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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경 중권
7. 왕고품(往古品)
[과거의 제자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구원(久遠)한 과거의 무량하고 무변하고 불가사의한 아승기겁, 그 때에 부처가 있었는데, 대장엄(大莊嚴)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이라고 하였다.
그 부처의 수명은 6십8백만억 세(六十八百萬億歲)로서 6십8백만억의 큰 제자의 무리가 있었다.
그 부처가 멸한 뒤에 사리(舍利)를 유포(流布)함이 나의 멸한 뒤와 같아 다름이 없었다.
그 부처가 멸한 뒤 큰 제자의 무리 가운데서 하루에 100명의 비구가 열반에 들고, 200ㆍ300ㆍ400ㆍ500의 열반에 드는 자가 있었다.
하루 안에 혹은 십만억의 비구로서 열반에 드는 자가 있었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그 부처가 소유한, 지식(知識)이 많은 큰 신통의 무리가 석 달 동안 모두 열반에 들었다.
사리불아, 대장엄불(大莊嚴佛)의 정법(正法)이 유포되어 모든 하늘과 사람이 함께 공양하는 바이다.
사리불아, 대장엄불과 큰 제자가 멸도(滅度)한 뒤 오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사문(沙門)의 법이 안온하고 쾌락함을 알고서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그러나 부처가 연설하는 매우 깊은 모든 경의 비할 바 없는 공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악마 때문에 많이 미혹되고, 때로 설법을 하여도 마음에 결정함이 없고 설하는 것도 청정하지 않았다.
자아와 사람과 수명과 중생이 있다고 설하고, 일체의 모든 법이 공적(空寂)함을 설하지 않았다.
[다섯 무리의 제자]
그 부처가 멸한 뒤 100년 뒤에는 여러 제자의 무리가 나뉘어 5부(部)가 되었다.
첫째는 보사자(普事子)라고 이름하며,
둘째는 고안(苦岸)이라고 이름하며,
셋째는 살화다(薩和多)라고 이름하며,
넷째는 장거(將去)라고 이름하며,
다섯째는 발난타(跋難陀)라고 이름하였다.
사리불아, 보사(普事)ㆍ고안(苦岸)ㆍ살화다(薩和多)ㆍ장거(將去)ㆍ발난타(跋難陀) 이 다섯 비구를 대중은 스승으로 삼았다.
보사는 부처가 설한 진실한 공의 뜻이 무소득(無所得)의 법임을 알았다.
다른 네 비구는 모두가 사도(邪道)를 따라 유아(有我)를 많이 설하고 유인(有人)을 많이 설하였다.
사리불아, 보사 비구는 4부(部) 때문에 가벼이 여겨져 세력이 없었다. 많은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고 천대를 받았다.
나쁜 네 비구는 사람의 무리에게 많이 가르치기를 사견(邪見)의 도를 가지고 하였다.
불법(佛法) 중에서 서로 공경하지 아니하고 서로 어기고 거슬리는 까닭에 불법을 없애었다.
[보시 비구의 법]
사리불아, 만약 어떤 사람이 보사 비구가 설하는 공의 법을 알아 믿고 받아서 거슬리지 않으면,
이 사람은 일찍이 전세(前世)에서 5천(千)의 부처를 공양하고, 68억(億) 나유타(那由陀)의 사람을 이미 열반에 들게 한 것을 나는 안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이 사람은 과거세(過去世)에 모든 부처가 있는 곳에서 여러 선근(善根)을 심었기 때문이며, 무소득(無所得)의 공(空)의 법을 닦아서 마땅히 열반에 든다.
[나쁜 네 비구와 그 제자들]
사리불아, 이 고안(苦岸) 비구와 일체유(一切有:薩和多) 비구와 장거(將去) 비구와 발난타(跋煖陀) 비구는 모두가 소득이 있음을 헤아려 자아와 사람과 중생과 수명이 있다고 설하니, 따르는 무리가 매우 많았다.
이 네 악인은 많은 재가자(在家者)와 출가자(出家者)로 하여금 삿된 견해에 머물게 하였으며, 제일의(第一義)의 소유함이 없는 필경공(畢竟空)의 법을 버리게 하고, 외도 니건자(尼楗子)의 주장에 탐착하였다.
사리불아, 이 네 악인이 소유한 재가와 출가의 제자는 항상 서로 따르고 쫓아서 이 네 법이 다함에 이른다.
사리불아, 이 중에 사람이 있어서 법다운 일이 아님을 알면서 받아서 법을 삼고 마음을 삼가서 이것을 행하여도 오히려 순인(順忍)을 얻지 못한다. 하물며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겠느냐?
