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나의 문학. 1
나의 인생, 나의 문학. 1
. 스물의 나이, 젊은 어부는 강기슭에서 꿈을 꾸었다 나룻배의 꿈 남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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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13일자 「삼척군 화전 국민 학교 발령을 명함」강원도 교육감의 발령장을 받아들었다. 가슴이 벅차고 환희로웠다. 황지읍 화전 국민 학교로 향했다. 길바닥은 비포장 도로에 검은 먼지 투성이였다.
그 해, 10월에 퇴직 선생님이 맡았던 2학년 담임을 하였고 스물한 살의 나이, 1974년 3월에는 5학년 담임을 맡았다. 5학년을 맡고 연말에는 아이들의 글을 모은 문집 『나룻배』를 펴냈다.
이쪽 강에서 저쪽 강기슭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나룻배이다. 나는 사공이 되고 아이들은 나룻배에 태운 귀한 손님이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가르치면서, 가리방으로 긁어서 만든 문집이지만 소중한 문집이었다. 그러나 이사를 많이 다니는 바람에 그 책은 분실되고 말았다.
스물 두살, 1975년 황지국민학교에서 전근을 온 최도규 선생님은 내 일생에 가장 귀한 분 중의 한 분이셨다. 하늘이 귀인을 낸다는 말이 있었지만 내게 그런 일이 있으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0년이나 연상인 최도규 선생님은 내게 그런 분이었다. 글짓기 지도와 문학 공부를 함께 하였다. 물론 내가 더 많이 배우는 입장이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말했다. “남선생인 낸 문집을 봤어. 같이 글을 써 봐..” 그때 최도규 선생님은 강원일보 토요일 지면 란에 본인의 동시 작품이 많이 게재되고 있었다. 강원일보사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토요일 신문 한 면을 작품 판으로 메우고 있었다. 화전 초등학교에 전근을 오기 전, 이미 교육자료에 추천을 받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내 문학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해 강원아동문학회에 가입하였다는 점이다. 처녀작품 동시, <호수>를 [강원아동문학] 3집에 발표하였다. 물론 최도규 선생님이 가입시키고 작품도 실어주신 덕분이었다.
호 수
남진원
수욱 쑥 나무들
누구 키가 더 크나
들여다보고
불긋불긋 나무들
누가 더 예쁜가
들여다 보고
볼 때마다
커지는
나무들의 꿈
클 때마다
보고싶은
나무들 마음
그때마다
빙그르
바람 따라 웃고
그때마다
방글
해님따라 웃는
나무들의
꿈이 크는
호수.
나는 강릉에 살면서 자주 경포 호수를 찾는다. 그곳에 가면 내 작품의 생태적인 고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숫가에 서 있는 나무들은 호수가 그들의 거울이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거을을 보듯, 나무들은 호수를 거울로 삼아 들여다 본다. 누구 키가 더 큰가 들여다보고 누가 더 예쁜가 들여다보며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영위해 가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해님도 바람도 찾아와 웃으며 무언의 용기를 준다. 더 크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고 희망이기도 하다.
1975년 [강원아동문학] 3집에 발표한 이 동시가 내 문단 활동의 시작이다. 그러니 내년 2024년이 되면 문학 활동 반 세기인 50년을 맞이하는 셈이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다만 애석한 일은 내 옆에 계셔야 할 최도규 선생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최도규 선생님 덕분에 글을 쓸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1976년에는 어린이 작품을 활발하게 투고 하였다. 최도규 선생님은 신문이나 어린이 잡지에 게재된 아이들의 글을 액자에 넣어 시화를 만들어 교실 뒤 벽위에 걸어놓으셨다. 한 개 한 개 늘어날 때마다 교실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자신의 작품이 걸린 아이들은 또 얼마나 좋아했을까. 나도 극 모습을 배워 열심히 아이들의 작품을 투고 하였다. 미숙한 작품은 최도규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함께 다듬어서 어린이 신문과 잡지에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큰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전국 라디오 방송에 우리 학교 어린이 작품이 소개되고 윤석중 선생은 그 작품을 해설까지 했다고 하였다. 시골 학교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
1976년 12월에는 황지읍의 [새서울 다방]에서 어린이 작품을 모아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나는 그때 [교육자료]와 [새교실]에 시가 모두 추천 완료되어 겉멋이 한창 들어 있었다. 검정색 베레모 같은 털실 모자를 눌러쓰고 ‘작가입네’하고 황지 거리를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철없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