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광명동자인연경 제3권
[푯대 기둥의 큰 방울]
이때 왕사성과 첨파국(瞻波國) 두 지경(地境) 가운데 푯대 기둥[標記柱]이 서 있었는데 채색으로 장식되었고
밑에는 두 발우가 있었으니 하나는 쇠요 하나는 옹기였다.
이 발우는 전에 가지(加持)된 것으로서 이 두 경계에 놓여 졌으며
멀지 않은 데에 한 조세관[稅場]이 있어서 모든 상인들이 조세[王物]를 바쳤다.
한 세관원[守稅人]이 있었는데 여러 아들과 권속과 재물은 풍족하였으나 선(善)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세관[稅場]에서 갑자기 죽어서 나쁜 큰 야차(夜叉)가 되어 역시 거기에 있으면서 세관을 지켰는데,
어느 날 밤 여러 아들의 꿈에 야차가 말했다.
“거기 푯대 기둥[標記柱] 위에 하나의 큰 방울을 달아서 세관을 지나는 모든 상인들 중 만약 조세 바칠 물건이 있으면서도 숨기고 바치지 아니하면 그 방울이 저절로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세관원은 알고서 곧 서둘러 다시 모으고 거듭 수색하여 조세를 받고서 놓아 주라.”
여러 아들들은 꿈을 꾸고는 이튿날 아침에 곧 권속을 데리고 세관 곁에서 그 기둥을 찾아 꿈꾼 대로 기둥 위에 방울을 달았다.
[만영달모 바라문이 모직천을 팔려고 하다]
그때 첨파국에 집에서 사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름이 만영달모(曼▼(寧*也)怛謨)였다.
상업[貿易]으로 직업을 삼았는데 어느 때 자기 아내와 함께 있을 때였다.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 집안 살림을 계획합시다.
돈을 벌어서 살림[所須]을 장만해야지, 어찌 편안히 일거리[營作]가 없어서 되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시장에 가서 발이 아주 고운 실을 사오시오.
내가 흰 모직천을 짤 터이니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장사한다면 어찌 이익이 없겠습니까?”
그때에 바라문은 아내의 말대로 사 가지고 돌아왔다.
아내는 곧 베틀을 차리고 다음에 펴서[敷置] 그 천을 짜는데 발이 가늘고 부드러워 아름답기 짝이 없었으며 날실과 씨실의 올이 곱고 독특하고 고르게 짰다.
이렇게 힘들여서 그 모직천을 짜내고 곧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이 횐 모직천은 아주 아름답고 가늘고 부드러우니 값이 천 금짜리입니다.
당신이 갖고 나가셔서, 천 금에 사려는 이가 있거든 주시고 천 금 밑으로 보거든 당신은 돌아다니면서 수다를 떠시오.
‘이 곳엔 이 좋고 가는 천을 아무도 아는 이가 없구나.’
이렇게 외치고는 곧 들고 다른 곳으로 가서 파시오.”
그때에 만영달모 바라문은 아내의 말대로 그 가는 천을 가지고 시장에 들어가 팔아보았으나 끝내 천 금에 사는 이가 없었다.
그는 아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고 그 말을 외쳤다.
“첨파 큰 성에서 이 가는 모직천을 아무도 알지 못하네.”
이렇게 외치고는 갖고 돌아와서 아내와 함께 의논하였다
“여기서는 이 값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다른 나라로 가면 반드시 아는 이가 있을 것이오.”
그리고는 서로 작별하였다.
그때에 바라문은 다시 그 전에 것과 똑같이 짠 새 천 한필[段]을 보태어 일산 자루 속에 함께 넣고 상인들을 따라 숨기고 다녔다.
차츰 본국을 벗어나 왕사성을 가는데 세관이 있는 국경을 지나게 되었다.
모든 상인들은 거기에 이르러서 가진 물건들을 한 군데 내놓아 모았다.
그때에 세관원은 차례로 검사하였고
모든 상인들은 각기 조세 바친 물건을 내어 놓았으나
그 가운데 만영달모 바라문만은 전에 자루 속에 넣어둔 모직천을 숨긴 채 바치지 아니하고 혼자 한 쪽에 있었다.
이때 세관 옆에 세워진 푯대 기둥에 달린 방울이 저절로 울렸다.
그리하여 세관원은 곧 무리 가운데에 탈세한 이가 있는 줄 알고 곧 상인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지금 이 기둥 위의 방울이 절로 울었소. 바람에 흔들린 것도 아니요,
사람이 흔든 것도 아니오. 나는 벌써 확실히 알고 있소.
당신네 무리 가운데에 누군가 물건을 숨겨두고 조세를 안 바친 이가 있소.”
그리하여 세관원은 곧 모두 불러 모으고 다시 검사하였다.
“여러분 중에서 누가 조세 바칠 물건을 숨기고 바치지 않았는지 모릅니까?”
그때에 모든 장사치들은 서로서로 알아보았으나 조세물이 없었으므로 다들 앞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방울이 또 울었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 숨겼는가를 여러 번 자세히 검사하였으나 세금을 숨긴 물건이 없었다.
