섭이 말했다.
‘없애지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렇게 사문과 바라문이 성품의 ≺공≻함을 두려워 한다면, 나는 이 사람이 정신을 잃고 광란하는 이라 말하리라.
왜 그런가? 가섭아, 모든 법은 다 같이 이는 ≺공≻의 방편을 설하고 있기 때문이니,
만일 이 ≺공≻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온갖 법을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만일 모든 법을 아끼고 있다면 어떻게 이 ≺공≻을 아끼지 않겠느냐’고 하셨다.”고 했다.
불성론(佛性論)에,
“물었다.
‘이 경은 어떤 이치를 드러내기 위해서인가?’
대답했다.
‘온갖 법은 본래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이 ≺공≻함을 보이기 위해서이니,
법이 소멸된 연후에 ≺공≻하게 된 것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공≻한 성품에 대해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온갖 모든 법은 다 같이 ≺공≻의 방편을 말한 것이니, 무릇 말한 바가 있는 것이면 모두가 ≺공≻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하면 온갖 법이요 법 하면 온갖 ≺공≻이니, 먼저는 있다가 뒤에는 없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아주 없음[斷滅]에 돌아가겠는가?
어찌 먼저는 없다가 뒤에는 있는 것이겠는가? 덧없음[無常]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성품이 본래 항상 ≺공≻이라 ≺공≻이 끊임없는 것이며, 본체는 모든 존재에 응하나 존재 스스로가 번성하게 일어난다.
이 종(宗)에 능히 들어가면 모든 법이 ≺공≻하다 함을 듣고는 마음이 크게 기뻐지겠지만,
이 이치를 분명히 모르면 모든 법이 ≺공≻하다 함을 듣고는 마음이 크게 두려워진다.
법이 ≺공≻함을 분명히 모르면 현량(現量)의 경계를 어기어서 바깥의 앎에 집착하게 되고,
유심(唯心)이라는 종지를 들으면 ≺공≻하다는 소견에 떨어질까 두려워지며,
마음과 경계가 모두 미혹되면 마침내는 두려움을 내게 된다.
[보리의 성품]
도일체제불경계경(度一切諸佛境界經)에 이르되,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보리(菩提)란 모양[相]도 없고 연(緣)도 없느니라.
무엇을 모양이 없다 하고 무엇을 연이 없다고 하는가?
안식(眼識)을 얻지 못하면 이것이 모양 없는 것이요,
빛깔을 보지 못하면 이것이 연이 없는 것이며,
이식(耳識)을 얻지 못하면 이것이 모양 없는 것이요,
소리를 듣지 못하면 이것이 연이 없는 것이며,
뜻[意]과 법(法)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느니라’고 하셨다.”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모양이 없으면 능연(能緣)의 마음이 없게 되고,
연이 없으면 소연(所緣)의 경계가 없는 것이니,
주체[能]와 객체[所]가 함께 없어지고 참 마음이 저절로 나타난다.
[법의 처소와 하나의 모양]
문수사리행경(文殊師利行經)의 게송에서 말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법은
언어일 뿐이요 진실이 없나니
만일 진실한 처소에서라면
하나의 모양이라 차별이 없다.
해석하여 보자.
만일 세 세상의 모든 법을 말한다면 이는 다 세속 이치[世諦]로서의 언어이니,
만일 한 마음인 진실한 처소를 분명히 안다면 하나의 길이라 스스로 차별이 없거늘,
어찌 언어로 의논할 바며 뜻으로 반연할 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