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반야심경(般若心經)』
4.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약해(略解)
심경(心經) 현토(懸吐) |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약해(略解) |
관자재(觀自在)의 보살(菩薩)이 |
삼신(三身) 사지(四智)에 만덕(萬德)을 구비(具備)한 일대인(一大人)의 대자재경(大自在境)을 관찰(觀察)하는 보살(菩薩)이 |
행심반야바라밀다(行深般若波羅蜜多) 시(時)에 |
심밀(深密)의 정지(正智)로써 피안(彼岸)에 도(到)하는 법(法)을 수행(修行)할 시(時)에 |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하야 |
먼저 망정(妄情)으로 임의 분별(分別)하든 색법(色法)인 색온(色蘊)과 심법(心法)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사온(四溫)은 일즉히 가상가명(假相假名)으로서 명상(名相)이 본(本) 공(空)일새 오온(五蘊)의 개공(皆空)함을 조견(照見)하야 |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니 |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를 주(主)로 한 일체고액(一切苦厄)의 고해(苦海)를 도(渡) 하나니 |
『반야심경』의 약해(略解)를 보겠습니다.
어떤 경전이나 서분(序分)이 있고 정종분(正宗分)이 있고
유통분(流通分)이 있습니다.
서분은 서론이요, 본론이 정종분이고 결론은 유통분인 것입니다.
서분이라, 관자재(觀自在)의 보살(菩薩)이,
삼신사지(三身四智)에 모든 공덕을 구비한
일대인(一大人)의 대자재경(大自在境)을 관찰하는 보살이,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과 같은데 이렇게 깊은 뜻이 있습니다.
관자재보살을 풀이하면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三身)과
본래 진여불성에 갖추어 있는 지혜인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의
무량한 지혜와 만덕을 갖추어 있는 경계를 다 관찰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주 전체의 성품과 현상을
조금도 빠짐없이 갖추어 볼 수 있는 보살이
이른바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입니다.
보살이란 진리를 여법히 통찰하고 행하는 이를 말합니다.
다음에 행심반야바라밀다(行深般若波羅蜜多) 시(時)에,
심밀(深密)의, 깊고 비밀스러운 바른 지혜로써 피안(彼岸)에,
해탈의 언덕에 이르는 법을 수행할 때에,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하야,
먼저 망정(妄情)으로 이미 분별하던 색법인 색온(色蘊)과
심법인 수상행식의 사온(四蘊)은 일찌기 가상가명(假相假名)으로서,
참다운 상도 아니고 참다운 이름도 아닌 명과 상이 원래 공할 새
오온이 다 공임을 비추어 봐서,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니,
생로병사를 주로 하는 일체고액의 고해를 제도하나니,
<정종분 제2(正宗分 第二)>
심경(心經) 현토(懸吐) |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약해(略解) |
사리자(舍利子)야 색불이공(色不異空)이요 공불이색(空不異色)일새 색즉시공(色卽是空)이오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수상행식(受想行識)도 亦復如是(역부여시)니 |
사리자(舍利子)야 색(色)이란 공성(空性)의 여여상(如如相)으로서 색체(色體)가 별유(別有)함이 않이오 공체(空體)의 환화(幻華)일새 색(色)이 공(空)과 불이(不異)하고 공(空)이 색(色)과 불이(不異)하야 공(空) 그대로 색(色)이오 색(色) 그대로 공(空)이라 사온(四溫)[수상행식(受想行識)]도 또한 그러하니 |
사리자(舍利子)야 시제법공(是諸法空)의 상(相)이 |
사리자(舍利子)야 이러한 오온(五蘊)[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제법(諸法)이 본공(本空)한 실상(實相)은 |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
원래(元來) 생(生)하였음이 않이니 멸(滅)하지 못하고 |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
염구(染垢)하지 않앴으니 세정(洗淨)하지 못하고 |
부증불감(不增不減)일새 |
흠축(欠縮)없이 원만(圓滿)하니 증감(增減)하지 못할지라 |
시고(是故)로 공중(空中)에 무색(無色)이라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이니 |
