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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선계경 제3권
1.9. 보리력성품(菩提力性品)
보살마하살이 보살계를 배우려 한다면,
마땅히 신해(信解)를 닦아서, 항상 기꺼이 법을 구하고, 항상 기꺼이 법을 말해야 한다.
법을 받아 지닌 자를 보면 깊이 공양할 마음이 생기고, 법에 따라 주(住)하며, 제자를 가르쳐 정법(正法) 안에 주하게 하고,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업의 방편을 잘 알아야 한다.
1) 신해를 닦는 것
어떤 것이 보살이 신해(信解)를 수집(修集)하는 것인가?
삼보(三寶)와 그 공덕을 분명하게 믿고 불보살이 불가사의함을 믿으며,
진실의(眞實義)를 믿고,
인과(因果)가 있다는 것을 믿고,
모든 중생이 갖가지 업과 갖가지 업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알맞은 방편[善方便]과 그렇지 못한 방편[非方便]을 알고,
기필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것을 스스로 믿으며,
득의(得義)를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의(義)란 무상보리며, 지(智)보리며, 방편보리이다.
방편이란 보살계에서부터 나아가 삼십칠품(品)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보살계란 설법을 들을 때 마음에 인내하여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니, 십이부경(十二部經)을 보살계라 한다.
보살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두 가지를 수집해야 하는데
첫째는 자심(慈心)이고, 둘째는 신심(信心)이다.
보살은 이러한 두 가지 법을 수집(修集)하여 신해심(信解心)을 얻는다.
2) 법을 구하는 것(1)
법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인가?
무엇을 구하며 왜 구하는가?
구하는 것이란 보살장(菩薩藏)ㆍ성문장(聲聞藏)이며, 일체세론(一切世論)과 일체세사(一切世事)이다.
①② 보살장과 성문장
보살장이란 비불략(毘佛略)을 말하며,
나머지 십일부는 성문장이라 한다.
③ 세론
세론(世論)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론(因論)이며, 둘째는 성론(聲論)이며, 셋째는 의방론(醫方論)이다.
[편자 주; 원문에서는 이 세 가지를 구하는 것에 대한 서술은 4] 일체세사의 내술에 대한 설명의 뒤에 나오는데,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순서를 바꾸었다.]
인론(因論)을 구하는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인데,
첫째는 외도(外道)의 과환(過患)을 알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외도의 모든 논사(論師)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성론을 구하는 것 역시 두 가지 일을 위한 것으로
첫째는 모든 법계의 뜻을 풀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모든 언어의 소리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치병술(治病術)을 구하는 것은 네 가지 일 때문인데,
첫째는 병의 상모(相貌)를 알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병의 인연을 알기 위한 것이며,
셋째는 병의 치료를 알기 위한 것이며,
넷째는 병이 나은 뒤의 재발 여부를 알기 위한 것이다.
④ 일체세사
일체세사란 예를 들면 금보 공장(金寶工匠)의 모든 방술(方術)과 같은 것이다.
방술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내술(內術)이며, 둘째는 인술(因術)이며, 셋째는 성술(聲術)이며, 넷째는 병의 원인을 알아서 치병(治病)하는 방술이며, 다섯째는 모든 작사(作事)를 아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항상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방술을 구한다.
내술(內術)은 십이부경을 말하는데,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일을 위하기 때문에 십이부경을 구한다.
그 첫째는 인과를 아는 것이며,
둘째는 지은 업은 잃지 않고 짓지 않은 업은 받지 않는 것이다.
2) 법을 구하는 것(2)
[열 가지 인]
십이부경을 구하는 것이 인과를 알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에 열 가지의 인(因)이 있으니, 생사든 해탈이든, 선이든 불선이든, 안이든 밖이든, 중생이든 비중생이든 간에 진인(眞因)이 모든 인을 상섭(相攝)함을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유포인(流布因)이며, 둘째는 종인(從因)이며, 셋째는 작인(作因)이며, 넷째는 섭인(攝因)이며, 다섯째는 증장인(增長因)이며, 여섯째는 전인(轉因)이며, 일곱째는 불공인(不共因)이며, 여덟째는 공인(共因)이며, 아홉째는 해인(害因)이며, 열째는 불해인(不害因)이다.
