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신모희수경 하권
[바른 길과 깨달음]
사리자야, 내가 또 생각하기를
‘처음 집을 떠나 석가(釋迦) 종족의 동산으로 가서 염부나무[閻浮樹] 밑에 앉았더니, 해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고 그늘이 덮이어 서늘하였느니라.
나는 그때 애욕에 물든 착하지 못한 모든 법을 버리고, 찾음[尋]과 살핌[伺]이 있어 생멸을 떠난 즐거움[離生喜樂]을 얻어 첫 선정[初禪定]을 증득하였으니, 이것이 바른 길이니라.
여실히 깨닫고 곳곳에서 온갖 도를 부지런히 닦되 이 바른 도 이외에는 다시 다른 도를 진실하다고 여기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렇게 온갖 것을 먹지 않아서 몸이 여위고 더구나 피로가 겹쳐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도를 구하는 것보다는 이제부터 먹을 것을 먹으리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할 때에 한 외도가 있었으니 고행을 받들어 실천하는 신선의 성자[仙聖]로서 나의 생각을 알았느니라.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성스러운 이 구담이여, 그대의 고행을 멈추지 말라.
내가 몸의 터럭 구멍으로 광채를 놓아서 그대를 도와 그대의 몸이 자연히 불어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사리자야, 그때 나는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온갖 음식을 먹지 않는 줄 나라와 읍과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듣고서 사문 구담은 고행을 닦아서 온갖 것을 먹지 않아 몸이 바싹 여위었다 하거늘,
지금 어떤 사람이 말을 퍼뜨려 고행하는 신선의 성인이 몸에서 광채를 놓아 몸이 살찌도록 도와 주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듣고 어찌 나를 거짓말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겠는가?’ 하였느니라.
나는 그들의 거짓말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신선의 말을 싫다고 나무라며 듣지 않았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 점점 골고루 먹을 것을 수용하리라 생각하고 녹두즙(綠豆汁)이나 황두즙(黃豆汁)이나 팥즙[赤豆汁]으로 목숨을 보양하였느니라.
이렇게 점점 골고루 먹은 까닭에 몸의 힘이 점차로 솟아나고, 힘이 점점 솟은 뒤에는 먼저 용하(龍河)에 갔었고,
다음엔 니련하(泥連河)에 가서 천천히 몸을 씻어 깨끗하고 서늘함을 얻었느니라.
점차 걸어 한 마을에 이르니, 한 여인이 있는데 이름이 선생(善生)이라 하였느니라.
곧 우유 미음[乳糜]을 나에게 바치기에 나는 받아마셨고,
이어 사부실가(邪嚩悉迦:삽싯가) 선인이 머무는 곳으로 가서 길상초(吉祥草)를 구하였느니라. 그것을 얻어 가지고는 점차로 큰 보리나무 밑으로 갔느니라.
오른쪽으로 그 나무를 세 번 돌고, 그 나무 밑에 안팎으로 두루두루 길상초를 깔아서 자리를 만들었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 그 위에서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른 기억으로 온갖 탐욕과 착하지 못한 법에 물드는 일을 여의고 찾음이 있고 살핌이 있어 생사를 떠난 즐거움[離生喜樂]을 얻어 첫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
다음은 찾음과 살핌을 그치고 속마음[內心]이 맑고 깨끗하여 한 경계의 성품에 머물러 찾음도 없고 살핌도 없이 선정이 생기는 즐거움[定生喜樂]을 얻어 둘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
다음은 즐거움과 탐욕을 여의어 생각을 버리는 실천에 머물고, 여실히 바르게 알아서 몸으로 묘한 즐거움을 받아 성인이 관찰하는 생각을 버리는 실천과 같이 하여 즐거움을 떠난 묘한 즐거움[離喜妙樂]을 얻어 셋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
다음은 괴롭고 즐거움을 모두 끊어서 먼저 일으켰던 기꺼운 뜻과 번거로운 뜻에 모두 집착하지 않고,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아서 생각을 버리는 청정[捨念淸淨]을 얻어 넷째의 선정을 증득하였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 더욱 삼매[三摩呬多]의 마음에 머물러서 맑고 깨끗하며 결백하게 하여 수번뇌(隨煩惱)의 부드러운 업을 버리고, 편안하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더니,
초저녁에 여실히 하늘눈[天眼]의 지혜가 밝아지는 것을 얻어서 마음이 잘 열리었느니라.
사리자야, 내가 얻은 하늘눈의 맑고 깨끗함은 사람들의 눈을 넘으니,
세간의 온갖 중생들이 나고 죽으며, 예쁘고 추하며, 귀하고 천한 업에 따라 받는 것을 모두 여실히 아느니라.
만일 모든 중생들이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하지 못한 업을 지어 성현을 비방하거나 사악한 소견의 업을 쌓았기 때문에 몸과 목숨이 마친 뒤에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태어나고,
만일 모든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여러 가지 착한 업을 지어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을 일으키면, 바른 소견의 업을 쌓았기 때문에 몸과 목숨이 마친 뒤에 좋은 갈래인 하늘에 태어나나니,
나는 이러한 일을 깨끗한 하늘눈으로써 모두 보고 아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 더욱 삼매의 마음에 머물러서 맑고 깨끗하며 결백하게 하고, 수번뇌의 부드러운 업을 여의어 편안하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으니,
밤중에 여실히 전생일 아는 트임[宿命通]의 지혜가 밝아짐을 얻어 마음이 잘 열리었느니라.
