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의 연구 성과
이 책의 목적은 아모스와 내가 함께 진행한 초기 연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작업은 여러 해 동안 이미 많은 사람이 훌륭히 해냈다.
지금 내 주된 목표는 정신의 작동 원리를 바라보는 견해를 제시하는 것인데,
이는 최근의 인지심리학과 사회심리학 발전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발전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이제 직관적 사고의 단점뿐 아니라 놀라운 장점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모스와 나는 직관을 다루면서,
판단에 사용되는 어림짐작, 즉 판단 어림짐작은 "매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심각하고 체계적인 오류로 이어진다"는
평범한 수준 이상의 발언을 내놓지 못했다.
우리는 편향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편향이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또 판단 어림짐작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직관적 판단이 모두 우리가 연구하는 어림짐작에서 나오는지는 자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다.
특히 전문가의 정확한 직관은 어림짐작보다는 장기간의 훈련에서 나온다는 설명이 더 바람직하다.
이제 우리는 판단과 직관에 관해 더 화려하고 조화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직관적 판단을 내리거나 선택을 할 때 능력을 이용할 수도 , 어림짐작을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은
주방에 불이 난 집에 진입한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스로 불을 끄기 시작한 직후에 지휘관은 자기도 모르게 "전원 철수!"를 외쳤다.
그리고 소방관 들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지휘관은 불길이 평소와 달리 유난히 조용했고, 귀가 유난히 뜨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이 합쳐져 그의 말마따나 "위험을 감지한 제6감"을 촉발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문제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결국 큰 불길은 주방이 아니라 소방관들이 서 있던 바닥 바로 밑 지하실에서 번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문가의 직관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는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체스의 달인이 거리를 지나다가 체스 게임을 보고는 발길을 멈추지 않은 채로
"세 번만 두면 백(白)이 지겠군"이라고 말한다거나,
의사가 환자를 흘긋 한번 보고는 복잡한 진단을 내린다거나 하는 경우다.
전문가의 직고나은 우리 눈에 마술처럼 보이지만, 마술이 아니다.
사실 우리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전문가다운 직관을 발휘한다.
수화기로 상대의 첫마디만 듣고도 그가 화났다는 사실을 단박에 정확히 눈치챈다거나,
방 안에 들어오자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거나,
옆 차선의 운전자가 위험에 빠졌다는 미묘한 신호를 재빨리 감지해 반응하는 경우가 모두 그렇다.
우리의 일상적 직관력도 노련한 소방관이나 의사의 놀라운 해안만큼이나 경이롭지만,
흔히 일어나다 보니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정확한 직관을 연구하는 심리학에 마술 따위는 없다.
이 분야 심리학을 가장 잘 요약해 말한 사람은 위대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이다.
그는 체스 달인들을 연구하면서,
이들이 수천 시간을 연습한 끝에 체스 판의 말을 우리와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가 전문가의 직관을 신격화하는 태도를 얼마나 한심해하는지는 다음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상황에 신호가 숨어 있다. 전문가는 이 신호를 이용해 기억에 저장된 정보에 접근하고,
그 정보에서 답을 얻는다. 직관은 인식 그 이상도 , 이하도 아니다."
두 살짜리 아이가 개를 보면서 "멍멍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놀랄 사람은 없다.
사물을 인식하고 이름 부르는 법을 터득하는 아이들의 기적 같은 능력에 익숙해진 탓이다.
사이먼의 말은 전문가의 직관이 보여주는 기적도 같은 종류라는 것이다.
전문가는 새로운 상황에서 익숙한 요소를 인지하고,
그것에 적절히 반응하는 법을 익히면서 효과적인 직관을 발달시킨다.
좋은 직관적 판단은 아이가 "멍멍이!"라고 말할 때처럼 머릿속에 즉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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