유포인이란 모든 법이 이름을 따라 그 체상(體相)을 얻으며, 체상을 얻었기에 이를 선설(宣說)할 수 있는 이것을 유포인이라 말한다.
가령 손을 인하여 물건을 취하고, 말을 인하여 길을 걸으며, 몸을 인하여 오고 가고 앉고 눕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종인이라 한다.
씨앗을 따라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은 것을 작인이라 한다.
씨앗을 떠나서 그 밖의 것을 따라 열매를 얻는 것을 성인이라 한다.
씨앗이 썩어 싹이 트고 싹이 자람을 따라 열매를 얻는 것을 증장인이라 한다.
씨앗을 따라 곡식이 나서 자라고 곡식이 나서 자람을 따라 씨앗이 생기는 것을 전인이라 한다.
종자를 따라 열매를 얻는 것을 불공인이라 한다.
지ㆍ수ㆍ화ㆍ풍 같은 것을 공인이라 한다.
네 가지 무거운 금계(禁戒)를 범하고, 선법(善法)을 원망해서 해치는 것을 해인이라 한다.
만일 범하지 않을 경우 불해인이라 한다.
해인(害因)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성해(聲害)이고, 둘째는 생해(生害)이며, 셋째는 불공주해(不共住害)이고, 넷째는 원해(怨害)이며, 다섯째는 정해(定害)이다.
성해란 세간의 논의에서 처음에는 잘 말하다가 나중에 잘못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또 해로움이란 모든 법이 일체 무상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고 말하고,
모든 상(常)이란 생(生)ㆍ노(老)ㆍ사(死)를 일컫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해라 한다.
생해란 인이 없이 과를 낳고 인이 있어도 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불공주해란 명암ㆍ탐에(貪恚)ㆍ고락과 같은 것이며, 원해란 뱀과 쥐, 이리와 말 또는 물소, 살쾡이와 쥐와 같은 것이다.
정해란 부정관(不淨觀)으로 탐심(貪心)을 제거하고 자심(慈心)으로 진심(瞋心)을 제거하고 비심(悲心)으로 해심(害心)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8정도의 맺힘을 제거하는 두 인]
팔성도분(八聖道分)이 모든 맺힘을 제거하는데 다시 두 인(因)이 있으니
첫째는 진실인(眞實因)이고, 둘째는 방편인이다.
진실인이란 이른바 종자를 말하며,
방편인이란 그 나머지 연(緣)과 같은 것이다.
방편인에 네 가지 연이 있으니
첫째는 인연이며, 둘째는 차제연(次第緣)이며, 셋째는 연연(緣緣)이며, 넷째는 증상연(增上緣)이다.
인연이란 모든 법의 생인(生因)이며,
증상연이란 방편인을 말하며,
차제연과 연연은 심(心)과 심수법(心數法)을 말한다.
이것이 네 가지 연이다.
2) 법을 구하는 것(3), 법의 생성과 소멸
이와 같은 열 가지 인(因)이 어떻게 모든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만들어 내며,
어떻게 생사를 끊어버리며, 어떻게 생사를 끊지 못하는가?
예를 들어 세간 중에는 갖가지 곡식으로 목숨을 증장(增長)하는 것에 갖가지 이름이 있는데, 이른바 보리ㆍ밀ㆍ콩ㆍ팥ㆍ경량(粳粮)ㆍ깨 등이다.
이것을 유포인(流布因)이라 한다.
기갈로 인해서 기력이 없으므로 이 걱정을 없애야만 몸이 힘을 얻기 때문에 보리ㆍ밀에서 나아가 깨를 구한다.
