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TV프로그램에서 동물 조련사가 묘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코끼리를 훈련시키던 사람이 갑자기 화가 난 코끼리에게 공격을 받아 내동댕이쳐저 죽을 뻔한 사건이 순식간에 발생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전문가들에 의하면 야생동물은 평상시는 괜찮지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잠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예로 돌고래에게 발이 물린 경험이 있는 조련사와 악어가 조련사의 머리를 삼키는 장면도 보여 주었다.
필자는 이것을 보면서 인간의 죄성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항상 죄를 범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적법한 기회가 온다면 야생동물처럼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사람은 사기를 치고 도적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참고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잘 교육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야생동물이 현재 난동을 부리면 며칠 굶을 것을 생각하여 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현명한 판단을 가지게끔 만들어 간다. 하지만 교육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의 결과를 잘 알기 때문에 억제하고 있는 것뿐이다. 약탈이나 강간이 합법으로 허용되는 세계에선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을 때의 참혹함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이것은 공산주의 혁명시대에 이미 증명되었다. 그리고 전쟁영화 내에서 잔인한 인간성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지금도 모든 사람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도둑질도 하고 싶은 충동이 가끔 일어난다. 재판에서 합법적인 것으로 판결만 받을 수 있다면 온갖 죄를 서슴없이 범하고 있다. 이런 것은 큰 것이지만 적게는 이웃을 속이며 장사아치들의 대부분의 말들은 현재법으로 처벌하기에 근거가 부족할 뿐이지 모두가 매일 죄를 범하고 있다. 다만 더 많고 적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고 한다. 현대법정에서 밝히지 못한 작은 죄들까지도 다시 하나님의 법정에서 죽은 후에는 누구나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사람은 죄인이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 앞에서는 청명한 하늘이라도 더러워 보이거든 하물며 악을 물마심 같이 하는 인간들이랴고 말한다.
성경에서 죄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동물의 본성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죄를 범할 가능성을 가진 본질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죄인이라고 지적하시는 것이다(엡2:3). 이미 태어날 때부터 형벌을 받을 자격을 갖춘 인간으로 되었는데 인간 자신이 개선을 한다거나 노력을 한들 숙명적인 사실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사람에게 얼마나 죄를 범했느냐를 묻지 않는다(요8:7 창녀의 사건을 참조하라). 다만 죄인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으신다. 야생동물이 발작을 일으킬 잠재능력을 항상 지니고 있는 것처럼 죄인은 죄를 범할 잠재력을 항상 지니고 살아간다. 다만 환경에 따라 더 많이 범죄할 수도 있고 적게 범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에게 구원을 받아라! 죄 사함을 받아라! 영원한 생명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이런 본질을 바꾸라는 것이요 그런 죄지을 수밖에 없는 본성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본성으로 바꾸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죄의 후손이다. 하나님의 후손이 되기 전까지는 모두 죄성을 지니고 있다.
첫댓글 인간은 인간이기에 늘 범죄를 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죄인은 죄를 범할 잠재력을 항상 지니고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으라고 촉구하시는 것은
구원파의 주장처럼 단지 속죄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성.본질을 하나님의 본성으로 체질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 거듭남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