이 사람은 아직 공양 받는 일을 없애는 것을 짓지 못한 것이다. 하물며 능히 순인을 낳겠느냐?
사리불아, 이 때 재가(在家)와 출가(出家)의 많은 제자는 악도에 떨어져 선도(善道)에 이르지 못하고 이 여러 악인은 부처의 바른 법을 없앤다.
많은 사람에게 크게 쇠락하고 고뇌할 일을 준다.
또 이 악인은 목숨이 그친 뒤에 아비지옥에 떨어져 위를 향하여 누워 있기를 9백만억(百萬億) 년, 엎드려 누워 있기를 9백만억 년, 왼쪽 옆구리로 누워 있기를 9백만억 년, 오른쪽 옆구리로 9백만억 년을 누워 있어야 한다.
뜨거운 무쇠 위에서 타고 뜨겁게 그을린 가운데 죽음을 물리치고 다시 낳고, 자지옥(炙地獄), 대자(大炙)지옥ㆍ활(活)지옥ㆍ흑승(黑繩)지옥에서 위와 같은 햇수의 모든 여러 고뇌를 받는다. 흑승지옥에서 죽어서는 대아비지옥에 낳는다.
사리불아, 이 인연으로써 혹은 재가하고 출가하여 이 사람에게 친근한 선지식과 여러 신도가 무려 6백4만억의 사람이 있는데, 이 네 스승과 함께 낳고 함께 죽어 대지옥에 있으면서 여러 맹렬한 뜨거움을 받는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이 사람이 소유한 선지식의 집과 여러 신도의 집과 제자와 여러 스승과 따라서 행하는 자는 무릇 그 수만큼 모두가 지옥에 난다.
사리불아, 너희들은 그 많고 적음을 알지 못한다. 오직 여래만이 곧 능히 이를 알 뿐이다.
이 악인과 함께 대지옥에 떨어져 함께 낳고 함께 죽는 자가 무려 6백4만억의 사람이나 있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1겁(劫)의 괴로움을 받고 대겁(大劫)이 바야흐로 타면 그 때문에 지옥에 있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모든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트린 그 죄는 매우 무거워서 가볍다고 하지 않는다.
대겁이 만약 타면 이 네 악인과 6백4만억의 사람은 이 아비(阿鼻)대지옥으로부터 다른 곳에 전생(轉生)하여 대지옥에 있게 된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무거운 죄가 차면 그 과보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있으면서 무수한 백천만억(百千萬億) 나유타의 해 동안 큰 고뇌를 받고서 세계에 환생(還生)한다.
이 네 죄인과 6백4만억의 사람과 또 대부분의 사람, 죄가 아직 없어지지 아니한 자는 그 목숨이 그치면 이 사이의 대지옥에 환생한다.
사리불아, 이 네 죄인과 6백4만억의 중생은 아주 오래되어 지옥의 고뇌를 면하고 사람 가운데 태어남을 얻는다 하여도 500세 동안은 나면서 장님이다.
그런 뒤에 일체명불(一切明佛)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사리불아, 일체명불(一切明佛)의 성문(聲聞) 제자는 1억 나유타(那由陀)이다.
이 때 인민(人民)의 몸의 길이는 396주(肘:팔꿈치의 길이)고, 부처의 몸의 한 배(倍)로서 항상 둥글게 비추는데 빛은 십만억 유순(由旬)이다.
사리불아, 이 사람은 일체명불(一切明佛)의 법 가운데에서 출가하여 십만억 년을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기를 머리에 불붙은 것을 구하듯이 하였으나 순인(順忍)을 얻지 못하였다. 하물며 도의 열매를 얻음이겠느냐?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트리는 죄업(罪業)의 인연을 일으키는 법은 마땅히 이와 같다. 목숨이 다한 뒤 또 다시 아비(阿鼻) 대지옥에 난다. 먼저 일으킨 거듭된 불선(不善)의 업의 인연 때문이다.
사리불아, 이 여러 사람들은 이와 같이 전전하여 내지는 나의 금생[今] 중간에 있어서 99억의 부처를 만날 수 있게 되어 여러 부처가 있는 곳에서 순인을 얻지 못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가 깊은 경을 설하여도 이 사람은 믿지 아니하였다.
현성(賢聖)과 계를 지닌 비구를 파괴하고 거슬리고 비방하며, 그 잘못을 들어내어 법을 깨트리는 업과 인연법을 일으켰다.
사리불아, 너는 마땅히 이를 보아야 한다.
성인(聖人)을 비방하여 거룩한 말을 믿지 않으면 이 무량하고 무변한 고뇌를 받아서 해탈을 얻지 못한다.