맛좋은 음식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에 탐착(貪箚)이 생기고, 이 탐착심 때문에 방편을 찾는다.
이것을 종인(從因)이라 한다.
저들 종자처럼 서로 닮은 열매를 낳는 것을 작인(作因)이라 한다.
흙ㆍ물ㆍ불ㆍ바람ㆍ분토(糞土)ㆍ인공(人工) 같은 것들을 섭인(攝因)이라 하며 씨앗에서부터 자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증장인(增長因)이라 한다.
씨앗이 자라면 열매를 맺듯이 열매가 다시 인(因)을 낳는 것을 전인(轉因)이라 한다.
마치 보리가 보리를 낳듯이 팥이 스스로 팥을 낳는 것을 불공인(不共因)이라 한다.
씨앗을 떠나서 그 나머지를 따라 열매를 맺는 것을 공인(共因)이라 한다.
씨앗이 우박을 만나거나 불에 태워지거나 새에 먹히는 것 등을 해인(害因)이라 한다.
우박이나 불, 새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해인(不害因)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인(因)이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 법을 구하는 것(4), 십이인연이 가진 명상(名相)
다시 십이인연이 가진 명상(名相)을 풀어 말하리니,
무명(無明)이 행(行)으로 인연하며, 행이 식(識)으로 인연하며, 식이 명색(名色)으로 인연하며, 명색이 육입(六入)으로 인연하며, 육입이 촉(觸)으로 인연하며, 촉이 수(受)로 인연하며, 수가 애(愛)로 인연하며, 애가 취(取)로 인연하며, 취가 유(有)로 인연하며, 유가 생(生)으로 인연하며, 생이 노사(老死)ㆍ우비(憂悲)ㆍ수뇌(愁惱)ㆍ대고(大苦)ㆍ취집(聚集)으로 인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유포인이라 한다.
무명이 행에 인연하는 데서부터 생이 노사에 인연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탐착(貪箚)하고 분노하기 때문에 십이인연을 끊지 못한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
현재의 애가 미래의 무명을 취하는데 이것이 작인이며,
현재의 유가 미래의 행을 취하는데 이것이 작인이며,
현재의 식이 미래의 생을 취하는데 이것이 작인이며,
현재의 명색ㆍ육입ㆍ촉ㆍ수가 미래의 생ㆍ노사를 취하는데 이것을 작인이라 한다.
선우(善友)를 가까이 하지 않고, 법을 즐겨 듣지 않고, 진리를 사유하지 않고, 법에 따라 주(住)하지 않는 이 네 가지 일이 무명에서부터 생과 노사에 이르기까지를 섭취한다.
이것을 섭인이라 한다.
악업으로 인해 무명에서부터 노사까지를 증장하면
이것을 증장인이라 한다.
무명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ㆍ중ㆍ하를 말한다.
하는 중의 인이 되고 중은 상의 인이 되며 노사(老死)에까지 이른다.
이것을 전인이라 한다.
무명이 있으면 지옥에 떨어지며, 무명이 있으면 축생에 떨어지며, 무명이 있으면 아귀에 떨어진다.
이것을 불공인이라 한다.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십이인연을 공유(共有)하는 것을 공인이라 한다.
무명의 인연 때문에 구족성(具足性)이 없어서 여래와 함께 한 나라에 같이 태어나지 못해 선우(善友)와 멀리 떨어지고,
법을 얻어 듣지 못해서 진리를 사유하지 못하고,
법에 따라 주(住)하지도 못하고, 삼십칠품(品)을 수집(修集)하지도 못한다.
이것을 해인이라 한다.
무명을 제거하였으므로 성(性)이 구족함을 얻고, 성이 구족하기 때문에 여래와 함께 같은 나라에 태어나 선우를 가까이 함으로써 정법(正法)을 얻어 듣고, 정의(正義)를 사유하고, 법에 따라 주하여 삼십칠품을 수집한다.
