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초일명삼매경 하권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는 것]
이에 혜영(慧英)이라는 보살이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살이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하나이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항하 모래 수같이 많은 겁 동안 공덕을 쌓으면서 만족하지 않고,
4등심(等心)을 들으면서도 만족하지 않으며,
4은(恩)의 법을 닦으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고,
6도무극을 행하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습니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닦으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고,
크게 인자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면도 만족하지 않으며,
5신통에 나아가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또한 만족하지 않으며,
또한 대승의 가르침을 행하면서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성문이나 연각을 나타내어 널리 온갖 중생을 교화하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으며,
열반을 나타내어 보이고 열반에 머무르다가 다시 생사의 세계로 돌아가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면서도 이르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마치 허공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나오지도 않고 들지도 않으며 통달하지 않은 바가 없고 두루 하지 않은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바로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과거를 헤아리지 않고 미래로써 한계와 장애를 두지 않으며 현재에도 처소(處所)를 두지 않아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인 3세(世)의 한정이 없으며,
3도(塗:惡道) 등에서 삼계라는 생각도 없고 열반이라는 기억도 없으며,
도(道)라는 분별도 없고 세속(世俗)이라는 분별도 없으며
좇아 따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이것이라야 비로소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듣는 바에도 또한 듣는다는 분별이 없고,
보는 바에서도 또한 본다는 분별이 없으며,
말하는 바에서도 또한 말한다는 분별이 없고,
제도하는 바에서도 또한 제도한다는 분별이 없는
이것이라야 비로소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행과 성취]
혜영이 또 물었다.
“무엇을 행하는 것이라 하고 무엇을 성취한다 합니까?”
“보살의 뜻을 일으켜 4등심과 대자대비와 무극(無極) 지혜를 행하며, 보시로써 사람을 섭수하고, 계율 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행이 차츰차츰 점차로 나아가는 이것을 바로 행하는 것이라 하며,
그 행이 공ㆍ무상ㆍ무원(無願)의 법을 초월하면서 나를 분별하여 보지도 않고 3세를 헤아려 보지도 않으며 열반과 생사를 보지 않는 이것을 바로 성취라 합니다.”
대영(大英)보살이 또 부처님께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어디에서 오고 갈 때는 어디로 가며,
늙고 병들고 죽을 때는 어디에서 와서 갈 때는 어디로 가며,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 (行)ㆍ식(識)은 어디에서 오고 갈 때는 어디로 가며,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과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마음은 어디에서 오며 갈 때는 어디로 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어디에서 오는 것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느니라.
연(緣)이 합하면 있다가 연이 흩어지면 소멸하는 것이니,
마치 요술과 같고 변화와 같으며 그림과 같고 북과 같으며 비와 같고 번갯불과 같이
모두가 인과 연을 따르며, 연이 있으면 생기는 것이 있다가 연이 없으면 대상이 없으니,
나고 죽고 하는 것도 그와 똑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다는 것]
대영이 또 물었다.
“무엇을 어디에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으며 인과 연이 합하여 성립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행을 지으면 사람이 되고, 하늘의 행을 지으면 하늘이 되며, 지옥의 행을 지으면 지옥이 되고, 축생의 행을 지으면 축생이 되며, 아귀의 행을 지으면 아귀가 되고, 다섯 가지 행이 없으면 5도가 없으며, 5도가 없으면 출입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을 사람의 근본이라 하느니라.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인 삼계가 없고, 마음[心]ㆍ뜻(意)ㆍ의식[識]이 없기 때문에 삼계가 없으니,
이것을 사람의 근본이라 하느니라.
아직 사람이나 만물이 있지 않으면 색(色)이 있되 보는[見] 것이 없으니,
무엇을 색이 있되 보는 것이 없다고 하는가?
땅의 색[地色]과 물의 색[水色]과 불의 색[火色]과 바람의 색[風色]이니라.
고정된 것을 땅이라 하고, 맑은 것을 물이라 하며, 밝은 것을 불이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바람이라 하느니라.
하늘과 땅이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는 아직 삼계도 있지 않은 것이니,
이 네 가지의 색이란 언제나 자연 그대로일 뿐이요,
짓는 이[作者]가 없어도 자연히 움직여 일어나며,
오직 도(道)만이 능히 이름하고[能名] 나아가 보처(補處)만이 능히 이름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바로 형상이 없는[無像] 색이요, 또한 마음의 색[心色]이라고 하느니라.
아유월치(阿惟越致:不退轉)는 마음의 색을 보고,
아유안(阿惟顔:一生補處)은 네 가지 색의 마음을 보며,
여래는 아직 있기 전의 네 가지 색의 마음의 근본을 보느니라.
삼계안에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음의 색이고,
마음의 근본[心本]이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며,
보살에 대한 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말하고,
마음의 색이 없는 뜻이면 삼계는 자연 그대로이며,
허공과 같아야 비로소 도(道)라고 하느니라.
이 모든 법에는 합쳐짐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 그 까닭은 가령 합쳐진다 하면 곧 사람의 근본일 것이요, 흩어진다 하면 곧 생사(生死)이기 때문이니라.
생사의 고통과 열반의 쾌락을 보는 이를 성문(聲聞)이라 하고,
중간에 처해 있으면서 온갖 것에 이익이 없는 이를 연각(緣覺)이라 하느니라.
