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승론 상권
1. 의품(9)
[해탈문 요약]
따라서 인연법이 공한 것을 진여ㆍ법성ㆍ실제(實際)라 이름하며, 이는 제일의선(第一義禪)을 닦아 익히는 것이다.
인연법이 공하다고 보는 것이 곧 공해탈문이다.
만약에 공을 보면 모든 법의 상(相)을 보지 않으므로 이를 무상해탈문이라 한다.
상이 없음을 보기 때문에 원하여 구하는 바가 없으니, 이를 무원해탈문이라 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해탈문에 안주하여 식(識) 종자가 삼계 내에서 다시는 명색(名色) 등의 싹을 생하지 않으며, 식이 취착함이 없어 삼유(三有)의 고(苦)가 멸한다.
삼유의 고가 멸하기 때문에 적멸열반을 얻는다.
[삼유(三有): 유(有, bhava)는 존재라는 의미로써 ‘유’에는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삼유가 있다. 또한 유는 넓게는 현상적 존재세계를 지칭하기도 한다.]
존자 제바는 다음의 게송을 설하였다.
식(識)은 종자의 뜻이니
육처(六處)를 유행(遊行)하네.
만약에 모든 객진[塵]이 공하다고 보면
존재의 세계[有]라는 싹은 단멸되네.
[보살과 성문]
【문】 보살이 공에 이르러 생사로부터 벗어나는데, 어떻게 성문보다 뛰어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답】 보살은 세간의 이익과 출세간의 이익을 얻어 이염지(爾炎地)를 건너기 때문에 비록 세간을 벗어나더라도 세간에 머물러 중생을 교화할 수 있으나, 성문은 그렇지 않다. 생과 사를 두려워하여 신속히 멸도(滅度: 열반)에 이르기를 구한다. 출세간의 도(道)로 법계를 보고, 법계를 본 다음에는 열반의 언덕에 도달한다.
그러나 보살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의 고를 보고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교화하여 견고하게 안주하고 장엄하게 마기 위하여 아승기겁 동안에 출세간의 도를 닦아 일념의 경각에 일체의 법계를 관조하고, 법계를 관조한 후에는 중생을 위하는 인연 때문에 도중에 열반의 과를 취하여 증득하지 않으며 중생들을 인도하여 해탈시킨다.
부처님께서 『아뇩대지경(阿耨大池經)』에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산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하자.
한 사람은 힘이 있고 선교방편이 있었다. 그 오묘한 방편 때문에 비록 뛰어내렸어도 다시 일어나 산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힘이 부족하고 또한 방편이 없어서 한번 뛰어내려 떨어진 뒤에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보살은 무위법 가운데서 취하여 증득하지 않으니, 훌륭하고 오묘한 방편을 지닌 사람만이 산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것과 같다.
성문인은 무위를 증득하여 집착하기 때문에 마치 방편이 적은 사람이 굴러 떨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어떤 장자에게 오로지 아들 하나만이 있었는데, 어렸을 적에 집을 나가 배를 곯고 풍족치 못한 형편으로 멀리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한편 장자는 한 커다란 성 안에 살았는데, 그는 큰 부자여서 값비싼 보배를 많이 쌓아두고 있었다. 장자는 점차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였기 때문에 아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보살의 수레]
보살에게는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 동안의 공덕이 있어서 이염지(爾炎地)에 이르고 열반을 향하지만, 중생을 애민하게 여기기 때문에 다시 생사에 들어가 아승기겁 동안 오래도록 애쓰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한다.
보살마하살의 수레[乘]는 커다란 수고스러움의 수레이니, 위없는 과(果)를 구함이 불가사의하여 일체의 성문ㆍ벽지불을 넘어서며 일체의 공덕과 지혜를 구족한다. 따라서 그들을 넘어서서 이염지에 이르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보살의 수레를 커다란 수고스러움의 수레라고 하는가?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아갔는데, 몹시 심한 바람을 만나 파도가 산더미 같았다.
이와 같은 한량없는 어려움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마음이 다급해져 큰 공포를 일으켰으나, 이때 선장이 돛을 잘 조정하여서 온갖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복덕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벗어나서 커다란 보배를 얻을 수 있으니, 보살마하살은 생사의 바다에 처해서도 역시 이와 같다. 그렇지만 악지식은 믿음이 없어 어려움에 처하면 악도로 취향한다.
제1 아승기겁 동안에는 청정한 지행(地行)을 닦아 청정한 해탈을 구한다.
제2 아승기겁 동안에는 청정한 선정행(禪定行)을 닦는다.
제3 아승기겁 동안에는 청정한 지혜행(智慧行)을 닦아 이염지의 장애를 제거한다.
따라서 보살승을 수고스러움의 수레[苦乘]라 한다. 십지를 원만하게 갖추어 닦고 의혹이나 장애가 없음을 증득하면 일체의 행이 구족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따라서 이염(爾炎)의 지혜로 커다란 과를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