이것을 불해인이라 한다.
이렇기 때문에 이 열 가지의 인이 세간의 법을 낳는다.
2) 법을 구하는 것(5), 세간의 법을 생출한다는 것
어째서 열 가지 인이 세간의 법을 생출(生出)한다고 하는가?
만일 삼십칠품의 명상(名相)을 말한다면, 보리명상에서부터 열반명상에 이르기까지를 유포인이라 한다.
사념처(四念處)로 인하여 사정근(四正懃)을 얻고,
사정근으로 인하여 여의족(如意足)을 얻고,
여의족으로 인하여 오근(五根)을 얻고,
오근으로 인하여 오력(五力)을 얻고,
오력으로 인하여 칠각분(七覺分)을 얻고,
칠각분으로 인하여 팔성도(八聖道)를 얻고,
팔성도로 인하여 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
무명이 멸하므로 모든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므로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므로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므로 육입이 멸하고, 육입이 멸하므로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므로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므로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므로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므로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므로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므로 노사가 멸하고, 노사가 멸하므로 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
성이 구족하기 때문에 삼십칠품을 닦고, 삼십칠품을 닦기 때문에 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
성이 구족하기 때문에 삼십칠품에 이르기까지 능히 보리를 낳는다.
이것을 작인이라 한다.
선우를 친근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그 뜻을 생각하여 법에 따라 주하며, 제근(諸根)을 조복해서 팔성도를 닦는다.
이것을 섭인이라 한다.
삼십칠품이 능히 두 가지 열반의 인이 되니,
이것을 전인이라 한다.
성문성(聲聞性)을 구족하면 성문과를 얻고,
연각성을 구족하면 연각과를 얻으며,
불성을 구족하면 무상도(無上道)를 얻는다.
이것을 불공인이라 한다.
이와 같이 세 종류의 중생이 모두 함께 삼십칠품을 수집하면 이것을 공인이라 한다.
성이 구족하지 못하여 팔난(八難)에 태어나서 정법(正法)을 듣지 못하면 이것을 해인이라 한다.
해인을 깨뜨려서 정법을 얻어 들으면 불해인이라 한다.
팔성도의 인연을 수집하여 성문보리와 벽지불보리를 얻고 불보리를 얻으면 이것을 증장인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인이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법에 각각 삼세(三世)가 있으니, 이른바 과거ㆍ미래ㆍ현재이다.
만일 이 열 가지 인을 떠나서 또 인이 있다고 말한다면 옳지가 않다.
[과(果)]
무엇을 과(果)라 하는가?
과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과(報果)이며, 둘째는 여과(餘果)이며, 셋째는 해탈과이고, 넷째는 현작과(現作果)이며, 다섯째는 증상과(增上果)이다.
불선(不善)한 법은 삼악보(三惡報)를 얻고, 유루선법(有漏善法)은 인천과(人天果)를 얻는다.
이것을 보과라 한다.
악을 지으면 즐겨 악업을 쌓고 선을 닦으면 즐겨 선업을 수집한다.
이것을 여과라 한다.
팔성도를 닦아 멀리 번뇌에서 떠나면 해탈과라 한다.
범부(凡夫)는 비록 도를 닦아 번뇌를 떠났더라도 해탈과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필경(畢竟)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이 현세에 갖가지 방편으로 힘써 노력해서 재물을 얻는다면,
이것을 현작과라 한다.
안근(眼根)과 안식(眼識)에서부터 의법(意法)ㆍ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를
증상과라 한다.
보살마하살이 인과를 아는 것으로 작력(作力)을 증장하고 도를 수집함으로써 짓지 않으면 받지 않고, 지으면 그 과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보살마하살이 인과를 알기 때문에 십이부경을 구해서 받아 지녀 독송하고 베껴 써서 해설하여 제이의 업력(業力)을 얻는다.
만일 보살이 중생의 업의 인과를 믿지 않는다면 결코 보리 금계(禁戒)를 얻을 수 없다.