상인 우두머리는 세관원에게 말했다.
“우리들 가운데엔 조세물을 숨긴 이가 없습니다.
필시 다른 사람들이 몰래 숨기고 앞서 간 모양입니다.”
이렇게 말한 뒤 모두는 함께 의논하였다.
“아마도 이 바라문이 조세물을 숨긴 모양이다.”
나중에는 세관원이 만영달모 바라문 곁에 달라붙어서 가지 않고 굳이 조세물을 찾았다.
그때에 바라문은 말했다.
“당신은 무슨 까닭으로 눈치 보며 달라붙느냐?
당신은 이미 나에게 실제 로 물건이 없다는 것을 보지 않았소?
만약 조그만 물건이라도 숨기고 조세 바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가진 대로 모두 털어서 조세로 바치겠소.”
이 말을 마치자 방울이 또 소리를 내었다.
이때에 세관원은 이 바라문에게만 선선이 검사하다가 꾸짖으며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당신 어찌하여 조세품을 굳이 숨기고 선뜻 바치지 않소?
당신은 지금 저 방울 소리가 자주 울리는 것을 듣지요?
이 이상한 일을 당신은 알아야 하오.
저 기둥 밑엔 틀림없이 천신이 있어서 지키니,
당신은 마땅히 물건을 내어서 스스로 허물을 저지르지 마시오.”
바라문은 말했다.
“천신이 돕다니 나는 이 사실을 믿겠습니다.”
말하고는 일산 자루 속에서 흰 모직천을 내어 세관원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내가 숨겼던 조세품이니 당신은 받으시오.”
이때에 세관원은 그 모직천을 받고 나서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왕에게 보내지 못했으니 내가 받을 것이 아니라 천신에게 바칩시다.”
그리고는 모직천을 가져다 기둥에 걸고 다시 바라문에게 말했다.
“내가 이미 모직천을 걸어서 저 천신에게 바쳤으니 당신이 혹시 원한다면 가지시오.”
그때에 바라문은 곧 그 모직천을 걷어가지고 앞으로 가다가 한 조용한 곳에서 역시 전처럼 일산 자루 속에 넣어 숨기고 갔다.
차츰 왕사성에 들어가자 바라문은 그 모직천을 내어 펴서 시장에다 놓고 누가 천 금을 내고 사가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두루 돌아다녔지만 끝내 천 금에 사겠다는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바라문은 큰소리로 외쳤다.
“왕사 큰 성에서 아무도 이렇게 묘하고 가는 모직천을 알아보는 이 없네.”
[광명 장자 바라문에게서 모직천을 사다]
이렇게 외칠 때에 광명 장자는 보배로 장식한 코끼리를 타고 왕궁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는데
마침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잠깐 멈추고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하여 이 성에서 경박한 말을 하는가?”
바라문은 대답이 없었다.
광명 장자는 말하였다.
“당신은 이 일의 원인을 말하시오.”
바라문은 말하였다.
“나는 본국에서 이 두 필의 아주 아름답고 가는 모직천을 가지고 와서 장사를 합니다.
누가 나에게 천 금에 산다면 곧 주겠는데 두루 다녔으나 그 값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광명 장자는 말하였다.
“당신은 갖고 오시오. 내가 잠깐 구경하겠소.”
이때에 바라문은 곧 장자를 따라서 집으로 갔으며, 이내 그 모직천을 펴서 장자에게 보였다. 장자는 보자 곧 알아보고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하나는 새것이고 하나는 묵은 것이니 묵은 것은 5백 금만 주겠소.”
바라문은 말했다.
“장자께서 주신다는 그 값이 맞지 않습니다.”
광명 장자는 말했다.
“내가 지금 보여 주겠소. 이 묵은 것은 빨아야 새것이 될 거요.”
장자는 곧 묵은 모직천을 갖고 누각 위에 올라가서 공중에서 밑으로 떨어뜨리니 그 묵은 것은 무거워서 빨리 땅에 떨어졌다.
광명 장자는 다시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나머지 새 모직천도 내가 보여 주리다.”
바라문은 곧 새 모직천을 장자에게 주니 장자는 보고 또 앞처럼 공중에서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 모직천은 무게가 가벼워 조금 천천히 땅에 떨어졌다.
바라문은 곧 믿음이 갔으므로 이렇게 말했다.
“광명 장자께서는 큰 위력이 있습니다.
이제 이 가는 모직천을 새 것이든 묵은 것이든 다 당신에게 드리되 값은 받지 않겠으니, 당신은 받으시오.”
장자는 대답하였다.
“나의 집은 큰 부자요. 당신은 곤란하거늘 어찌 명목 없이 이 물건을 받겠소.
내가 이제 각기 천 금씩 줄 터이니 두 모직천을 내게 파시오.”
그때에 바라문은 그 값을 받았으며 갖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광명 장자는 먼저 묵은 모직천은 집의 하인에게 주었으며, 뒤에 새 모직천은 스스로 수건을 만들어서 늘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