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본행경 제2권
9. 현우구품(現憂懼品)
왕은 태자의 근심을 걱정하여
밖에 나가 구경하기를 권하였네.
처음 궁성 문에서 나가자
구름에서 눈부시게 해가 솟듯
일곱 가지로 꾸민 보배 수레를 탔으되
온갖 덕상(德相)을 스스로 장엄했고
시종하는 이들은 모든 귀중한 분들
뭇 별 가운데 달빛과 같았네.
온갖 공덕 원만히 갖추어
몸의 상호도 매우 기묘한데
성읍과 마을 모두에 명령하여
늙고 병들고 죽은 자 보이지 않고
주리고 떨고 곤궁한 자까지도
길옆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네.
저마다 힘을 다해 장엄하므로
온갖 깃대와 일산이 나부꼈네.
누각 위에 모든 부녀자들도
마치 천상의 궁성과 같이
장엄하게 꾸밈이 매우 화려해
기쁜 경사 아님이 없었네.
모든 백성들이 다 노래하니
그 메아리 온 나라를 진동하고
마치 가을 물이 바다로 들어가듯
서로 앞 다투어 보고자 하였네.
몸단장하고 옷 바꿔 입기도
다 마치지 못한 채 내달려 오며
혹은 미처 옷치장을 못한 이도
소리 듣고 문득 달려왔다네.
모든 누각의 난간까지도
빈틈없이 가득 차서
혹은 몸을 매단 채들 구경하니
마치 온갖 꽃을 드리운 듯하였네.
어떤 이는 몸 굽혀 절하며
각각 공경스레 찬탄하여 말하길
“세간의 도사(導師)가 되소서” 하고는
온갖 꽃과 향과 영락을 흩었다네.
보는 사람마다 다 놀래어
서로 전하고 또 전해 이르되
“이 분은 어떤 신(神)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천상에서 하강하셨나요?”
혹은 이 분은 제석천왕이라 하고
혹은 마왕(魔王)이나 범천왕이라 하며
의혹에 잠겨 크게 뛸 듯이 기뻐하며
여러 노래로 찬탄하였네.
모든 천상에서 태자를 보고
장엄한 무리들을 이끌고 나오니
마치 천상의 제석천왕이
궁에서 나와 구경할 적 같았네.
그러자 마침 정거천왕(淨居天王)은
상서로운 조짐을 일으키고자
과거 부처님께서 상서를 나타내
출가할 뜻을 내게 했듯이 하였네.
정거천왕은 갑자기 병든 사람으로 변해
쿨룩거리고 길옆에 누웠는데
피부색도 나쁘고 눈동자도 누르며
몸이며 입술도 바싹 타 말랐네.
배의 종기는 불록하게 부풀어
온갖 더러움을 마구 드러내고
이리저리 뒹굴며 헤어날 수 없었네.
태자는 눈을 들어 이를 보고 묻기를
“이것은 무슨 물건인가?
추악스러워서 볼 수가 없구나.”
어자(御者)는 물음에 대답하기를
“식욕이 때때로 적절하지 못하고
4대(大)가 어긋나 고루지 못하니
이것을 병든 사람이라 합니다.”
태자[菩薩]가 대답하기를
“보고서도 어찌 나누어 덜어주지 않는가?”
어자는 다시 대답하기를
“이것은 나누어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질병의 위태로운 우환은
온 세상이 다 면치 못합니다.
404가지 병들이
세간의 큰 우환이 되어
태자님도 또한 면할 수 없고
이 큰 변란의 근심에 처해 있습니다.”
태자는 곧 수레를 멈추고
슬프게 근심스레 탄식하였으니
병이란 말을 듣고 마음이 놀라고 아파
코끼리가 독(毒)의 화살 맞음과 같고
병듦을 보자 마음이 상하여서
수레를 돌리라고 명령하였네.