2) 법을 구하는 것(6), 구하는 까닭
[삼부경을 구하는 까닭]
보살이 어째서 십이부경을 구하는가?
보살은 지극한 마음으로 보살계를 염하고 불법을 열심으로 구하며, 나아가 일구(一句)ㆍ일게(一偈)ㆍ일의(一義)에 이르기까지 말하는 자를 보면 공경심이 생겨 기쁜 마음으로 즐거이 듣는다.
설법하는 이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설법하는 이를 자기 자신처럼 여겨 그 허물을 구하지 않으며,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공경하기를 마치 부처님으로부터 듣는 것과 같이 한다.
만일 설법하는 이가 법을 아껴 베풀지 않으면, 당연히 돈과 재물 나아가 신명에 이르기까지 바쳐서 봉헌한다.
만일 보살로서 능히 이와 같이 하는 이가 있다면 의(義)보살이라 한다.
보살이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일구ㆍ일게ㆍ일의에 이르기까지 들어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삼계(三界)의 번뇌가 모두 시들면서 보살계를 갖추게 된다.
보살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구할 때는 법을 갈구하는 마음이 중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으니, 설사 뜨거운 무쇠나 불길이 타오르는 데를 밟더라도 근심스러워하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이 하나의 게(偈) 때문에도 오히려 몸을 아끼지 않는데 하물며 십이부의 경(經)이겠으며, 하나의 게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데 더구나 그밖의 다른 재물이겠는가?
법의 이로움을 들으면 몸이 편안하고 즐겁고 깊이 믿는 마음이 생겨서 유연한 마음을 얻는다. 직심(直心)과 정견(正見)으로 설법하는 이를 보되, 마치 부모처럼 보아서 마음에 교만함이 없다.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들으나 끝내 자신을 위해 듣지 않으며,
중생들이 가진 선근(善根)을 증장하고 정법(正法)을 청수(聽受)하되 이양(利養)을 위하지 않는다.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보살계를 받는 것이라서 자신의 이로움을 위하지 않는다.
정법을 위하는 것이므로 왕난(王難)이나 기갈ㆍ한열(寒熱)ㆍ호랑(虎狼)ㆍ악수(惡獸)ㆍ도적 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먼저 번뇌의 제근(諸根)을 스스로 조복한 다음에 법을 들으며, 그렇지 않을 때는 듣지 않는다.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되 말하는 이를 공경하고 법을 존중한다.
이것을 보살이 보살계를 구족하였다고 한다.
어떤 것이 보살이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인가?
법을 듣는 데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지심(至心)이며, 둘째는 일심(一心)이며, 셋째는 일체심(一切心)이며, 넷째는 선심(善心)이다.
이것을 보살이 열심히 십이부경을 구한다고 한다.
[12부경의 구하는 까닭]
보살은 어째서 십이부경을 구하는가?
모든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유포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모든 불법을 증장(增長)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세간으로 하여금 불법을 믿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무량한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이 십이부경을 구한다.
[인론(因論)을 구하는 까닭]
보살이 왜 인론(因論)을 구하는가?
인론의 모든 과죄(過罪)를 알기 위해서이며,
방편을 넓혀서 중생을 조복(調伏)하기 위해서이며,
여래의 말뜻과 세간의 말뜻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보살이 인론을 구한다.
[성론(聲論)을 구하는 까닭]
보살이 왜 성론(聲論)을 구하는가?
말을 청정하게 장엄하기 위함인데,
청정하지 못한 말은 뜻을 명료하게 선설(宣說)할 수 없기 때문이며,
모든 진리를 이해하여 알기 위해서이며,
바르지 못한 말과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고 사견(邪見)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며,
방편을 터득해서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보살이 성론(聲論)을 구한다.
[의방(醫方)을 구하는 까닭]
보살이 왜 여러 가지 의방(醫方)을 구하는가?
