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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유범천소문경 제3권
[수기]
가섭이여, 만약 어떤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불사(佛事)를 지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섭이여, 그 불세존의 수명은 한량없으며, 가섭이여, 그 불국토에는 마귀의 방해[魔事]가 없고 모든 보살과 더불어 선한 일[善事]을 짓게 된다.”
장로 대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사람이 청정한 불국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저 망명보살이 닦은 선근공덕(善根功德)과 같아야 장엄하고 청정한 불토(佛土)를 취할 수 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망명동자보살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那由他)의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청정한 서원을 세우고 공덕을 닦고 장엄(莊嚴)을 구족했기 때문에 이러한 청정한 불국토를 얻었다.
그러므로 가섭이여,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이런 깨끗한 불국토를 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망명동자보살이 닦은 원행(願行)을 배워야 한다.”
이때 승사유범천이 망명동자보살에게 말했다.
“인자께서는 이미 부처님으로부터 수기(受記)를 얻었습니다.”
망명동자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일체의 중생에게 모든 여래께서 수기(授記)하셨습니다.”
말했다.
“무슨 일에서 수기를 얻었다는 것입니까?”
말했다.
“업에 따라서 과보를 받아서 수기를 얻습니다.”
말했다.
“당신은 무슨 업으로 수기를 얻었습니까?”
망명이 물었다.
“범천이여, 업이란 몸으로 짓는 것이 아니며, 입으로 짓는 것도 아니며, 뜻으로 짓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업이란 것을 볼 수 있습니까?”
범천이 대답했다.
“볼 수가 없습니다.”
망명이 물었다.
“범천이여, 인자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범천이여, 보살행(菩薩行)에 그 짓는 모습[作相]이 있다고 봅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보살은 모든 행상(行相)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었다.
“범천이여, 보리(菩提)가 상(相)을 일으킵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보리는 곧 무위(無爲)라서 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물었다.
“범천이여, 상(相)을 일으키는 것으로써 무위의 보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망명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뜻에 의하여 어떠한 곳에서든 업(業)도 없고, 업의 과보도 없으며, 짓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 것이 곧 보리입니다.
보리와 같이 말 역시 그러하며, 말과 같이 수기 또한 그러하여
행위한다는 법[作法]을 일으키는 것으로서는 수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범천이 물었다.
“선남자여, 당신은 6바라밀을 행한 뒤에 수기를 얻은 것이 아닙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당신이 말한 바와 같이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여서 수기를 얻습니다.
범천이여,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렸다면 이를 단바라밀(檀波羅蜜)이라 하고,
모든 법에서 일으키는 바가 없는 것을 시(尸)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법에 상(傷)함이 없는 것을 찬제(提)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법에서 상(相)을 여읜 것을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법에 머무는 바가 없는 것을 선(禪)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법에 희론(戱論)이 없는 것을 반야(般若)바라밀이라 합니다.
범천이여, 보살이 이와 같은 6바라밀을 어느 곳에서 행하겠습니까?”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여, 행하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하는 바가 있다면 이는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하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 아니며, 행하는 것 아님이 곧 행하는 것입니다.”
망명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그러한 뜻 때문에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행하는 바가 없는 것이 곧 보리입니다.
당신이 질문한 것처럼 ‘당신은 보리의 수기를 받았는가?’ 한다면 진여법성(眞如法性)이 수기를 얻듯이 나 역시 그와 같이 수기를 얻었습니다.
범천이여, 이러한 법에 의해서 마땅히 행하는 것이 없음이 곧 보리행임을 알아야 합니다.
범천이여, 당신이 말한 바와 같이 ‘당신은 수기를 얻었는가’ 한다면 진여(眞如)와 법계(法界)가 수기한 것처럼 나도 이와 같이 수기합니다.”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여, 진여와 법계는 수기함이 없습니다.”
망명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진여와 법계처럼 그와 같은 상(相)으로 수기합니다.”
이때 승사유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떠한 행을 하였기에 모든 부처님들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얻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생겨나는 법[生法]도 행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滅法]도 행하지 않으며,
선법(善法)도 행하지 않고, 불선법(不善法)도 행하지 않으며,
세간법도 행하지 않고 출세간법도 행하지 않으며,
유루법(有漏法)도 행하지 않고 무루법도 행하지 않으며,
죄가 되는 법도 행하지 않고 죄가 되지 않는 법도 행하지 않으며,
유위법(有爲法)도 행하지 않고 무위법도 행하지 않으며,
도 닦음도 행하지 않고, 끊어 없앰도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세간도 행하지 않고 열반도 행하지 않으며,
보는 법[見法]도 행하지 않고 듣는 법[聞法]도 행하지 않으며,
깨달음의 법[覺法]도 행하지 않고 아는 법[知法]도 행하지 않으며,
보시도 행하지 않고 버리는 것도 행하지 않으며,
지계(持戒)도 행하지 않고 복(覆)도 행하지 않으며,
인욕도 행하지 않고 선(善)도 행하지 않으며,
발심(發心)도 행하지 않고 정진(精進)도 행하지 않으며,
선(禪)도 행하지 않고 삼매(三昧)도 행하지 않으며,
지혜도 행하지 않고 행함도 행하지 않으며,
아는 것도 행하지 않고 얻음도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범천이여,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모든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수기한다.
