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실론 제3권
고제취(苦諦聚)
5. 색론(色論)[1]
5.1. 색상품(色相品)
[문] 그대는 먼저 “성실론(成實論)을 설명하겠다”고 말하였으니, 이제 설명하여야 한다.
무엇이 실(實)인가?
[답] 실이라는 것은 네 가지 진리를 말하는 것이니 괴롬[苦]과 괴롬의 원인[苦因]과 괴로움의 사라짐[苦滅]과 괴로움이 사라짐의 도[苦滅道]이다.
오수음(五受陰)이 바로 괴로움이오, 모든 업(業)과 번뇌는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요, 괴로움의 다함이 바로 괴로움의 사라짐(苦滅)이요, 여덟 가지 거룩한 도(聖道)는 바로 괴로움의 사라짐의 도이다.
이 법을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이 논(論)을 짓는다.
부처님 자신은 비록 이 법을 성취하셨으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곳곳에서 퍼뜨리며 설법하셨다.
또 부처님은 간략하게 법문을 연설하셨으니 8만4천의 법장(法藏)이 있다. 이 중에서 4의(依)와 인(因)이 있으나 이 이치를 혹은 버리고서 설명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간략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 차례로 뽑아 모아서 이치가 환히 나타나게 하려고 설명한다.
[문] 그대는 5수음이 바로 괴로움의 진리라 하였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답] 색음(色陰)과 식음(識陰)과 상음(想陰)ㆍ수음(受陰)ㆍ행음(行陰)이다.
색음이란 이른바 네 가지 요소(四大)와 네 가지 요소가 원인이 되어 이루어진 법이다.
또한 네 가지 요소가 원인이 되어 이루어진 법을 통틀어서 물질(色)이라고 한다.
네 가지 요소라 함은 땅과 물과 불과 바람[地水火風]이다.
빛[色]과 내음[香]과 맛[味]과 감촉[觸]으로 인하여 네 가지 요소를 이루고,
이 네 가지 요소로 인하여 눈[眼] 등의 다섯 가지 감관[根]을 이루며 이들이 서로 접촉하기 때문에 소리(聲)가 있다.
땅이란 물질들이 모여서 단단한 성질이 많기 때문에 땅이라 한다.
그와 같아서 젖은 성질이 많기 때문에 물이라 하고,
뜨거운 성질이 많기 때문에 불이라 하고
가벼이 움직이는 성질이 많기 때문에 바람이라 한다.
안근(眼根)이란 다만 물질만을 반연하면서 안식(眼識)의 의지가 되는 것으로서 같은 성질의 것이 의지하지 아니할 때를 다 안근이라 한다.
나머지 네 가지 감관도 역시 그와 같다.
물질이란 안식만의 반연할 바[所緣]로서 같은 성질의 것이 반연하지 아니할 때에 그것을 물질(色)이라 한다.
냄새와 맛과 닿임도 역시 그와 같다.
그것들이 서로 접촉되기 때문에 소리가 있다.
5.2. 색명품(色名品)
[문] 경전 중에서
“모든 물질은 다 네 가지 요소와 네 가지 요소가 원인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니라”고 하셨다.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말씀하셨는가?
[답]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말한 것은 결정코 물질의 모양을 말한 것이요, 다시 그 밖의 것은 없다.
외도는 “다섯 가지 요소[五大]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를 버리게 하기 위하여 네 가지 요소와 네 가지 요소가 원인이 되어 이루어졌다고 말한 것이다.
네 가지 요소는 가명(假名)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요, 두루 이르기[遍到] 때문에 크다[大]고 한다.
물질이 없는 법(法)은 형상이 없고 형상이 없기 때문에 방소(方所)가 없으며, 방소가 없기 때문에 크다고 하지 못한다.
또 굵게 나타나기 때문에 크다는 말을 하는데 심심수(心心數)의 법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크다고 하지 않는다.
[문] 무엇 때문에 땅 등의 법은 물질이라 하고, 소리 따위라고는 하지 아니한가?
[답] 대상 있는 법[有對法]을 물질이라 한다.
소리 등도 다 대상이 있기 때문에 역시 물질[色]이라 하나니, 마음의 법들과는 같지 아니하다.
형상이 있기 때문에 물질이라 하는데, 소리들도 다 형상이 있기 때문에 역시 물질이라 하며, 처소를 장애하기 때문에 형상이라 한다.
