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상권
9. 마인제녀경(摩因提女經)
부처님께서 구유국(句留國)의 실작법(悉作法)이란 고을에 계셨다. 마인제(摩因提)라고 하는 한 범지가 세상에 둘도 없이 잘 생긴 딸을 낳았다.
그리하여 전후로 국왕과 태자 및 대신 장자(長者)들이 찾아와서 혼인을 청했으나 아버지는 모두 거절하면서 말했다.
“내 딸만한 사람이 있으면 아내로 주겠다.”
부처님께서 때마침 발우를 들고 고을로 들어가 걸식하여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깨끗이 씻어 갈무리를 한 다음, 성을 나와 숲 속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계셨다.
이때 마인제가 식사를 마친 뒤 전원을 거닐면서 숲 사이를 지나다가 금색의 몸에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춘, 마치 일월(日月)과도 같은 모습의 부처님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딸을 이 훌륭하신 분에 비긴다면 이는 평범한 사람을 내 딸에 비기는 것과 같다.’
마인제는 곧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는가?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소. 이제 우리 딸보다 훨씬 훌륭한 사윗감을 찾았다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온갖 보석과 영락(瓔珞)으로 딸을 잘 치장하였다. 그런 다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딸을 데리고 성을 나왔다.
어머니가 부처님의 발자국을 보니 무늬가 분명하기에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공연히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끝내 사위를 찾을 수 없으니 어째서인가요?”
말을 마친 어머니는 게송을 읊었다.
음란한 사람은 뒤꿈치를 끌며 걷고
성급한 사람은 발을 움츠려 걷고
어리석은 사람은 종종걸음을 치나니
이 발자국의 주인은 천상과 인간 중의 존귀한 분이로다.
아버지가 말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딸을 위해 근심일랑 하지 마소. 딸은 반드시 남편감을 얻게 될 것이오.”
그리고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왼손으로 어깨를 잡고 오른손으로 물병을 잡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제 제 딸을 드릴 테이니 첩으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딸이 부처님을 보니 모습이 더없이 단정하여 삼십이상을 갖추었고 몸을 감고 있는 영락(瓔珞)은 마치 명월주(明月珠)처럼 빛났다. 딸은 그만 부처님을 연모하는 음란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에 연정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알고 이에 『의족경』을 말씀하셨다.
나는 본디 음란한 세 여인을 보았지만
그래도 음욕이 조금도 일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대소변이 가득한 그대를 어찌 탐착하랴.
발조차 그대의 몸에 차마 닿을 수 없다네.
나는 말한다네. 음욕을 일으키지 말지니
법다운 수행과 자신의 내면을 살핌이 없으면
악한 일을 듣더라도 싫어하는 마음이 없어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고통을 생각하지 않네.
겉으로 드러난 좋은 얼굴과 몸만 보나니
높은 이가 어찌 이를 받아 드리리요.
안팎의 수행을 닦아야 이를 깨닫는 법
총명한 사람에게 어리석은 행동을 말하네.
보고 듣는다고 해서 총명한 이가 아니요
계행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청정함이 아니며
보고 듣지 않는다고 해서 어리석음이 아니니
수행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맑힐 수 있네.
이러한 생각일랑 버리고 받아들이지 말며
말하지도 말고 입과 행실을 잘 지킬지니
저 다섯 번뇌일랑 보고 들으면 버리고
지혜와 계행을 지켜 음란한 짓을 말라.
세상에서 무엇을 보든 어리석은 행동 말라.
계행이 없는 이들은 갖은 생각하게 되네.
나의 것만 옳다 하여 어리석은 법에 빠지나니
자기 소견 옳다 하면 뉘라서 청정함이 있으랴.
그대는 모쪼록 보고 들음을 진실되게 할지니
생각과 행동이 진실해야 도를 향할 수 있다네.
저쪽으로 물러나 조금도 생각을 말라.
지금 어찌하여 입으로 세존을 속이려 하는가.
만사는 같거나 지나치거나 모자란 법
이미 생각을 내면 곧 분별이 되네.
이 셋이 같지 않나니 무엇을 분별하랴.
모두 끊어버리고 부질없는 생각 말라.
진리를 얻은 이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미 공(空)에 도달했거니 뉘라서 분쟁하랴.
사도(私道)도 정도(正道)도 모두 실체가 없거늘
무슨 말을 좇아 상대방의 단점을 찾으리.
욕심의 바다를 떠나 생각조차 말지니
나는 추현(縣)에서 인행(忍行)을 쌓았네.
자기를 비우려면 망상을 하지 말지니
세상의 사독(邪毒)이 복종하여 일어나지 않네.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들을 버리면 고통은 사라질지니
이들을 떠나 함께 하지 말라고 세존은 말한다네.
물 속의 연꽃이 깨끗하여 진흙이 묻지 않고
흙탕물 아무리 더러워도 시들지 않음과 같네.
존귀한 이는 편안하여 탐착하는 바가 없어
세속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을 뿐더러
망상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아
행동이 법도에 맞아 알음알이를 따르지 않네.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에 떨어지는 행실을 하지 않고
삼세의 일을 버리고 가르치지 않네.
버리고 생각하지 않으며 속박 받지도 않아
총명한 견해를 따라 끝내 게으르지 않나니
보는 것과 생각을 다스려 전혀 취함이 없어
헛된 명성을 싫어하며 삼계를 거닌다네.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