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_7. 定慧, 정과 혜
“혜능이 이곳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도교인·속인들과 더불어 오랜 전생부터 많은 인연이 있어서이다.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바요 혜능 스스로 안 것이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 듣기를,
원하는 이는 각각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淨心) 하여,
듣고 나서 스스로 미혹함을 없애서 옛 사람들의 깨침과 같기를 바랄지니라.”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보리반야(菩提般若)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지도를 구하여 자기의 성품을 보아라.
선지식들아, 깨치게 되면 곧 지혜를 이루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定)과 혜(慧)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이 혜의 몸이요 혜는 곧 정의 씀이니(卽定是惠體 卽惠是定用),
곧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定惠等).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法)에 두 모양(相)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가지면 정·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입으로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앞뒤를 다투면 이는 곧 미혹한 사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의 아집이 생겨 네 모양(四相)을 버리지 못함이니라.
일행삼매(一行三昧)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行住坐臥) 항상 곧은 마음(直心)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淨名經)-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直心是道場 直心是淨土)’라고 하였느니라.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으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가가 아니니라.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坐不動)이 곧은 마음이라고 하며,
망심(妄心)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無情)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니라.
도(道)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하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면 곧 속박된 것이니라.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유마힐이 숲 속에 편안히 앉아 있는 사리불을 꾸짖었던 것은 합당하지 않으니라.
선지식들아, 또한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앉거나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로써 공부를 삼게 하는 것을 본다.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됨이 곧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짐짓 알아야 한다.”
“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體)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用)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