그럼으로 제법공(諸法空)의 실상(實相)엔 색(色)이란 가상(假相)도 무(無)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이란 가명(假名)도 무(無)하야 무명(無明)이란 가상가명(假相假名)의 총대명사(總代名詞)로서 근본무명(根本無明)[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무(無)하니 |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요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도 무(無)하고 |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오 |
지말무명(枝末無明)[육근(六根)]이 무(無)하니 육진(六塵)[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도 무(無)하며 능지(能智)의 의식계(意識界)도 무(無)하야 |
무안계(無眼界)요 내지(乃至) 무의식계(無意識界)일새 |
이미 근진(根塵)[육근육진(六根六塵)]이 무(無)하니 전오식(前五識)의 소지경계(所智境界)[안식계․이식계․비식계․설식계․신식계(眼識界․耳識界․鼻識界․舌識界․身識界)]도 무(無)하며 |
무무명(無無明)이라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이며 |
무명(無明)이란 도시본무(都是本無)할새 무명(無明)의 진(盡)할 것도 무(無)하며 |
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라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이며 |
따라서 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도 무(無)할새 내지(乃至) 노사(老死)의 진(盡)할 것도 무(無)하며 |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
이와 같이 삼세(三世)의 고과(苦果)와 그 집인(集因)을 밝히신 십이지(十二支)의 인연법(因緣法)이란 곧 오온법(五蘊法)에 기(基)한 자(者)로서 실상(實相)에 본무(本無)할새 수도증멸(修道證滅)할 것도 무(無)하니 |
무지(無智)라 역무득(亦無得)하야 이무소득(以無所得)일새 고(故)로 |
이상(已上) 오온법(五蘊法)의 범부지(凡夫智)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의 연각지(緣覺智)와 사제법(四諦法)의 성문지(聲聞智) 등(等) 일체(一切) 유위법(有爲法)의 유루지(有漏智)란 몽환포영(夢幻泡影)을 계집(計執)함과 여(如)하야 개시(皆是) 허망(虛妄)일새 일체유루(一切有漏)의 지(智)가 무(無)하고 따라서 유루(有漏)의 득(得)도 무(無)하며 생사유루(生死有漏)를 득(得)할 바가 무(無)함으로 |
보리살타(菩提薩埵)는 |
제상(諸相)의 무명운(無明雲)을 개(開)하고 비상(非相)의 불성일(佛性日)을 견(見)하는 개사(開士)는 |
반야바라밀다(依般若波羅蜜多)니 고(故)로 |
무위법(無爲法)의 무루지(無漏智)로써 열반안(涅槃岸)에 도(到)하는 법(法)에 의(依)함으로 |
심무괘애(心無罣碍)요 무괘애고(無罣碍故)로 무유공포(無有恐怖)라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하고 구경열반(究竟涅槃)하나니 |
심(心)에 유루(有漏)의 괘애(罣碍)가 무(無)하고 괘애(罣碍)가 무(無)함으로 무명심(無明心)의 극단(極端)인 사액(死厄)의 공포(恐怖)가 무(無)해짐에 따라 일체(一切)의 전도몽상(顚倒夢想)을 원리(遠離)하고 열반(涅槃)에 구경(究竟)하나니 |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蜜多故)로 득아누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시니라 |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여차(如此) 수행(修行)하야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證得)하시나니라 |
본론인 정종분(正宗分)에,
사리자(舍利子)야 색불이공(色不異空)이요 공불이색(空不異色)일새
색즉시공(色卽是空)이오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사리자야 색(色)이란 공성(空性)의 여여상(如如相)으로서,
색이 원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공성 그대로 인연 따라 그림자 같은 상을 내었다는 말입니다.
즉 어느 상이라도 진리에 맞는 여법한 상입니다.
색이란 그 성품이 공(空)이라는 것이지
없던 것이 나오고 진리에 안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색이든지, 무슨 물질이나 모두가 다 본체에서 본다면
진여의 여법한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색체가 따로 있음이 아니요,
공체에서 피어나오는 허깨비 꽃, 허망한 그림자일새,
색과 공이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서
공 그대로 색이요 색 그대로 공이라,
분석한 뒤의 공이 아니라 바로 색즉공입니다.