사리불아, 여러 중생이 있는데 법을 깨트리는 죄업(罪業)을 일으켜 어기고 거슬려서 믿지 않는 자는 그 수가 무량하고 99억의 부처가 있는 곳에서 아승기겁(阿僧祗劫)이라도 이에 한 사람도 열반에 드는 자가 없다.
사리불아, 누가 능히 모든 부처의 가르침을 깨트리고 믿지 않고 거스르는 자이겠느냐?
다만 범부와 어리석고 증상만(增上慢) 나쁜 비구와 여러 부정(不淨)한 설법을 하는 비구이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이 세 종류의 사람은 행자(行者)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얻은 자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여래의 법을 믿지 아니하는 까닭에 비방하며 거스른다.
사리불아, 만약 누가 이 고안(苦岸) 비구이며, 부정한 설법자인가 하고 말하면, 너는 곧 어리석은 사람인 조달(調達)이라고 하여라.
누가 일체유(一體有) 비구이며, 부정한 설법자인가 하고 말하면 너는 곧 구가리(拘迦離) 비구라고 하여라.
사리불아, 누가 이 장거(將去) 비구이며 부정한 설법자인가 하고 말하면 너는 곧 가라(迦羅) 비구라고 하여라.
누가 이 발난타(跋難陀) 비구이며, 부정한 설법자인가 하고 말하면 너는 곧 나형(裸形)의 사문 파리마타(波利麻陀)라고 하여라.
[부루나 비구]
사리불아, 너는 이 때 청정하고 여실하게 모든 부처의 보리(菩提)를 설하고 무량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고 말하면 곧 이는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의 설하는 것이 청정하다고 하여라.
따라서 배우는 모든 자는 5천의 부처와 만날 수 있게 되고 6십8억 나유타의 사람이 있었는데 이미 모두 멸도(滅度)하였다.
사리불아, 만약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 이는 최상의 법사(法師)이며, 법의 뜻을 결정코 명료하게 하는 청정한 설자(說者)가 되어 마땅히
‘이는 부루나(富樓那)이다’라고 설하여야 한다.
사리불아, 부루나는 마음이 정해져 있고 결정코 명료하여 그 설함이 어려움이 없다. 의심하는 바가 없이 말뜻을 낳는다.
사리불아, 만약 사람이 진실로 설하여 누가 곧 일체 인연의 법사(法師)인가 하고 말하면 마땅히 부루나라고 설하여야 한다.
사리불아, 부루나는 세세(世世)에 나는 곳마다 항상 중생을 위하여 불사(佛事)를 짓는다.
99억의 모든 부처의 법 중에서 항상 법사가 되어 청정하게 설법을 한다.
여러 모든 부처가 있는 곳에서 그 모양과 수명을 다하여 항상 범행(梵行)을 닦아 청정하게 설법한다.
사리불아, 부루나는 또 여섯 부처 법 중에서 법사가 되고, 또 나의 법에 있어서도 대법사가 되며, 아라한을 이루어 마음에 해탈을 얻는다.
만약 사람이 실로 설하여 어떤 사람이 세세에 모든 부처를 공양하여 모든 선근을 심은 자인가 하고 말하면, 마땅히 설하여 부루나라고 하여라.
사리불아, 부루나는 90억의 모든 부처의 법 중에서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배움을 구하고 결정적으로 의론(議論)하며 깊은 지혜가 있다.
이 까닭에 여래는 모든 법사에게 있어서 설함이 제일이라 한다.
사리불아, 만약 내가 하루 낮과 하룻밤을 부루나의 공덕을 칭찬하여 설한다 하여도 다할 수 없다. 만약 하루 낮과 하룻밤을 지난다 하여도 또한 다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부루나의 법보시는 속된 인연이 없고 이익을 탐하지 않는다.
부루나 법사는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었다.
오직 여래를 제외하고는 모든 세간 중에서 말과 의리(義理)에 능히 뛰어날 자가 없다.
[사리불에게 법을 위촉하다]
사리불아, 나는 지금 너에게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사람을 위하여 설법하고자 하면, 곧 무량하고 무변한 복덕을 얻어서 또 능히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느니라.
사리불아, 만약 사람이 파괴하고 거슬러서 이 법을 믿지 않으면 곧 무량하고 무거운 죄의 인연을 일으킨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악에는 악한 과보가 있고, 선에는 선한 과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까닭으로 해서 지금 이 경을 가져 너에게 위촉한다.
마땅히 4부중(部衆)을 위하여 널리 설하고 분별하여야 한다.
사리불아, 만약 이 경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환희하면 곧 무량하고 무변한 복덕을 얻는다.