마음이 두렵고 또 겁냄이
마치 소가 벼락과 우박을 겁내듯
천둥소리를 듣고 놀라서
몸을 떨고 불안해하듯 하였네.
그 뒤에 또 구경하러 나오자
정거천왕은 다시 늙은이로 변해
머리카락은 흰 눈과 안개인 듯하고
살갗은 늘어나 주름살투성인데
몸을 떨기는 물속의 나뭇가지 같고
몸은 굽어져 당겨진 활 같았네.
태자는 그것을 보고 묻기를
“이것을 어떤 사람이라 하는가?
나면서부터 이러한 것인가,
변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
어자는 대답하기를
“몸이 태를 받을 때부터
거품같이 적은 것이 일어나
인연으로 5체(體)가 나타나고
합하고 나뉘어 6근[六情]을 이루고
그런 뒤에 마침내 출생합니다.
어려서는 어미의 젖을 먹다가
점점 자라면 음식을 먹으며
크면서 땅을 의지해 걸으며
처음엔 앵무새처럼 말하다가
이내 곧 서고 걷고 뛰며
몸과 얼굴 모습이 완전히 이뤄져
모든 감관[根]이 점차 성숙하나니
이것을 늙음이라 합니다.
또 이것을 천사(天使)가 부름이라는데
가르침을 드러내 중생을 깨닫게 합니다.
형상이 쇠잔하고 기쁨도 잃으니
꽃이 무서리를 만난 것 같고
얼굴은 월식(月蝕)같으며
마음은 구름에 가린 해 같고
건장하던 힘도 마르고 다하여
여름 모래에 물을 뿌린 듯합니다.
사람의 뜻과 생각도 재주도 앗아가니
그림자 없이 오는 도적과 같습니다.
마음은 고뇌하며 듣고 아는 것도 잃으며
마치 들불이 늪지를 태우듯
점점 다그침이 마치 기름을 짜듯하여
그 몸의 정기(精氣)를 마심으로
몸을 무너뜨리고 다른 모습되게 하니
이것을 늙음이라고 합니다.”
태자는 한동안 이것을 보고
슬프게 길이 탄식하였네.
“늙고 병듦의 큰 돌산이
억세게 중생을 갈고 부수어
세상은 모두 괴로움의 근심을 만나거니
어떻게 뜻대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을까.
도망갈 방편을 찾되
억센 원수를 피하듯 하리로다.”
뒤에 다시 구경하러 나오자
정거천왕은 죽은 사람으로 변해
일가친척이 상여 뒤에 따르며
머리를 풀어 헤치고 통곡을 하네.
“이것은 또 어떤 것이냐?”고 물으며
“정성스레 나에게 가르치라” 하네.
그러자 모든 어자들은
곧 하나하나 그것을 설명하였네.
“날로 급박하게 마르고 늙음에 이르자
병으로 정기의 물이 흐르고 말라
여덟 마디 날카로운 톱날로
목숨의 나무를 끊고 자르며
해ㆍ달의 날카로운 도끼로
낮과 밤으로 항상 베고 끊어
무상(無常)한 바람을 만나서
기울고 무너져 거꾸러집니다.
부모와 이별하고
가면서는 홀로 미하여 달아나니
아내나 자식이나 형이나 동생 등
믿고 의지할 친척도 없고
어떻게 할 길이 없는지라
에워싸고 슬프게 통곡하면서
슬피 추모하고 마음 아파하며
그 생시의 덕을 찬탄합니다.”
“나 또한 그렇게 당하는가?”
“태자님도 모두 의심치 마소서.”
“나 또한 어버이와 이별하느냐?”
“태자님도 반드시 죽어 이별합니다.
온 세상은 죽음에 쌓이었거늘
어떻게 마음껏 웃으며 말하리오.
두려움을 모르는 까닭에
다시 무수하게 죽음만 거칩니다.