색 그대로 공이요 또는 공 그대로 색입니다.
진여불성이 어떻게 바꾸어진다 하더라도
변질이 되거나 변동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꿈같은 허환상(虛幻相)이 상만 나툴 뿐이기에 바로 즉공(卽空)입니다.
물리학자처럼 분자를 원자로 분석하듯이 분석한 뒤의 공은 석공(析空)이고
반야심경의 공은 즉공(卽空)인 것입니다.
수상행식(受想行識)도 亦復如是(역부여시)니,
4온도 또한 그러하니 수와 상, 행, 식도 역시 그와 같이 공이라는 말입니다.
사리자(舍利子)야 시제법공(是諸法空)의 상(相)이,
사리자야 이러한 색․수․상․행․식 오온의 제법이 본래 공한 실상(實相)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부증불감(不增不減)일새,
원래 생하였음이 아니니 멸하지 못하고,
(보통은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요 라고 번역합니다만
이런 풀이가 금타 스님의 독특한 풀이입니다.)
실상(實相)에서 통찰할 때는
원래 생겨나지 않았으니 멸할 것도 없고,
염구(染垢)되지 않았으니, 원래 오염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염되게 보는 것은 우리 중생이 잘못 보는 것입니다.
세정(洗淨)하지 못하고, 다시 씻을 필요가 없고,
흠축 없이 원만하니 증감하지 못할지라,
아무 흠절이 없이 원만무결하니 새
삼 더하고 덜고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시고(是故)로 공중(空中)에 무색(無色)이라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이니,
그러므로 제법공의 실상은 색이란 가상(假相)도 무(無)하고
또는 수상행식이란 가명(假名)도 무하여
무명(無明)이란 가상가명의 총 대명사로서 근본무명이 무하니,
그 무명이란 것은 결국 가상을 실상으로 보고
가명을 실제로 생각하는 데서 생기지 않습니까.
무명의 시초도 제법의 상을 여실하게 보지 못해서 무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요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오,
안의비설신의 6근(根)도 무하고 지말무명인 6근이 무하니
또 6진(塵)인 색성향미촉법도 무하며,
무안계(無眼界)요 내지(乃至) 무의식계(無意識界)일새,
이미 6근과 6진이 무하니 전5식의 소지경계(所智境界)
즉 안식계․이식계․비식계․설시계․신식계도 무하고
능지(能智)의, 능히 분별하는 의식계도 무하며,
무무명(無無明)이라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이며,
무명이란 도시 본래 없을 새 무명을 다할 것도 없으며,
무무명 역무무명진의 풀이를 잘 새기십시오.
무명이란 본래 없으니 무명을 없앨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무명이 있어야 무명을 여읠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라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이며,
따라서 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생도 무할 새,
반야심경에서 무명이나 내지 무노사는 십이인연법을 인용한 것입니다.
원래 무명이 없거니 무명에서 파생되는 행이나 식이나 다 응당 없고
따라서 늙어서 죽는 것도 결국은 없다는 말입니다.
노사를 다할 것도 없다,
즉 노사가 없다고 하면 끊을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원래 무명이 없기 때문에
무명에서 파생된 십이인연법(十二國緣法)의
십일지(十一支)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고집멸도는 상당히 세밀히 풀이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삼세의 고과(苦果), 곧 삼악도(三惡道)나
우리 중생이 윤회하는 육도(六道)는 고의 과보입니다.
과거세에 지은 무명과 삼독심에서 업을 지은 고의 과라는 뜻입니다.
그 집인(集因)을 밝히신 십이지의 인연법이란
곧, 5온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원래 실상에는 없을 새 수도증멸(修道證滅)할 것도 없다.