중생으로 하여금 사백네 가지 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며,
연민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조복하여 신심(信心)이 생기고 희심(喜心)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보살이 여러 가지 의방을 구한다.
[방술(方術)을 구하는 까닭]
보살이 왜 세간의 방술(方術)을 구하는가?
쉽게 재물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
모든 중생에게 신심(信心)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이며,
세간의 일을 알아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서이며,
모든 법의 갖가지 암장(闇障)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다.
만일 보살이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를 구하지 못한다면, 결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이룰 수 없으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해서 이 다섯 가지를 구한다.
보살이 보살계를 성취하는 것은 중생에게 말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말하며’,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것은 십이부경을 두고 하는 말이며,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것은 다섯 가지를 성취하는 것이며,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라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기 위함인 것이다.
말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차제설(次第說)이고, 둘째는 청정설(淸淨說)이다.
차제설이란 처음에 혜시(惠施)를 말하고, 다음에 금계(禁戒)를 말하고, 다음에 천락(天樂)을 말하고, 다음에 삼매(三昧)를 말하고, 다음에 십이부경을 받아 지녀서 그 뜻을 생각하고 법대로 주(住)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차제설이다.
청정설이란 중생이 높은 곳에 있고 자신이 낮은 곳에 있으면 설법하지 않으며,
병환을 제거해 주려 해도 마음에 믿지 않는 자에게는 설법하지 않으며,
생사를 싫어하지 않는 자에게는 말하지 않으며,
중생들이 있기 전에는 말하지 않으며,
사람 가운데 머리가 덮인 자에게는 말하지 않으며,
과실(過失)을 구하는 이에게는 말하지 않고,
그 밖의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와 수다라(修多羅) 중에서는 모두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법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만일 법을 말하는 자가 법을 존중하면 법을 듣는 자도 또한 받들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경만(經慢)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청정설이라 한다.
차제설은 일체를 말하고 일체가 말하는 것은 일체를 말하는 것이다.
인색함을 깨뜨린 법심(法心)이 교만함이 없어서 일구일게(一句一偈)이든 나아가 반게(半偈)이든, 말이든 뜻이든, 법설(法說)이든 의설(義說)이든 법의설(法義說)이든 간에 이롭고 기쁜 것임을 제시해 가르치니, 때로는 가책하고 때로는 직접 말하고 때로는 비유로 말하여 경우에 따라 응설(應說)하며, 혹은 얕고 근접되게 말하고 쉽게 들어가도록 말하여 어디서나 요설(樂說)한다.
이것을 보살의 차제설이라 한다.
청정설은 보살마하살이 원증(怨憎) 중에서 자심(慈心)을 수집(修集)하는 것이다.
자심을 얻고 나서는 악한 중생과 방일(放逸)한 자에 대해 갖가지 방편을 써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즐거움에 이르게 하며,
마음이 교만하고 방자한 이와 탐착(貪箚)하고 빈궁한 이에 대하여 방편으로 개시(開示)해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니,
자신을 찬양하고 남을 헐뜯어 욕하거나 음식ㆍ이양(利養)ㆍ명예 따위를 얻으려고 설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보살의 청정설이라 한다.
3) 법에 머무르는 것
① 진리를 사유하는 것
법에 따라 주(住)하는 이는 신ㆍ구ㆍ의의 업이 착한 법을 수집(修集)하고 진리를 바르게 사유한다.
이것을 법에 따라 주한다고 한다.
어떤 것을 보살이 진리를 사유한다고 하는가?
보살이 신ㆍ구ㆍ의의 업을 조복하여 기꺼이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처하며, 스스로 받아 지닌 것이든 남을 따라 들은 것이든 간에 바른 진리를 사유하고 옳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으며,
진실의 뜻을 지극한 마음으로 사유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마음을 두어 사유하되 실의(實義)에 의거한다.
문자에 의거하지 않고 사유로 분별하여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며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한다.