왜냐하면 범천이여, 모든 행하는 바가 있으면 모두 옳게 여기는 것이 있으니 옳게 여기는 바가 없는 것이 곧 보리이다.
모든 행하는 바가 있음은 모두 분별이니 분별없음이 곧 보리이다.
모든 행하는 바가 있음은 모두 작위(作爲)를 일으킴이니 작위를 일으킴 없는 것이 곧 보리이다.
모든 행하는 바가 있으면 모두 희론(戱論)이니 희론이 없음이 곧 보리이다.
범천이여, 이러한 뜻에 의지하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보살이 모든 행하는 바를 초월한다면 곧 수기를 얻게 된다.”
[수기란 무엇인가]
이때 승사유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수기를 말씀하셨는데, 수기라는 것은 어떠한 법을 수기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모든 법에서 두 가지 상(相)을 여읜 것을 수기라 하며,
생멸(生滅)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수기라 하며,
몸과 입과 뜻의 업상(業相)을 여읜 것을 수기라 한다.
범천이여, 내가 과거를 생각해보니 그때 이름을 선견(善見)이라 하는 겁(劫)이 있었다. 나는 그 겁에서 72나유타(那由他)의 부처님께 공양했는데도 이 모든 여래는 나에게 수기(授記)하지 않았다.
또 이 겁을 지나 선화(善化)라는 이름의 겁이 있었는데 나는 그 겁에서 72억의 부처님께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 역시 나에게 수기하지 않았다.
또 이 겁을 지나 범탄(梵歎)이라는 이름의 겁이 있었는데 나는 그 겁에서 8만 8천의 부처님께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 역시 나에게 수기하지 않았다.
또 이 겁을 지나 무구(無咎)라는 이름의 겁이 있었는데 나는 그 겁에서 3만 2천의 부처님께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 역시 나에게 수기하지 않았다.
또 이 겁을 지나 장엄(莊嚴)이라는 이름의 겁이 있었는데 나는 그 겁에서 4천 8만의 부처님께 모두 일체의 공양을 갖추어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 역시 나에게 수기하지 않았다.
범천이여, 나는 지난 옛날에 이미 일찍이 1겁과 나머지 잔겁(殘劫) 동안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마음을 다해 공경 존중하고 찬탄하며 깨끗하게 범행(梵行)을 닦았으며
일체를 보시하고 일체의 지계(持戒)와 두타행(頭陀行)을 하며
성냄을 여의고 인욕과 자심(慈心)으로 말씀한 바와 같이 행하고 부지런히 닦고 정진했으며,
일체 들은 바를 다 수지(受持)하고, 홀로 멀리 여읜 곳에서 모든 선정(禪定)에 들었으며
듣고 얻은 지혜에 따라서 독송하고 사유하고 물었으나
이 모든 여래 역시 나에게 수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문자에 의지하여 모든 부처님께 물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부처님이 나에게 수기하지 않은 것은 또한 행하는 것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모든 행함을 초월한다면 수기를 얻게 된다.
범천이여, 나는 그 후에 연등불(然燈佛)을 친견하고는 즉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때 연등불께서 나에게 수기하시기를
‘선남자여, 너는 내세(來世)에 마땅히 부처가 되고 이름을 석가모니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라 하리라’ 하셨다.
나는 그때 모든 행을 초월하고 6바라밀에 만족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모든 상(相)을 버리면 이름하여 단(檀)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수지(受持)한 바를 소멸해 버리면 이름하여 시(尸)바라밀이라 하며,
경계(境界)를 손상시키지 않으면 찬제(提)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행하는 바를 여의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라 하며,
일체의 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선(禪)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법의 생겨남이 없는 성품[無生性]에 인욕하면 반야(般若)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다.
범천이여, 나는 연등불의 처소에서 이와 같은 6바라밀에 만족하였다.
범천이여, 내가 처음 보리심을 낸 이래로 지은 바의 보시는 이러한 상(相)을 버리는 보시에 비하면 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분, 백천만분 내지 산수(算數)로 비유해도 미치지 못한다.
범천이여,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계를 지키고 두타를 행한 것은 이 항상 계를 멸하는 것에 비하면 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치지 못한다.
범천이여,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행한 유화인욕(柔和忍辱)은 이러한 필경인법(畢竟忍法)에 비하면 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치지 못한다.
범천이여,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부지런히 정진한 것은 이렇게 취하지도 않고 정진을 버리지도 않은 것에 비하면 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치지 못한다.