우리가 공을 미처 모를 때 이렇게 저렇게 분별하는 것이지
제법공의 경계 곧, 색도 공이요, 또는 우리 마음 우리 관념도 공이요,
모두 공이라는 도리를 안다면
사제(四諦)법문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나 집이나 또는 멸이나 도나 모두가 다 색(色)이 있고
심(心)도 있는 데서 나온 것이지
색심(色心)이 공하다면
이런 것이 어디에 붙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지(無智)라 역무득(亦無得)하야 이무소득(以無所得)일새 고(故)로,
이상 5온법의 범부지(凡夫智)와 십이인연법의 연각지(緣覺智)와
사제법의 성문지(聲聞智) 등 일체유위법의 유루지(有漏智)란,
물론 부처님께서 아함경에서 오온법이나 십이인연법을 말씀하신 법문이
유루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표면에 나타난 문자로서는 색심(色心)을 설하고
본래자성자리를 분명히 말씀한 것이 아니기에
아직 방편설이 되겠지요.
몽환포영, 곧 꿈이나 허깨비나 또는 거품이나 그림자같이
허망한 것들을 집착함과 같이 모두가 한결같이 허망하니,
일체 유루(有漏)의 지(智)가 무하고
따라서 유루의 득(得)도 무하며
생사유루(生死有漏)를 득할 바 없으므로,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즉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잘 되었다, 잘났다,
또 무엇이든 많이 안다, 이런 것도
결국은 때 묻은 번뇌의 득이므로 얻을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생사윤회할 까닭이 없다는 뜻입니다.
보리살타(菩提薩埵)는 반야바라밀다(依般若波羅蜜多)니 고(故)로,
모든 상의 무명운(無明雲)을 걷고서
상이 아닌 불성일(佛性日)을 견(見)하는 개사(開士)는,
개사는 살타보살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야심경을 여실히 아는 정도가 되면
벌써 보살지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공을 알면 대승초입(大乘初入)이라, 대승에 입문하는 것이므로
반야를 모르면 대승이 못되는 것입니다.
무위법(無爲法)의 무루지로써 열반 안에 이르는 법에 의하므로,
심무괘애(心無罣碍)요 무괘애고(無罣碍故)로 무유공포(無有恐怖)라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하고 구경열반(究竟涅槃)하나니,
마음에 유루의 괘애(罣碍)가,
유루의 그림자나 거리낌이 없고 괘애가 없으므로
무명심의 극단인 죽음의 공포가 없어짐에 따라
일체의 전도몽상을 멀리 여의고
열반의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범부심은 잠재의식이나 현재의식이나 간에
모두가 다 죽음의 공포를 면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는 응당 죽음의 공포는 따르겠지요.
마음에 아직 번뇌가 남아있는 거리낌이 없어지고
또는 그런 거리낌이 없으므로 무명심의 극단인 죽음의 공포가 없어짐에 따라
일체의 거꾸로 보는 전도몽상을 멀리 여의고
열반을 구경(究竟)한다는 말입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蜜多故)로
득아누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시니라,
삼세제불도 이와 같이 수행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시나니라,
삼세제불도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오온이 개공한 반야의 지혜를 떠나서 성불할 수 없는 것입니다.
般若觀照(반야관조) [上], 廻光返照(회광반조) [下]
<유통분 제3(流通分 第三)>
심경(心經) 현토(懸吐) |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약해(略解) |
고지(故知)하라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가 시대신주(是大神呪)며 |
고(故)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가 구경각(究竟覺)까지 성취(成就)하는 묘불가사의(妙不可思議)의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며 |
시대명주(是大明呪)며 |
근진식(根塵識)의 제혹(諸惑)을 단(斷)하고 적멸(寂滅)을 증(證)하니 도무극(度無極)의 삼명(三明)과 육통(六通)이 생(生)하는 대방편(大方便)이며 |
시무상주(是無上呪)며 |
팔만장경(八萬藏經)을 독파(讀破)하고 천칠백공안(千七百公案)을 입증(立證)함보다 승(勝)한 법(法)이며 |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니 |
최상무비(最上無比)의 총지(摠持)니 |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요 |
이상(以上) 그대로의 해의수행(解義修行)이 견고(堅固)하면 다라니신통장(多羅尼神通藏)에 주(住)할새 제마(諸魔)가 불침(不侵)이오 |
진실불허(眞實不虛)라 |
일체(一切)의 허망상(虛妄相)을 리(離)한 실상(實相)의 지혜(智慧)라 |
고(故)로 설반야바라밀다주(說般若波羅蜜多呪)일새 |
고(故)로 이의 실상지(實相智)인 반야(般若)로써 도피안(到彼岸)하는 약법(約法)을 중설(重說)할새 |
즉설주왈(卽說呪曰) |
곧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의 화두(話頭)요 공안(公案)이라 이를 더욱 단축(短縮)하여 총괄(總括)하면 |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보디사바하(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娑婆訶) |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디사바하(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娑婆訶)라시니 반야바라밀다주(般若波羅蜜多呪) 그대로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의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됨을 요지(了知)할지니라. |
유통분(流通分)이라.