[문] 물질들은 모두가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며, 소리 따위는 형상이 없다.
[답] 소리 따위의 모두는 형상이 있다.
형상이 있고 대상이 있고 장애가 있기 때문에 벽(壁)이 막히면 들리지 않는다.
[문] 만일 소리 따위가 걸림이 있으면 다른 물건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리니 마치 벽이 막혔기 때문에 용납하는 바가 없음과 같다.
[답] 소리는 미세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음은 마치 냄새와 맛 들이 미세하기 때문에 함께 동일한 형상을 의지하되 서로 방애하지 아니함과 같다. 그러므로 소리 등은 장애가 있고 대상이 있으므로 물질이라 한다.
또 무너질 수 있는 모양이기 때문에 물질이라 하나니 여러 가지 쪼개고 끊고 해치는 따위는 다 물질에 의하기 때문이다. 이것과 반대면 형상이 없음[無色]이라고 한다.
또 전생의 착한 업과 나쁜 업을 보이기 때문에 물질이라 한다.
또 심심수의 법을 보이기 때문에 물질이라 하며 또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물질이라 한다.
5.3. 사대가명품(四大假名品)
[문] 네 가지 요소는 “붙인 이름”이라 하는데 그 이치가 아직 성립되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은 “네 가지 요소는 실제의 존재(實有)”라고 한다.
[답] 네 가지 요소는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은 외도를 위하여 네 가지 요소를 말씀하시면서
“모든 외도의 물질들은 그것이 곧 요소[大種]라고 말함은 마치 승카(僧佉)등과 같고
혹은 물질들을 여의고 그것이 요소라고 말함은 마치 위세사(衛世師)들과 같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경론[成實論]에서는 결정코 물질 등으로 인하여 땅 등의 요소를 이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알아라. 모든 요소는 붙임이 존재한다.
또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땅의 요소는 굳은 것(堅)과 굳은 것에 의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만 굳은 것만으로 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 세상 사람은 모두가 모든 요소 그 자체는 가명(假名)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무슨 까닭인가? 세상 사람은 땅을 보고 땅을 냄새 맡고 땅을 감촉하고 땅을 맛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땅은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땅 등의 모든 감관[入]안에 들면 그 사람은 물질만을 보고 굳음 따위는 보지 못한다.
또 사람은 땅의 빛과 땅의 냄새와 땅의 맛과 땅의 감촉을 보인다면, 진실한 법은 속에 있지마는 다르게 보일 수는 없다.
또 요소라는 이름의 뜻은 두루 이름[遍倒]이기 때문에 이 모양은 붙인 이름 가운데서 말한 것이요, 굳은 모양의 안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또 “땅이 물 위에 머무른다”고 말한 것은 붙인 이름의 땅이 머무르는 것이요, 굳은 것이 머무른 것만은 아니다.
또 “대지(大地)가 다 타서 연기도 숯도 없다”고 말한 것은 붙인 이름의 땅을 태운 것이요, 굳은 것을 불태운 것만은 아니다.
또 물질 등 때문에 땅들이 있음을 믿는 것이요, 굳은 것들만은 아니다.
또 우물의 비유[井喩] 중에서 말하기를 “물도 보고, 접촉도 한다”고 하였다.
만일 젖는 그것이 물이라면 두 가지는 있을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은 “5정(情)은 서로서로가 경계[塵]를 취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부처님은 “여덟 가지 공덕의 물은 가볍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고 마실 때에 알맞고 마신 다음에 뒷걱정이 없다”고 하셨다.
그 중에 가볍다 시원하다 부드럽다는 것은 바로 다 닿임[觸入]이요,
아름다움은 바로 맛[味入]이요,
깨끗함은 바로 빛깔[色入]이요,
냄새가 나지 아니함은 바로 내음[香入]이요,
알맞고 탈이 없음은 그것이 그의 세력(勢力)이다.
이 여덟 가지가 화합한 것을 통틀어 물이라 한다.
그러므로 알아라. 모든 요소는 바로 붙인 이름으로 존재한다.
또 원인이 되어 이루어진 법은 그것이 다 붙인 이름이어서 실제의 존재가 없다.
게송 중의 말씀과 같다.
바퀴 따위가 혼합할지라도 수레라 하고
다섯 가지 쌓임이 화합한지라 사람이라 한다.
