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연기초승법문경 하권
4. 무명의 등기(5)
[연기의 뜻]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연기(緣起)란 말은 어떠한 뜻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모든 부분은 각자의 연에 의하여 화합하되 빠지지 않고, 잇따라 일어나게 하는 것을 연기의 구의(句義)라 한다.”
[연기의 여덟 가지의 부분]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만 이렇게 생을 상속하게 하는 연기뿐이고, 다시 다른 연기는 없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연기를 말할 적에 간략히 여덟 가지의 부분이 있다 한다.
첫째는 세속의 경계를 수용하는 연기이니, 이른바 눈과 색을 연하여 안식(眼識)을 내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觸)이 있으며, 촉이 연이 되어 수(受)가 있으니, 이렇듯 자세히 말한다.
둘째는 임지(任持)의 연기이니, 이른바 4식(食)을 연하여 모든 근(根)의 대종(大種)이 머무르거나 자라난다.
셋째는 식(食)의 연기이니, 이른바 모든 곡식 구할 때에 밭이나 종자나 물 따위의 연이 있어야 싹 따위를 내는 것이다.
넷째는 일체의 태어난 몸[生身]이 상속하는 연기이니, 이른바 능인(能引)ㆍ능생(能生)이 있어서 일체의 소인(所引)ㆍ소생(所生)을 낸다.
다섯째는 일체의 태어난 몸[生身]이 의지하는 연기이니, 이른바 모든 세계는 모든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부서지는 시설(施設)이다.
여섯째는 일체 태어난 몸의 차별된 연기이니,
이른바 불선(不善)과 선(善)의 유루업(有漏業)에 의하여 3악취(惡趣)와 인취(人趣)와 천취(天趣)가 시설된다.
일곱째는 청정한 연기이니,
이른바 남의 소리에 의하거나 혹은 자기의 속마음의 이치와 같은 작의(作意)를 말미암아 정견(正見)을 내고 무명을 멸한다.
무명이 멸하는 까닭에 모든 행이 따라서 멸하니, 자세히 말하면 성(成)까지도 멸하는 까닭에 노사도 따라서 멸한다.”
[연기의 차례(멸의 경우)]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명 따위가 차례차례로 연이 되어서 능히 행 따위를 내는 것과 같이, 곧 이와 같은 차례대로 멸하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차례대로 저것이 멸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모든 분(分)은 공능(功能)을 내지 못하므로 뒤의 모든 분으로 하여금 불생법(不生法)을 얻게 하는 것을 나타내려 차례대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생기는 모습이 아닌 멸법(滅法)은 차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여덟째는 자재(自在)의 연기이니, 이른바 잘 정려(靜慮)를 닦는 것이 연이 된다.
모든 선정을 닦는 이가 알고자 하는 것[願樂]을 따르면 이와 같이 모두 이루어 끝내 개별적인 것[別異]이 없게 된다.
이러한 것을 나는 간략히 말한 여덟 가지의 부문의 연기라고 한다.”
[연기법의 부분들 사이의 관계]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업을 인하는 까닭에 생기고, 애(愛)를 인하는 까닭에 움직인다’ 하시니,
어떠한 비밀한 뜻이 있기에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무명이 연이 되어 먼저 모든 유에서 갖가지의 복행(福行), 혹은 비복행(非福行), 혹은 부동행(不動行)을 짓고 자라게 하여, 갖가지의 태어날 몸[生身]의 종자의 차별을 이끌어 내고 섭수한다.
이 유에서 만약 애가 아직 끊어지지 않으면 이 애를 말미암는 까닭에 능히 행 따위로 하여금 저 유를 움직이게 하고, 유는 뒷몸[後有] 자체(自體)의 공능을 일으킨다.
이러한 공능은 애를 떠나지 않으니, 이 비밀한 뜻에 의지하는 까닭에
‘업을 인하는 까닭에 생기고, 애를 인하는 까닭에 움직인다’고 한다.”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애가 움직이는 것의 인이라 하시면,
무슨 까닭에 다만 취(取)만이 유의 연이 된다 하시고, 애가 연이 되어 유가 있다고 하지 않으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취를 여의고 애(愛)만 있으면 비복행을 연하여 전변(轉變)하거나, 유의 지분을 성취하여 모든 악취(惡趣)에 태어나게 할 수 없으리라.
또 취를 여의고 모든 애가 없으면 복행과 부동행을 연하여 전변하고 유의 지분을 성취하여 부정지(不定地)와 정지(定地)의 모든 선취(善趣)에 태어나게 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애만이 유의 연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 유의 지분도 반드시 취를 연한다.”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대인연법문경(大因緣法門經)』에 말씀하시기를
‘너 아난타야, 만약 저들 유정의 무리에 생(生)이 없으면 마땅히 이러이러한 무리의 생(生)이 없을 것이며,
만약 일체의 생이 도무지 없으면 마땅히 생(生)이 연이 되어 노사(老死)가 있게 된다는 시설을 할 수 없으리라’ 하셨으니,
어떠한 비밀한 뜻에 의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생(所引生)과 소생생(所生生)과 두 가지의 비밀한 뜻에 의하여 이렇게 말한다.
또 노사(老死)의 원증상연에 의하거나 노사의 근증상연에 의지하는 두 가지의 비밀한 뜻으로써 이렇게 말한다.”
[연기의 뜻 열한 가지]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먼저 연기의 어구의 뜻[句義]은 간략히 말씀하셨으나, 아직 연기의 뜻[義]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연기의 뜻에 간략히 열한 가지가 있으니, 이와 같은 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짓는 이[作者]가 없는 이치가 연기의 뜻이며,
유정(有情)을 떠나는 이치가 연기의 뜻이며,
다른 이를 의지하는[依他] 이치가 연기의 뜻이며,
동작(動作)이 없는 이치가 연기의 뜻이며,
성품의 무상(無常)한 이치가 연기의 뜻이며,
찰나에 없어지는 이치가 연기의 뜻이다.
인과가 상속하여 끊임없는 이치가 연기의 뜻이며,
갖가지 인과의 품류(品類)가 차별된 이치가 연기의 뜻이며,
인과가 결정되어 어지럽지 않은 이치가 연기의 뜻이니,
이러한 것들이 연기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연기의 매우 깊은 모습 다섯 가지]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른 경전에서 연기는 심히 매우 것이라 말씀하셨으니
어떻게 하여야 이러한 연기의 매우 깊은 모습을 알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열한 가지의 간략한 연기의 이치에 의하여 마땅히 연기의 다섯 가지 매우 깊은 모습을 알아야 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인(因)이 매우 깊고,
둘째는 상(相)이 매우 깊고,
셋째는 생(生)이 매우 깊고,
넷째는 차별이 매우 깊고,
다섯째는 유전(流轉)이 매우 깊으니,
마땅히 연기의 심심을 알아야 한다.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상(相)이 매우 깊은 것이며,
인과(因果)의 모든 부분을 이끌어 내는 것[引發]이 매우 깊은 것이며,
인과의 모든 부분을 내는 것[生起]이 매우 깊은 것이며,
차별(差別)이 매우 깊은 것이며,
대치(對治)가 매우 깊은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연기에 또 다섯 가지의 매우 깊은 모습이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섭(攝)이 매우 깊고,
순차(順次)가 매우 깊고,
역차(逆次)가 매우 깊고,
집취(執取)가 매우 깊고,
행(行)하는 것이 매우 깊으니,
이것이 무명의 등기가 특별한 점[等起殊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