고지(故知)하라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가 시대신주(是大神呪)며
시대명주(是大明呪)며 시무상주(是無上呪)며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니,
고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가 구경각까지 성취하는
묘불가사의(妙不可思議)의 대총상 법문이며
6근·6진·6식의 제혹(諸惑)을 단하고 적멸을, 해탈을 증하니,
도무극(度無極) 곧 다시 더 높은 곳이 없는
가장 수승한 삼명(三明:天眼通․宿命通․漏盡通)과
육통(六通:三明에 神足通․他心通․天耳通을 합한 神通)이 생하는 대방편이며
팔만대장경을 독파하고 1700공안(公案)을 입증함보다 수승한 법이며
최상무비(最上無比)의 총지(總持)니,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요 진실불허(眞實不虛)라,
이상 그대로의 뜻을 알고서
수행이 견고하면 다라니신통장 곧 일체재앙을 없애고
모든 공덕을 갖추는 법인 다라니 신통장에 머물게 되니
모든 마구니가 침범할 수 없고
일체 허망상을 떠난 실상(實相)의 지혜입니다.
고(故)로 설반야바라밀다주(說般若波羅蜜多呪)일새,
고로 반야바라밀다주(般若波羅蜜多呪)를 설(說)할새
즉설주왈(卽說呪曰)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보디사바하(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娑婆訶),
곧,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사바하라 한다.
이 주문은 실상지(實相智)인 반야로써
도피안(到彼岸)하는 압축된 간략한 법문으로서
곧 반야바라밀다의 화두(話頭)요 공안이 되니
반야바라밀다주 그대로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은 금타 스님이 주를 붙인 것입니다.
개명심이(蓋明心而) 견성(見性)이오 견성이(見性而) 오도(悟道)일새
선수후오(先修後悟)란 수(修)는 미수(迷修)요
선오후수(先悟後修)란 수(修)는 오수(悟修)니
수법(修法)에 있어 강경(講經)이나 송주(誦呪)나 참선(參禪)이나 관법(觀法)이나
그의 방법(方法)은 다소(多少) 차이(差異)가 유(有)하지만
미(迷)․오(悟)의 경(境)은 일야(一也)요
증(證)이란 신증(身證)이며 오(悟)란 심오(心悟)일새
신증심오(身證心悟)를 증오(證悟)라 운(云)하나니라
<갑신춘(甲申春) 벽산한인 찬(碧山閑人 撰)>
대저 마음 밝힘이 견성이요, 견성이 바로 오도일새
먼저 닦고 뒤에 깨닫는 선수후오(先修後悟)란 미혹된 수행법이요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선오후수(先悟後修)란 참다운 수행법인 오수(悟修)이니,
수법에 있어서 경을 보는 것이나 또는 송주나 참선이나 관법이나
그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천수경으로 깨달으나 염불하고 깨달으나 화두로 깨달으나, 깨달은 경계는 둘이 아니요,
증(證)이란 몸으로 증하는 것이요 오(悟)란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니
신증심오(身證心悟)를 증오(證悟)라 합니다.
☞ 출처 : 본정 김영동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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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은 공부에 증진에 따라 다가오는 울림이 크게 다릅니다
청화큰스님 해설말씀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실상의 본질을 꿰뚫어 바로 말씀 주십니다
공과 색이 다르지 않으니 그대로 공이다
분석한 뒤에 색이 아니라 그대로 공이다...
바로 색즉공임을 배웁니다..
행복하게 봅니다
늘 청안하소서..나무아미타불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_()_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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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증오(證悟)의 뜻 새롭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반야바라밀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