또 아난은 말하기를
“모든 법은 여러 가지 인연으로 이루어진지라 나는 결정된 처소가 없구나” 하였다.
또 만일 사람이 “굳음 따위는 그것이 요소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곧 굳음 따위를 물질 따위의 의지한 바[所依]로 쌓은 것이니, 이것은 의지[依]가 있고, 주장[主]이 있으므로 이는 부처님의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네 가지 요소는 그것이 다 붙인 이름인 줄 알 것이다.
또 모든 법 중에는 부드럽고 정밀하고 반드러운 것 들은 모두가 감촉에 포함되는데, 굳음 따위의 네 가지 법은 무슨 이치로 유독 요소가 된다는 것인가?
또 동일[一]하다 하는 등의 네 가지 집착은 다 허물이 있다.
그러므로 네 가지 요소는 바로 가명 뿐인줄 알 것이다.
또 진실한 법의 존재 모양과 가명의 존재 모양과 그리고 가명의 능소(能所)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러므로 네 가지 요소는 실제의 존재가 아니다.
5.4. 사대실유품(四大實有品)
[문] 네 가지 요소는 실제의 존재이다.
무슨 까닭인가?
아비담(阿毘曇) 중에서
“굳은 모양은 땅의 요소요 젖은 모양은 물의 요소요, 뜨거운 모양은 불의 요소요, 움직이는 모양은 바람의 요소이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 가지 요소는 그것이 실제의 존재이다.
또 물질 등의 만들어진 물질은 네 가지 요소로부터 생기어 가명으로만 존재한다면 법을 내지 못한다.
또 굳음 따위는 네 가지 요소를 보인 것으로써 이른바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을 땅이라 한다.
그러므로 굳음 따위는 실제의 요소이다.
또 경전 중에서 부처님께서 설명한 두 가지 것은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과 젖음과 젖음에 의지하는 것이다”라는 것들이니,
그러므로 알아라. 굳음은 바로 실제의 법이요, 굳음에 의지하는 이것이 가명이다.
나머지 요소도 역시 그와 같다.
그러므로 굳음 따위는 실제의 요소이고, 굳음에 의지하는 법만이 세속에 따르기 때문에 요소라 한다.
그러므로 두 가지 요소가 있어서 실제이기도 하고 가명이기도 하는 것이다.
또 아비담 중에 말하기를
“형상 있는 곳은 땅이오, 굳은 모양은 땅의 요소이다. 그 밖의 요소도 역시 그렇다”고 하였다.
또 경전 중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눈[眼] 형상 안에 있는 바의 굳은 것과 굳음에 의지함은 땅이요, 젖는 것과 젖음에 의지하는 것은 물이요, 뜨거운 것과 뜨거움에 의지하는 것은 불이다”고 하셨다.
살[肉]로 된 형상을 땅이요, 이 살 형상 속에서 부처님은 네 가지 요소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굳음 따위는 실제의 요소이고 형상은 가명의 요소임을 알 것이다.
또 부처님은 바람 중에는 의지하는 것이 있음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알아라. 바람은 바로 실제의 요소이다.
또 만일 누가 네 가지 요소는 가명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요소의 모양을 여읜 것이다.
만일 굳음에 의지하는 것을 땅의 요소라 한다면, 물의 굳은 물질에 의지하면 물은 곧 땅이 되고 진흙 뭉치가 습기에 의지하면 진흙 뭉치가 곧 물이 되는 것은 마치 열병(熱病)에 걸린 사람의 온 몸이 모두 뜨거우면 몸이 곧 불이 된다는 것과 같으리니, 그 일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굳음에 의지한다 하여 바로 땅의 요소라 말할 수 없다. 굳은 것만이 땅의 요소가 될 뿐이며, 그 밖의 요소도 또한 그렇다.
또 네 가지 요소는 함께 생기기 때문에 서로 여의지 않는다.
경전 중의 말씀에
“모든 물질은 다 네 가지 요소의 조작이다”고 하였다.
만일 사람이 네 가지 요소가 실제의 존재라고 말한다면 서로가 여의지 않을 것이요, 만일 가명이라 하면 응당 서로 여의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굳음에 의지하는 물질들은 젖음에 의지하는 것들을 여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눈의 현상 안에는 네 가지 요소가 없어서 곧 경전과는 서로 위반된다.