합쳐짐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면서 열반에 처하지도 않고 생사를 미워하지도 않는 이를 비로소 법신(法身)이라 하는 것이니,
법신은 형상이 없되 두루 온갖 것에 들어가며 또한 들어가는 바도 없고 들어가지 않는 바도 없느니라.”
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 5천의 하늘과 사람이 어디로부터 생겨난 바가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냈다.
[근본으로 삼는 것]
이때 아난이 세존께 물었다.
“도의 뜻[道意]을 일으켜 보살이 되고자 하면 마땅히 무엇을 근본[本]으로 삼아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진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공의 지혜를 분별하며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나와 수명을 보지 않는 것을 근본이라 하느니라.”
[더디거나 빠른 것]
또 물었다.
“어찌하여 더디거나 빠른 것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이니라.”
또 물었다.
“무엇을 있다고 하고, 무엇을 없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다고 함은, 정진을 따르면서 게으르지 않고 공덕을 쌓고 심으면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ㆍ선권방편과 자ㆍ비ㆍ희ㆍ호와 4은(恩)과 공한 행으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는 것이니, 게으르지 않음으로부터 얻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로 있다고 하느니라.
없다고 함은, 도(道)에는 처소가 없고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이 지음[造作]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짓는 바도 없고 마음ㆍ뜻ㆍ의식도 없으며, 안도 없고 바깥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취하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도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로 없다고 하느니라.
[전륜왕]
그 까닭은 여러 겁을 지나서 그 수조차 헤아려 알기 어려운 옛적에 자재 (自在)라는 전륜왕이 있었는데, 그 왕에게는 천(千)의 아들이 있어서 용맹스럽고 걸출하였으며 국토가 7보로 되어 있는 4천하를 주관하였으며, 바른 법으로써 다스리고 형벌도 가하지 않았었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묘(寶妙)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족(明足行)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이라 하였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셨으니, 처음 말씀도 좋았고 중간 말씀도 좋았고 마지막 말씀도 좋았으며, 그 뜻을 분별하되 미묘하게 구족하였으며, 범행(梵行)을 청정하게 닦으면서 법을 연설하여 넓히셨으므로, 그때 모인 보살은 무수억(無數億)의 대중이었고, 성문과 연각도 한없이 많았느니라.
그때 전륜왕은 부처님을 여러 해 동안 공양하고 모셨었는데, 천의 아들과 보배스런 신하[寶臣]와 대중과 그들을 따르는 권속들이 다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보살의 행을 널리 말씀하시어 안온(安穩)한 바가 많았고 구호된 바가 많았으며, 온갖 사람들에 있어서 제일 높은 이었느니라.
왕과 모든 아들과 보배 신하와 수종한 이들은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켜 밤이나 낮이나 정진하면서 감히 게으르거나 쉬지 않았으며, 여래께 온갖 편안한 바를 공양하였느니라.
이때 천 명의 아들 모두는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공덕을 시험하려 하였는데,
‘저마다 누가 먼저 부처님이 되는가를 산가지를 뽑아 제일 좋은 산가지를 뽑은 이는 그 밖의 나머지 사람을 항복시켜 그 차례대로 부처님이 되게 하며 게으르고 박덕(薄德)한 이가 최후에 뽑힌 것으로 하자’ 하고,
곧 말한 대로 저마다 산가지를 뽑았느니라.
그 가운데 한 태자가 최후에 산가지를 뽑았는데 맨 끝에서야 비로소 부처님이 되게 되었으므로,
그는 그때에 근심ㆍ걱정하면서 스스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곧 큰 산이 무너지듯 자기 몸을 땅에 던지면서
‘내가 어찌하여 맨 나중에 부처님이 된단 말이냐?’라고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근심ㆍ걱정하지 말라. 도(道)에는 기한이 있는 것도 없고 또한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느니라.
공(空)하여 없다는 지혜를 능히 분별하여 알면 곧 먼저 부처가 되느니라.’
이때 그 태자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도의 뜻을 일으켜 불기법인을 얻었으며,
큰 자비를 행하면서 온갖 법은 마치 요술ㆍ그림자ㆍ메아리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꿈ㆍ파초ㆍ물속의 달과 같은 줄 알았으므로
천 명 가운데 네 번째로 부처님이 되었으니, 명호는 석가문(釋迦文)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었느니라.
그 나머지의 모든 아들들은 차례대로 부처님이 될 것이며, 최후에 부처님이 될 이는 명호가 누유(樓由)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알고자 하느냐? 그때의 전륜성왕은 바로 정광(錠光)여래이시며, 제비를 잘못 뽑은 태자는 곧 공하여 없음을 이해하고는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먼저 부처님이 되었으니,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그 나머지의 여러 아들들은 현겁(賢劫) 동안 천 부처님이 되실 분들이니라. 그러므로 이런 이치를 알아야 하느니라.
도는 멀거나 가까운 것이 없고 공을 알아 미묘함을 분별하면서 자연 그대로 법인 줄 알아야 비로소 빨리 부처님이 되느니라.”
그때 모여 있는 이들 모두가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면서 널리 도의 뜻을 일으켜 보살행을 닦았으므로 5천의 보살은 법인(法忍)을 체득하였고 만인(萬人)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