비사유(非思惟)와 두려워하는 마음의 혼란을 버리기 때문에 곳에 따라 소리를 듣고 소리를 따라 뜻을 생각해서 다른 말을 따르지 않는다.
비록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코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은 뜻에 의하고 문자에 의하지 않아서 능히 여래의 깊고 깊은 뜻을 알고, 법과 비법(非法)을 알아서 능히 동전(動轉)함이 없다.
이러한 보살은 인욕(忍辱)을 얻지 못한 자라도 이제 이미 인욕을 얻은 것이며,
삼매를 얻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삼매를 얻은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법에 따라 주한다고 한다.
② 닦는 것
어떤 것을 수집(修集)이라 하는가?
수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마타(舍摩他)이고,
둘째는 비파사나(毘婆舍那)이며,
셋째는 애요(愛樂)수집이고,
넷째는 어디서나 수집하여 기꺼이 그 가운데 주(住)하는 것이다.
사마타는 보살마하살이 사선(四禪)과 사무색정(四無色定)을 수집하는 것이다.
마음을 모아 선정에 인연해서 능히 오개(五蓋)를 깨뜨리고,
선정의 주(住)에 인연하기 때문에 진실행(眞實行)을 이해하며,
능히 모든 나쁜 각관(覺觀)으로부터 이탈한다.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서 능히 안팎 법계의 뜻을 생각하여 법상(法相)을 순리로 따르며, 심법(心法)과 심수법(心數法)이 한 인연에 안주(安住)한다.
이것을 사마타라 한다.
비파사나는 사마타를 수집하여 능히 법계를 보아 법상(法相)을 분별하는 것이다.
선법을 구하고 악법을 멀리 이탈하며,
지혜로 바르게 보지 거꾸로 보지 않아 진리를 잘 이해한다.
이것을 비파사나라 한다.
애요수집은 지극한 마음으로 위와 같은 두 법을 수집하는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수집한다는 것은 항상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애요수집이라 한다.
낙주수집(樂住修集)은 사마타와 비파사나를 수집할 때 방편을 빌리지 않고 뜻에 따라 주하는 것이다.
이것을 낙주수집이라 한다.
보살마하살이 항상 두 법을 수집하는 것을 또한 낙주(樂住)라 하며, 또한 청정이라 하며, 또한 신심적정(身心寂靜)이라 하며, 또한 광지(廣智)라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 두 법을 닦으면 곧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근본을 얻으니, 보살이 보살계를 성취하는 것은 이 두 법을 얻는 것이다.
이것을 수집이라 한다.
4) 가르치는 것
① 갖가지 가르침
무엇을 교(敎)라 하는가?
교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보살마하살이 삼매(三昧)를 성취하여 중생을 가르치고자 할 때는 응당 먼저 정(定)에 들거나 더불어 공주(共住)한 다음이라야 능히 이 여덟 가지로써 교화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지심(知心)이고, 둘째는 지근(知根)이며, 셋째는 선근(善根)이고, 넷째는 번뇌이며,
다섯째는 대치(對治)인데,
대치는 탐심(貪心)이 있는 이에게는 부정(不淨)함을 보도록 가르치고,
에심(恚心)이 있는 자에게는 자심(慈心)을 수집하도록 가르치고,
치심(癡心)이 있는 자에게는 인연을 보도록 가르치고,
나쁘게 각관(覺觀)하는 이는 호흡을 세어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을 여덟 가지라 한다.
이와 같은 여러 선방편(善方便)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단상(斷常)의 마음을 타파하고 중도(中道)를 말한다.
실제로는 작상(作相)이 없는데도 작상을 지으며,
진실은 얻는 것이 아닌데도 득상(得想)을 지으며,
진실은 촉(觸)이 없음에도 촉상(觸想)을 지으며,
진실은 증(證)이 없음에도 증상(證想)을 지으니,
이 여덟 가지가 능히 이와 같은 망상과 교만을 깨뜨리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마음이 만일 지주(止住)하지 않으면 능히 연(緣)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지주한 뒤에 능히 정법(正法)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알맞은 방편(方便)을 아는 것이다.