그대는 경전과 위반되지 않게 하려면 네 가지 요소는 바로 실제라 해야 한다.
그대가 먼저 “외도를 위하여 네 가지 요소를 설명하였다” 하나, 그 일은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외도들은 “네 가지 요소는 물질들과 동일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하지만,
우리들은 감촉[觸]의 적은 부분이 바로 네 가지 요소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또 우리는 현재에 보이는 굳음 따위를 네 가지 요소라 말하면,
위세사(衛世師)가 “네 가지 요소가 역시 존재하되 나타나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또 그대가 “굳음과 굳음에 의지한다”고 하나,
의지하는 뜻은 두 가지이다.
경전 중에서
“물질은 물질에 의지한다”고 하고,
또 “마음은 요소의 법에 의지한다”고 함과 같아서,
이 뜻 안에서는 굳임이라 한 말은 곧 굳음에 의지한다는 것이어서 조금도 틀리는 법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또 그대가 “세상 사람은 다 믿는다” 하고 내지
“여덟 가지 공덕의 물은 세속의 말에 따랐을 뿐 실제의 요소가 아니다”고 말하며,
또 그대가 “인연이 되어 이루어진 법은 그것이 다 가명이다”고 하나, 이 일도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경전 중에서 말씀하기를
“여섯 가지 감촉의 감관이거나 여섯 가지 감촉의 감관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법이다”고 하였으며,
또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 묻되
“무엇으로 눈이 되나이까”
부처님은 대답하되,
“네 가지 요소를 원인하여 만들어지는 청정한 물질을 바로 눈이라 한다”고 하여
이와 같은 열 가지 감관이 되기 때문이다.
또 그대는 “주장이 있고 의지가 있다”고 하나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 다만 법이 법 가운데 머무름을 말할 뿐이다.
또 그대는 “굳음 따위에 무슨 이치가 있기에 유독 요소라 이름하느냐”고 말하나,
굳음 따위에는 이치가 있다. 이른바 굳은 모양은 능히 지탱하게 하고, 물의 모양은 능히 윤택하게 하고 불의 모양은 능히 뜨겁게 하고, 바람은 능히 성취하게 한다.
그러므로 요소는 바로 실제이다.
5.5. 비피증품(非彼證品)
[답] 그렇지 않다. 네 가지 요소는 그것이 가명일 뿐이다.
그대는 비록 아비담 중에서 “굳은 모양은 땅의 요소이다”라고 말하였다 하더라도 그 일은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 스스로가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은 땅이요, 다만 굳은 모양뿐이 아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로 인(因)이 아니다.
또 그대는 “물질들은 네 가지 요소에서 생긴다”고 말하나, 이 일도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물질 등은 업과 번뇌와 음식과 음욕 등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눈은 무엇으로 원인하는가, 업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탐욕의 쾌락이 쌓이기 때문에 물질이 쌓인다”고 하였다.
또 아난이 비구니에게 훈계하면서
“누이여, 이 몸은 음식으로부터 생기고 애착과 젠체하는 것으로부터 생기고 음욕으로부터 생겼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알아라. 물질 등은 네 가지 요소로부터 생기는 것만이 아니다.
[문] 물질 등이 비록 업 등으로부터 생긴다손 치더라도 네 가지 요소도 역시 조그만큼의 인이 되어야 하리니,
마치 업으로 인하여 곡식이 있지만, 이 곡식도 역시 종자 등을 빌어서 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아서 눈 등도 비록 업으로부터 생길지라도 네 가지 요소도 또한 조그마한 인연이 된다.
[답] 혹 물질의 인연이 없이도 생기는 수가 있다.
마치 겁(劫)이 다 끝난 다음에 겁이 다시 시작하면서 큰 비가 내림과 같다.
이 물은 어디서부터 생기는 것인가?
또 모든 하늘은 욕망하는 생각에 따라 이내 얻는 것은 마치 좌선하는 사람이나 큰 공덕이 있는 사람이 욕망하면 뜻대로 되는 것 같나니,
이런 일은 어떤 인연이 있어서인가? 다만 업만이 아니겠는가?
또 물질의 계속이 끊어진 뒤에 다시 생기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이 무형 세계에 났다가 도로 형상 세계에 와 나면 이 물질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는가?
[문] 무엇 때문에 물질이 다만 업으로부터 생기게 되며 무엇 때문에 물질이 바깥 인연을 기다려서 생기게 되는가?