낮과 밤의 기나긴 길에
해와 달은 쉬지 않고 운행하는데
늙고 병들고 죽음의 독에 쏘이면서
근심과 번뇌의 이빨에 물리고
사계절의 혀에 핥아지면서
숙업[宿行]은 빠르고 위험합니다.
일체를 면할 수 없으니
죽음의 용(龍)에 집어삼켜지듯
모두 들어가 다 상하고 꺾어지고
모두 무너지고 끊어지고 부서지며
그 원하는 것을 빼앗아
모조리 삼키고 다 태워 버리며
모조리 몰아서 다 꺾어도
그러지 못하게 막을 수 없거니
태자님도 이 죽음에 대해 깨달으소서.”
태자는 이 말 듣고 두려워
“세상에 살면서 웃는 자로는
쇠나 돌이나 웃겠구나.”
태자는 근심을 품고 가면서
죽음을 생각하니 끓는 탕 같고
마치 사나운 사자가
숲에서 들불을 만난 듯
늙음ㆍ병듦ㆍ죽음의 사나운 불꽃을
면하고 벗어나고자 생각하며
길을 가는 동안 내내 잊지 못하고
벗어날 방편을 구하고자 하였네.
그때 정거천왕은 바라문으로 변해
초췌한 몸을 드러낸 채
쪽진 머리에 수염과 눈썹이 길며
거친 사슴의 가죽옷을 입었네.
손에는 물병을 들고
또 삼지(三枝) 지팡이를 쥐었거늘
태자[菩薩]가 그를 보고 물었네.
“그대는 무엇을 원하여 도술을 닦는가?”
그는 태자의 말에 대답하되
“예, 제가 원하는 것을 들으소서.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이 없는
그곳을 천상세계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씨앗을 심으면
천상세계에 광대한 꽃이 나니
원컨대 큰 안락을 구하여
싹이 천상세계에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태자는 찬탄하여 말하되
“이 수도자[士]는 견해와 계책이 밝구나.
천상은 근심을 떠난다 하니
이는 나도 또 즐길 만하다.
그러나 한 가지 의심되는 점은
영원히 항상한가, 그렇지 않은가?
만약 반드시 항상 안락하다면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로다.”
정거천왕은 가장 좋다고 일컬으며
태자의 마음이 청정함을 찬탄했네.
“천상세계가 비록 즐겁긴 하지만
마침내 반드시 타락하고 만다오.
복과 온갖 쾌락을 누리지만
마침내 영원히 있음은 없다오.
복이 다하면 곧 떨어져
3도(途)의 괴로움을 받게 되오.
해가 천 가지 빛으로 빛나도
복이 다하면 어둠에 떨어지듯
달이 둥글어 두루 빛나지만
달도 떨어지면 밝음을 잃는 법
범천ㆍ제석천 무수한 천상세계도
비록 천상세계의 영화로운 지위가 참되나
도로 불쌍한 물건이 되어
비럭질하는 아귀의 형상이 되오.
옛날에 보정불(寶頂佛)을 위하여
7일 동안 등을 밝히고
발심하여 불도를 구하며
서원이 매우 견고하여
즉시 마군의 마음을 떨게 하였으니
마치 파초 나무와 같았고
또한 마왕의 궁전을
진동시켜 편안치 못하게 하니
삼계가 다 공경하였음을
지금도 잊어서는 안 되오.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얼마만큼 부지런히 수행했으니
옛날 시안불(施安佛)을 위하여
7보의 큰 탑을 일으켜 세우되
마치 큰 수미산같이
땅 위에 우뚝 솟아났으며
정광불에게 일곱 가지 꽃을 올리고
미래에 성불하리란 기별(記別)을 받았소.
보광불(普光佛)에게 금꽃을 뿌리고
해가 기울도록 대승법(大乘法)을 구했고
또 탑과 절을 이룩하였으며
연화상불(蓮花上佛)을 받들어 섬기고
그 밖의 무수한 부처님들에게
온갖 보배ㆍ향과 꽃을 공양했었소.