만일 알맞은 방편을 알고, 중생의 심근(心根)과 선근(善根) 및 번뇌를 알면,
이 네 가지로 능히 산심(散心)을 연중(緣中)에 지주(止住)케 해서 단상(斷常)의 견(見)을 타파해 법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능히 정법(正法)을 본다고 한다.
탐심을 깨뜨려야겠기에 부정(不淨)함을 보도록 말하며,
진에심(瞋恚心)을 깨뜨려야겠기에 자심관(慈心觀)을 말하며,
우치(愚癡)를 깨뜨려야겠기에 인연관을 말하며,
나쁜 각관(覺觀)을 깨뜨리고자 수식관(數息觀)을 말한다.
이것을 선방편을 안다고 한다.
② 보살의 여덟 가지 청정한 힘
만일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이 계신 곳이나 보살이 있는 곳에서 스스로 이 여덟 가지를 배우고, 다시 이 법을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여덟 가지 힘이라 한다.
그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선정과 해탈을 아는 힘이고,
둘째는 지근력(知根力)이며,
셋째는 해력(解力)이고,
넷째는 세계력(世界力)이며,
다섯째는 지지처도력(知至處道力)이고,
여섯째는 숙명지력(宿命智力)이며,
일곱째는 생사지력(生死智力)이고,
여덟째는 누진지력(漏盡智力)이다.
이것을 여덟 가지라 한다.
또 교화하는 데에는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악을 멀리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선법을 수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셋째는 범계(犯戒)한 자를 가르쳐서 참회하도록 하는 것이고,
넷째는 갈마(羯磨)에 대한 억념(憶念)을 짓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빈출갈마(擯出羯磨)를 짓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니, 연민심(憐愍心)이 있기 때문이며, 청정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만일 성내는 마음으로 중생을 교화한다면 보살의 금계를 얻을 수 없다.
만일 가르침을 받는 자가 법대로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공경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우러러보고, 마치 부모나 불보살처럼 공양드리고 존중할 것이다.
어째서인가? 법대로 가르침을 받기 때문에 능히 신속하게 성문보리와 연각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의 가르침이라 한다.
5) 선방편
선방편(善方便)은 보살마하살이 일체로 소유한 신ㆍ구ㆍ의업으로써 모두 중생을 위하여 조복하는 것이다. 이것을 선방편이라 한다.
선방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혜시(惠施)이고, 둘째는 연어(軟語)이고, 셋째는 이익(利益)이고, 넷째는 동의(同義)이다.
보살마하살이 능히 중생에게 의복ㆍ음식ㆍ방사(房舍)ㆍ와구(臥具)ㆍ질병의 의약 등을 베풀면, 혜시를 받는 이가 이를 받고 나서는 보살의 처소에 대해 애념(愛念)하는 마음이 생겨서 지극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들은 뒤에는 이를 받아 지닌다.
받아 지니기 때문에 보살은 이를 연어(軟語)로 찬탄하며,
찬탄하여 주기에 받아 지닌 자가 기뻐하고,
기쁘기 때문에 능히 악심(惡心)을 깨뜨리고 선법을 수지한다.
악심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보살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미 신(信)ㆍ계(戒)ㆍ문(聞)ㆍ시(施)ㆍ혜(慧)를 구족하였으니 너희들도 마땅히 구족해야 할 것이다.”
보살이 만일 이 다섯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면 모든 중생을 교화할 수 없다.
도리어 중생들이 말하기를,
“당신 자신도 구족하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남에게는 구족하라고 하는가”라고 할 것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보살이 다섯 가지를 구족하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이 선방편을 써서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방편이란 선조복(善調伏)이며,
선조복이란 불기(不棄)ㆍ부전(不轉)ㆍ불퇴(不退)이다.
이것을 선방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