[답] 만일 어떤 중생으로서 업력(業力)이 약하면 종자와 여러 가지 인연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마는 업력이 강하면 바깥 인연을 빌리지 않는다.
또 법이 의례 그러한 것이라 혹 업이 있거나 혹 법이 생기는 곳이 있거나 간에 업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요 바깥의 인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또 만일 인연을 기다린다면 “종자는 바로 싹 등의 원인이다”라고 해야 하겠거늘 무엇 때문에 꼭 “굳음 따위로 인하여 생긴다”고 말하겠는가?
또 무슨 이치 때문에 굳음 따위로부터는 물질 따위가 나고 물질 따위로부터는 굳음 따위가 나지 않는 것인가?
또 굳음 따위와 물질 따위는 똑같이 함께 생기는 것인데 어째서 굳음 따위로 인하여 물질 등의 있고 물질 등으로 인해서는 굳음 따위가 있지 않고 말하는가?
또 한꺼번에 법을 내면 서로 인이 될 것이 없나니, 마치 두 개의 뿔이 함께 날 때 왼쪽과 바른쪽이 서로 인이 된다고 말할 수 없음과 같다.
[문] 등불과 광명은 비록 일시에 생길지라도 역시 광명은 등으로 인한 것이요, 등은 광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함과 같이 이 일도 역시 그렇다.
[답] 등과 광명은 다르지 않다.
등은 두 가지 법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첫째는 빛이오,
둘째는 감촉이다.
빛은 곧 광명이기 때문에 등과 다르다 할 수 없거늘, 그대는 진실로 이 비유(譬喩)를 생각하지 않았구나.
[문] 이 광명은 등으로부터 떠나서 다른 곳에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다르다.
[답]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이 밝은 빛은 등 가운데 나타나 있다.
만일 다른 곳에 있다면 등불을 꺼버려도 역시 보여야 하리니, 그러나 실은 보이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알아라. 이 빛은 등불과 다르지 아니하다.
[문] 다시 같은 시간에 생긴 법도 또한 인과 과가 된다.
마치 대상이 있는 가운데의 식과 같아서 눈과 물질은 인연이 되지마는 눈과 물질은 식으로써 인연을 삼지는 아니한다.
[답] 그렇지 아니하다. 안식은 먼저 마음을 인으로 삼고 눈과 물질로 연을 삼는다. 원인 되는 마음이 먼저 사라졌거니, 어떻게 함께 생긴다 하는가?
또 만일 법이 원인을 따라 생긴다면 그것은 곧 원인이 이룩한 것이다. 만일 마음이 감관과 경계[情塵]로 인하여 있다면 그것은 곧 원인으로 이루어질 바의 법이다.
또 다시 네 가지 요소는 바로 만들어진 물질이니, 원인으로 생길 바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에 세간의 물질을 보아도 원인으로부터 생기는 것은 마치 벼로부터 벼가 생기고 보리로부터 보리가 생김과 같다. 그와 같이 땅으로부터는 땅을 내고 물 따위를 내지 아니한다.
그와 같아서 물질로부터는 물질을 낸다는 것이 이와 같은 따위이다.
[문] 또한 보건대, 물질이 다른 원인으로부터 나는 것도 있다.
마치 소의 털[牛毛]을 거꾸로 심으면 부들(蒲)이 나고 뿔(角)을 심으면 갈대[葦]가서 나는 일과 같다.
[답] 나는 다른 원인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비슷한 원인으로부터 또한 생긴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물질 따위로부터 물질 따위를 내는 것이어서 다만 네 가지 요소로부터 나오지 아니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결정코 물질 따위는 네 가지 요소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그대가 “굳음 따위로 네 가지 요소를 보이며, 그러므로 굳음 따위는 바로 실제의 요소라 말하나, 이 일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굳음 따위로 결정된 모양을 근거로 네 가지 부드러움을 결정하지 아니하는 것을 분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부러움이란] 혹은 굳음이 많은 것들 안에 있기도 하고, 혹은 젖음이 많은 것들 안에 있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것들을 분별할 수는 없다.
그 밖의 것도 그와 같다.
또 굳음 따위의 감촉[觸]을 분별하여 부드러움 따위라 한다.