만약 듣고서 믿지 아니하고 마음에 기쁘지 아니하고 즐겁지 않으면 곧 무량하고 무변한 중죄(重罪)를 얻는다.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을 이름하여 파계(破戒)한 비구, 혹은 증상만(增上慢)이고 부정한 설법자라고 한다.
사리불아,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은 가르침을 어기고 거스르는 자는 생하는 세세(世世)마다 항상 눈이 멀어 눈이 없다.
사리불아, 나는 지금 너에게 명료하게 말한다.
내가 지금 설한 것은 질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그릇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과 같지가 않다.
나는 지금 분명히 널리 4부중(部衆)을 위하여 제일의(第一義)의 필경공(畢竟空)의 법을 설한다.
견고(堅固)한 자는 있고 견고하지 않은 자는 파괴된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부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사견(邪見)의 악인을 위해서는 설하지 않으며,
아견(我見)ㆍ인견(人見)ㆍ중생견(衆生見)ㆍ수명견(壽命見)을 가진 자를 위해서는 설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이 여러 탐착(貪著)을 모두 삿된 견해라고 이름한다.
사리불아, 이와 같이 아견ㆍ인견은 순인을 얻지 못한다. 하물며 도의 열매를 얻겠느냐?
사리불아,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명견ㆍ단견(斷見)ㆍ상견(常見)을 가진 자가 능히 순인(順忍)을 얻고 능히 도의 열매를 얻을 리가 없다.
이 까닭에 사리불아,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은 견해를 성취하면 나의 법 중에서는 곧 모든 공양을 받은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는 행자(行者)가 아니다. 또 얻은 자가 아니다.
다만 나의 법에 서로 스스로 목숨이 살기를 구할 뿐이다.
사리불아, 내가 외도에게 설하여 불법에 들게 하고자 바라면 마땅히 네 달을 시험한다.
무슨 까닭인가?
여러 외도의 사람은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명견ㆍ단견ㆍ상견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나의 여러 제자에게는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명견ㆍ단견ㆍ상견이 없다.
나의 여러 제자는 다만 공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무소득(無所得)의 인가를 설하고 알음알이의 소득이 없음을 설한다.
사리불아, 만약 이와 같은 인가(認可)를 성취하는 자가 있으면 아견(我見)을 가진 사람의 출가와 수계(受戒)함을 허락하고 공양을 받아 옷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을 얻게 한다.
만약 사람에게 이 인가가 없으면 마땅히 먼저 이를 시험하고 먼저 가르쳐서 모든 법이 무아(無我)에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사리불아, 만약 이 인가에 있어서 마음이 환희하지 않고, 제일의공(第一義空)을 설함을 듣고서 놀라고 의심하고 비방하고, 아견(我見)을 설하는 것을 듣고서는 마음이 곧 환희하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악마를 위하여 사역(使役)하고 혹은 외도를 앞서는 자이다.
사리불아, 지혜로운 자는 여기에 결코 근심을 내지 아니한다.
다만 이 사람에 대해 비심(悲心)을 내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은 악을 성취하면 얻는 악의 과보는 설하여 다할 수 없다.
마땅히 이 사람에 대하여 이익된 마음을 내어야 한다.
모든 법은 무아(無我)이며 모든 법은 공적(空寂)하며, 모든 법은 무작(無作)하여 받는 자가 없다고 가르친다.
이 사람이 만약 불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함을 얻은 자라면, 그 헛된 수행을 하는 비구와 소득이 없는 자 모두를 마땅히 시교(示敎)하여 이익되고 기쁘게 하여 그 마음을 안위(安慰)하게 하여야 한다.
모든 법이 소유함이 없는 공(空)임을 설하고 만약 듣고서 놀라고 두려워하면 마땅히 무리 중에서 그 화상 아사리(阿闍梨)에게 말하여야 한다.
경에서 설함과 같이 행(行)이 공한 행자(行者)는 또 능히 모든 법의 다른 상(相)을 밝게 알아 나와 더불어 스승으로 삼는다.
아견(我見)ㆍ인견(人見)이나 전도된 사견(邪見), 지계(持戒)에 탐착하는 자를 스승으로 삼지 않는다.
여래는 정견(正見)을 갖춘 자에게 함께 포살(布薩)하는 것을 허락하고,
계를 깨트린 삿된 견해의 사람과 위의를 깨트린 자에게는 함께 포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장로(長老)의 제자로 공적(空寂)하고 소유가 없는 법을 듣고서 마음에 믿지 아니하고 즐겁지 아니하면 뜻은 외도에게 있으니, 부처는 외도와 함께 포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만약 이 견해를 마땅히 버리지 않으면 마땅히 허락하여 승사(僧事)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그 바라는 것을 받지 않고 이와 같이 짓기를 마치고서 더욱 버리지 않으면 마땅히 그러할 것이니 이 사람은 도에 있지 못하고 곧 이를 영원히 버린다.