사리자야, 내가 증득한 전생일 아는 트임의 지혜는 능히 지난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을 아나니,
이른바 한 생과 두 생과 세 생과 네 생과 다섯 생과 또는 열 생, 스무 생, 백 생과 천 생과 백천 생과 무수한 백천 생이니,
이렇듯 무수한 생 가운데 이루고 머물고 무너지는 겁[成住壞劫]의 일과, 옛날의 이러한 성(姓), 이러한 이름, 이러한 종족, 이러한 빛깔과 모습[色相], 이러한 음식, 이러한 목숨과 괴롭고 즐겁던 일과 여기에서 멸하여 저기에 태어나며, 저기에서 멸하여 여기에 태어나는,
이렇듯 여러 가지 무수한 일을 나는 전생일을 아는 트임의 지혜로써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때 더욱 삼매의 마음에 머물러서 맑고 깨끗하며 결백하게 하고, 수번뇌의 부드러운 업을 여의어 편안하게 움직이지 않으니, 새벽녘에 여실히 번뇌가 다한 지혜[漏盡智]가 밝아짐을 얻어서 마음이 잘 열리었느니라.
더욱이 샛별이 나타날 때에는 상서롭게 기뻤으니, 인간에서 큰 용이고, 인간에서 큰 스승이며, 인간에서 큰 선인이고, 인간에서 용맹하며, 인간에서 여러 빛의 연꽃이고, 인간에서 흰 연꽃이며, 인간에서 가장 높고, 인간에서 더할 나위 없는 말[馬]을 잘 부리는 사람[善調御者]이며, 인간에서 말을 부리는 사람이니라.
어느 곳에서든 알아야 할 것을 알았고, 얻어야 할 것을 얻었으며,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달았고, 증득하여야 할 것을 증득하였으니,
이러한 모든 것을 잠깐 사이에 상응하는 마음[相應心]을 일으켜 여실한 지혜로써 바른 깨달음의 도[正覺道]를 이루었느니라.
또 사리자야, 내가 알기로 세간의 사문과 바라문이 말하기를
‘사람이 어릴 때에는 얼굴이 윤택하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검으며,
뜻과 기운이 장대하고 마음과 힘이 모두 온전하여 나이가 바야흐로 스물에 이르거나 스물을 지나면 이 사람은 능히 바른 지혜를 마음대로 닦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이 나이가 늙어서 마음과 힘이 쇠퇴하여 장차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바른 지혜를 마음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지금 늙었노라. 나이는 곧 여든이어서 세상 떠나기를 기다리니, 비유하자면 썩고 낡은 수레를 갖가지 밧줄로 얽어매어 억지로 부리는 것처럼 나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야, 너는 두루두루 나라에서 나라로 읍에서 읍으로 다니면서 모든 성문 제자들이 여래의 몸과 신통력과 거룩한 지혜[勝慧]와 말재주와 이러한 다섯 가지 일을 모두 감소시키고 있는 것을 관찰하여라.
사리자야, 어떤 사람이 정수리에 불 동이[火盆]를 이고 나라에서 나라로 읍에서 읍으로 두루 다니기는 어렵지 않거니와 거룩한 지혜와 말재주가 감소하지 않게 하기는 어려우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사람은 비록 여래 대사(大師)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괴로움의 법[苦法]과 즐거움의 법[樂法]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법[非苦樂法]을 모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른 법을 말씀하시는 것을 만날지라도, 이 사람은 도리어 허망한 법[忘失法]으로 여기느니라.
사리자야, 부처님의 바른 말씀을 허망한 법이라 여기지 말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괴로움과 즐거움의 법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법을 모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르게 말씀을 하신 것이지 허망한 법이 아니니라.
사리자야, 현겁(賢劫) 동안에 네 부처님이 세간에 나타나시니,
이들 네 부처님의 성문 제자들이 차례차례 지금에 이르도록 목숨이 1백 살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실천과 지혜와 목숨은 모두가 온전하게 갖추어져서 마치 역사(力士)가 굳은 활을 당겼다가 바로 쏘면 모두 과녁에 맞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자야, 앞의 세 부처님의 성문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과 실천과 지혜와 목숨을 모두 갖추어 서로서로가 모두 날마다 모든 법의 뜻을 가까이 물었느니라.
사리자야, 지금 나의 법 가운데 성문 제자들은 한 번쯤은 묻지만 옮기는 사람은 없고,
또 내 말을 한 번은 들어도 그 가운데서 말의 뜻을 살피지 못하나니, 하물며 말세(末世)의 모든 제자이겠느냐?
만일 음식을 먹을 때 그 맛에 집착하면 피곤할 때 잠자는 일과 움직인 뒤에 쉬는 것[憩]과 대소변을 보는 일 등 모든 활동을 폐지할 것이니라.
사리자야, 앞의 세 부처님의 성문 제자들은 목숨이 길었거니와 지금의 목숨은 1백 살이어서 지극히 빠르니라.
사리자야, 1백 살의 시간이 지나면 거룩한 지혜와 말재주가 모두 줄어들 것이니,
사리자야, 그때 성문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올바른 말씀을 허망한 법이라 여길 것이니라.
사리자야, 그들은 부처님의 올바른 말씀을 허망하다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과 즐거움의 법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법을 모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씀하신 올바른 말씀이기 때문에 허망함이 없는 법이니라.”
그때 모인 대중 가운데 한 존자(尊者)가 있었으니, 이름을 용호(龍護)라 하였다. 부처님과 멀지 않은 곳에서 공작 부채[孔雀扇]를 가지고, 부처님의 곁을 모시고 있었다.
그때 부채를 놓고 부처님 앞으로 가서 합장하고 정례(頂禮)한 뒤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지금 이 바른 법을 들으니, 몸의 터럭이 놀라움에 일어서고, 큰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은 무엇이라 하오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용호야, 지금 이 바른 법은 『신모희수(身毛喜竪)』라 하나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니, 비사리 나라의 가장 뛰어나고 큰 성안에 있는 가장 뛰어난 숲의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들어 지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