왜 그런가? 만일 젖는 것으로 보면 역시 물질을 내는 성질이라 부드럽고 미끄러우며, 굳은 모양이 많기 때문에 굳고 딱하고 거칠고 껄끄러운 그러한 것들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때문에 다만 굳음 따위로 네 가지 것들을 분별할 뿐이다.
또 경전 중에서
“굳은 것에 의지하기 때문에 네 가지 요소의 차별을 보인다”라고 함과 같다.
그러므로 말아라. 굳은 법에 의지하여 법을 땅의 요소라 하며 굳은 모양뿐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굳은 모양은 땅을 이루는 원인이라 말한다.
또 땅을 이루는 것 중에서 굳은 것이 가장 뛰어난 원인이니 그러므로 특별히 말한 것이다. 그 밖의 모양도 또한 그렇다.
또 이름을 짓기 위하여 온갖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을 다 땅의 요소라 한다.
혹시 어떤 사람은 굳은 모양만을 땅의 요소라고 말하므로
그것을 부수기 위하여 부처님은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을 땅의 요소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밖의 것도 그와 같다.
또 굳은 모양의 것들 중에는 굳은 것이 많기 때문에 두 가지로 말하였다.
온갖 것들 중에는 모두가 굳음 따위의 모든 닿임이 있어서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을 땅의 요소라 하고,
젖음과 젖음에 의지하는 것을 물의 요소라 하고,
뜨거움과 뜨거움에 의지하는 것을 불의 요소라 한다.
또 굳은 것은 땅을 이루는데 뛰어난 원인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 땅이 이루어진다 하고,
가명의 인연으로 인하여 가명의 이름이 있음은
마치 “나는 사람이 숲을 벌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함과 같다.
또 그대는 두 종류의 말이 있다고 말하나, 그 일은 옳지 못하다.
만일 요소가 진실하다는 말에 따르면, 열두 가지 감관(入)들은 응당 진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눈은 물질을 반연함으로 인하여 안식이 생기게 된다고 하겠으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니, 요소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삿된 의론[邪論]이다.
또 부처님은 화종성(火種定)에 들어서 부처님의 몸으로부터 가지가지의 불길을 내뿜으신데,
그 중에서 어느 것을 불의 요소라 하겠는가?
물질들은 불을 이루는 것이라 뜨거운 모양만은 아니다.
또 부처님은 이 몸을 상자[筺]라고 하셨으니, 그 속에는 다만 터럭과 손톱 등이 담길 뿐이다.
경전 중에서 말씀하기를
“이 몸속에는 터럭과 손톱들이 있다”고 하심과 같다.
그러므로 터럭과 손톱들은 바로 땅의 요소이다.
요소[種]라는 말이 있다하여 실제의 법이라 말하지 못한다.
또 종자경(種子經) 중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땅의 요소만 있고 몸의 요소가 없으면 모든 씨앗은 나서 자랄 수가 없으리라”고 하셨다.
그 중에서 어느 것이 땅의 요소인가?
이는 가명(假名)일 뿐이며, 인(因)은 굳은 모양만이 아니고 물도 또한 가명으로서 오직 젖은 모양만은 아니다.
또 한 가지 법에 두 가지 실제를 인정하거나 가명이라고 [부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물질들은 바로 실제이다.
또 눈 따위는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 모든 요소가 있고, 실제도 되고 붙인 이름도 된다 하면 그도 역시 삿된 논리인 것이다.
또 육종경(六種經) 중에서 부처님은 “터럭이나 손톱들은 땅의 요소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또 상보유경(象步喩經) 중에서도 역시 “터럭이나 손톱들은 땅의 요소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무슨 뜻이 있기 때문에 요소는 실제라고 하고 요소는 붙인 이름이라고는 말하지 아니하는가?
또 이런 뜻은 경전에도 실리지 아니하였다.
또 그대는 말하기를 “부처님은 눈의 형상안의 모든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그것을 땅따위라 말씀하셨다”고 하나
부처님은 이 말씀으로써 다섯 가지 감관은 네 가지 요소로 인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이신 것이다.
혹 어떤 이는 “나로부터 감관을 낸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요소를 여의고 따로 감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모든 감관은 갖가지 성품에서 나는데 땅의 요소[地大]로부터 코 감관을 낸다”고 하는 것들이다.