범천이여,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혼자 있으면서 선정(禪定)에 든 것을 이 머무름이 없는 선정에 비하면 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치지 못한다.
범천이여,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사유(思惟)하고 생각한 지혜는 이러한 희론(戱論)이 없는 지혜에 비하면 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분, 백천만억분 내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치지 못한다. 범천이여, 이렇기 때문에 나는 그때 이미 6바라밀의 만족을 얻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6바라밀에 만족한다는 것]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6바라밀에 만족하였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보시를 생각하지 않고, 지계(持戒)에 의지하지 않고, 인욕을 분별하지 않고, 정진(精進)을 취하지 않고, 선정(禪定)에 머물지 않고, 지혜에 두 가지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범천이여, 이것을 6바라밀에 만족했다고 한다.”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6바라밀에 만족하였다면 어떠한 법에 만족할 수 있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6바라밀에 만족했다면 살바야(薩婆若)에 만족할 수 있게 된다.”
범천이 아뢰었다.
“어찌하여 6바라밀에 만족하면 살바야에 만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보시가 평등하면 곧 살바야가 평등하며,
지계(持戒)가 평등하면 곧 살바야가 평등하며,
인욕이 평등하면 곧 살바야가 평등하며,
정진이 평등하면 곧 살바야가 평등하며,
선정이 평등하면 곧 살바야가 평등하며,
지혜가 평등하면 곧 살바야가 평등하게 된다.
이러한 평등으로써 일체의 법을 평등하게 하면 이름하여 살바야라 한다.
다시 범천이여, 보시상(布施相)ㆍ지계상ㆍ인욕상ㆍ정진상ㆍ선정상ㆍ지혜상에 만족하면 이것을 살바야라 한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6바라밀에 만족하면 살바야를 만족할 수 있게 된다.”
[살바야에 만족한다는 것]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살바야에 만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눈이 색을 보지 않고 나아가 뜻도 법을 알지 않아야 한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안과 밖의 6입(入)을 관찰하는 것을 이름하여 살바야를 만족한다고 한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살바야를 만족하게 되면, 소위 눈에도 집착함이 없고 나아가 뜻에도 집착함이 없게 된다.
이러한 뜻 때문에 여래를 막힘없고 걸림 없는 살바야 지혜라 한다.
범천이여, 살바야는 법에서 받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살바야는 법을 받는 그릇이 아니기 때문이다.
범천이여, 그릇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무물(無物)이므로 성만(盛滿)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무물이란 비어 있는 것을 일컬으며 비어 있는 것은 허공과 같으므로 이름하여 살바야라 한다.
이러한 뜻 때문에 법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일체의 행위는 모두 허공에 의지하지만 저 허공은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살바야의 지혜는 다 살바야에서 나오지만 살바야는 의지하는 데가 없다.”
[살바야는 무엇인가]
승사유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살바야를 말씀하셨는데 살바야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어떠한 뜻에서 살바야라 일컫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일체의 행은 저 살바야의 지혜로 이른바 성문ㆍ벽지불과 일체 의 세간을 안다. 이런 뜻 때문에 살바야라 한다.
모든 행하는 바에 있어서 평등지(平等智)로써 모든 마음을 알고 모든 행을 알고 모든 자비를 알고 모든 배움을 알고 모든 발심과 수행을 알기 때문에 일컬어 살바야라 한다.
일체의 상(相)을 여읠 수 있고 일체의 깨달음을 부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살바야라 한다.
여실(如實)하게 말과 말 아닌 것을 알고, 여실하게 일체 중생의 심행(心行)을 알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여실하게 일체를 증득하여 깨달은 바른 지혜를 알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여실하게 무학의 지혜[無學智]와 성문ㆍ벽지불의 지혜를 알고, 여실하게 일체 종류의 지혜를 아는 것이 모두 이 살바야 가운데서 나온다. 이러한 뜻 때문에 살바야라 한다.
여실하게 정행(正行)을 아는 것이 다 살바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살바야라 한다.
여실하게 일체의 약(藥)을 알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일체의 병(病)을 소멸시키기 때문에 살바야라 한다.
일체의 속박을 벗어나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일체의 번뇌와 습기(習氣)를 제거하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항상 일체의 선정에 있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일체의 법 가운데 의심이 없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이 살바야로부터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살바야라 하며 일체의 지혜와 방편상(方便相)을 알기 때문에 살바야라 한다.
범천이여, 일체의 법과 방편이 이 법에서 나오기 때문에 살바야라 한다.”
이때 승사유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불여래(佛如來)의 지혜는 매우 깊고 마음에 인연한 바가 없으므로 일체 중생의 마음과 마음의 소행을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저 살바야가 이와 같은 무량한 공덕이라면 그 누구의 지혜인들 선남자ㆍ선여인이 살바야를 듣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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