마땅히 그 화상 아사리에게
‘또 마땅히 기르지 말라’고 설해야 한다.
만약 승(僧)으로서 이같이 하여 곧 나를 공양하면 또 외도의 사견을 잘 깨트린다고 한다. 이를 청정한 계를 설함이며 포살이라고 이름한다.
사리불아, 나는 지금 너에게 명료하게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유무(有無)의 견해를 받으면, 이 사람은 나를 공양한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나를 따라 출가하여 계를 받았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이를 6사(師)를 쫓고 따라서 출가한 것이라고 이름한다. 6사를 스승으로 삼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청정한 진실의 법에 있어서 인가(忍可)를 얻지 못하고서 공양을 받으면 이 사람이 얻은 것을 곧 삿된 받음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나의 법 중에서 출가하고 깨끗한 계를 지키고 지닌다 하여도 제일의(第一義)의 공하고 소득이 없는 법에 이어서 마음에 믿지 않고 이해하지 않아 놀라고 두려워하여 의심하고 뉘우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다만 지계(持戒)와 다문(多聞)과 선정(禪定)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사리불아, 이 사람을
‘나를 공양하고 존중하고 공경한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비롯함이 없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중생으로 4선(禪)을 얻지 아니한 자가 없다.
만약 다만 4선을 얻음을 알고서 사문의 이익[利]을 위한다고 말하는 자, 이 사람을 어찌 나를 공양한다고 이름하겠는가?
이 까닭에 사리불아, 나는 지금, 너에게 명료하게 말한다. 미래의 세인(世人)은 나의 법 중에서 여러 가지로 탐색하고 여러 가지로 사견(邪見)을 주장하여 나의 법을 깨트리고 무너트린다.
사리불아, 만약 사람들이 다만 지계와 다문과 선정을 귀하게 여길 뿐이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사문의 모든 법을 깨끗하게 행할 수가 없다.
나는 곧 이 사람을 설하여 사문 바라문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사리불아, 만약 사람이 일체의 법은 나가 없다고 여실하게 무아(無我)를 알고,
일체의 법은 본래 소유함이 없이 공(空)한 것으로서 능히 여실하게 소유함이 없는 공을 알면,
이는 곧 지계로 으뜸을 삼지 않고 다문(多聞)으로 으뜸을 삼지 않고 선정으로 으뜸을 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모든 법의 실상(實相)은 생이 없고 일어남도 없다. 그 가운데 있으면서 어느 법이라 해서 으뜸이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이 모든 법의 실다움 가운데에는 계를 지닌 자도 없고 계를 깨트리는 자도 없다. 하물며 탐착을 가져 으뜸으로 삼겠느냐?
[모든 부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떠남]
사리불아, 이것을 모든 부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하며,
일체의 법은 상(相)이 없고, 상(相)은 스스로 공(空)하며 무아(無我)이며, 무인(無人)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 인가(忍可)가 있으면 이를 행자라고 이름하며,
이를 얻은 자라고 이름하며,
이 사람을 이름하여 믿음으로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마땅히 공양과 청정한 포살을 받는다.
이 사람을 곧 사람 중의 하늘이라 한다.
사리불아, 모든 부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오직 이 한 뜻, 이른바 떠남[離]이다.
무엇을 떠난다 하는가?
모든 탐욕과 모든 주장[見]을 떠나는 것이다. 탐욕이란 곧 무명(無明)이다. 주장[見]이란 곧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법은 기억과 생각을 본(本)으로 삼고 온갖 생각과 상 즉 견해, 이것은 곧 주장[見]이라 한다.
사리불아, 선법(善法) 중의 견해라도 나는 역시 이를 설하여 삿된 견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탐욕을 떠나면 적멸(寂滅) 중에는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으며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이 일은 모두가 공인 것이다. 모든 결박과 일체의 억념(憶念)을 멀리 떠난다.
이 까닭에 떠남이라고 이름한다.
사리불아, 위없는 도 가운데에는 모든 탐욕이 영원히 쉬었다.
무엇들이 온갖 탐욕이겠느냐?
이른바 삿됨과 착하지 않은 생각과, 혹은 자아(我) 혹은 나에게 속한 것, 상(相)의 짓는 것이며, 상의 일이다.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중에서 모든 탐욕을 길이 쉰다고 이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