능인불(能仁佛) 앞에서
하늘꽃을 공양하였으며
또 현의불(現意佛)을 공양하되
꽃과 향으로 목숨이 다하도록 하였고
노래로 방면불(方面佛)을 찬탄하되
7일 동안에 이르렀으며
이렇게 무견불(無見佛)을 공양하여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하였으며
또 정왕불(頂王佛) 앞에서
일곱 가지 보배와 옷을 공양하였소.
무루불(無漏佛)에게 보시하고
사문(沙門)이 되기를 원했으며
또 이광불(理光佛) 처소에서
불도에 들어 청정한 법을 가졌으며
또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머리를 깎고 사문이 되었으며
이렇게 수천의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부지런히 힘써 공경해 받들었소.
몸을 주린 범에게 보시하고
또 아내와 자식을 내주었으며
눈과 몸 살갗이며 손발까지
희사하더라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이렇게 헤아릴 수조차 없이
머리만 베푼 것도 몇 천 개라
이와 같이 보시해 줄 때에는
삼천세계가 진동하였소.”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천상세계에서 수명 다하면 타락함을 나타내니
뒤의 사람이 슬피 탄식하고 사모하고
서로 서로가 가련히 여기고 슬퍼하네.
아래로 8지옥이 나타나니
각각 16관속(官屬)들이
문득 큰 소리를 내면서
“온 세상은 다 죽고 만다.”고 하네.
여기서 점점 나아가니
사슴이란 석가족의 처녀가
태자가 천왕 같음을 보고
큰 소리를 내어 말하였네.
“그 아버지는 근심함이 없고
어머니는 매우 안락하리라.
그 남편이 이러하거늘
아내도 무위(無爲)를 얻으리.”
하늘의 우레 소리와 같이
그 소리는 태자의 귀를 울려
비로소 무위라는 말을 듣자
피곤할 때 휴식을 얻은 듯했네.
모든 생각이 이미 충족하므로
마음 가운데 안정함을 이룬지라
자기의 많은 보배 영락을
멀리 던져 처녀의 목에 걸어주었네.
무위법을 듣고 즐거워
삿된 생각을 내지 않고서
기쁜 마음으로 무위를 향하자
문득 사문으로 변한 정거천왕을 보았네.
위의와 계행이 차분하고 조용해
법복을 입고 손에 발우를 들었네.
태자는 어자에게 일러
수레를 돌려 따라가게 하였네.
태자가 그 사문에게 묻자
그는 소리를 따라 대답하였네.
“6근에 모든 번뇌가 없으며
집을 버리고 근심을 여의었네.
산 바위 한가한 나무 그늘에
홀로 머무는 고요한 곳이요
밥은 빌어 스스로 살거니
태자님도 이것을 배우시라.
내 이름을 사문이라 부르나니
해탈을 구하기 때문이네.
사랑과 미움을 함께 버리고
모든 뜻이 고르고 마음이 편안하오.
집착함 없이 나를 버리고
온갖 일을 모두 다 버리므로
스스로를 지키는 수레를 타고
손에 지혜의 활을 잡았소.
널리 모든 방편을 베풀어
마군의 군사를 쳐부수어
불도 없고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바람도 없기를 바라오.
해와 달이며 별도 없고
구름이며 허공도 없이 근심도 끊어져
늙고 죽음의 근심과 괴로움도 없고
또한 이별하는 번뇌도 없다오.
감로를 길이 드리워 괴로움을 멸하니
이런 곳을 찾음이 나의 소원이오.”
이런 말을 다 마치자마자
문득 태자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네.
태자가 조용히 걸어가자
빛의 그림자는 땅을 비추며
다시 동산에 가서 구경하자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였네.
몇몇 가지를 생각하고 생각함이
오직 모든 착함의 방편뿐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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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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