부처님은 이런 소견을 끊으려고
“눈 등의 감관은 네 가지 요소가 합하여 이루어지되 공(空)하여 진실한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또 분별하여 붙인 이름의 인연을 이루나 붙인 이름도 역시 없다.
또 이 살[肉]의 형상 안에는 네 가지 갈래의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들이 있다면
부처님은 그 말씀으로써
“모든 물질 중에는 네 가지 요소로부터 생김이 있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또 그대의 말에 “부처님은 바람 가운데는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실제의 요소라 한다”고 하나, 그 일은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바람 가운데의 가벼운 것은 바로 뛰어난 모양이어서 가벼운 것에 의지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땅 따위의 가운데는 굳음에 의지하는 법 등이 뛰어난 것이지만, 바람은 그렇지 아니하다.
또는 가벼움에 의지하는 법은 적기 때문에 말씀하지 아니하셨다.
또 그대의 말에 “만일 네 가지 요소가 가명(假名)이라면 요소의 모양을 여읜다”고 하나, 그 일은 그렇지 않다.
만일 굳음과 굳음에 의지하는 것이 네 가지 요소로부터 생기면 땅의 요소라 한 것이요, 다른 물질이 서로 의지하였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만일 법이 서로 다르면 의지한다고 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곧 서로 여의는 것이다.
[문] 낸다 하면 의지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의지는 다른 물질이 와서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답] 이름을 의지한다 할 뿐이지 다른 물질이 서로 의지하는 것은 아니니, 생기는 법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허공은 두루 이른다고 말하지마는 실로 두루 이름이 없음과 같다.
또 그대의 말에 “네 가지 요소는 함께 생긴다”고 하나 그 일은 그렇지 않다.
마치 햇빛 속에는 다만 빛깔과 더운 촉감만이 있음을 얻을 수 있고 다시 다른 법이 없으며,
달빛 안에는 다만 빛깔과 서늘한 감촉만을 얻을 수 있고 또한 다른 법이 없음과 같다.
그러므로 온갖 물질 가운데는 모두 네 가지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물질은 있되 맛이 없음은 금강 따위와 같고
물질은 있되 내음이 없음은 금과 은 따위와 같고
물질은 있되 빛깔이 없음은 온실(溫室)안의 따스한 기운과 같고
물질은 있되 더운 기가 없음은 달 따위와 같고,
물질은 있되 찬 기운이 없음은 불 따위와 같고
물질은 있되 서로 움직임은 바람 따위와 같고,
물질은 있되 움직이지 않음은 모난 돌 따위와 같다.
이와 같이 혹 어떤 물질은 단단하지 아니하고, 혹 어떤 물질은 축축하지 아니하고, 혹 어떤 물질은 뜨겁지 아니하고, 혹 어떤 물질은 움직이지 아니함과 같다.
그러므로 네 가지 요소가 서로가 여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문] 바깥의 인연으로 모든 요소의 성품은 발동한다.
마치 금이나 돌 들 중에는 흐르는 모양이 있으므로 불에 닿으면 발동하고
물중에는 굳어지는 모양이 있으므로 찬 것으로 인하여 발동하고
바람 중에는 찬 모양과 더운 모양이 있으므로 물과 불로 인하여 발동하고
풀이나 나무 중에는 움직이는 모양이 있으므로 바람을 만나면 발동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먼저 제 성품이 있으면 반연을 빌려서 발동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알아라. 네 가지 요소는 서로 여의지 못한다.
만일 본래 제 성품이 없다면 어떻게 발동할 수 있겠는가?
[답] 만일 그렇다면 바람 중에 혹시 향기가 있을 때 이 향기는 응당 바람 속에 있어야 하리니,
마치 향기가 기름에 배었으면 향기는 으레 기름 속에 있는 것과 같아야 하므로 이 일도 옳지 못하다.
또 모든 요소로부터 만들어진 물질을 내지 아니함은 마치 축축한 것으로부터 축축한 것을 내는 것처럼 그와 같아서 물질로부터 물질을 낸다.
또 만일 서로 여의지 아니하면 원인 중에 결과가 있음은 마치 처녀에게 아들이 있고, 음식 중에 불결한 것이 있음과 같다.
우리들은 원인 중에 결과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록 젖 속에는 타락(酪)이 없으나 타락은 젖에서 생긴다. 이러하거늘 무슨 생각과 분별로써 네 가지 요소는 함께 생기고 서로 여의지 않는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